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도 인민당 (r1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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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편집]
인도의 정당. '바라티야 자나타 당'이라고 불린다. 성향은 보수주의와 힌두교 근본주의 색채를 띈다. 참고로 당원 수가 무려 약 1억 8000만 명으로 세계 인구 8위인 방글라데시보다 많다.[2] 당원 수로는 중국 공산당을 제치고 세계 최대의 정당.[3]
2. 상세[편집]
현재 인도의 제1여당이며, 20세기 장기 집권한 인도 국민 회의의 일당 체제를 무너트리고 인도의 민주화를 이끈 정당 중 하나로 전신인 자나타 당이 1970년대 중반에 인디라 간디가 강압 정치를 펼치자 저항운동을 펼쳤고, 1977년 총선에서 좌파정당들과의 연립정부를 구성하여 정권을 잡은 적이 있었다.
그러나 당시엔 인디라 간디에 대항한답시고 보수주의자부터 공산주의자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성향의 정당들과 계파들이 죄다 모이다보니 자연히 불협화음이 일어날 수밖에 없었고, 결국 1980년 총선에서 각자 따로 출마한 덕택에 허무하게 국민회의에게 다시 정권을 내주었다. 이후로 현재의 자나타 당으로 재편되었고, 1989년 총선에서 국민회의의 내분과 비리 의혹 등으로 반사 이익을 얻어 인민당이 자나타 당과 연합해서 다시 재집권했지만, 1991년 총선을 앞두고 라지브 간디 전 총리가 암살당하면서 동정표를 얻은 국민회의가 다시금 정권을 차지하게 된다.
이후 인민당은 무슬림에 반감을 가진 힌두교 근본주의를 자극하는 이른바 아요디야 사건을 이용해 다시 세를 넓히는데 성공[4] , 1996년 총선에선 1당이 되며 중간에 연정이 깨져 집권당에서 내려왔다 재선거를 치르는 등 우여곡절이 좀 있긴 했으나 어찌됐든 2003년까지 집권하게 된다. 하지만 이 기간 동안 경제성장은 더뎠고 결국 2004년 총선에서 다시 정권을 상실하게 되었다.
그리고 10년이 지난 2014년 인도 총선에서 545석 중 282석을 차지하면서 다시 정권을 차지했다. 현 나렌드라 모디 총리와 대통령인 람 나트 코빈드도 이 정당 소속. 2019년 인도 총선에서도 전체 543석 중 303석을 차지하는 대승을 거뒀고, 2024년까지 인도를 다시 이끌게 되었다. 사실 힌두 극우 정책이 인도 내에서도 반발이 컸고, 모디 총리 집권기 인도 경제가 순항하긴 했지만 총선에 접어들 무렵엔 다시 경기 침체가 찾아와 직전 중부 지역 힌디벨트 지방선거도 참패하는 등 위기감이 있었으나, 상대 주요 정당인 국민회의의 당수 라훌 간디의 리더십 부족과 선거 직전 터진 2019년 인도-파키스탄 분쟁 같은 안보 이슈가 인민당 승리 요인으로 작용했다.
2021년에는 코로나 19 대응 미흡[5] 등의 이유로 지방선거에서 참패하기도 했지만, 2022년 3월 열린 주의회 선거에선 다시 승리했다.
3. 성향[편집]
일단은 보수정당을 표방하고 있다. 다만 안티들에겐 유럽이었으면 보수, 우익은커녕 극우 정당 취급받았을 거라는 의견도 나온다.[6] 실제 힌두교 근본주의 성향이 있다보니, 이와 섞여 우익, 반외국인, 반이슬람 성향 때문에 비판자들에게는 파시스트 정당이라고 비판받기도 한다. 특히 1996년부터 2004년까지의 집권기때 이런 성향이 강해서 1998년 5월엔 파키스탄에 대비한답시고 핵실험을 강행하는 등 세계적 어그로를 끌기도 했다. 또 당에서 청소년 프로그램을 운영하면서 이들을 정치적 집회에 참여시켜 당을 위해 모금을 받게 하는 모습 등도 보이면서 히틀러 유겐트 아니냐는 말도 나왔다.
