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전파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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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2. 이들이 춘추전국시대 최고의 명장인가?
3. 배경



1. 개요[편집]


起翦頗牧 用軍最精

본래는 천자문에 나오는 기전파목 용군최정(起翦頗牧 用軍最精)[1]이라는 사언고시이다.

기(起)는 전국시대 진나라 명장 백기(白起)를 뜻하고, 전(翦)은 백기와 같은 진나라 명장 왕전(王翦)을, 파(頗)는 같은 시대 조나라 명장 염파(廉頗)를 뜻하고, 목(牧)은 염파와 같은 조나라 명장 이목(李牧)을 뜻한다.


2. 이들이 춘추전국시대 최고의 명장인가?[편집]


기전파목이 춘추전국시대의 최고의 명장들을 꼽자면 빠지지 않는 것은 맞지만, 사실 이는 엄밀히 전공을 따져서 뽑은 것이 아니라 천자문의 운율을 맞추기 위하여 4명을 뽑아 넣은 것이다. 이들 말고도 춘추전국시대에 뛰어난 활약을 하여 기전파목에 비교될만한 전공을 세운 명장들이 여럿 있다.

춘추전국시대 최초의 병법가로 꼽히는 사마양저, 소국인 오나라를 이끌고 강대국인 초나라를 무찌르며 잠시나마 오왕 합려를 패자의 반열에 올려놓은 손무오자서, 위나라의 전성기를 만든 오기, 손무의 손자이며 위나라의 전성기를 끝내고 제나라의 전성기를 이끈 손빈, 화우지계전단, 그리고 기전파목과 별개로 춘추전국시대 최고의 명장으로 꼽히는 악의까지 있기에 기전파목만이 춘추전국시대 최고의 명장이라고 칭하기엔 무리가 있다.

물론 기전파목이 춘추전국시대 최고의 명장들을 거론할때 꼭 들어가는 명장들이기는 하나, 저 4명이 춘추전국시대 명장 랭킹 1위~4위라서 쭉 나열해 놓았다기보다는 비슷한 시대에 활동한 인물들이기에 같은 카테고리에 묶였을 가능성이 더 높다. 애초에 누가 누구보다 얼마만큼 더 용병술이 뛰어났는지 평가하는 것은 무리수에 가깝기도 하고... 다만 '누가 더 군사를 잘 이끌었나'가 아닌 '누가 더 역사적으로 중요한가' 라는 측면에서 최고의 명장을 꼽는다면 후대에 손자병법오자병법을 남긴 손무, 오기가 최고 명장으로 꼽힐 수 있을 것이고[2], 역사서에 기록된 군공으로 최고의 명장을 꼽는다면 기전파목의 일원인 백기와 악의 정도가 꼽힐 수 있을 것이다.

3. 배경[편집]


전국시대 말 당시 진나라는 상앙의 변법으로 국력은 키웠지만 영토 자체는 다른 육국에 비해 그렇게 크게 우월하진 않았는데, 이때 백기가 무패의 전설을 쓰며 주변 모든 나라를 다 쓸어버려서 단숨에 진나라를 전국칠웅 중 최강국으로 올려놓는다.

그리고 이렇게 확장된 기반을 가지고 왕전이 끝내 주변국을 다 멸망시키며 춘추전국시대를 종결시킨다. 그래서 군공으로만 따지면 백기와 왕전이 춘추전국시대에서 가장 뛰어난데, 그런 백기와 왕전을 막아낼 수 있었던 당대 유일한 장수가 각각 염파이목이었기에 이 둘도 백기와 왕전과 동급으로 올려놓은 것이다.

기전파목 서로간의 우열을 가리기는 어려운데, 보통 이중에서는 백기가 가장 뛰어난 것으로 여겨지나 세세히 뜯어보면 각각 내세울 만한 점이 있기 때문이다.

  • 백기 : 단순히 전공만 따지면 이들 중 가장 큰 전공을 세웠다. 허나 당대의 강군이었던 진나라군을 지휘하였으며 전투를 치렀던 수많은 국가들이 내부적으로 문제가 많거나 혹은 진나라보다 열세였다. 강대국과 본격적으로 싸운 초나라 원정에서는 초나라는 내부적으로 모순이 많았으며, 장평대전 당시엔 조나라측 지휘관이 똥별의 대명사인 조괄이었다. 게다가 비교대상인 염파와 이목은 백기에 비해 너무 안 좋은 상황에서 활약을 한 터라... 그래도 일단 백기 사후에는 진나라의 공세가 둔화되었다가 장양왕 즈음에서야 다시금 강해졌다는걸 감안하면 진나라의 국력에 백기의 능력이 결합된 것이지 딱히 누가 주라고 보기는 어려울지도 모른다.

  • 염파 : 장평대전의 참패 이후 그야말로 희망이 보이지 않는 상황임에도, 연나라의 침공을 격퇴하고 심지어 연나라의 땅을 빼앗아 오기까지 했다. 기전파목 중에서 가장 불리한 상황에서 훌륭한 활약을 한 장군.

  • 왕전 : 진나라의 주변국가들을 모두 멸망시켜 중화통일을 이룩했다. 다만 이 시기 진나라를 제외한 국가들은 소양왕 시대 이후 진나라보다 훨씬 열세였는데, 그럼에도 초나라를 공격할 때는 60만의 대군을 동원했으며, 조나라를 공격시에는 압도적인 병력의 우세에도 불구하고 이목이 실각되기 전까지는 조나라를 멸망시키지 못했다.[3] 그러나 뛰어난 처세술 및 정치적 능력으로 의심이 많았던 시황제 휘하에서 60만이라는 대군을 1년동안 이끈 것을 보면 정치적 능력만큼은 기전파목 중 최고 수준.[4]

  • 이목 : 압도적으로 불리한 상황에서도 왕전을 비롯한 진나라군을 꺾으며 조나라를 지켰다. 백기와 염파도 서로 싸워서 이긴 적이 없다는 것을 감안하면 정말 뛰어난 전공을 올린 것. 허나 화려한 전공은 적다는 것이[5] 저평가를 받게 하는 부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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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백기, 왕전, 염파, 이목의 용병이 가장 정묘하였다.[2] 두 병법서는 손오병법이라는 카테고리로 묶이며 후대의 조조, 제갈량, 이순신 같은 쟁쟁한 인물들도 중요시했고 현대에도 고전으로 대접받고 있다.[3] 물론 이 공세로 조나라도 나가떨어지기 직전으로 몰리긴 했다.[4] 장군에게 무슨 정치력이 필요하냐고 하겠지만, 고대~중세시대의 장군에게 있어서 왕과 줄타기 하며 원하는 것을 얻어내는 정치력은 굉장히 중요하다. 왕전보다 더 큰 공을 세운 백기는 장평대전 이후 자신이 입안한 작전이 받아들여지지 않고 실각당한 뒤 유배를 가는 수모를 겪다 처형당하고, 염파는 뛰어난 능력에도 불구하고 이 나라 저 나라를 떠돌아다니다 결국 쓸쓸히 죽었다. 그 진시황을 상대로 지원을 꾸준히 받아낸 왕전의 정치력이 얼마나 엄청난지 실감이 될 것이다.(...) 당장에 장평대전도 쓸데없이 효성왕이 지휘관을 의심해 교체한 바람에 벌어진 대참사다.[5] 없다는 것이 아니다. 열전이나 조세가의 기록을 보면 이목은 수비 뿐만 아니라 정복전에서도 활약을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