윌리엄 클라크(탐험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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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편집]
메리웨더 루이스[1] 와 함께 루이스-클라크 탐험[2] 을 진행한 미국의 前 탐험가. 미국 횡단에 성공한 최초의 사람이다. 탐험가 이외에도 군인(준장)과 미주리 주지사로도 활동했다.
2. 상세[편집]
1803년 루이지애나 구입 직후 토머스 제퍼슨 대통령은 미국이 새롭게 획득한 서부 지역을 횡단하는 탐험대의 발족을 주문했다. 탐사의 목적은 서부 지역의 지도 작성과 횡단 경로 파악 및 유럽 열강들이 해당 지역에 대해 권리를 주장하지 못하도록 미국의 존재감을 확실히 남기기 위함이었다. 동식물의 생태, 지리 정보, 지역 원주민들과의 무역 관계 성립 등 부수적 목적들도 있었다. 당시 육군 소위였던 윌리엄 클라크와 친우 대위 메리웨더 루이스가 통솔을 맡았다. 탐사 대원은 일리노이주 캐스캐스키어[3] 와 마삭 기지[4] 등에서 미국 육군 중에 선발했으며 민간인 자원자도 포함돼있었다.
그해 일리노이주 커호우키어[5] 에서 클라크와 루이스는 미시시피 강의 지류인 리비에 뒤 부아[6] 에 400 에이커의 땅을 소유하고 있던 프랑스인 니콜라 자로[7] 를 만나 야영 허락을 받았다. 클라크는 선발된 군인들과 함께 미시시피 강 동쪽에 변경 진지가 되어줄 듀보이스 기지[8] 를 구축했다. 몇 주 뒤 커호우키어, 캐스캐스키어, 세인트 루이스에서 루이지애나 상부 지역과 서부에 관한 정보를 수집한 루이스가 합류했다. 루이스는 루이지애나의 소유권 이전이 원활하게 이뤄질 수 있도록 세인트 루이스의 스페인 관료들과 관계도 매끄럽게 다져놓은 상태였다. 군인들은 기지를 방어하는 가운데 훈련을 받았고 사냥을 통해 군수 물자를 더 확보했다.
1804년 5월 14일 클라크와 30명의 대원은 듀보이스 기지를 출발해 루이스와 10명의 대원과 미주리주 세인트 찰즈[9] 에서 합류해 미주리 강으로 향했다. 그리고 렘하이 고개[10] 근방의 북미 대륙 분수계[11] 를 횡단해 1805년 컬럼비아 강을 거쳐 태평양에 도달했다. 귀환은 1806년 3월 23일 오레곤주 클랫섭 기지[12] 에서 시작돼 같은 해 9월 23일에 다시 듀보이스 기지로 돌아옴으로써 완료되었다. 세인트 루이스로 돌아온 탐험대는 제퍼슨 대통령에게 작성한 지도, 스케치, 수기록을 보고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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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Meriwether Lewis.[2] The Lewis and Clark Expedition.[3] Kaskaskia. 이곳에 살던 원주민 부족의 이름이다.[4] Fort Massac. 프랑스 식민지 정부에서 세웠으며 이후 미군에서 이용하다가 1908년 주립 공원으로 탈바꿈했다.[5] Cahokia. 해당 지역에서 살았던 원주민 족의 이름에서 따왔다.[6] Rivière du Bois. 현 우드 강(Wood River).[7] Nicholas Jarrot.[8] Camp Dubois. 영어명은 우드 기지(Camp Wood).[9] St. Charles.[10] Lemhi Pass.[11] The Continental Divide of the Americas. Great Divide, the Western Divide, the Continental Divide 등으로도 불린다. 록키 산맥과 안데스 산맥의 줄기를 따라 진행되기 때문에, 기타 대륙 분수계들과 달리 고지대로 구성돼있다.[12] Fort Clatso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