근초고왕(근초고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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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2. 작중 행적
3. 관련 문서



1. 개요[편집]


KBS 대하드라마 <근초고왕>의 주인공. 배우 감우성이 연기했다.


2. 작중 행적[편집]


비류왕의 넷째 아들로, 제왕의 기운을 타고 났다는 태몽 때문에 어린 시절 쫓겨나서 소금장수로 살아가고 있었다. 고구려와 백제의 국경에서의 충돌 때 고국원왕에게 화살을 날리기도 했다. 이 때 비류왕에게 불려가서는 무예를 익혔다는 이유로 질책을 듣는데, 아버지에 대한 원망이 폭발했던 부여구는 소금 장수하다 바다에서 수적들한테 죽기를 바라셨냐며 일갈하고, 자신도 아바님의 아들이라 호소하지만 한성에서 영구히 추방한다는 말을 듣고 다시 밖으로 쫓겨난다.

다시 소금이나 팔러 나가려는 찰나, 고구려가 백제와의 회맹을 구실로 아버지를 암살하려 한다는 것을 요서로 가는 배에서 눈치채고는 다시 국경으로 달려가서 위기에 처한 아버지를 구하다가 말갈 흑군에 의해 포로로 잡힌다. 그러나 자신이 쓸모 없는 인질이라는 사실을 알고 백제를 배신한 것에 대한 비류왕의 분노를 두려워했던 말갈 군장 부간태에게 백제 편을 들어 대방 땅을 함락하는 것을 도와주면 살 길이 있을 것이라 포섭한다.

큰형이었던 태자 여찬이 고구려를 상대하러 대방에 출정한 와중에 자신의 외가인 진씨 가문을 탄압하는 등 병크를 저지르면서, 자신에게는 진씨 일가를 살려주는 대가로 고모리성 공격의 선봉에 설 것을 요구하자 차라리 나라를 위해 싸우다 죽겠다면서 흔쾌히 받아들이고, 말갈 흑군과 연합하여 고모리성을 함락시킨다. 그리고 부여구는 비류왕이 죽이려고 했던 부간태를 자신에게 달라고 요청하여 그를 부장으로 거둬들인다.

이 때부터 비류왕은 부여구에 대한 태도를 바꾼다. 부여구는 자신에게 공이 있냐고 아버지 비류왕에게 묻고, 비류왕은 고모리를 함락시킨 공이 있다고 말해준다. 고모리성 전투만 해결하고 자신이 사랑했던 위례궁주 부여준의 딸 부여화와 함께 요서로 떠나려고 했던 부여구를 비류왕이 붙잡는다. 그리고 자신의 사후 미래의 백제를 생각한다면서 자신은 이제 장남 부여찬이 아닌 부여구가 필요하다며 그를 거둬들인다.

결국 아버지 비류왕이 홀로 처소에서 울고 있는 것을 본 부여구는 부여화 대신 아버지를 돕는 것을 선택하고, 부여화는 고국원왕과 정략결혼을 맺음으로써 헤어지게 되었다. 그리고 비류왕으로부터 차근히 제왕교육을 받지만, 여찬을 폐하고 여구를 태자로 선포하기로 했던 그날, 비류왕이 부여준과 해비의 공모로 독살당하고, 부여구는 부여찬과 위례궁에 의해 자신이 비류왕을 시해했다는 누명을 뒤집어쓰고 요서로 추방된다.

추방되는 와중에도 해건과 부여산이 쫓아와서 바다 위에서 그를 죽이려고 하는 와중에, 수적 단범회[1] 또한 왕자가 온다는 사실에 그를 잡으려고 해건과 부여산의 배를 습격한다. 이 와중에 단범회는 부여산을 부여구로 착각하고 잡아가고, 부여구와 복구검, 파윤은 시체놀이를 하여 단범회로 잠입한뒤, 그들과 타협해 손을 잡고 해건이 장악한 청하원을 되찾는다.

이후 청하원을 기반으로 단범회와 손을 잡고 연합 조직 동명단사를 창립한 뒤 요서의 진성, 고평성을 함락시키면서 세력을 구축하고, 자신들을 토벌하러 온 조나라의 대군까지 막아내면서 요서에 기반을 구축한다. 그리고 예왕(濊王)의 인장인 '예왕지인(濊王之印)'까지도 양도받으면서 지위를 인정받는다.

요서에서 칠종칠금과도 같은 대범한 방법으로[2] 위비랑부여의 유민들을 포섭한 부여구는 2년 뒤 '요서군공(遙西郡公)'이라는 국제적으로 무시하지 못할 세력으로 성장하였고, 이를 기반으로 요서로 쫓겨난지 2년 만에 고구려가 장악한 대방 땅을 습격하면서 귀환을 선포한다.

