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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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5년 이재웅이 창업해서 만든 포털 사이트다. 2014년에 카카오에 인수되었다.
본래는 예술사이트로 출발했지만 패션사이트, 커뮤니티 사이트, 영화 웹진 서비스, 여행 정보 서비스, 한메일넷 등 각종 사업을 벌이다가 IMF 외환위기로 인한 침체기 때 무료 이메일 서비스로 대박을 터뜨렸고, 그 후 검색 엔진 서비스와 뉴스 서비스 등을 대대적으로 도입하여 종합 포털사이트로 거듭났다.
세계 최초의 포털 사이트는 야후이지만, 한국에서 포털 사이트 개념을 최초로 전파한 기업은 다음(당시 한메일넷)이다. 야후의 한국 서비스 출범보다 2년여 정도 앞선다. 1995년에 이재웅과 박건희[2] , 이택경[3] 3명이 인터넷에 대해 관심을 가지는 김에 자본금 5000만 원을 모아서 회사를 차렸는데 사업 초기에는 버추얼 갤러리라고 해서 사진과 회화를 전시하거나 광주 비엔날레와 서울 국제 만화 페스티벌을 생중계하는 등 예술 사이트였었고, 당대 온라인 상에서 주류를 차지하고 있던 하이텔이나 천리안, 나우누리 같은 종합 PC통신 업체의 모습과는 멀리 떨어져 있었다. 그러다가 외부 개발용역을 통해 벌어들인 돈으로 영화 웹진 서비스를 만든다거나 패션이나 여행정보도 제공하는 서비스를 개시하는 등 사업을 하나하나 확장함으로써 포털사이트 다음의 모습이 조금씩 갖춰지기 시작했다.
1997년에 무료 메일로 유명한 '한메일넷'을 오픈하고 검색 서비스도 도입하며 본격적으로 성장하기 시작했다. 그 이전에도 메일 개념이 없지는 않았지만 보통은 PC통신을 통해서 메일을 써야 했는데 당시까지만 하더라도 정액제가 도입되었다고 하지만 여전히 PC통신 이용으로 돈이 적지 않게 나가던 데다가 PC통신에서 제공하던 메일은 대부분 해당 PC통신사 내부용으로 이용하던 메일을 기반으로 확장한 것이라 본격적인 메일이라 하기에는 이래저래 부족한 점이 있었기 때문에 호응을 얻으며 본격적으로 거대 포털사이트화가 진행되었다.
그 흔적으로 한동안 다음의 이메일 주소는 [email protected]이었다. 이때까지만 하더라도 인터넷 시장이 벌어들이는 돈이 변변치 않은데 반해 사업 투자비 때문에 운영비는 월등하게 많이 들고 있다. 1999년 매출액이 77억원 정도이다. 독일계 언론재벌인 베텔스만[4] 의 도움으로 서버 증설하고 포털사이트 사업을 해낼 수 있었다는 후문이 있던걸 보면 사업자금 투자로 상당한 애로사항이 꽃피었던 것은 사실인 듯하다. 여하튼 베텔스만은 2002년까지도 다음의 2대 주주였지만 2002년에 주식을 죄다 처분해서 현재는 별 관계가 없다. 이 당시에 심히 놀랍게도 네이버 검색엔진을 썼었다. 이때는 네이버가 본격적으로 포털 사업을 벌였던 시절이 아닌 삼성 SDS산하의 기술벤처였던 시절이었기 때문이다.
1998년에 회원 수 100만 명을 달성한 이후로 1999년에 지금의 다음으로 바뀌었다.
1990년대 말 야후 코리아와 더불어서 1위를 다투었으며 IT버블 시기로 주가가 폭등하였기에[5] 미래의 성장 가능성이 높게 평가되어서 1999년 11월에 코스닥시장에 등록[6] 했을 때 26 일 연속 상한가를 쳤던 기록이 있다. 당초 공모가는 1만 1200원으로 책정되었으나 거래가 거의 이루어지지 않음에도 40만 원까지 주가가 폭등하는 기적이 일어났고, 최종적으로 54만 원(무상증자 후에는 27만 원)까지 치솟기도 했었다. 코스닥에 등록하는 김에 전 직원들에게 우리사주 식으로 일정 수준의 주식을 나눠준 덕택에 이 시기 한정으로 전 직원이 수억 원대의 자산을 가지는 일이 벌어지기도 했다. 그렇지만 닷컴 버블이 꺼지면서 다음의 주가도 동반 폭락하였고 현재까지도 10만 원을 좀체 넘어서지 못하고 있다.[7] 그래도 점유율 2위를 지키면서 다른 포털사이트들이 네이버에 밀려 몰락하는 것에 비하면 썩어도 준치는 준치였기에 코스닥 대장주로써의 위상은 지키기는 했다.
