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에르 코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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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에르 코숑》, 1400년대. 그림.[1]
출생
1371년
프랑스 왕국 샹파뉴 랭스
(現 프랑스 그랑테스트 레지옹 랭스시)
사망
1442년 12월 18일
(향년 71세, 추정)
노르망디 공국 루앙
(現 프랑스 노르망디 레지옹 센마리팀주 루앙시)
병사 (심부전)
묘소
프랑스 오드프랑스 보베
보베 생 피에르 대성당[2]
학력
파리 대학교 (교회법, 신학 / 학사)
(1380년대1390년대 사이)
직업
대학 학장, 성직자
재임
기간

프랑스 왕국 보베 교구의 주교
1420년 8월 21일 ~ 1432년 1월 29일
프랑스 왕국 리지외 교구의 주교
1432년 1월 29일 ~ 1442년 12월 15일
서명
파일:피에르 코숑 서명.jp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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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문
국적

본명
피에르 코숑
(Pierre Cauchon)
별칭
보베 교구의 주교
(Évêque de Beauvais)
종교
가톨릭
박탈
1457년[1]
부모
아버지 자크 1세 코숑
(Jacques Ier Cauchon, 1325 - 1476)
어머니 로즈 트리크셀
(Rose Triquesel, 1330 - 1388)
형제
자매

제라르 3세 코숑
(Gérard III Cauchon, 1355 - 1388)
배우자
없음 (독신)
경력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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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리 대학 학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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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2. 생애
2.1. 생애 초기
2.3. 잔 다르크의 이단 재판
2.4. 최후
3. 대중매체에서
4. 둘러보기



1. 개요[편집]


백년전쟁 당시 보베주교로, 잔 다르크화형을 선고한 것으로 유명하다.


2. 생애[편집]



2.1. 생애 초기[편집]


랭스 태생으로 부르주아 금세공인 가문의 2남 중 둘째 아들로 태어났다.

피에르는 아버지는 자크 1세 코숑 (Jacques Ier Cauchon, 1325 - 1476)이며, 어머니는 로즈 트리크셀 (Rose Triquesel, 1330 - 1388)이었다. 자크 1세 코숑은 랭스의 부유한 부르주아이자 금세공인이었다.

친형이 1명있는데, 이름은 제라르 3세 코숑 (Gérard III Cauchon, 1355 - 1388)이다. 제라르 3세는 아버지처럼 금세공인이었는데, 교회에서 금 세공을 했으며, 1355년에 태어나서 1388년에 랭스에서 죽었다. 제라르 3세의 아들 장 코숑 (Jean Cauchon, 1386 - 1448)의 아들 토마 코숑 (Thomas Cauchon, 1422 - 1482)이 대를 이으면서 21세기 현재 피에르 코숑의 친형 가문의 자손이 전해지고 있다.

물론 피에르 코숑은 이후 가톨릭 성직자가 되면서 평생 독신이었으므로 피에르의 직계후손은 없다.

피에르의 어린 시절에 대해 알려진 것은 별로 없으나, 랭스의 중산층으로서 먹고 살 걱정 할 필요없이 살았던 것으로 보인다. 가업인 금세공인 일을 친형이 맡을 때 가업에 관심을 가지지 않고 귀족의 후원을 받아서 승진하는 성직자 생활을 꿈꿨다.


2.2. 가톨릭 성직 생활[편집]


피에르는 청소년 시기부터 가톨릭 성직자 교육을 받았으며, 파리에 가서 파리 대학에 입학했다. 파리 대학에서 그는 성적이 우수한 학생이었으며, 교회법과 신학을 전공하고 가톨릭 신부 교육을 받았다.

1404년 피에르는 에글리셀 교구의 신부가 되었으며, 고향 랭스 근처에서 성직자가 되기를 원했다. 랭스 대성당에서 주교 대리가 되었으며, 파리 대학 학장을 역임했고, 1420년부터 보베 교구의 주교를 역임했다.

백년전쟁 당시 장 1세 드 부르고뉴 공작와 장 1세의 후계자 필리프 3세 드 부르고뉴 공작을 지지하면서 부르고뉴 공의 지지세력으로서 시종일관 영국을 대변했다.