부여구의 귀환에 긴장한 계왕 부여준과 고국원왕 사유는 힘을 합쳐 먼저 부여구를 몰아내기로 합의했지만, 부여구는 이들과 각각 접촉하면서 사유와 부여준의 동맹의 와해를 유도한다. 이 때 부여준과 독대하면서 둘이 생각하는 국가관이 서로 대립하는 것을 보여준다.

부여준: 해서, 고구려를 치자는 것이냐?

부여구: 위례궁주와 내가 힘을 합쳐 사유를 치면 고모리성을 되찾는 것은 물론이요, 백제의 국경선을 면악까지 넓힐 수 있소. 그들의 군사는 아직 오백이오.

부여준: 넌 날 죽이고 네 애비 비류의 원한을 갚겠다 온 것이 아니더냐?

부여구: 위례궁주와 나, 둘 중에 누가 과연 백제의 진정한 어라하인지 가리는 것은 고구려를 친 후에 하면 되는 것이오.

부여준: 네가 요서로 돌아가는 것이 답이다. 네가 죽기를 각오하고 나와 싸운다면 결국 수탄성은 백제 5천 군사의 무덤이 될 것이다. 허니, 고구려를 막고 싶다면 요서로 돌아가라.

부여구: 기어이 내 아바님이 일구신 대방 땅을 돌려주겠다는 뜻인가?

부여준: 너는 네 애비 비류가 대단하게 보일진 몰라도, 비류가 살아 여지껏 왕 노릇을 했다면 백제는 무너졌다.

부여구: 내 아바님은 초고대왕 이래 가장 위대한 어라하셨소.

부여준: 네 애비는 젊어서부터 무모했다. 대방현을 치겠노라, 30년 전, 3만 군사를 잃었다. 3만의 피로 호로하가 붉어졌다. 그 때도 나는 반대했다. 왜냐! 고구려 미천왕이 결코 대방 땅을 주지 않을 것임을 알았기 때문이다. 또 다시 대방의 고토를 회복하겠다, 1만 2천의 군사를 동원했지만 3천의 군사를 잃었을 뿐, 뭘 얻어냈느냐?

부여구: 대방의 절반을 얻었소. 이 수탄, 버들나루, 모로 세 성을 얻었고, 국경을 넓히셨소.

부여준: 대방 3성이 거저 얻어졌느냐? 백성들의 등골이 휘어졌고 국고가 비었다!

부여구: 어찌 왕이 눈 앞에 있는 삼판알만 튀기는가? 위례궁주, 그대가 이 땅을 돌려주지만 않는다면 비어진 국고는 이 비옥한 대방으로 채울 수가 있소

부여준: 고구려가 허수아비더냐? 연나라와 천년 만년 전쟁을 한다더냐? 얻긴 쉬워도 지키긴 어려운 법, 고구려가 국력을 기울여 백제와 싸우려 든다면 고구려를 이길 수 있겠느냐? 내 증조부! 고이대왕께서! 어째서 조카의 왕위를 찬했는지 아느냐?! 너희 초고왕통은 언제나 여구 네 놈처럼 똑같았다! 무슨 놈의 피가 절절 끓는지 전쟁! 전쟁! 전쟁! 땅을 넓혀야 한다! 고구려와 싸워야 한다! 밭을 갈아야 하는 장정들을 전쟁터로만 내몬다면 국가가 유지되느냐? 앞뒤 없이 전쟁만 한다고 부강대국이 되느냐?!

부여구: 허면 뒤웅박만한 백제를 끌어안고 왕노릇을 하면, 백제가 부강해지는가? 곳간에 재화만 쌓아놓는다고 나라가 절로 강해지는가?! 고구려는 더 이상 위로 갈 곳이 없다. 화북 지역을 차지하지 않고서는 더 위로 올라가 봐야 척박한 땅이다. 고구려가 연을 치고 요동 지역을 다 차지했다고 치자. 그것으로 만족할 것 같은가? 이 좁은 한 땅에 고구려와 백제가 마한 쉰 네 개국과 말갈이, 신라와 가야가 공존하는 한! 전쟁은 끝나지 않는다. 예맥한 삼족을 일통해야, 비로소 전쟁이 끝날 수가 있다. 그 때라야 백성들이 창과 칼을 내려놓고 밭을 갈 수 있는 것 아니오? 이 내가 삼한을 일통하고 빈 국고는 요서의 재화로 채울 것이오.