IT버블이 꺼졌다고 해도 매출액 자체는 급속히 늘었기에 2000년 하반기부터 흑자로 전환했고, 이후로는 사업 확장에 소극적인 야후 코리아를 뒤집고 포털 사이트 시장점유율 1위를 지켜왔으며 2002년 매출액 1000억 원을 달성했다. 그러나 2003년부터 '네이버 지식iN' 덕분에 네이버가 급성장하면서 Daum은 상대적으로 크게 위축돼 시장 점유율 2위로 내려앉았고, 그 이후로도 네이버와 다음의 격차가 벌어지며 카카오와 합해도 매출액이 두배 이상의 격차가 벌어지는 수준이 되어버렸다. 다음 카페도 먼저 론칭했지만 이후 네이버 카페에게 추월당해 버렸고 과거의 영광으로 먹고사는 수준. 또 다음 블로그와는 별개로 티스토리를 서비스한다.
의외로 구글과 인연이 깊었다. 2003년에 검색 기능을 강화시키려고 구글과 제휴관계를 맺었고 그 이후로 2009년까지 웹문서 검색 결과를 구글에서 제공받았으며 2006년부터 2009년까지 구글에게 광고 외주를 준 적도 있었을 정도였다. 그러나 제휴관계가 생각보다 시너지를 일으키지 못하는 바람에 2009년을 전후하여 제휴관계가 종료되었고 제갈길을 가게 되었다. 그럼에도 이러한 인연 때문에 증권가에서 구글이 다음을 인수할 것이라는 썰이 파다하게 돌았는데 결국에는 카카오와 통합하는 길을 선택하면서 다음이 구글에 인수되는 일은 벌어지지 않았다. 하지만 카카오에 여러 서비스들이 통폐합당한 것을 보면, 차라리 구글과 합병했을 때 구글 지도+다음 지도나 tv팟+유튜브 등의 조합으로 잘 먹고 잘 살았을 수도 있었을 것이다.
현재는 네이버와 구글에 밀려 위상이 떨어졌고, 결국 카카오 그룹 내에서 2023년 5월 사내독립기업(CIC)로 분사되기에 이르렀다.
카카오의 ‘다음’ CIC 출범…체질개선인가 분사 수순인가
서비스 전체 목록
다음의 많은 서비스들의 이름이 카카오로 바뀌거나, 서비스가 종료되고있다.
다음 검색창에 /를 이용한 몇 가지 숨은 기능이 있다.
첫 번째로, 사이트명 뒤에 /를 붙이면 그 사이트가 팝업[8] 으로 바로 이동할 수 있다.(참조)
두 번째로, 검색에 뒤에 /네이버나 /구글등을 입력한 뒤에 검색하면 그 사이트의 검색 결과를 보여준다. (위키백과를 검색할 때는 /위키라고 해야 한다.) 또한 /블로그나 /카페를 입력해서 블로그 검색 및 카페 검색 등을 할 수 있다.
유튜브 동영상을 검색할 때는 /유튜브 혹은 /youtube를 입력하면 된다.
자세한 내용은 다음 메일 문서를 참고하십시오.
자세한 내용은 다음 카페 문서를 참고하십시오.
자세한 내용은 다음 뉴스 문서를 참고하십시오.
자세한 내용은 다음 연예 문서를 참고하십시오.
자세한 내용은 다음 스포츠 문서를 참고하십시오.
자세한 내용은 다음 영화 문서를 참고하십시오.
2011년 3월 29일 오픈한 자동차 전문 사이트이다. 2012년 5월 22일 모바일 서비스도 오픈했다. 아무리 포털 사이트에서 구색 갖추기로 가지고 있는 분야라고 하지만 경쟁사 네이버에 비해 꽤나 부실하다. 모바일 웹 기준 네이버는 첫 상단 카테고리에 차-테크, 부분을 명시해 놓고 꽤나 공을 들여놓았지만 다음 모바일 웹에서 있던 자동차 페이지는 어느새 라이프 섹션 구석으로 옮겨간 지 오래. 자동차 관련 기사, 칼럼들을 '리뷰 게시판'이라는 곳에 몰아 놓고 운영하나, 꽤나 부실한다. 동영상 게시판에는 오토바이 사고가 나서 사고자가 머리가 깨진 모습, 덤프트럭에 깔리는 모습이 나와서 상당히 관리가 안 되는 모습도 보인다.
