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려거란전쟁/공개 정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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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2. 방영 전 정보
3. 티저 분석 및 추측



1. 개요[편집]


고려거란전쟁의 방영 전 정보와, 캐스팅 관련 정보들을 서술한 문서이다.


2. 방영 전 정보[편집]


  • 2022년 5월 13일, 최초로 제작 소식을 전했다. 주요 내용은 2차~3차 여요전쟁, 서기 1010년부터 1019년까지 딱 10년의 시기를 다룬다. 주인공은 현종강감찬이다.[1]

  • 2009년 <천추태후> 이후 14년 만에 순수 고려시대만을 배경으로 등장하는 KBS 대하사극이다. 또한, 본 작품이 방영되는 2023년은 KBS공사창립 50주년 & 대한민국 방송 시작 96주년을 맞는 해이기도 하다.

  • 대하드라마인데도 불구하고, 편성이 KBS2로 넘어갔다. 보통 대하사극이 KBS1에 편성되는 것을 고려하면 이례적인 모습이다. 과거에 <대왕 세종>도 1TV에서 2TV으로 편성이 바뀐 바 있으며 드라마 <천추태후>는 아예 KBS 2TV로 편성되었다. 우연히도 현종과 강감찬이 나온 대하드라마가 모두 KBS 2TV에 방영되었다.


  • <2022 KBS 연기대상>에서 2023년 드라마를 소개할 때 '최초로 귀주대첩을 영상화한 드라마'로 소개되었다. <천추태후>와 <평화전쟁 1019>에서 다룬 바 있긴 하나 <천추태후>는 귀주 대첩을 부실하게 다루었다. 1차 여요전쟁은 드라마에서 20여 회 소모했고, 2차 여요전쟁은 극 후반부 4회 정도 소모한 반면, 귀주 대첩을 포함한 3차 여요전쟁은 마지막 회에 나레이션을 포함해 5분 정도만 보여줬다. 또 <평화전쟁 1019>는 다큐드라마로 공식 분류도 '시사교양'이기 때문에 '귀주대첩을 본격적으로 묘사한 최초의 드라마'란 전제라면 틀린 소개는 아니다.

  • 이 작품이 방영되면 기존에 방영 중인 <살림하는 남자들>의 방영 시간대가 변동될 예정이다.[2]

  • '야율융서' 역의 배우 김혁의 블로그에서 공개되었는데, 몽골말로 "GO!!"를 뜻하는 "얍츠가이!!"란 표현이 쓴 것으로 보아 거란 측 인물들이 몽골어로 대화하는 방식으로 극이 진행될 듯하다는 추측이 있었다.[3] 그러나 3차 티저에서 야율융서가 한국어를 쓰는 모습을 보였고 4차 티저와 6차 티저에서는 야율적로와 소배압이 몽골어를 쓰기도 했기에 징비록이나 명성황후와 비슷하게 한국어와 몽골어를 섞어서 사용하는것으로 보인다. 변발 고증도 지키는 것으로 보였으나 확실하지 않다.[4]

  • 대하사극 매니아 카페에 고려거란전쟁 의상 관련 게시물이 있는데, 의상 제작 목록에 환관 의상이 있는 걸로 보아 환관 배역도 있는 듯하며, 거란 당상관이나 거란 환관 의상도 있는 것으로 보아 주요 거란 재상들도 극에 나올 듯하다.

  • 이석근 의상감독 페이스북에 출연진들의 모습이 일부 공개되었다.

  • 2023년 8월에 첫 포스터 촬영을 했고, 9월에 티저와 메인 포스터가 공개되었다. 그리고 같은 달 공개된 3차 티저 영상에서 첫 방송이 11월 11일로 확정되었다.

  • 이례적으로 넷플릭스에서 동시 방영된다. 아무래도 KBS 입장에서는 역대급 제작비를 충당할 수 있어서 좋고, 넷플릭스 입장에서도 태종 이방원 만큼의 국내 흥행이 예상되니 서로 상부상조 하는 셈.


3. 티저 분석 및 추측[편집]


  • 드라마 천추태후에서 본 드라마의 시대적 배경이 되는 현종 집권기도 다뤘웠다. 다만 해당 드라마에서는 해당 부분을 최후반 3~4회 정도 다루었으나 드라마 자체가 천추태후를 상당히 미화해 비판을 많이 받았다. 이번 작에서는 반대로 현종이 주인공이고, 천추태후가 강조의 정변으로 권력에서 쫓겨난 상황이기에 비중이 적을 것으로 보이는데 천추태후가 어떤 식으로 표현될 지 주목된다.

