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월의식 (r1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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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2. 거짓 우월성
3. 용어의 뜻
4. 설명
5. 관련 문서

다른 사람보다 우월한 존재가 되는 것은 고귀한 것이 아니다. 진정으로 고귀한 것은 예전의 당신보다 더 우월해지는 것이다.

There is nothing noble in being superior to your fellow man; true nobility is being superior to your former self.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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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니스트 헤밍웨이


FOUR LEGS GOOD TWO LEGS BAD.

네 발은 좋고 두 발은 나쁘다.[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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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지 오웰, 동물 농장(소설)


1. 개요[편집]


우월의식()은 특정 대상에 대하여 자신이 더욱더 뛰어난 위치에 있다고 생각하며 만족을 얻으려는 본능적인 의식이다. 일종의 욕심인 셈이다. 인간 대 인간뿐만 아니라 인간 대 동물, 인간 대 식물, 심지어는 국가 대 국가의 경쟁으로도 드러난다. 정치가, 기업가들이 자주 걸리는 병이다.[2] 실제로 보통 사람들보다 우월한 지위에 있는 것은 맞지만 그러한 의식을 과하게 나타낼 때 쓰이는 말이다.


2. 거짓 우월성[편집]


알프레드 아들러는 우월 콤플렉스에 빠진 사람들의 대표적인 특징 가운데 하나로 거짓 우월성을 꼽았다. 우월의식도 결국은 일종의 비뚤어진 열등감이다. 이는 자신의 열등함을 애써 부정하기 위해 겉으로 우월한 척 하는 것으로, 주로 인터넷상에서 많이볼 수 있지만 선민의식을 가진사람들 모두가 거짓 우월성을 가지고 있다. 각 커뮤니티 인기 분야 게시판에 들어가보면 정치충 등 거짓 우월감에 빠진 이들을 쉽게 접할 수 있다.


3. 용어의 뜻[편집]


원래 의미와는 다르게 유행어로 '우월하다'는 표현이 2000년대 들어 퍼지기 시작했다. 비교대상을 특정하지 않고 대략 외모(신체비율, 얼굴 등)가 아주 뛰어나다는 뜻.[3] 이에 서울대 홍성욱 교수는 저서에서 이런 표현이 우월한 유전자와 열등한 유전자를 나누었던 우생학의 잔재라고 비판했다. 다만, 사회에서 '우월하다'와 '우월의식'은 서로 다른 의미로 사용된다.

많은 나라들이 저마다 '선민사상'으로 스스로가 우월하다고 생각했다. 타민족에 대한 '멸칭'이 존재한다는 것 자체가 우월의식을 드러낸다. 저마다 자기 민족이 우월하다고 하는 '뇌피셜'에 과학적 근거를 찾아보려 시도한 것이 우생학이었다.

흑인들이 스포츠에서 보여주는 탄력에 감탄하여 '흑형'으로 부르는 것만 들어도 모든 인종이 100% 똑같진 않고 약간의 차이는 있을 수 있다. 인종간 평균키부터 다른데, 한국에서 키 작은 남자들을 루저라면서 조롱한 '루저녀'가 논란이 되기도 했다. 같은 동북아인들끼리도 서로 키가 더 크네 어쩌네 하며 자신들이 우월하다고 하는데, 평균키가 185인 네덜란드 남성들이 보기엔 '도토리 키재기'로 보일 수 있다. 하지만 우생학은 인종간 차별을 부추길 수 있다는 정치적 이유로 연구 자체가 금기시되었다.


4. 설명[편집]


인간도 서열을 가리는 무리동물이기에 자신이 서열이 높으면 우등감을 느끼고, 서열이 낮으면 열등감을 느낀다. 이 우월의식은 무력, 권력으로든, 돈으로든, 학벌로든, 직업으로든, 인맥으로든, 나이로든 모든 걸로 다 생길 수 있다. 이러려는 사람들은 내로남불, 이중잣대를 즐기며 평등과 존중하기를 좋아하지 않는 성향이 있다. 예를 들어 지잡대라고 비하하는 인서울 학생이 지잡대와 같은 취급 받으면 기분 나쁘게 여길 수 있지만, 본인보다 우월한 상위권 대학 학생들에게는 대학 간판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며 평등을 외칠 수 있다. 하다못해 자기 집 아파트 평수를 자랑하거나, 서울 산다고 지방을 시골로 비하하기도 하며, 또 지하철에서 괜히 명품시계나 명품백을 은근슬쩍 내보이면서 우월의식을 느끼며 자기만족 하기도 한다.

우월의식은 상대적이기에 남들이 갖고 싶어 하는데 못 가진 것을 가져야 주변에서 인정하고 본인도 목에 힘주며 자랑하지, 남들에게 흔한 것을 자랑하면 비웃음 살 수도 있다. 예를 들어 연애 프로그램에서 어느 남성이 의사면허를 딱 꺼내들면 여성들의 눈빛이 달라질 텐데, 그때 다른 남성이 운전면허를 꺼내들면 갑자기 분위기가 싸해질 수 있다. 한때 휴대폰 자체가 부의 상징이던 시절도 있으나, 너도 나도 다 가져서 보편화되면 그냥 당연한 것이 된다. 90년대 초반만 해도 다들 공중전화에 줄서던 시절이니 무전기만 한 휴대폰을 꺼내드는 것 자체가 굉장한 부의 과시였으나, 현대엔 무전기 휴대폰보다 '훨씬 압도적으로 좋은(우월한)' 스마트폰 꺼내들어봐야 남들 다 가진 것이니 "그거 나도 있어."라고 생각하고, 오히려 없는 사람이 이상한 취급 받는다.