부여준: 요서 땅을 굴러다니다가 진평 2성 두 개를 얻어가지고 헛소리만 늘어왔구나. 요서로 돌아가라.


계왕이 사망한 후, 자신에게 귀부한 해건에게서 백제의 국새를 받는다. 한편 분열된 백제를 침공하려 기회를 엿보던 고국원왕은 역시 근초고왕에게 관광당하고, 대방 땅을 다 털린 뒤, 부여화마저 근초고왕의 품으로 돌아가버린다. 이에 근초고왕은 본부인 홍란이 아닌 부여화를 새 왕후로 맞아들인다.

이후 마한 경략을 준비하는 와중 전연이 요서로 침공해 들어오자, 근초고왕은 이에 맞서기 위해 요서로 친정을 나서고 진고도를 마한으로 보내 마한과 요서를 동시에 경략하려 한다. 요서를 공격한 모용황의 5황자 모용수가 자신을 호의로 대접하며 백제와 동맹을 맺고 고구려를 위 아래에서 협공하자고 제안해오는 데, 근초고왕은 고민 끝에 아지카이를 고구려-전연 국경인 모디골로 보내 고구려와의 동맹을 추진, 고국원왕과 독대하여 백제와 고구려가 한 혈통이기에 전연을 돕지 않을 것을 선택했다며, 동맹을 맺고 오히려 고구려와 전연을 협공하여 모용수를 몰아내고 요서를 경략하는 데 성공한다.

한편, 부여화가 아이를 조산하면서 루머[3]에 힘이 실려 점점 더 궁지에 몰렸고, 절치부심하던 부여찬은 이 기회에 부여화의 오빠들을 꾀어 반란을 일으킨다. 한참 요서 경략에 나서고 있던 근초고왕은 자신을 암살하려는 해녕의 독 베인 칼에 맞고 위기에 처하기도 하지만, 반란 소식을 듣고도 요서 경략을 마무리 한 뒤, 한성으로 돌아와 반란을 진압한다. 이 과정에서 부여화가 자신의 아들이 전각의 화재에 휩싸여 죽은 것으로 알게 되면서 멘붕하고 결국 부여구와 갈라서게 된다.[4]

근초고왕은 마한을 정복하고 돌아와 전제왕권을 내세우자 이에 반발한 진씨 가문은 부여화와 영합한다. 한편 근초고왕은 대장장이로 살던 부여화의 아들인 쇠꼬비를 발견하여, 백제의 장수로 삼는다.

한편 침미다례를 도륙하고 가라 7국의 투항을 받아낸 근초고왕이 마한 연합의 수장을 칭하던 ‘진왕(辰王)’을 자처하자, 그간 마한 연합에 군사 고문을 제공하던 고구려는 더 이상 백제의 세력 확장을 두고 볼 수 없었고, 국상 조불의 유언을 따라 불구대천의 원수이었던 연과의 화친을 통해 북변의 군사를 남변으로 이동시키기로 결단하자, 근초고왕은 일단 급한대로 국경인 대방 3성의 방비를 재정비하기로 한 후, 식량과 소금은 배를 띄워 버들나루로 보내고, 왕자 부여근을 고모리성으로 보내 상황을 주시하게 한다.

그러던 어느 날 사기가 부여진을 다치게 하자, 사기를 벌한 후 온조왕의 사당으로 행차하다가, 사기가 고의로 근초고왕이 타는 의 말발굽을 상하게 해서, 낙마하고 만다.[스포일러]

이후 고구려와의 전쟁에서 초반에 고모리성이 함락당하고,[5] 고국원왕이 보낸 격문을 보고 격노한 근초고왕은 친정을 선언하여, 방계왕족인 위례궁의 부여광까지 모든 왕자들을 인솔하여 치양성 북쪽 가무벌 들판으로 북진하지만 고모리성에 이어 모로성이 단숨에 함락되고, 고국원왕이 주력을 끌고 모로성을 함락시킨 사이, 고무가 이끄는 군사가 우회하여 각각 목라근자와 막고해가 지키는 버들나루, 수탄성을 깨뜨렸다. 결국 대방고토의 주요 거점들이 모두 고구려 2만 대군을 지원하는 전진기지가 되었고, 가무벌에 진을 친 근초고왕의 본영은 그들의 쉬운 먹잇감으로 전락했다.

하지만 사기가 적기군(赤旗軍)만 정예병이라는 첩보를 보낸 후, 다시 계책을 짜서, 치양 전투에서 고구려를 패퇴시킨다.