  • 이번 드라마에서는 작중 고려를 외왕내제로 설정하고 작중 용어와 호칭 사용들도 그에 따라는 모습을 보여주고 있는데 실제로는 고려/외왕내제 여부 문서를 보면 알 수 있듯이 이는 학계내에서 논란이 있는 부분이다. 실제로는 왕이나 왕자 같은 제후국 호칭들이 고려시대에 주로 쓰였기 때문에 황제 폐하나 황상 폐하라고만 호칭할 경우 엄연한 역사왜곡이 된다. 이는 고려시대 금석문 사료들을 살펴보아도, ‘왕’과 '선왕'의 용례가 일반적이고 압도적이면서도 ‘황제', '선제(先帝)', ‘선황(先皇)'이 드물게 사용됐으며, 왕위의 경우에도 왕위가 1건에 불과한 ‘제위(帝位)’보다 상대적으로 빈출하며, 황자(皇子), 황태자(皇太子), 황후(皇后)의 용례도 있으나 왕자와 왕후의 빈도가 압도적이며, 왕태자라는 용어도 사용됐다는 사실 등으로도 입증이 되는 부분이다. 즉, 원간섭기 이전 전기 고려 군주의 대내위상을 엿볼 수 있는 금석문들에서도 외왕내제적 모습들이 주류가 아니었다는 것이다.[5] 참고로 드라마의 원작 소설인 《고려거란전기, 겨울에 내리는 단비》에서도 고려의 임금은 주로 "성상"으로 호칭되므로 이번 드라마내에서의 용어와 호칭 사용은 원작 소설속 고증과는 별개로 정해진듯 하다.

  • 이전의 고려 사극과 마찬가지로 고려의 임금(현종)은 사모뿔이 매미 날개처럼 위로 솟은 조천복두(절상건)과 담황색 곤룡포를 착용하고 등장한다.[6] 참고로 고려와 송나라는 임금과 신하 상관없이 각이 뚜렷한 전각복두를 관모로 착용했다. 다만 임금과 신하의 구별을 위해 임금은 사모뿔이 위로 솟은 조천복두를, 신하는 사모뿔이 수평으로 뻗은 평각복두를 착용하는 것을 원칙으로 했다. 참고로 각이 느슨한 연각복두인 익선관은 명나라 때 생겨 고려 말에 들어왔으므로 당시에는 착용하지 않았다.

  • 파란색 배경에 노란색 용이 그려져 있는 고려의 황룡기가 등장한다.

  • 3차 티저 영상에서는 현종이 12류 면류관[7]에 곤복을 입고 원구단에서 천제를 지내는 장면이 나온다. 다만 실제로는 제후국 복제인 9류 면류관을 착용하기도 하는 등, 격식을 일관적으로 따르지 않는 모습을 보였다. 의종 대에 이르러서는 면류관의 줄 수는 제후국의 예에 따라 9개로 하되, 각 줄에 달린 구슬 수는 황제국의 예에 따라 12개로 하는 등 격식을 서로 혼용하여 사용하는 모습을 보여주기도 하였다.

  • 야율융서가 광기에 찬 모습으로 티저에 등장하여 다시 우려가 생겼다.[8][9] 그래도 복장이 야만족처럼 묘사되었던 천추태후보다는 영향력이 큰 이민족처럼 묘사되어 다행이긴 하다.[10]

  • 고려 장수들의 복장은 태종 이방원정도전에서 사용한 여말선초 찰갑 소품을 기반으로 송나라 양식의 봉시식이 달린 투구를 착용한 모습이다. 여말선초와 여요전쟁은 거의 수백 년 가까이 차이가 나지만, 찰갑은 제작 방법의 특성상 형태의 기본적인 큰 틀은 고대부터 중근세까지 거의 변하지 않았다는 점[11], 불화나 불탑 부조, 고려도경이나 몽고습래회사 속 묘사[12] 등을 참조해보면 고려군은 송나라와 매우 유사한 양식의 투구를 썼을 가능성이 높다는 점 등을 감안하면 꽤 준수한 고증이라고 볼 수 있다. 특히 고려시대는 실제 유물이나 벽화 등이 많이 남아 있는 삼국시대, 조선시대 갑옷과는 달리 시각적 자료가 부족한 탓에 사극에서 판타지 갑옷을 입힌 경우가 대부분이었음을 감안하면[13] 더더욱 그러하다.

