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프탈리 베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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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스라엘 총리는 임기가 단절되었다가 다시 집권해도 처음 집권했을 당시의 대수를 유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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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스라엘 제13대 총리
나프탈리 베네트
נַפְתָּלִי בֶּנֶט|Naftali Bennett


파일:Naftali_Bennett_official_portrait.jpg

출생
1972년 3월 25일 (52세)
이스라엘 하이파
재임기간
제13대 총리
2021년 6월 13일 ~ 2022년 6월 30일
배우자
길랏 베네트 (결혼: 1999)
자녀
슬하 4명
학력
예루살렘 히브리 대학교 (법학 / L.L.B.)
종교
유대교
소속 정당


지역구
비례대표[1]
링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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군사 경력
복무
이스라엘 육군
1990년 ~ 1996년
최종 계급
소령 (이스라엘 육군)
소속
사예레트 마트칼 (대테러부대)

1. 개요
2. 생애
2.1. 정치 입문 후
2.2. 이스라엘 총리 재임
2.3. 총리 사임 이후



1. 개요[편집]


이스라엘의 정치인으로 이스라엘 총리 역대 최장 임기를 지낸 베냐민 네타냐후의 독주를 끝내고 제13대 이스라엘 총리에 올랐으나, 연립 정당 내 갈등 수습을 못하면서 1년 만에 물러나게 된다.[2]

전임 총리인 네타냐후와 마찬가지로 이스라엘군 정예부대인 사예레트 마트칼에서 복무했으며,[3] 2006년 있었던 2차 레바논 전쟁에 참전한 바 있다. 또한 팔레스타인 분쟁 등에 대해서는 네타냐후보다 강경한 입장을 견지해온 것으로 평가된다.[4]

2. 생애[편집]



2.1. 정치 입문 후[편집]


리쿠드에 입당하여 정치 행보를 시작하였으며 2006년부터 2년 가량 당대표였던 베냐민 네타냐후의 수석보좌관을 맡았다. 2008년 리쿠드에서 탈당한 뒤에는 정계를 잠시 벗어나 있었다.

2012년 유대교 근본주의를 앞세운 유대인의 집에 합류하였고, 이내 당권을 잡아 2013년 총선에서 당의 원내 진출을 이끌었다. 이후 네타냐후의 범우파 연정에 지속적으로 참여하였고 2019년까지 경제, 종교, 디아스포라(재외동포), 교육부 장관을 맡으며 실무 경험을 두루 쌓았다.

하지만 네타냐후와의 친분 관계가 계속 이어지지는 않았다. 2018년, 공석이 된 국방부 장관 자리를 요구했으나, 네타냐후 총리가 이를 거부한 것.

2019년 4월 총선을 앞두고는 유대인의 집을 탈당해 정당 뉴라이트를 창당하였다. 첫 선거에서는 원내 입성에 실패하며 자연스럽게 연립정부에서 배제되었우나 이후 유대인의 집, 종교적 시온주의자당과 정당연합 야미나를 결성함으로써 원내 진출에 성공, 네타냐후의 범우파연정에 복귀한다. 이 때는 본인이 희망하던 국방부 장관을 맡게 된다.

2021년 총선에서는 야미나를 이끌며 7석을 확보하였다. 선거결과 친네타냐후, 반네타냐후 진영이 모두 과반 의석 확보에 실패하면서 중립지대에 있던 야미나는 자연스럽게 차기 정부 구성의 킹메이커가 되었다.

결국 수 달 간 이어진 연정 논의 끝에 예쉬 아티드를 중심으로 하는 반네타냐후 연립정부 참여를 결정하였으며, 본인의 총리직을 보장받았다. 정확히는 2023년 8월 27일까지 베네트가 먼저 총리직을 맡은 후 예쉬 아티드의 야이르 라피드와 자리를 바꿔 총리 자리를 내주는 대신 내무부 장관이 될 예정이다.#

2021년 6월 13일 오후에 치러진 크네세트 신임 투표 결과, 찬성 60표, 반대 59표, 그리고 기권 1표로 네타냐후를 꺾고 이변 없이 새로운 이스라엘의 총리로 취임했다. 자세한 사항은 문서 참조.