사회에서 '교수'나 '박사'들 중에는 굳이 꼭 자기를 소개할 때 교수나 박사를 강조하는 사람들도 있는데, 은연 중의 우월의식으로 해석될 수 있다. 도올 김용옥은 강연에서 대놓고 자기가 남들보다 엄청 많이 배우고 천재적이라고 자랑하는 것으로 유명하다. 평등을 강조하는 박노자 교수도 교수 타이틀은 빠트리지 않는다. 일단 교수 타이틀이 붙으면 사람들의 인식이 달라지는데, 교수처럼 '우월한' 사람이 목에 힘주는 것이 '우월의식'이다.

학창시절 새학기에 서로 눈치보고 괜히 센 척하며 기싸움하는 것도 일종의 서열싸움인데, 왠지 약해 보이면 무시될까 봐 그러는 것이다. 우월의식은 크게 두 가지로 표출되는데, 상대가 좀 불쌍해 보이면 동정심으로 잘해줄 수 있고, 재수없어 보이면 무시하거나 갑질을 하며 심술을 부릴 수도 있다. 동정심과 무시는 동전의 양면과도 같다. "형 정신차려! 형은 시발 아무것도 없는 병신이야!"란 밈이 이런 예이다. 형과 사이가 원만했을 때야 그냥 형을 속으로만 한심하게 생각하고 겉으로는 내색을 안 하고 동정심에 잘대해줬을 수도 있으나, 형이 짜증나게 하자 폭발하여 본심을 드러냈다. 어느 격투기 선수는 왕따 학생들에 대해 안타깝다고 말하며 학폭 가해자들을 비판했으나, 자신의 유튜브에 악플을 단 악플러들에게 "학교 다닐때 쳐맞고 다니고 친구도 없는 놈들이 인터넷에서 저런다"라면서 조롱하기도 했다. 그러자 악플러들이 격투기 선수에게 양아치 같은 친구들 많아서 좋겠다고 비꼬면서 그딴 친구들 사귈 바엔 혼자 노는 게 낫다는 악플을 달았는데, 이 역시 자신이 더 낫다는 우월의식이 담긴 악플, 곧 서로 친구가 많네 없네 하면서 자기가 더 낫다 하는 것을 과시하려는 서열싸움인 것이다. 절친이나 부부간에도 화가 나서 싸울 때는 서로의 약점을 공격하며 갈등을 악화하는 경우가 많은데, 이 상대의 '약점'이 자신이 우월의식을 느끼는 포인트다. 인간은 둘만 모여도 하다못해 나이로나마 서열을 가려야 마음이 편해지기에 '타인은 지옥이다'라는 명언도 있다. 특히 사업이 기울자 주변사람들이 손절하며 하나둘씩 떨어져나가는 것을 보고 정내미가 떨어져 현타와 인간혐오를 느껴 홀로 산속으로 도피하여 '나는 자연인이다'가 되기도 한다.

원래 서열정리가 끝나면, 자신보다 우월한 서열에는 겸손해지는 본능이 있다 보니 세계 대전도 패전국은 승전국에 겸손해지며 복종하듯이, '다른 사람보다 우월한 존재가 되는 것은 고귀한 것이 아니다' 같은 말도 격투기 선수가 양아치를 패대기치며 참교육을 한 후에 훈계하는 등으로 '우월한' 사람이 해야 겸손하게 수긍하고 귀담아 듣지, 아무것도 없는 백수가 이런 말을 하거나 양아치에게서 실신KO를 당한 굴욕 후에 이런 말을 하면 "형 정신차려! 형은 시발 아무것도 없는 병신이야!" 소리를 들으며 '정신승리' 내지는 '자기합리화'란 비판을 들을 수 있다. 그런 말도 우월한 사람만이, 곧 본인이 일단 힘이 세야 할 수 있는 특권이기에 그런 말을 하는 선수의 목엔 힘이 들어가 있는데, 그런 훈계를 하면서 우월의식을 느낄 수도 있다. 똑같은 말 후에 출처 '헤밍웨이'가 써져 있어야 권위가 있지, '무직백수'나 '위키러'가 쓰여 있으면 권위가 대폭 추락하고 위키에 인용될 수조차 없다. 인터넷 기사에 인용할 가치만 있으면 출처를 덮어놓고 인용하기도 하고, 그래서 원작자들이 출처 표기를 요구하는 사태가 일어나기도 한다. '역사를 잊은 민족에게 미래는 없다'처럼 출처가 불분명한 명언도, 돈이 돈을 버는 것도 이 때문일 수 있으며, '사람은 고쳐 쓰는 게 아니다' 같은 말을 하거나 "A는 범죄자이니까 A의 말은 모두 틀렸다." 식으로 인신공격의 오류를 저지르거나 자신이 싫어하는 사람이 쓴 물건을 멀리하는 것도 마찬가지이다.

기복신앙도 대개 남들보다 돈을 '더' 많이 갖게 해달라고 빌거나('부자되세요'란 덕담도 있다), 남들보다 '더' 건강하게 해달라고 하거나, 남들이 어려워하는 시험에 합격하게 해달라고 비는 등 우월의식을 내포하고 있다. '지혜로운 사람은 이래저래 한다'라는 명언들도, 결국 '우월한 존재(지혜로운 사람들)'가 되라는 것이다. 사회적으로 잘나가며 잘난척을 하던 사람이 사고를 당해 장애를 갖게 되거나 재산을 잃는 등 불행이 닥칠 때 평소는 시기하던 사람들은 '자업자득(업보)'이라거나 '천벌'을 받았다고 하는 것도 열등해졌다는 의미가 내포돼 있다. 반면, 엄청 외모가 빼어나거나 신체능력이 뛰어난 사람에게는 '천혜의 육체(유전자)'라는 식으로 우월함을 드러낸다.