  • 대하사극 매니아 카페에 풀린 소품 사진이나 티저 예고편 속 소배압이 입은 갑옷을 살펴보면 거란 갑옷 역시 상당히 고증이 잘 된 편이다. 다만 고려 병졸들의 갑옷 소품은 과거 삼국시대 배경으로 촬영한 사극들의 소품을 재탕한 것이라 살짝 아쉬운 편. 제작비를 많이 투입한 것은 사실이나 스케일이 워낙 큰 탓에 엑스트라 수십 수백 명에게 입힐 갑옷까지 일일히 새로 만들기에는 예산이 부족했던 것으로 보인다.

[1] KBS DRAMA: 고려 제8대 현종이 당대 최강의 군사대국이었던 거란의 침입에 맞서 동아시아의 평화와 번영의 시대를 여는 이야기[2] 당초 같이 변경될 예정이던 <걸어서 환장 속으로>는 8월까지 촬영분을 방영한 이후 종영되었다. 만약 살림남의 시간대가 변경된다면 현 시점에서 전멸된 평일 프라임 시간 혹은 살림남 이후 시간대인 밤 10시 40분으로 옮겨질 가능성이 있었고, 실제로 11월 15일 방송부터 수요일 밤 9시 45분으로 변경될 예정이다.[3] 거란인의 언어를 몽골어로 설정한 방식은 평화전쟁 1019에서 보여준 사례가 있다. 사실 거란인 자체가 넓은 의미의 몽골족에 포함되는 몽골어족의 한 갈래이니 틀린 건 아니다.[4] 공식 홈페이지에 공개된 사진을 보면, 야율융서한기는 어떤 변발로 나오는지 알수 없고, 소배압은 토종 거란인의 변발을 하고 나온다. 하지만 야율분노, 야율적로, 야율홍고는 지금까지의 사극에서 많이 나왔던 원형탈모와 비슷한 형태의 변발을 한 상태로 나온다.[5] 최종석(2015), "베트남 外王內帝 체제와의 비교를 통해 본 고려전기 이중 체제의 양상", 《진단학보》 125, p. 10~12.[6] 1차 티저 영상에서 우중에 궁궐 앞에서 무릎을 꿇는 장면으로 첫 등장하며 이후 티저 영상에도 같은 복장으로 나온다.[7] 앞뒤 각각 12개의 줄에 12개씩의 구슬이 달린 흑색 왕관으로, 오직 황제(천자)만이 착용 가능한 왕관이었다. 제후국 국왕은 앞뒤 각각 9개의 줄에 9개씩의 구슬이 달린 9류 면류관을 착용하는 것이 원칙이었으나, 고려는 각종 행사에서 12류 면류관을 착용하기도 하였다. 반면 조선에서는 9류 면류관을 원칙으로 하였다.[8] 천추태후에서도 요나라의 성군이였던 야율융서를 암군으로 묘사하여 많은 비판을 받았다.[9] 다만 티저에서 2-3차 여요전쟁 시기에 대해서 번갈아 다루는 것을 보면, 2차 여요전쟁에서의 양규의 항전과 자신을 속인 하공진, 그리고 2-3차 여요전쟁 사이 정신용, 고적여 등의 항전으로 인한 패배, 더불어 강동 6주를 반환하라는 자신의 요구를 번번히 무시한 것도 모자라 자신이 보낸 사신인 야율행평을 억류한 고려 조정 등으로 인해 분노했을, 3차 여요전쟁 직전의 그일 가능성도 있다.[10] 요 성종은 거란 내부적으로는 유학을 장려하였으며 자국 백성들에게도 성군이었던 것은 맞다. 티저 영상에서도 강감찬이 '거란은 일찌감치 유학을 받아들여 만만히 볼 존재가 아니다'라고 언급하는 부분이 있다. 다만 인근 국가인 송나라나 고려, 여진, 발해부흥세력 등에게는 상당히 악랄하고 두려운, 코즈믹 호러급의 존재였다고 볼 수 있다.[11] 고려도경 속 고려군 묘사를 보면 어깨 방어구가 없고 상하의가 붙어 있는 포형 찰갑을 입는다고 되어 있는데, 이러한 포형 찰갑은 조선 중기까지도 널리 쓰였다.[12] 고려도경과 몽고습래회사는 여요전쟁 이후 백 년 단위로 시간이 지난 후 나온 자료들이지만, 고려 갑옷은 워낙 자료가 부족하기 때문에 이들을 고려 갑옷을 고증할 때에 필수적인 자료로 쓸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13] 송나라 양식 투구는 천추태후(드라마)에서도 등장한 바 있으나, 대신 갑옷은 고증이 없다시피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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