드디어 사유와의 길고 긴 싸움을 끝낼 때가 되었다.

평양성을 공격하라!


이후 평양성까지 진격한 후, 평양성 전투에서 고국원왕이 구수가 쏜 화살을 맞고 추락하자, 고국원왕을 간호한다.

(고국원왕: 내가 그대를 만난지 근 삼십년, 그대는 줄곧 미친듯이 내달리고만 있군. 마치 뒤를 돌아보지 않는 사람처럼.)

뒤돌아보는 것은 내 몫이 아니네.

(고국원왕: 조심하게. 그대 등 뒤에 노리는 칼이 있을지도 모르니.)

그렇다해도 어쩔 수 없는 일. 내가 조상님들께, 내 아바님께, 나의 백제를 위해 받은 소명은 달려가라는 것이니.

(고국원왕: 내 이, 내 손주들이 그대를 멈추게 할걸세. 반드시 백제의 질주를 절대로 멈추게 할걸세. 어째서... 어째서.. 하늘은 나 태왕 사유를 내고, 백제 땅에 그대를 내었는가! 하늘은 어찌 나 태왕 사유를 내고, 백제 땅에 부여구, 그대를 내셨는가!)


이후 고국원왕이 사망하자, 고국원왕의 시신을 무상으로 고구려에 인도한다.

근초고왕은 소수림왕이 다스리는 고구려가 쉽게 세력을 회복할 것이므로 차제에 무조건 평양성을 함락해야 한다고 선언하지만, 고구려군의 수성 능력은 도무지 틈을 보이지 않았고, 이제 곧 한겨울이라 기온이 급속도로 떨어지는데, 황량한 벌판 너머의 남평양성에서는 고국원왕의 죽음을 금새 잊은듯이 일체의 동요도 일어나지 않았고, 고구려군이 먼저 성문을 열고 나오지 않는 한, 평양성 공취는 불가능에 가까웠다. 결국 체념한 근초고왕은 현실의 한계를 인정하고, 회군을 명한다.

이 사이 진씨 가문과 부여화가 도성에서 반란을 일으켰지만, 부여화가 죽자 반란군은 붕괴되고 부여구는 그들을 모두 용서한다.

근이는 문치(文治)의 군왕이지, 무치(武治)의 군왕이 아니다.

검은 내가 잡고, 왕자는 서책을 잡고 백성들을 태평성대로 이끌 어라하다.

해서, 나는 근이에게 고구려의 위협에서 벗어난 일통된 한 땅을 물려주어야 한다.

나는 지난 정벌에서 고구려를 제압치 못했네.

고구려가 어떠한 나라인가?

이제껏 그 누구도 정복치 못한 불가침의 대국이다.

저들은 이제 곧 우리에게 다시금 발톱이빨을 드러낼 것이다.

하늘이 내게 남겨준 생이 얼마나 되겠는가?

내가 죽고 목라근자, 파윤, 요서군공, 막고해, 그대들마저 죽고 난 후, 고구려가 일어선다면 근이의 백제가 저들을 감당할 수 있겠는가?

이후 부여구는 부여근의 태자 책봉식을 하루 앞두고 측근들과의 술자리에서 제2차 고구려 정벌 계획을 앞당기라 명한다. 측근들의 염려에도 불구하고 부여구는 문치의 왕이 될 부여근을 위해서 자신의 대에 반드시 예맥한 일통을 이루어내야 한다는 열망을 강하게 드러낸다.

하지만 다음 날 부여근이 ‘대화(大和)’라는 글자만을 남긴 채 사랑하는 진구와 함께 야마토로 떠나자 이에 구수태자로 세운다.

내게는 아직 한 자루의 칠지도가 남아있다.

고구려로 가야 할 칠지도다.

내 회갑연 때 나를 가장 기쁘게 했던 것은 농투성이 노인들의 흥겨운 가락 소리[6]

였다.

백성들이 근심하고 노래하는 그 천하를 위하여, 나는 다시 칼을 들려한다.

마지막 칠지도가 가야 할 나라, 고구려를 정벌하려 한다.

그대들은 나와 함께 칼을 들 준비가 되었는가?

(신하들: 예, 어라하.)

고구려 원정을 준비하라.

이후 세월이 흘러 375년 부여구는 고구려 정벌을 결심하고, 신하들에게 고구려 원정을 준비하라고 명령한다.

그날 밤 꿈에서 비류왕의 환영과 대화를 나누며 지금까지 이루어낸 것만으로 천년의 칭송을 받을 것이며 더이상 자기 자신을 다그치며 애쓰지 말라고 한다.