건강한 사람이 우월하다는 인식이 있는 만큼, 장애를 가진 사람은 열등하다는 인식이 있어 왔다. 실제 올림픽 금메달리스트는 선망의 눈으로 바라보며 광고에 많이 출연하는 등 관심을 받으나, 장애인 올림픽 금메달리스트에겐 동정의 눈으로 바라보는 시선이 있고 광고도 그리 많이 찍지는 못한다. 특히 과거엔 '레임덕(절름발이 오리)'처럼 비유적으로 절름발이, 귀머거리, 병신처럼 장애를 비하하는 단어들이 많이 쓰였다. 심지어 한 진보 언론인은 청년들의 투표 참여를 독려하다가 '투표 안하면 정박아'라는 말을 하여 장애인 단체에게 항의를 받는 해프닝까지 있었다. 또 노인의 틀니나 주름 등 신체적인 약점을 비하하는 것으로도 모자라, 한 진보 팟캐스트에서는 투표날 노인들 투표못하게 에스칼레이터 고장내놓자면서, 노인들이 힘겹게 계단을 오르는 것을 흉내내며 조롱하기도 했다. 그나마도 장애인 단체와 여성 단체들은 자신들에게 정치적으로 도움이 되어서인지, 장애인 단체의 지하철 시위를 비판하면 '장애인 혐오'라든지, 여성 단체를 비판하면 '여성 혐오'라는 프레임을 씌우면서 혐오와 차별은 안된다며 '평등'을 외치기도 한다.

장애인을 '목발'이라 지칭하고 흉내내며 '목발 압수'니 이런 말을 하면 참 저열하고 인성이 안된 사람이듯이, 노인을 '틀니'라고 지칭하는 것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그런 발언에서 차별의식과 자신이 우월하다는 점을 드러낸다. 왜냐하면 자신이 막상 장애를 입거나 틀니를 하면 그걸로 남을 비웃지는 못할 것이기 때문이다. 물론 자신이 아끼는 사람이 장애를 입거나 노인이라도 비하 발언을 못할텐데, 실제 2020년에 신체적으로 '우월한' 격투기 선수 유우성은 할머니가 자신을 키워줬다고 각별한 애정을 드러내며 94세 할머니와의 이별이 다가온다는 사실에 괴로워하다 '무엇이든 물어보살'에 출연했었다. 10대가 길거리에서 할머니를 괴롭히고 놀리는 영상을 자기들이 재밌다고 찍어 올리거나, 사회복무요원들이 노인요양시설에서 거동이 불편한 노인들을 괴롭히고 놀리며 학대하는 영상을 찍어 올린 이런 패륜적 사건들은 '인간혐오'와 더불어 '반출생주의'에 명분이 되기도 한다. 생로병사를 피할 수 없는 인간의 숙명으로 인해 '고통의 대물림'을 끊어야 한다는 것도 명분이지만, 저 가해자들이나, 혹은 저 노인들이 먼 훗날 자기 자녀의 미래 모습이라고 생각해봐도 꺼림칙할 수 있기 때문이다.

애초부터 신이란 존재도 '전지전능'한 우월한 존재이다 보니 복종하는 것이다. 간혹 인간들을 사랑하지만, 단지 자기를 믿지 않으면 불구덩이에 처넣어버리겠다는 김정은스러운 신도 있지만, 단지 우월한 힘 앞에 머리를 조아리며 복종하는 사람들이 많다. 북한에서는 김정은이 '신'격화되어 정말로 살기 위해 울면서 찬양하며 박수쳐대지만, 한국이나 다른 국가에서는 김정은의 힘이 닿지 않으니 조롱하기도 한다. 만약 신이 '전지전능'한 힘을 잃어 사람들에게 영향력을 행사할 수 없다면 김정은처럼 조롱당할 수도 있다는 의미다. 인간의 소원을 들어줄 수도 없고 해코지도 할 수 없는 '무능한 신'이 날 찬양하라고 명령한다면 "형 정신차려! 형은 시발 아무것도 없는 '병'신이야!"란 말로 조롱될 수도 있다. 어떤 막말 목사는 "하나님 나한테 까불면 죽어"란 말로 논란이 된 적도 있다. 외국인들은 막상 북한에 관광이라도 가면 그곳에선 김정은의 힘이 닿으니 조신하게 행동하지만, 북한을 벗어나면 김정은을 만만하게 여기기도 한다. 한 미국인 청년 관광객도 처음엔 기념품조로 챙기려던건지 겁없이 북한의 포스터 등을 떼어내 몰래 가방에 넣으려다가 체포되었는데, 나중에 방송에 나와 울면서 자신이 스파이라는 등 잔뜩 겁에 질린 모습으로 사람들에게 안타까움을 준 적이 있었다. 한 탈북여성도 북한의 힘이 미치지 않는 한국에 와서는 방송에 나와 북한을 웃으면서 비판하기도 했으나, 납치라도 된 건지 어느날 뜬금없이 북한방송에 나와 한국을 욕하고 북한을 찬양했는데, 울면서 겁에 질린 표정이라 불쌍해보인다는 반응도 적지 않았다. 한마디로 우월한 '힘' 앞에서는 복종하고 동경하며 우러러보는 본능이 있는데, 무'력'이든, 재'력'이든, 권'력'이든 나에게 영향력을 행사하는 존재에게는 복종하는 경향이 있으며, 그 상대는 '갑'으로 칭해진다. 물론 무당이나 종교인들이 실제로는 자신들도 별다른 힘을 가지지 않은 존재임에도 자신들이 귀신이나 신을 조종할 수 있는 존재인 것처럼 신도들을 '가스라이팅'으로 세뇌해 복종시키는 사례도 많다.