본질적으로는 사르다르 발라브바이 파텔의 정신을 계승하는 극단적 힌두교 내셔널리즘 외에는 실체가 없거나 모호한 정당이다. 애초에 이 정당의 정신적 기반인 라시트리야 세와크 상가(RSS)는 1948년 이 집단의 단원인 나투람 고드세가 일으킨 모한다스 카람찬드 간디의 살해 주범이었기 때문에 전 인도인의 공분을 사서 아예 정치계에 발을 들일 수 없던 극단적인 힌두유일주의 제노포비아 테러집단에 가까웠고, 그렇다보니 인디라 간디가 주도한 인도 국민 회의의 폭정이나 독주의 대안으로 떠올랐을 뿐 13억 인구, 30여개의 공용어등 구심점이 확실하지 않은 채 통일 인도의 정치위기나 경제위기의 대안을 주장하며 보수성향의 하층민,하위 카스트 다수의 인구로 밀어붙여 집권한 정당이기 때문에 대중주의가 가장 중요한 키워드이고, 이 많은 수의 인도인을 우리는 인도사람이다라고 단결해 하나로 쉽게 묶을만한 사상은 오직 힌두교 뿐이라 계획적으로 힌두 극단주의를 주장하며 두터운 하층민들의 지지를 바탕으로 유지하고 있는 것이다. 그것이 보수성향으로 쉽게 발현되기 때문에 이들이 극단적인 수구성향을 띠기도 하는 것이다.
인도 인민당 세력이 커지면서 이들을 지지하는 힌두교 근본주의자들과 인도 소수 종교 중 최대라 할 수 있는 무슬림과의 대립이 심화되며 테러 등 물리적 충돌 상황까지 벌어지고 있어 사회 갈등 요소로 지목되고 있다. 인도 역사를 공부했다면 알지만, 인도의 다수인 힌두교 정치세력이 1947년 이전에 마지막으로 통일 정권을 잡았던 시기는 11세기 프라티하라 왕조가 마지막으로, 그 이후 인도는 1천년 가까이 북방에서 남하한 이슬람계 유목민족의 침략으로 힌두 왕조가 무너진 상태에서, 이들이 세운 무슬림 왕조 무굴 제국의 지배를 받다가 마라타 동맹이 무굴 제국과 항쟁하면서 다시 힌두 왕조로 인도를 통일하나 싶었는데[7] 곧 영국이 쳐들어와 식민지배를 당했고, 힌두교도들은 다수지만 소수 지배층은 이슬람이었던 상태가 지배층만 영국인으로 바뀌어 무굴 제국때 만들어졌던 토후국 연합의 역사가 이어졌다. 동인도 회사는 점령 시점에서 대부분 무굴 제국의 방식으로 백성은 힌두, 지배층은 이슬람이었던 수많은 토후국들을 무력으로 일일이 제압하지 않고 외교권을 뺏고 세금을 거두는 조건으로 굴복시켰으며, 토후국이 완전히 인도에 병합된 것은 독립 이후 파텔의 주도로 진행된 무력진압과정을 거치고 나서이다.[8]
그러다보니 인도 인민당의 주장은 무굴 제국조차 힌두교 입장에선 노예 왕조이며, 힌두교 나라를 세우기 위해서는 거의 1천년전까지 시계를 거꾸로 돌려야하는 것이다.