2.2. 이스라엘 총리 재임[편집]




2.2.1. 2021년[편집]


신임투표 직전 연설에서 "이란의 핵 프로그램은 임계점에 다가서고 있다. 이스라엘은 이란의 핵무기 획득을 허용하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고, 미국을 겨냥해서는 "이란과의 핵 합의 복원은 실수"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취임 직후 모로코 국왕인 무함마드 6세로부터 취임 축하 편지를 받았는데, 작년말 미국의 중재 아래 맺은 이스라엘-모로코 간 외교 정상화 협정이 정상적으로 작동하고 있는 신호로 평가받는다. 베네트 총리는 이에 대해 모든 분야에서 이스라엘과 모로코간의 관계를 강화하기 위해 노력할 것이라고 응답했다.#

하지만 힘겹게 출범시킨 연정이 시작부터 파열음을 내고 있는데, 16일 여당 야미나가 '팔레스타인 가족재결합 금지 법안' 연장을 추진했지만 연합아랍명단이 반대표를 던지면서 부결되어 버린 것. 2003년 제정된 이후 계속 보수계 연립 정부가 과반을 유지하고 있었기 때문에 18년 가까이 매해 연장되어 왔지만, 이번에는 아랍계 정당이 연정에 참여하면서 그렇게 되지 못했다. 거기다 진보 성향 메레츠 역시 차별적인 법안에 반대해야 할지, 연정 유지를 위해 찬성해야 할지 고심하고 있다고 한다. 그야말로 연정의 첫 실험대가 된 셈.#

이 과정에서 6월 21일, 베네트-라피드 내각에 대한 두 개의 내각불신임결의가 발의되었지만 부결되었다. 리쿠드가 발의한 결의는 찬성 49표, 반대 60표로, 샤스유대교토라연합이 공동발의한 결의는 찬성 50표, 반대 59표로 부결되었다.#

결국 크네세트는 '시민권 및 이스라엘 입국법' 개정안을 표결 끝에 찬성 59표, 반대 59표로 부결 처리했다. 베네트 총리 본인이 이 법안의 통과를 자신의 신임 투표로 묘사한 만큼 정치적 타격이 불가피하다. 본인 취임 전 2년 간 총선이 4번이나 치러졌던 혼란만 없었다면, 그리고 네타냐후가 여전히 자신을 향한 강력한 지지를 바탕으로 거국내각을 붕괴시키기 위해 칼을 가고 있다는 점만 제외하면 당장 의회해산을 선포하고 조기 총선을 실시해도 이상하지 않은 상황.#

7월 6일, 대한민국과 백신 스와프 협약을 맺고 화이자의 코미나티주 70만회 분량 정도를 7월말까지 한국에 공급하는 대신 9∼10월 중 같은 분량을 제공받기로 했다. 베네트 총리는 이 협약을 '윈윈'이라고 평가하면서 "서로의 경험을 공유하면 코로나19에 더 잘 대응할 수 있을 것"이라고 밝혔다.#

8월 2일, 2018년 이후 처음으로 이스라엘 정부가 예산안을 편성하는 데 성공했다. 오는 11월까지 2개년 지출 계획이 의회의 승인을 받지 못한다면 최근 몇년간 벌어진 이스라엘 정치 위기가 다시 한번 반복될 수 있는데 예산안이 코로나19 대응에 초점이 맞춰져 있는만큼 무난히 통과할 거란 전망이 우세하다.#

8월 5일, 코로나19 백신 3차 접종(부스터샷)에 대한 WHO와 개발도상국들의 비판에 대하여 오히려 이스라엘이 나서서 3차 접종에 대한 실험을 해주고 있는 것이라며 항변했다. 뒤이어 미국, 독일, 영국 등도 부스터샷에 대하여 적극 검토하는 상황이기 때문에 백신 민족주의에 대한 우려가 다시 커지고 있다.#

9월 13일에는 이스라엘 총리로서는 10년만에 다시 이집트를 방문하여 압델 파타 엘 시시 대통령과 함께 이스라엘-팔레스타인 평화 프로세스 문제를 논의했다. 이스라엘 총리실은 성명을 통해 "베네트 총리와 엘시시 대통령이 양국 간 협력을 강화하기 위한 다방면의 이슈를 논의했다"며 "특히 무역 및 광범위한 역내, 국제 이슈가 강조됐다"고 전했다.#

9월 27일 있었던 취임 후 첫 UN 총회 연설에서 이란의 핵개발이 이미 분수령에 도달했다고 주장하며 핵무기 제조를 용납하지 않겠다는 뜻을 밝혔다.#