한편으로 남들이 가진 것을 안 가졌다고 우월해하기도 한다. 미니멀 라이프를 자랑하는 것이 이 예이다. 복고를 좋아하는 사람들이나 수집가들끼리는 오래된 물건이나 수집품을 가져오면 좋아하겠지만, 새로움을 쫓는 일반적 사람들은 왜 그런 물건을 쓰냐며 싫어할 것이다.

꼭 자기 자랑만이 우월의식을 드러내는 것은 아니다. 만화나 드라마에서 일부러 여주인공이 자기보다 못한 애를 데리고 다니면서 상대적으로 돋보이게 하는 것도 우월의식이다. '난 이런 애랑 놀아주는 착한 여자야'라는 우월의식인 것이다. 교수가 "강남 살고 있는데 다 똑같다, 지방이 공기도 더 좋지 않나, 굳이 강남 살 필요없다"라는 말도 '난 강남 사는 교수이며 강남 자랑하지 않는 겸손한 사람이야'라는 우월의식이 은연 중에 내포돼 있는 것이다. 이유를 얘기하지 않고 상대의 얘기를 무시하면서 지혜로운 사람은 어쩐다거나 어쩌지 않는다는 것도 은연 중의 우월의식 내지 오만으로 해석될 수 있으며, 어떤 예의/예절을 질병 등 때문에 지키기 어려워하는데도 원인은 무시하면서 예의/예절을 지키라고만 하는 것도 그 대상을 낮잡아 보는 은연 중의 우월의식으로 해석될 수 있다.

주차요원들이 값비싼 외제차가 오면 자격지심을 느끼고 조그마한 소형차나 허름한 차가 올 때는 무시하는 듯한 태도를 보이기도 하는데, 대우가 이렇게 노골적으로 달라서 논란이 되기도 한다. 그래서 사회에서 뭔가 있어 보이려고 차만 좋은 카푸어족들도 있다. 애초에 무시하고 싶다는 느낌 자체가 우월의식을 전제로 한다. 사우나에서도 웃통 벗고 앉아 있는데 옆에 마동석 같은 사람이 앉을 때는 그 사람이 뭐라고 하지 않는데도 괜히 위축되고 움츠러 들 수 있으나, 한민관처럼 비쩍 마른 사람이 옆에 앉을 때 본인이 근육이 더 많으면 괜히 자신감과 여유가 생기며 우월의식이 들 수도 있다.

'우리는 하나', '한 마음', '민심' 같은 말들도 우월해 보이는 유명한 가수 등이 나오는 무대나 월드컵, 종교 시설, 시위 장소 등에서 잘 나오지, 일상생활에서는 이런 말들은커녕 서로 어울려 노는 것을 보기도 어려우며, 외로운 사람이 뭘 같이 하려 하면 관심병자로 몰려 병먹금을 당할 수도 있고, '양극화' 문서의 '위화감과 적대감 심화' 문단에 적힌 것처럼 오히려 수평 폭력을 저지르기도 한다. 곧, 수평 관계는 외면하고 수직 관계를 선호하는 것이며, 그래서 찬물(거지)도 위아래가 있다는 속담이 있는 것이다.

월드컵, 올림픽에 있는 '금메달'도 결국 어느 선수(국가)가 더 우월하냐 경쟁이며(한일전 등) 시상식에서도 금메달을 딴 선수의 애국가만 울려퍼지고 국기가 제일 위에 '우월하게' 올라가며 우월의식과 국뽕(선민사상)을 충족해 준다. 원래 히틀러의 독일 올림픽 등 올림픽은 체제의 우월성을 과시하려는 수단으로 이용되기도 했다. 스포츠 팬들은 손흥민이나 메시 등 '우월한' 선수들에게 대리만족하며 가끔 지나치게 빙의(감정이입)하여 동일시하고 논쟁에 목숨걸기도 한다. '고트 논쟁' 때는 종종 '병림픽'이 벌어지기도 한다. 외국에서는 훌리건 등으로 과도하게 집착하는데, 대개 열등감이 있는 사람들이 더욱 빠져든다고 한다. 사회적으로 잘 나가는 사람들은 그런 거에 신경 쓸 여유도 별로 없어서 가볍게 즐기는 정도지만, 열등감이 큰 사람들은 자신이 응원하는 격투기 선수가 챔피언이라도 되면 자신이 챔피언이 된 것처럼 기뻐하고 대리만족하며 우월감을 느끼기에, 더욱 집착하는 것이다. 황금만능주의도 이런 대리만족일 수도 있다.