실례로 2002년 구자라트주에서 힌두교도들의 폭동으로 수천명의 무슬림들이 학살당한 사건이 있었는데, 이때 인민당 일부 당원들 역시 학살에 가담해 논란이 되었다. 당시 구자라트주 총리였던, 이후 인도 총리가 되는 나렌드라 모디[9] 도 이 사건을 수수방관하면서 피해를 키운 것 아니냔 말도 있다. 심지어 본인이 직접 개입했다는 루머도 있다.[10]
2017년 들어서는 남녀끼리 데이트는커녕 길거리를 같이 다니지도 못하게 공권력을 동원해 막거나[11] 인도 전역에 소 도축을 금지하는 정책을 시행할 기운도 풍기고, 일부 주에서 술 판매를 전면 금지하겠다는 정책을 천명하는 등 힌두교식 극단주의 정책을 대놓고 펼쳐 말이 많은 모양새.[12] 이에 호응해서 당 지지자들과 다른 힌두 내셔널리즘 지지자들은 "소 자경단"이라 불리는 그룹을 형성해 소를 도축하였거나 소를 소지하고 있다고 의심되는 자를[13] 구타하는 등의 행태를 행했는데, 이 폭력사태는 인민당 총리 나렌드라 모디 집권 이후 날로 악화되어 2012년에는 단 한차례만 일어난 '소 자경단'의 린치가 2018년에는 무려 55회를 찍기도 했다.[14] 또한 1992년 힌두 내셔널리즘 그룹이[15] 역사적인 모스크를 파괴한 아요다야 시[16] 의 자리에 힌두교 사원을 지을 것을 주장하였는데, 결국 2020년 모디의 인도 정부가 해당 자리에 라마를 기리는 힌두교 신전을 지을 것을 천명하면서 갈등에 기름을 부어 버렸다. 당연히 인도 인구의 약 15%를 차지하는 무슬림들은 또 다시 폭력 사태가 벌어지지 않을까 불안에 떨었다.
또한 인도 인민당 정부에서 과거 식민지 시대에 만들어진 정부를 비판할 시 사실상 최대 종신형까지 선고할수 있는 선동법을 사용해서 정부에 비판적인 언론인들을 구속하고 권위주의적 통치를 하고 있다는 비판까지 나왔다. 결국 5월 11일에 인도 최고 법원에서 해당 법의 사용을 금지했다.
4. 기타[편집]
- 튀르키예의 정의개발당과 포지션이 유사한 측면이 있다. 일단 현 여당이며 성향은 반세속주의적으로 각각 힌두교, 이슬람교 근본주의적이다. 또 기존 여당들[17] 의 한땐 강압적이기도 했던 장기집권에 반대하여 창당되었으나 현재 행보 상으로는 본인들이 민주주의를 훼손한다는 아이러니한 비판을 받고 있다. 또 몰아낸 당들이 그 나라의 사실상 국부들[18] 의 당이었다는 점에서도 유사점이 있다.
- 2021년, 비트코인 소유를 금지하는 법안을 추진 중이라는 기사가 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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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이슬라모포비아 성향도 강하게 보인다.[2] 참고로 방글라데시의 인구는 1억 6700만명으로 러시아보다도 인구가 더 많다.[3] 다만 중국은 사실상 유일한 집권정당이 공산당인 것을 생각하면 부질없는 비교다. 현재 중국 공산당 당원이 9000만명 정도인데 이 당원들은 전부 엄격한 선발과정을 거쳐 입당한 진성당원들이어서, 유령당원들도 많은 기타 정당들과 동일 비교선상에 놓기는 힘들다.[4] 이는 2차대전과 독립 초기 인도 국민들의 구심점이었던 간디와 네루 시대가 지나고 네루의 딸 인디라 간디가 강압 정책을 펼치다 시크교도들에게 암살당하는 등 갈등이 심화되는 80년대 이후의 다양한 문화, 언어, 사회 집단이 섞여있는 거대한 인도에서 이들을 단결시킬 수 있는 구호로 인도인 중 약 80% 가까이 믿는 최대 다수 힌두교를 끌어들인 결과물이라고 할 수 있다. 