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병식(19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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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2. 생애
3. 장의위원회 구성
4. 대중매체에서
5. 참고문헌



1. 개요[편집]


재일교포 출신의 북한 정치인. 조총련 제1부위원장, 북한 5대 부주석, 사회민주당 중앙위원장을 지냈다.

2. 생애[편집]


1919년 현재의 신안군에 속하는 전라남도 무안군 신안부에서 태어났다. 해방 이후 도일하여 도호쿠 대학 경제학부를 졸업한 후 조선인중학교에서 교원으로 일하다가 1952년 11월, 조총련의 전신인 민주전선 중앙본부 위원이 되면서 재일본조선인총연합회와 일하기 시작했다. 이는 그가 조총련 의장 한덕수의 여동생인 한금주[1]와 결혼한 것과 밀접한 관련이 있었다. 1953년 민주전선 중앙위원회 조선통신사 편집국장, 1955년 조총련이 결성되자 중앙위원회 상임위원으로 추대되었다. 이후 1958년 조선문제연구소 소장, 1959년 조총련 중앙위원회 인사부장, 조직국장을 역임했다.

1960년 8월 9일, 최고인민회의 상임위원회 정령에 따라 국기훈장 3급을 받았으며 1963년 중앙위원회 사무국장에 이르렀다. 한덕수의 측근으로 한덕수의 반대파들을 조총련에서 적극 숙청하였으며 1967년 제8회 조총련 대회를 계기로 조총련을 북한의 어용기관으로 만드는데 적극활약하여 1971년 김일성이 "김병식을 반대하는 것이 한덕수를 반대하는 것이고 한덕수를 반대하는 것이 나를 반대하는 것이다."라는 교시를 내릴 정도였다.

1966년 12월 조총련 중앙위원회 부의장에 선출되었고, 북한에서도 공을 인정받아 1967년 4기 최고인민회의에서 조총련계 대의원으로 선출되었다. 1970년에 조총련 중앙위원회 제1부의장에 오른 김병식은 1972년에 열린 1~4차 남북적십자회담의 자문위원 겸 북측 대표로 파견되는 등 위세를 누릴 수 있었다. 이에 김병식은 내친김에 아예 한덕수를 몰아내고 자신이 조총련을 장악하기 위해 '올빼미 부대'라 불리는 사조직을 동원, 한덕수의 방에 도청장치를 설치하는 등 갖은 공작을 실시했다가 이것이 들통났다. 히로시마현 본부 위원장 서만술 정도를 제외하곤 조총련을 이미 김병식이 장악하고 있었지만 김일성은 한덕수의 손을 들어주기로 하고 1972년 11월 김병식을 반당반혁명종파 책동분자로 책임추궁하여 조총련 직책에서 해임하여 북한에 잔류시켰다. 이것이 이른바 김병식 사건이다. 이후 숙청된 것으로 알려져 교화소에 투옥되었다는 둥 한동안 흉흉한 소문이 돌다가 1977년 5월 조선혁명기념박물관 관장이라는 한직을 맡아 죽지는 않았음이 드러났다.

다시 모습을 드러낸 김병식은 다시 승승장구하기 시작해서 1982년 남조선문제연구소 고문에 임명되더니 1993년 7월, 리계백 사망 이후 공석이던 조선사회민주당 중앙위원장에 선출되었다. 그리고 12월 최고인민회의 9기 6차 회의에서 부주석, 중앙인민위원회 위원에 선출, 대의원에 보선되면서 영광의 절정을 달렸다. 1994년 7월, 김일성 장의위원, 1995년 2월, 오진우 장의위원, 1996년 2월, 리승기 장의위원, 1996년 9월, 려연구 장의위원을 맡았으며 1998년 8월 28일, 사회민주당 6기 19중전회에서 사회민주당 중앙위원장 자리를 당시 김영호 이름을 쓰고 있던 김영대에게 물려주고 자신은 고문으로 물러났다. 한달 후인 1998년 9월 10기 대의원에 선출되었다. 이때 부주석제가 폐지되면서 부주석에서 물러났고 1999년 7월 21일 사망하였다. 같은 부주석들이 전부 다 최고인민회의 상임위원회 명예부위원장에 초빙된 것과 달리 혼자서만 전문섭에게 자리 뺏기고 왕따당했다.

1999년 7월 21일 13시에 80세를 일기로 사망하였으며, 최고인민회의 상임위원회, 조선사회민주당 중앙위원회, 조국전선 중앙위원회는 연명으로 부고를 발표, "위대한 수령 김일성주석의 현명한 령도밑에 총련애국사업과 조국의 자주적평화통일을 위한 투쟁에 한생을 바쳐온 정치활동가이다. (...) 선생의 생애는 일편단심 경애하는 수령 김일성주석께 충실하여온 애국자의 한생이였다."라고 좋게 말해주었다.

사후 애국렬사릉에 안장되었다.

3. 장의위원회 구성[편집]



4. 대중매체에서[편집]



5. 참고문헌[편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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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사촌여동생 설도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