스님들도 종파 분쟁이나 내부 권력투쟁으로 스님들간에 각목들고 패싸움 벌이는 진풍경도 종종 펼쳐져 '소림무술 대회'란 비판도 받으며, 오히려 종교단체일수록 더욱 수직적인 구조를 보인다. JMS 같은 것은 이단이라 치더라도, 정치에 영향력을 행사하는 목사가 '최고존엄'처럼 군림하며 여신도에게 빤스 벗으라고 했을 때 빤스 벗어야 내 신도라는 둥의 말로 구설수에 오르기도 했다. 그나마 조용하다는 천주교에서도, 고해성사에 참가한 여신도가 하필 변태 신부를 만나 성관계에 대해 꼬치꼬치 캐묻고, 심지어 직장까지 찾아와 스토킹까지 해서 참다못해 천주교 윗선에 항의를 했는데 대충 묻으려고 하고, 오히려 여신도가 꼬리를 쳤다는 식으로 몰아가서 언론사에 제보를 한 적도 있다. 종교단체에서도 '권력' 수직구조가 뚜렷하다.

서민들은 연예인이나 정치인이 서민을 무시하는 듯한 발언을 하면 차별했다며 난리를 치고 '서민비하 논란'을 벌인다. 정치인이 명품구두를 신었다고 논란을 벌이기도 하니, 유명인들은 '서민 코스프레'를 자주 하는 경향이 있다. 정치가, 기업가들이 우월의식으로 목에 힘주고 다닌다며 까기도 한다. 이것만 보면 서민들은 우월의식을 싫어하는 것 같지만, 본인이 '갑'이라면 어떨까? '사촌이 땅을 사면 배가 아프다'는 속담에서도 우월의식이 드러난다. 임대 아파트 주민들을 거지라며 비하할 때 쓰는 저질은어인 '휴거'가 논란이 되기도 했다. 얼마나 잔인하냐면, 원래 주공아파트 이미지가 안 좋아 '주공아파트+거지=주거'라는 은어가 있기도 해서 주공아파트가 나름은 '휴먼시아'란 폼나는 브랜드를 런칭했더니 바로 '휴먼시아+거지=휴거'라는 신조어(...)가 만들어진 것이다. '휴거'라고 조롱하며 우월의식을 느끼는 서민들이 정치인들에게 서민 차별하지 말라며 평등을 외치는 것은 이중잣대이율배반적일 수도 있다. 같은 브랜드 아파트에서도 평수 가지고 차별하기도 한다. 원래 '다같이 어울리라고' 대형평수와 소형평수를 같이 지었더니만, 오히려 차별이 더욱 심하고, 대형평수에 사는 사람이 억대의 외제차를 몇 대씩 굴리는 등 위화감 조성이 심해서 소형평수에 겨우 빚내서 사는 사람들은 차라리 따로 짓는 게 낫다고도 한다. 자기보다 더 잘난 사람을 보고 열폭하는 것 자체가 본인이 우월해지고자 하는 심리이니 부자에게서 괜히 열등감 폭발하는 사람들은 본인이 부자처럼 우월하고픈 욕망을 가지고 있는 것이다. '나는 자연인이다' 같은 사람들은 별로 남과 비교하며 우월감을 느끼는 것에 관심이 없다 보니, 부자에게 관심을 안 준다.

<이외수 감성마을>에 살던 소설가 이외수는 <이외수의 감성사전>에서 아파트를 '인간 보관용 콘크리트 캐비닛'으로 폄하했다. 이외수 "감성마을 '아방궁'으로 놀러오세요" 감성마을에는 이외수의 주거 공간과 집필실, 교육과 강연 시설인 모월당, 문학전시관 등이 조성돼 있는데, 혈세가 100억 가까이 투입되어 마광수 교수는 "군민 혈세로 미친 X 호화주택이나 지어주고 있다"며 직설적으로 비난했었다. 정부가 세금을 들여 특정인의 이름을 딴 '마을'을 통째로 지어주는 인물이 바로 '우월한 인물'이다. 박물관처럼 넓은 곳에서 여유있게 살던 이외수가 보기에, 좁은 아파트에 다닥다닥하게 붙어 사는 사람들이 하천의 가재, 게, 금붕어처럼 느껴질 수도 있다. 그런데 그 '인간 보관용 콘크리트 캐비닛'을 갖으려 영끌하는 사람들도 있고 아예 '그림의 떡'인 사람들도 있기에 폄하 자체가 우월의식일 수도 있다. 자기도 닭장에 살면서 더 좋은 닭장이라며 으시대고 차별하고 우월의식을 과시한 이런 꼴을 본 한국의 청년들이 현타를 몹시 느끼고 '인간혐오'에 빠져 혐한이 되어, 코로나 이전에 '헬조선'을 탈출하자는 '탈조선' 열풍이 불기도 했다. '양극화' 문서의 '위화감과 적대감 심화' 문단 내용처럼 생활 환경을 개선하는 것이 중요하지만, 정작 그런 걸 실천하려는 사람은 그리 많지 않다.[4] '피해자 비난' 문서의 '피해자다움' 문단에도 관련 내용이 있다.

