원 클럽 플레이어/야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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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류
※ 기준은 10년(11시즌) 이상 한 구단에 소속되었다가 은퇴한 경우이며 현역 선수는 등재하지 않는다.
1. 메이저 리그 베이스볼[편집]
메이저 리그의 경우 트레이드가 KBO 리그나 NPB보다 활성화되어 있어 원 클럽 플레이어로 남기는 매우 힘든 편이다.[1]
- 볼드체는 영구 결번 선수.
2. KBO 리그[편집]
- 프로 이전 실업리그에서 뛰었거나, 군복무를 위해 상무/경찰청에서 뛴 경우, 또는 현역이나 사회복무요원으로 복무한 경우도 포함시킨다.
- 볼드체로 적힌 선수는 해당 팀 영구결번 선수.
2.1. 해외 리그를 경험한 선수[편집]
3. 일본프로야구[편집]
- 볼드체는 영구결번
3.1. 해외리그를 경험한 선수[편집]
4. 원 클럽 플레이어에 준하는 선수[편집]
- 김원형 : 1991년부터 1999년까지 총 9시즌을 쌍방울 레이더스에서 뛰고 쌍방울이 해체된 뒤 선수단만 인수한 SK 와이번스에서 2011년까지 총 12시즌을 뛰었다. 이후 SK에서 은퇴식까지 치뤘다. 아래의 오주원, 이숭용처럼 사실상 원 클럽 플레이어다.
- 오주원: 2004년부터 2007년까지 현대 유니콘스에서 뛴 후, 팀 해체 후 선수단을 승계한 히어로즈에서 2008년부터 2021년까지 총 13시즌 동안 선수생활을 하였다. 이숭용처럼 자의적으로 팀을 옮긴 것이 아니라 해체 후 선수단만 인수한 팀으로 옮긴 것이기 때문에 사실상 원 클럽 플레이어로 쳐도 무방하다.
- 이숭용: 1994년부터 2007년까지 총 14시즌을 태평양 돌핀스-현대 유니콘스에서 뛰다가 팀이 해체된 뒤, 선수단만을 인수한 우리-서울-넥센 히어로즈에서 2011년까지 뛰었다. 공식적으로는 현대와 히어로즈가 별개의 팀이라 원 클럽 플레이어는 아니지만, 특수성을 감안해서 KBO에서는 공식 보도자료를 통해 사실상 원 클럽 플레이어로 대우하고 있다.
- 정현석: 한화 이글스에서 2007년부터 2017년까지 11시즌(경찰 야구단 복무 기간 포함)동안 선수생활을 했다. 2015 시즌을 앞두고 배영수의 FA 보상으로 삼성 라이온즈에 이적했다가 하루만에 현금 트레이드 형식으로 한화 이글스로 리턴했다. 그래서 단 2일 동안이나마 삼성 소속이었던 적이 있긴 하지만 경찰 야구단 복무를 제외하면 사실상 한화에서만 선수생활을 했다.
- 김강민: 2001년부터 2023까지 총 23시즌을 SK와이번스-SSG랜더스에서 뛰다가 프런트가 역대급 사고를 치는 바람에 은퇴시즌이 될 2024년을 거의 강제로 한화 이글스에서 보내게 되었다. 본인이 먼저 SSG 프런트에 은퇴의 청사진을 제시했던만큼 어찌되었든 계획대로라면 2024시즌 중에 은퇴할 것이므로 한화에서는 1시즌도 다 뛰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즉, 시즌 완주 전에 은퇴할 예정이고, 한화로의 이적이 SSG프런트의 잘못이고 전적으로 타의에 의한 것이므로 사실상 SK-SSG 원 클럽 플레이어로 쳐도 무방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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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단, 대부분의 MLB 원 클럽 플레이어들은 명예의 전당에 입성했다. 애초에 성적이 변변찮은 선수는 웬만해서는 다른 팀으로 트레이드되는데, 원 클럽 맨이라는 것은 선수 생활 동안 단 한 번도 폭망하거나 하는 시즌이 없었다는 것을 의미하기 때문이다.[2] 외야수로 1890경기 출장, 좌익수 929경기, 우익수 783경기, 중견수 331경기 출장으로 사실상 외야 전 포지션이 가능했다.[3] 1016경기 출장. [4] 1125경기 출장, 22세~30세[5] 1259경기 출장, 31~40세[A] A B 베테랑 위원회를 통해 입성했다.[6] 1479경기 출장[7] 외야 1218경기 중 1150경기 출장[8] 선수생활은 2017년까지 했으나 공식 은퇴발표는 2018년에 했다.[9] 선수생활은 2020년까지 했으나 공식 은퇴발표는 2021년에 했다.[10] 이호성 살인 사건으로 인해 언급이 꺼려지는 케이스.[11] 불법 도박, 불법도박사이트 개설 혐의로 프랜차이즈 스타 대우는 불가능함.[12] 승부조작, 불법 도박 혐의 등으로 이미지가 실추되어 구단이나 팬들로부터 언급이 꺼려지는 케이스다.[13] 개명 전 이승화[14] 개명 전 문재화[15] 2022년 11월 11일, 개인 SNS 글을 통해 롯데 외의 다른 팀에서 뛰는 것은 의미가 없다며 은퇴를 선언했다.[16] 은퇴 이후에도 미국 연수를 다녀온 2007~2008년을 제외하고 2005년부터 2022년까지 코치와 감독으로 활동했다. 근속연수로 치면 무려 26년.[17] 선수 은퇴는 2020년 선언하였고, 2022년 은퇴경기를 가졌다.[18] 은퇴 이후에도 2015~2016년을 제외하고 2020년까지 한화에서 코치로 활동하면서 한 구단에서 무려 28년을 재직했다.[B] A B 쌍방울 레이더스의 지명을 받았으나 지명권을 보유한 쌍방울이 해체되고 선수단만 인수해서 재창단한 SK로 프로 지명권이 양도되어 SK에 입단하였다.[19] NC 다이노스 내에서 최초로 원 클럽 플레이어로 은퇴한 선수이다.[20] kt wiz 내에서 최초로 원 클럽 플레이어로 은퇴한 선수이다.[21] 2020년 은퇴 선언 후 2021년 은퇴 경기를 가졌다.[22] 1946년, 1950년부터 1956년까지 선수 겸 감독이었다.[23] 1943년부터 1945년까지 태평양 전쟁 참전으로 인해 활동하지 않았다.[24] 1955년, 1957~1958년은 플레잉코치.[25] 1945년은 전쟁으로 인해 활동하지 못했다.[26] 선수 겸 감독.[27] 1969년은 플레잉코치.[28] 1961년부터 1966년까지는 플레잉코치였다.[29] 1966년부터 1969년까지는 플레잉코치로 활동하였다.[30] 1972년부터 1974년까지는 플레잉코치였다.[31] 은퇴경기는 1973년에 치뤘다.[32] 감독 1기(1970~1972)는 선수 겸 감독.[33] 1980년은 플레잉코치. 1군 기록이 없다.[34] 1976년부터 1980년까지는 플레잉코치였다.[35] 1984년부터 1987년까지 플레잉코치로 활동하였다.[36] NPB 역사상 최초의 감독 영구결번[37] 1984년부터 1986년까지는 플레잉코치로 활동하였다.[38] 1989년은 플레잉코치[39] 2002년부터 2003년까지는 플레잉코치로 활동하였다.[40] 은퇴 경기는 2016년 치뤘다.[41] 2018년부터 2019년까지는 플레잉코치로 활동하였다.[42] 은퇴 경기는 2019년 치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