인도 내 약 15% 정도가 분포된 최대 소수종교이자 인도의 안보를 위협하는 파키스탄이라는 뒷배를 깐 무슬림들을 타겟으로 정해 디바이드 앤 룰기로 다수를 차지하는 힌두교 신자들의 증오심을 부추긴 것이다.[5] 모디 정부는 코로나 19 유행 상황에 대규모 군중을 동원하는 유세를 했다.[6] 사실 아시아권 민주 국가 중에는 주류 보수정당이 유럽의 우파포퓰리즘 내지 심하면 극우정당 못지않은 사회보수주의, 전통적 보수주의적 성향을 띄는 경우도 생각보다 적지 않다. 이는 아시아권이 유럽권보다 문화적으로 덜 리버럴하고 보수적인 지역이 상대적으로 많기 때문인 점도 있을 것이다.[7] 타밀나두와 서벵골 콜카타 주변 해안지대를 지배하지 못해 인도 아대륙 전체에 지배권을 행사하진 못했으며, 델리,하이데라바드등에 존재하던 다수의 소규모 이슬람 토후국과도 항쟁중이었다.[8] 이 과정에서 보통 인도의 토후국과 정반대였던 현재 파키스탄 지역의 토후국들, 대표적으로 카슈미르의 경우는 지배층 힌두들이 인도로 도망간 후 파키스탄에 붙었으며, 이때문에 카슈미르가 펀자브와 마찬가지로 인도, 파키스탄령으로 두쪽이 났다.[9] 인도에서는 지방자치도 내각책임제로 운영한다. 따라서 주의 명목상 대표는 대통령이 임명한 Governor(주지사)이지만, 실질적으로 주의 행정을 이끄는 사람은 주 의회에서 선출한 Chief Minister(주총리 혹은 수석장관)이다. 이 때문에 한국 언론에서는 모디가 수행한 직책을 부르는 명칭이 통일되어 있지 않고 주총리, 수석장관, 심지어 주지사 등을 마구잡이로 혼용하는 상태이다.[10] 덕분에 모디는 한때 구자라트 학살 방관과 연루 의혹으로 인해 미국 외교부에 의해 미국 입국 금지조치를 당한 적도 있었다.[11] 원래 취지는 경찰들이 공공장소에서 성희롱하는 남성들을 즉결심판하는 시행령이지만, 현실에선 변질되어 쓰이고 있는 모양. 2010년대 비정상회담의 럭키가 친 유명한 드립인 "인도 경찰은 누구나 때려요"의 그거다.[12] 물론 인도는 나라도 크고 주 정부의 권한이 크다 보니 일부 주에서는 대놓고 배째라 식으로 나오기도 한다. 특히 인도에서 공산당 세가 강하고 종교색이 옅은 케랄라 주 같은 경우 아예 정부에 대놓고 반기를 들며 소 도축 금지 정책에 맞서 쇠고기 축제를 열었을 정도. 인도 인민당의 주 지지층이 주로 구자라트 등 인도 북서부 지역이다 보니 남인도 쪽에서는 중앙정부에 대해 반발이 심한 편이다.[13] 주로 무슬림들이다.[14] 2020년에는 다시 줄어들었는데, 이유는 뭐 알다시피...[15] 인도 인민당의 주요 정치인들도 당시 많이 포함되어있었다.[16] 역사적으로 힌두교도들과 무슬림들간 갈등의 소지가 많은 이슈이다. 아요다야는 비슈누의 7번째 환생인 '라마'가 태어난 곳으로 알려져 힌두교도들의 성지로 여겨졌다. 하지만 1528년 무굴 제국 초대 황제인 바부르 황제는 이 자리에 모스크를 세웠고, 이는 오랜 기간 힌두교도들의 미움을 받았던 동시에 인도의 무슬림들에게는 역사적 상징성을 지닌 모스크로 남아 있었다.[17] 인도 국민 회의, 공화인민당.[18] 모한다스 카람차드 간디와 자와할랄 네루(인도), 무스타파 케말 아타튀르크(튀르키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