시골은 덜 개인주의화되어 집단주의 문화가 심한 곳이 많다. 옆집 숟가락 개수까지 안다고 할 정도로 이웃 교류가 많다보니 상부상조하는 장점은 있지만, 기득권층이 형성되는 부작용도 있다. 특히 마을 이장을 중심으로, 이장과 가까운 순으로 권력자 행세를 하며 텃세를 부리기도 한다. 도시에서 무턱대고 시골을 선망하며 떠났다가, 상납을 안 했다든지 등의 사유로 왕따를 당해 떠나는 사례도 있다. 그러다 보니 개인주의화되어 사생활이 보장되는 아파트를 선호하는 사람들도 있으나, 아파트도 부녀회 등 교류가 많은 사람들은 또 남편자랑, 자식자랑 등 남과 비교를 하며 우월의식을 드러내고 집단주의 문화가 형성되어 차별을 하거나 텃세를 부리곤 한다. 아파트 난방비 비리 사건에서 김부선은 '난방 열사'라고 불릴 정도다. 그나마도 도시에선 어차피 이사가면 그만이고, 또 아파트 자체가 개인주의화된 공간인지라 부녀회에서 왕따를 한들 피해가 크지 않으나, 뼈를 묻을 각오로 사는 시골에서는 농사를 지을때도 이웃의 손길이 필요하므로 집단에 대항하는 것이 무척 힘들다. SBS '그것이 알고싶다'에서도 폐쇄된 시골마을의 무서움을 보여주는 에피소드가 종종 나왔는데, 살인사건이 벌어졌고 마을 주민들은 범인이 대충 누군지 알고 있어도 인터뷰를 한사코 거부한다. 서로 다 아는 사이인지라 '우리가 남이가' 조폭식 의리처럼 되는 것이다. 실제 마을 주민들이 지적 장애 여성을 집단 성폭행했어도 마을에서는 이미지 나빠진다고 쉬쉬하며, 심지어 인터뷰를 요청하는 기자에게 화를 내며 공격하기도 할 정도다. 닫힌 사회의 무서움은 완도 아령 살인 사건에서도 드러난다. '집단 이기주의'는 도시에서도 이어지는데, 박완서가 1979년에 쓴 작품 '옥상의 민들레꽃'에서는 '궁전 아파트'에서 할머니의 자살로 집값 하락을 어떻게 막을지를 생각하는 사람들이 나온다. 혐오시설 들어서면 땅값 떨어진다고 강제로 마을주민을 반대시위에 참여시키는 시골의 모습과 유사하다.

베스트셀러 '사피엔스'에서는 농업혁명으로 인해 정착생활이 시작되고 식량생산의 증가로 호모 사피엔스의 개체 수가 폭증하게 되어 현대문명의 기반이 되었다고 했으나(대형병원, 맥도날드, CGV 등은 인구가 많은 곳에만 들어선다), 그로 인해 지배계층과 피지배계층으로 분화하며 사람들 사이의 갈등도 증가하고 자유도 잃었다고 평가했다. 산업혁명으로 인한 도시화는 수렵생활과 농경생활의 중간 정도의 포지션이 되었다. 농경생활 당시에는 태어난 곳에서 뼈를 묻는 사람들이 많았고, 직장, 친구, 생활 등이 일원화였기에 마을에서 왕따를 당하면 모든 것을 다 잃는 것이었다. 하지만 현대사회는 직장이나 친구, 집 등이 각자 떨어져 분산투자된 느낌이기에, 그나마도 조금 더 자유로워지긴 했다. 직장에서 왕따를 당하면 데미지가 좀 크지만, 직장을 그만두고 전직하는 사람들도 많다. 아파트 부녀회에게 찍혀 왕따를 당한다고 한들, 어차피 현대사회에서 집은 대개 잠만 자는 용도 정도로 격하되었기에 수렵생활처럼 훌쩍 떠나면 그만이니 별로 무섭지 않다. 좀 더 자유로워진 것이다. 농촌도 현대에는 그곳의 '터줏대감'들이 죽거나 떠나고, 돈많은 외지인들이 별장처럼 오는 곳이 많아 개인주의화가 된 곳이 많아졌다고 한다. 하지만 그렇지 않은 농촌사회는 2014년 신안 염전 노예 사건을 보면 지역사회가 완전히 유착되어 심지어 경찰과 판사까지 한통속이라서 고인물(지역 카르텔)의 위험성을 보여준다. 공중보건의가 신안을 떠나면서 제보하여 알려졌다. 영화 '구타유발자들' 코멘터리에서는 과거에 어느 시골에 갔다가 왠지 기이한 마을 주민들에게 불안함을 느꼈다는 일화를 설명한다.

주로 '을'이 평등을 강조하는 것도, 갑과 평등해진다 하는 것 자체가 '레벨 상승'으로서 전보다 우월해짐을 의미하기 때문이다. 다같이 망하자는 심리도 결국 남이 나보다 우월한 꼴은 못 보겠다는 열폭의 심리다. 간혹 갑이 평등을 강조하나 '평등팔이'로 본인이 더 우월해지는 수단으로 이용하는 사례가 많다. 실제 목수의 망치나 판사의 망치는 똑같은데 왜 판사가 돈을 더 받냐며 평등을 외치는 강연으로 떡상했던 인플루언서는 '고액 강연료 논란'이 있었을 때 다른 강연자들과 똑같이 돈을 받겠다고 한 게 아닌, 자신은 기부도 한다며 결국 다른 강연자들보다 우월한 '황금 마우스'임을 정당화했다. 또 '기부'를 어필하며 자신의 상품성과 몸값을 올리는 수단으로 활용했다. 하천의 가재, 게, 금붕어도 행복할 수 있다는 아름다운 말로 유명해진 교수는 정작 교수자리로도 성이 안 찼는지 장관까지 노리다가 여러 논란으로 추락하기도 했다. 또 딸은 조기유학에 억지로 의사 시키려 부정을 저지르다가 법적 처벌까지 받았다. 자기 밑에 있는 하천의 가붕게들끼리는 평등하길 원하지만, 본인과 자녀는 '우월하게' 하늘의 용이 되고 싶은 것이 갑이 말하는 평등인 경우가 많다. 본인이 교수 자리 포기하고 아파트 경비를 하며 행복한 모습을 보이거나, 자녀를 공장 노동자로서 보내는 갑은 보기 매우 어렵다.