참고로 다음 자동차에 게시된 모든 자동차들의 메인사진의 앞 번호판이 메가오토로 되어 있다. 후원사인걸로 보이는데 앞 번호판이 없는 게 정상인 슈퍼카 같은 차들에게도 부착되어 있다는 게 좀 거슬린다.
현재는 경쟁사인 네이버가 네이버 자동차 사이트를 서비스 종료하였다.
자세한 내용은 카카오게임즈 문서를 참고하십시오.
자세한 내용은 다음 부동산 문서를 참고하십시오.
자세한 내용은 다음 사전 문서를 참고하십시오.
다음 유료서비스를 현금처럼 사용할 수 있는 인터넷 결제 수단
다음 웹툰, 다음 부동산 법원경매정보 이용권, 다음 게임 등에 사용가능하다.
카카오는 최근 다음의 여러 사업들을 잇달아 접고 있다. 카카오와 합병한 이후 전반적인 서비스들(즉, 다음 커뮤니케이션 측)을 기존의 PC 중심에서 모바일 중심으로 이동시키는 추세다.[9] 그러나 다음 클라우드 등 향후 신성장 소재로 이용 가능한 사업들을 급작스럽게 종료하는 데 있어 유저들의 반응은 좋지 못한 편이다. 이에 따른 기존 다음 유저들의 네이버나 구글으로의 이전[10] 등 사용자 이탈도 우려된다. 아래는 서비스가 종료되었거나 종료 예정인 목록이다.
다음 계정이 수신처인 대량 메일을 보내면 수신 차단된다. 다만 보내기 위해서는 한통에 얼마씩 줘야 했다. 대신 수신자가 "정보성"이라는 버튼을 눌러주면 발신자가 낸 '우표값'을 돌려줬다. 대량 메일 발신자에는 요금을 지불하거나 정보성을 입증하려면 사업자등록증 및 관련 서류를 다음 측에 보내라라는 기업간 거래를 안내하는 오류 메시지가 한국어로 나타났는데, 각종 학회/취미 메일링 리스트들을 비롯한 해외 뉴스레터 같은 경우는 이게 대체 무슨 말이냐며 한국어를 할 수 있는 사람에게 물어보고 사정을 듣고 나서는 황당해 할 뿐이었고 한국 내에 사업자가 없으니 우표값을 내고 싶어도 낼 방법도 없었다.
다음 입장에서도 변명거리는 있었다. 당시 한메일넷은 막 PC통신에서 벗어난 한국 인터넷 시장을 거의 독점하다시피 하고 있었고, 특히 스팸으로 인해 시스템 부하가 늘어나자 대책을 마련할 필요가 생겼던 것이다. 고도화된 필터링 기능도 없던 시절이라 스패머가 스팸 메일을 보내면 서버도 사용자도 그 메일을 다 받아야했던 시절이었다. 그래서 스팸 메일을 근본적으로 차단하고자 고안한 방법이 메일을 대량으로 발신하는 사이트의 메일 수신을 거부하고 온라인 우표제라는 딱지를 붙여서 스팸도 막고 수익도 창출하겠다는 목적이었다.
하지만 희한하게 올 스팸은 다 오고 뉴스레터들만 먹통이었다. 국내 스패머들이 이를 알고 계정을 쪼개서 스팸 메일을 보내는 방법을 택했기 때문이다. 이와 같은 일이 휴대전화 문자에서도 일어난다. 발신자 번호를 못 바꾸게 법이 바뀌었지만 스패머는 번호를 잘 바꿔서 보내고, 부득이하게 다른 사람 전화기를 이용해서 문자를 보낼 때 보내는 이 번호를 자신의 번호로 바꿔서 보내는 선량한 이용자만 불편하게 된 것이다. 이것은 불법 중계기를 이용해서 발신 번호를 바꾸는 방법을 썼다.