2.3. 잔 다르크의 이단 재판[편집]


잔 다르크가 왕으로 내세운 샤를 7세의 정통성을 깍아내려야하는 입장으로 잔 다르크를 이단으로 내몰았다. 근현대의 창작물에선 가끔씩 같은 프랑스인이고 주교라는 신분으로 잔 다르크를 동정하고 목숨을 살리려는 모습을 보이는 것으로 묘사되긴 하나, 애초에 잉글랜드군에게 잔 다르크의 종교재판을 주선하도록 제일 먼저 요청하고 몸값을 모으느라 안달이었던 이 인간이 잔 다르크를 배려했을 가능성은 낮다. 오히려 코숑은 잔 다르크의 랭스 입성으로 인해 고향 랭스의 교구에서 주교가 되지 못했기 때문에 그에 대한 보복과 자신의 출세를 위해 잔에 대해서 이를 갈던 사람이었다.


2.4. 최후[편집]


참고로 잔 다르크가 죽은 이후 코숑도 곧바로 죽었다는 말은 사실이 아니다. 급사하긴 했지만 그보다 더 나중인 1442년까지 71살로 오래동안 살다가 심부전으로 고통스럽게 죽었다. 물론 잔 다르크의 죽음을 만든 재판 이후 1432년 출세하고 말년인 1442년까지 프랑스 왕국 리지외 교구의 주교를 역임했다.

한창 잘 나갈 때 면도 도중 뇌졸중으로 급사해서 벌을 받았다는 소문이 돌았다. 코숑 외에도 재판을 주도한 장 르메트르는 루앙 시외의 외딴집에서 시체로 발견되고, 또다른 주도자인 장 데스티베는 루앙 하수구에서 시체로 발견되었다. 잔 다르크가 화형당한 뒤에도 헨리 6세의 프랑스 왕 대관식에 참석하는 등의 활동을 했다. 샤를 7세가 파리를 탈환하자 루앙으로 도망갔으며, 리지외 생피에르 대성당의 지하 납골당 공사에 재원을 대는 일을 했다. 1442년에 심부전으로 사망했다. 향년 71세였다. 코숑은 프랑스 오드프랑스 보베시 보베 생 피에르 대성당에 묻혔다.# 잔 다르크의 사망 후 약 11년 뒤가 된다.

사후 교황청에 의해 벌어진 명예회복 재판에서 잔 다르크에게 내려진 이단, 마녀 혐의 및 파문 조치가 무죄로 철회되었을때 잔 다르크를 이단으로 판결내렸던 피에르 코숑을 이단자로 선언하고 1457년 주교직을 박탈당했다.


3. 대중매체에서[편집]


구국영웅 취급받는 잔 다르크가 화형당하는 데에 매우 크게 일조했으며 백년전쟁 당시 부르고뉴 공의 지지 세력으로서 시종일관 영국 편이었기에 후세에는 희대의 매국노로 취급받는다. 물론 민족주의가 지금보다 훨씬 희미한 시대인것도 고려해야겠지만. 마침 성인 코숑도 프랑스어로 돼지를 뜻하는 cochon과 비슷하기도 했다.

잔 다르크를 소재로 삼은 창작물들에서는 아주 당연하게도 악역으로 등장하며 고인드립(?)을 당하는 경우가 종종 있다. 일례로 Fate/Grand Order에서는 잔 다르크 얼터에 의해 역으로 자기가 산채로 불타죽는 것으로도 모자라 크리스마스 이벤트 때는 심심풀이 장난감으로 등장했고, 어쌔신 크리드 시리즈 시리즈 소설인 어쌔신 크리드 헤러시에서는 템플 기사단으로 등장했다.

사실 피에르 코숑은 당해도 싼 면도 있는데 잔 다르크의 화형 자체가 온갖 촌극의 연속이었고 이에 가담한 코숑 역시도 다를 바 없다.


4. 둘러보기[편집]







[1] 그림 수집가 François Roger de Gaignières가 17세기와 18세기 사이에 발견한 코숑의 무덤 석상을 그린 그림이다. 석상은 1400년대에 만들어졌으며, Gaignières이 석상을 보고 그린 것이다.[2] 링크 참조: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