특목고에 다니는 어느 정치인의 자녀는, 학교에서 자기만 선정되어 유학갈 줄 알았는데 자기 친구들도 같이 가게 됐다며 SNS에 '개나소나 다 간다'고 불평을 했던게 구설수에 오르기도 했다. '티타늄(마스터카드)' 문서 개요에는 '개나소나(...) 다 받을 수 있는 플래티늄'이 적혀 있다. 또 신용카드 '플래티늄' 문서에도 요샌 개나소나 다 플래티늄 들고 다니기에 가치가 떨어졌다는 내용이 적혀 있다. 실제 플래티늄은 원래 프리미엄 등급이었으나, 너도나도 다 플래티늄을 들고 다니다 보니 희소성이 떨어져, 정말 상위 1%를 대상으로 한 등급까지 나왔다. 아무리 돈이 많아도 가질 수 없고, 초청을 받아야만 발급받을 수 있는 '그들만의 카드'까지 등장한 것이다. 굳이 신용카드 따위도 '남들과 다른' 특별한 카드를 가지고 싶다 보니 엄청난 연회비를 들여서라도 얻고 싶어 하는데, 이들이 일행과 식사하고 카운터에서 계산하며 '명품' 신용카드를 딱 내보일 때 우월의식을 느낄 수 있다. 몇몇 연예인들도 이런 카드 소지자로 알려져 있으나 대중들이 다소 위화감을 느낄 수 있어, 오히려 플래티늄조차 아닌 그냥 일반 평범한 신용카드 쓰는 연예인들을 더 친근하게 느끼기도 한다. '못 가지는 사람'은 아니라 '가질 수 있는데 안 가지는 사람' 역시 우월하게 보일 수 있는 것이다. 심지어 한 신용카드의 광고는 일시불로 계산한 후는 할부로 전환하는 기능을 강조하며, 부하직원들 데리고 식당에서 계산할 때 할부로 말하며 쪽팔린다 하다가, 나중에 목에 힘주며 일시불로 시크하게 계산한 후 집에 와서 할부로(...) 바꾸는 장면을 보여줬는데, 이런 사소한 것에도 우월의식을 느낄 수 있다.

이런 것들이 자본주의 탓이라는 의견도 있는 듯하나, 자신들이 '을'이었을 때 자본가들에게서 열폭해 '평등'을 명분으로 체제를 뒤엎은 공산주의자들은 막상 자신들이 '갑'이 되어 칼자루를 쥐자 절대로 자본가들과 평등해지고 싶지는 않은지 자본가들을 최하층 계급으로 돌렸고, 자신들은 기어이 '최고존엄'까지 올라갔다. 이들 및 후계자들은 우월의식의 끝판왕 수준이며, 백두혈통은 아예 신격화됐다. 내가 갑이 되겠다고 하면 견제될 게 뻔하니 평등을 외쳤던 것일 뿐이며, 과거 자본가들보다 훨씬 더 심한 갑질과 착취를 하여 반자본주의 북한은 2019 세계 최악 현대판 노예국가로 선정됐다(워크프리재단). 조선중앙통신은 장성택 처형 후 세월이 흘러도 바뀔 수 없는 것이 백두혈통이라며, 이 하늘 아래서 감히 원수의 절대적 권위에 도전하며 백두혈통과 일개인을 대치시키는 자들을 절대로 용서치 않고 당과 혁명, 조국과 인민의 이름으로 무자비하게 징벌할 것이라고 우월의식을 선언했다.

서로 다른 성격 유형들이 공존하는 사회를 위해 고안된 MBTI조차 점차 불편한 '성격 증명서'로 변질된다는 기사도 있다. "너 xx 성격이지?" 같은 식으로 성격조차 자기가 더 낫다고 우월의식을 느끼는 도구가 된다. 한국에서 12년 거주한 영국인 기자 라파엘 라시드는 한국인이 워낙 유행에 민감한 민족이라며 요즘은 다들 MBTI(성격유형검사)에 미쳐 있는 것 같다면서 새로운 사람을 만나면 ‘MBTI가 뭔지’를 꼭 묻는다고 지적했다. 또 엇비슷한 목표를 향해 모두가 무한경쟁을 벌이고 있다 보니 소수만이 성공(우월의식)을, 다수는 실패(열패감)를 경험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한국이 OECD 자살률 1위라는 실제 기사에서는 치열한 경쟁사회를 원인으로 꼽았다. 부러우면 지는 건데 부럽다 보니 괴로워하다 자살하는 것이다. 또한, 강요하지는 않는 척하거나 존중하는 척하면서도 은근히 자기가 바라는 진로의 장점은 엄청나게 부각하고, 나머지 진로는 단점만 열거해 서서히 세뇌하면서 자신의 이권을 관철하려는 부류의 헬리콥터 부모가 생각보다 널려 있다는 말도 있다.

한국사회에서 갑질사례 기사를 보면, 부모가 아이에게 대놓고 "너 공부 안 하면 나중에 저런 일 해"라며 멸시하거나, 배달기사에게 여성이 진상부리면서 "못배워서 그런 일이나 하는 거야"라며 무시하는 녹취 등 남과 비교하며 우열을 가리는 문화가 있다.[5] 코로나 이전에 호주 워킹홀리데이 열풍이 불었을 때 호주에 앞다퉈 가려는 청년들이 많았기에 시사다큐에서도 다루기도 했는데, 남과 비교하는 한국사회에서 도망치려는 이유도 많았다. 저런 인성을 못갖춘 사람들에게 인정되는 것조차 싫고, 무시되는 것은 더 싫기 때문에 일종의 현실도피였던 것이다.