국내성을 향해 진격하라!

고구려를 정벌하고 한 땅을 일통하라!

다음날 부여구는 고구려 정벌 준비에 나선다.[7]

욱리하 포구에 정박한 수백 척의 함대가 부여구의 명을 기다리고 있었고, 근초고왕은 한성을 내려다 본다.

이후 나무에 묶어두었던 부여화의 머리끈을 발견하고, 풀어낸 후 갑자기 몸에 이상을 느낀 후 죽음을 직감하며, 힘겹게 걸어가며 의자에 걸터앉아 복잡한 감정으로 고구려 정벌을 준비하는 백제군 함대를 바라본다.

아바님... 여기까지 입니까...

소자의 길은... 여기까지 이옵니까...

구수야... 불가능한 꿈은...

백성들과 함께 그 꿈을 이루어가는 자이다.


파일:승하하는 근초고왕(근초고왕 마지막 화 中).jpg
승하하는 근초고왕
결국 근초고왕은 고구려 정벌이라는 대업을 이루지 못하고 눈을 감는다.

이후 근초고왕을 찾으러 온 구수[8]목라근자, 파윤, 진승, 위비랑, 사기, 막고해가 부여구의 승하를 보고 오열한다.

이후 왕비인 위홍란도 근초고왕의 승하 소식을 듣고 달려와 근초고왕의 죽음을 보고 눈물을 흘린다.

나레이션 : 서기 375년, 근초고왕이 승하한다. 근초고왕은 30년의 재위 기간 동안 마한 54국과 가라 7국을 정벌하고 요서를 경략했다. 또한 백제의 문화를 왜로 전파해 일본 열도를 백제의 영향권 아래 흡수하는 기초를 마련했다. 근초고왕은 내치에 있어서도 획기적인 발전을 성취했다. 수많은 제도 개혁을 통해 중앙 권력을 강화해 백제는 귀족 연합체에서 명실상부한 왕권 국가로 탈바꿈하게 되었다. 무엇보다 근초고왕의 위대함은 민족사 최초로 한반도의 통일을 꿈꾸고 그를 실현하려 했다는 것이다. 그는 우리에게 말한다. 하루빨리 민족을 통일하고 그 응집된 힘을 통해 세계를 향해 뻗어가라고. 끝내 이루지 못한 근초고왕의 꿈은 그의 후손인 우리의 과제로 남겨져 있다.



3. 관련 문서[편집]


[1] 작중 동부여 마여왕의 후손 위비랑이 이끄는, 부여 재건을 목표로 하는 조직이다.[2] 작중 위비랑과 아지카이를 위시한 단범회 수뇌부는 부여구와 한 약속을 뻔뻔하게 계속 어겼다. 진성과 고평성 중 먼저 봉화를 올리는 쪽이 두 성을 다 갖기로 한 약속은, 부여구가 먼저 봉화를 올렸는데도 불구하고 고평성에 눌러 앉았고, 토벌대 대장군 기를 먼저 빼앗는 쪽이 2성을 갖기로 했는데, 복구검이 두고와 경쟁 끝에 대장군 기를 먼저 빼앗았는데 아지카이가 복구검을 화살로 저격해서 대장군 기를 강탈했다.[3] 부여화 아이의 친아버지는 고국원왕이다.[4] 부여화 문서에 해당 대사가 나와 있다. 이 부여화의 일침에 근초고왕도 찔끔해서인지 장모인 해여울이 나가라며 쫓아내자 아무 말도 못하고 나온다.[스포일러] 사실 사기의 고구려 망명 사태는 아직기가 꾸민 간계였다. 그런데 아무 소득도 얻기 전에 부여근을 고구려군에 포위된 사지로 밀어넣는 결과를 자초하였지만, 근초고왕은 자책하는 아직기를 두둔하는 동시에 국경을 넘지 말라는 왕명을 내린다.[5] 부간태는 결국 고무에 의해 전사한다.[6] 흥에 겨워 그물을 거두면 팔뚝만한 붕어가 뛰네
어하라디야 어하라디야
논밭에는 곡식이 넘쳐나고 밥상머리에서는 배가 불러
어하라디야 어하라디야
해님 속에는 나투님 사시고 궁성에는 어라하 사시네
어하라디야 어하라디야
[7] 이때 육로를 통해서는 도저히 국내성까지 진격할 수 없을 것 같아서 대규모 상륙 작전을 계획했다.[8] 참고로 이 때 부여구가 놓친 부여화의 머리끈은 구수를 향해 날아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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