11월 4일, 3년만에 정식으로 예산안이 의회를 통과하였다. 네타냐후와 리쿠드의 극심한 방해를 뚫고 거둔 성과로 연정이 한단계 고비를 넘은 것으로 평가받는다.#

12월 12일, 이스라엘 총리로서는 사상 처음으로 UAE를 공식 방문하여 무함마드 빈 자이드 알나얀 왕세제와 비밀 회담을 가졌다. 내용은 비공개되었지만 이란 문제가 주요 의제였을 것이라 추측된다.#

12월 21일, 백신 자문위원회가 의료진과 60세 이상 국민 중 3차 접종 후 4개월이 지난 사람들에게 코로나19 백신 4차 접종을 권고하자 이에 대해 환영의 뜻을 밝혔다. 4차 접종은 보건부 최고행정 책임자의 승인 이후 시작될 예정이다.#


2.2.2. 2022년[편집]


2월 25일, 러시아와 전쟁 상태에 들어간 우크라이나의 볼로디미르 젤렌스키 대통령과 통화해 인도적 지원을 제안했다.#

3월 5일에는 직접 모스크바를 방문해 러시아 블라디미르 푸틴 대통령과 회동했다. 러시아와 우크라이나 침공에 대한 중재를 제안한 것으로 알려졌다.#

4월 6일, 야미나 소속의 여성 의원인 이디트 실만이 이날 연정 지지 철회를 선언했다. 이로써 현 집권 연정 의석수는 크네세트 전체 의석(120석)의 과반(61석)에 1석이 못 미치는 60석이 되면서 여소야대 형국이 되었다. 직접적인 원인으로는 유월절에 진보 성향 메레츠 소속 니트잔 호로위츠 장관이 병원에 유대교의 관례를 깨고 발효빵 반입을 허용하도록 지시한 것 때문이 아니냐는 얘기가 나왔다.[5]# ##

급기야 4월 18일. 알 아크사 모스크에서의 팔레스타인과 충돌 사태가 벌어지는 와중에 아랍계 정당인 연합 아랍 명단이 연정 지지를 보류하는 일이 벌어지면서 반년도 안가서 위기에 빠졌다.#

팔레스타인 요르단 강 서안 지구에 거주하는 유대인들에게 이스라엘 시민의 권리를 부여하기 위한 법률의 연장 속칭 '서안 법안'이 찬성 58표, 반대 52표로 부결처리되면서 연정이 다시 흔들리고 있다.#

결국 2022년 내에 다시 총선을 치르기로 결정했다. 무지개 연정으로 정권교체를 이룬지 1년만에 다시 정국이 격량에 휩싸인 셈이다.#

이런 와중에 베네트 총리는 리쿠드와의 연정 여지가 있다고 밝혔다. 여전히 네타냐후에게 맹공을 퍼붓긴 했지만 향후 협력 가능성에 대해서는 "만약 모두가 모두를 거부한다면 우리는 앞으로 정부를 구성할 수 없으며, 계속 총선을 치러야 할 것"이라며 여지를 남겼다.#

6월 29일, 베네트 총리는 다음 총선에 불출마한다고 선언한 뒤 "오늘 나는 1년간의 총리직을 마감한다. 그보다 더 힘든 일도, 더 영광스러운 일도 없을 것"이라고 소회를 밝혔다.#

결국 6월 30일 집권 중인 무지개 연정이 제출한 해산안을 크네세트에서 가결 처리했다. 120명의 의원 중 92명이 찬성했고, 나머지는 기권했다. 다음 정부가 구성될 때까지는 원래 베네트의 뒤를 이어 총리직에 오르기로 했던 예쉬 아티드야이르 라피드 외무장관이 과도 총리를 맡게 되었다.#[6]


2.3. 총리 사임 이후[편집]


의원직까지 완전히 물러난 뒤, 기술회사 이사회에 활동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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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이스라엘은 지역구가 없고, 네덜란드처럼 전국 비례대표로 선출한다.[2] 일본의 호소카와 내각-하타 내각과 비슷한 운명을 겪게 된 셈이다.[3] 엔테베 작전으로 유명한 부대다.[4] 부정적이지만 비슷하게 홍콩이 사람이 베냐민 네타냐후라고 생각하면 되고 이 사람이 베네트라고 보면된다.[5] 유대교에서는 유월절에 누룩을 넣지 않고 만든 무교병을 먹게 되어있다.[6] 다만 베네트 총리가 완전히 내각을 떠난 것은 아니고, 대체총리 겸 지역사회부 장관으로 자리를 이동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