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북리 유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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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편집]
백제 왕궁의 일부로 추정되는 백제 사비시기의 유적. 사적 제428호로 지정되어 있다.
2. 특징[편집]
기록만 남은 백제 사비왕궁의 영역으로 추정되는 유적인데 후대에 확장된 일부분만이 드러났을 뿐 사비왕궁의 정전을 포함한 중심권역과 전체 규모가 밝혀진 것은 아니다.
백제의 왕성과 관련된 굉장히 중요한 유적 중 하나라 1980년부터 30년 넘게 장기간의 발굴조사 기간을 거쳤고 현재는 유적에 대한 해명이 대부분 이루어졌다고 한다. 덕분에 백제역사유적지구에도 큰 무리 없이 등재되었다.
3. 발굴조사[편집]
1982년 첫 발굴조사가 이루어졌는데 발굴조사 결과 왕궁건설을 위해 대규모 토목공사를 한 흔적이 발견되었다. 다져진 지반 위에는 대형 전각건물터가 발견되었는데 와적기단[3] 위에 34m×18m의 면적[4] 으로 지어진 기와건물로 규모가 대단한 편이다.
그 외에도 동서남북으로 뻗어있는 도로, 축대 및 배수로, 목곽수조 및 기와 배수관, 연못터, 우물터 등 사비성의 도시 구조를 알 수 있는 유적들이 상당수 발굴되었다.
이러한 왕궁 및 도시 구조물이 건설되기 이전의 유적들도 같이 발굴되었는데 각종 철기나 금품들을 제작하던 공방 시설과 목재와 석재 등을 이용하여 만들어진 지하곳간들이 몰려있는 저장시설이 확인되었다.
4. 외부 링크[편집]
5. 사적 제428호[편집]
부여 관북리유적은 1983년 9월 충청남도 기념물 제43호 전백제왕궁지(傳百濟王宮址)로 지정되어 있다가, 2001년 2월 사적으로 승격 지정되었다.
1982년부터 충남대학교 박물관에서 5차에 걸쳐 발굴조사를 하였는데, 1983년도에는 방형석축연지(方形石築蓮池)가 발견되었고, 1988년 발굴조사에서는 토기 구연부에 북사(北舍)라는 명문이 발견되었으며, 1992년 조사에서는 현재 국립부여문화재연구소의 남쪽 50m 지점에서 백제시대의 도로유적과 배수시설이 드러났다.
백제시대 마지막 도읍이었던 사비도성의 일부 유적이 밝혀진 것은 매우 중요한 학술적 의미를 지닌다고 할 수 있다.
※(부여관북리백제유적 → 부여 관북리 유적)으로 명칭변경 되었습니다.(2011.07.28 고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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