상술됐듯이 우월의식 자체가 상대적인 개념이고 무리동물 사이에서 서열을 나눌 때 생겨나는 것이니만큼, 획일화된 집단주의 국가에서 경쟁이 심하다. 하지만 서구처럼 개인주의화가 되면, 즉 타인에게 신경 안 쓰고 자신이 하고 싶은 것을 즐기는 삶을 추구하는 방향으로 가면 각자 자신만의 '소확행'을 찾아 즐기니까 스트레스가 덜하다. 서구에서도 엄연히 상류층부터 하류층까지 다 나눠져 있으며 서구권의 개인주의 국가일수록 도시에 사람들이 많지만 크게 도드라지지 않는 이유는, 각자 '자신만의 섬'에서 살면서 굳이 하류층이 상류층과 비교해 열등감에 빠지는 일이 덜하기 때문. 그냥 자신의 수준이나 적성, 취향에 맞춰 분수에 맞게 자신만의 세계에서 즐기고, 딱히 누가 남과 비교하며 잔소리 하지도 않고 본인도 외부의 시선에 신경을 안 쓰니 스트레스 받을 일도 집단주의 국가보다는 덜하다. '나는 자연인이다'의 자연인들이 굳이 우월감이나 열등감을 느끼지 않듯 말이다. 무인도에서 혼자 살 때도 우월의식을 느끼기 어려울 것이니 명품에 관심을 안 줄 수도 있다. 초면에 나이 물어보는 것도 비매너인 서구에서는 사람들이 받는 스트레스가 상대적으로 덜하다.

기껏 호주까지 가서 한다는 일이 한국에서는 쳐다보지도 않았을 일들이어도 종사하면서 만족하는 사람들에게 만족하는 이유를 물어보면, 주변의 시선에서 벗어나니 살 것 같다고 하는 경우가 있다. 한국에서는 엄친아처럼 자꾸 남과 비교하고 비교되니 스트레스를 받았던 것이다. 타인과 비교하면 동전의 양면처럼 누군가에게서 우등감을 느낀다면 누군가에게서 열등감을 느낄 수 있다. 더군다나 상대가 같잖은 우월의식으로 갑질을 하며 멸시하면 본인이 우월의식을 가질 수 있는 포인트를 찾아서 '우월의식을 우월의식으로' 반격하기도 하는데, 어느날은 문득 현타가 와서 이런 것 자체가 다 싫어질 수도 있다. 한국에서 무시하는 것도 무시되는 것도 싫은 청년은 호주로 도망치듯 떠나 아예 남과 비교하기 자체를 안 해버리니 스트레스에서 해방된 것이다.

혜민스님은 정작 본인은 '풀소유'라 논란이 있긴 했지만, '남과 비교하는 게 고통의 원인'이라는 말은 어느 정도는 맞는 말이다. 예전의 당신보다 더 우월해지란 말도 결국 남과 비교하지 말라는 것이다. 남과 비교하면 결국 '서열정리' 본능으로 인해 피튀기는 경쟁에 내몰리게 되고, 본인이 능력자라면야 행복할 수 있지만 모두가 원하는 상위 1%는 결국 소수만이 얻을 수 있는지라 나머지 다수는 고통을 겪을 수 있다. 한양대 교수의 행복칼럼에도 내가 못 가진 것보다 가진 것에 만족하고 '남보다 잘 하려고 노력하는 것은 아니라 전보다 잘 하려고 노력하라'고 강조한다. 상위 1%와 비교하며 열폭해야 스트레스만 받으며 남과 경쟁하다 보면 설사 본인이 우월해도 상대가 쫓아올까 봐 끊임없이 긴장하며 스트레스를 받기 때문이며, '오르지 못할 나무는 쳐다보지 마라'는 속담도 있다. 소유한 것으로 사람들을 이롭게 하는 게 우월의식을 덜어내는 데에 좋지, 무소유이냐 풀소유이냐는 그리 중요한 게 아니기도 하다.


5. 관련 문서[편집]




[1] 글자 그대로 따지면 역시 두 발인 새도 해로운 것이 된다는 얘기로 들려서 그런지 작중에서도 닭과 오리들이 이 조항에 대해 항의하는데 이에 돼지 스노볼이 새의 날개도 발이라고 할 수 있고 인간들의 손하고는 엄연히 다르다며 차분하게 설명하자 닭과 오리들은 어느 정도 납득한 모습을 보인다.[2] 특히나 정치가의 경우 부와 권력을 모두 가진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3] 구글에서 '우월한'으로 검색해보면 대부분 선남선녀의 사진이 상위권에 표시되는 것으로도 쉽게 확인된다.[4] #1-1, #1-2, #1-3[5] 그러나 이 또한 과유불급이다. 애당초에 소수의 인원만 선발하는 직종에 경쟁률이 높아지는 건 뒤로 해도, 만약에 국민 모두가 공부를 잘 해서 공장 일, 길거리 청소, 배달 등을 안 하면 사회가 돌아갈 리가 만무하다. 아무리 낮게 쳐도 로봇이 보편화되기 전까지는 노동자의 처우를 보장해야 사회가 돌아가지만 덩달아 무시하는 경향이 있기도 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