어쨌든 이 때문에 수많은 사이트들은 이메일란에 다음 메일을 적으면 가입을 거부하였고 결국 사람들이 다른 이메일을 적게 쓰는 원인이 되었다. 결국 이 제도는 2004년에 폐지되었지만 사이트를 개편하지 않은 곳은 지금까지도 다음 메일 사용자를 거부한다. 심지어, 온라인 우표제 철폐 이후에도 일부 사이트는 메일 주소 변경하지 않은 회원의 개인정보를 주민등록상 신생아로 만들어버리기도 하였다. 결국 다음은 @hanmail2.net이라는 이메일 주소를 만들어 그런 곳에 쓰라고 했고, hanmail 키워드 자체가 막힌 경우에는 @daum.net을 쓰라고 했다. 그래서 한메일넷 계정을 가지고있는 사람은 계정 하나로 @hanmail.net, @hanmail2.net, @daum.net 세개를 모두 쓸 수 있다.
결국 사이트들이 다음 메일 가입을 거부하자 사람들은 그 당시 지식인 서비스로 부상하던 네이버로 모조리 옮겨갔고,[11] 굳이 네이버 메일을 쓰는 상황에서 다음 메일을 같이 써야만 할 이유가 없으니[12] 다음 메일을 아예 벗어나는 쪽으로 옮기게 되었다. 그렇게 해서 사용자가 많아진 네이버는 블로그 등 다른 서비스로도 다음을 정복했고, 최후의 보루 카페까지 빼앗겨 버렸다. 결과적으로 온라인 우표제 하나 때문에 잘 나가던 회사 하나가 꼬꾸라지게 된 것이다. 결과적으로 다음의 최대 오판이었다.
포털을 바꾸려면 이메일 주소를 바꿔야 하고, 그러면 다른 수많은 사이트에 가입했던 이메일 정보를 새로 시작하는 사이트로 돌려놔야 하는 이메일의 특성상 무언가 크게 뒤집을 만한 상황이 나타나지 않는다면 예전의 전성기를 되찾는 것은 암울하기만 하다.
온라인 우표제 폐지 이후 다음 메일은 일일이 사이트 관리자들을 설득하여 한메일넷을 다시 복구시키려고 노력했지만, 온라인 우표제로 신뢰가 한번 깨지자 만에 하나 발생할지도 모르는 재논란을 피하고자 한메일넷을 끝까지 거부하는 사이트들도 있었다고 한다. 대부분 개편되지 않아 너무 오래된 사이트들이 한메일넷을 거부하지만 일부 개편된 사이트들도 한메일넷을 거부하는 경우가 있는 이유는 바로 이 때문이다.
이 실수는 프리챌 유료화와 더불어 IT 기업 최악의 실수로 꼽힌다. 이후 2011년을 기해 한메일넷은 서비스명을 다음 메일으로 변경하였고, 2014년 카카오에게 우회상장 형식으로 인수합병이 되면서 다음은 사실상 간판만 남게 되었다.
다음 뉴스의 경우 더불어민주당이나 정의당 등 민주, 진보정당의 행보에 대해 지지세가 매우 강하다. 17대선 이전에도 이런 인식이 있었지만 이후에는 민주당 인사, 친여권 멤버들을 조금이라도 비판하면 같은 진보인사라도 극우 친일파에 인신공격까지 하는 빈도가 잦아졌다. 특별히 반미와 반일, 민족주의 성향이 두드러진다. 우파적인 색이 매우 짙은 네이버와는 꽤 대조적이다.[13]
최근 들어 정부에 비판적이거나 우익 성향의 유저들이 대거 유입되었고 이로 인해 뉴스 댓글 분위기는 정말 험악해졌다. 서로에 대한 신경전과 악플 공격은 가히 상상을 초월한다.
문제는 이러한 악플에 대해 다음 측에서 별다른 조치를 하지 않고 방조하고 있는 점이다. 일종의 언론 형태로 보아도 무방한 포털에서 편향적이고 욕설이 난무하는 악플에 대해 방치하는 것 자체가 여론 왜곡에 보이지 않게 나서고 있는 것이 아닌가 하는 우려를 낳게 할 수 있다.
자세한 것은 다음 뉴스 참고.
다음의 주 사용자 연령층은 4050세대로, 다음의 점유율이 갈수록 떨어짐과 동시에 인터넷을 주로 사용하는 2030 청년 세대 유입이 거의 없다. 오히려 2030세대들은 다음을 인수한 카카오와 다음과는 달리 지속적인 개발과 개선과정을 거쳐 국내 포털 1위를 차지한 네이버는 공공기관 이용시 필요한 인증서류나 국민비서 서비스를 제공하는 편의 기능이 있는 곳으로 유입한다.
유입 인원이 대부분 4050세대 이상이라는 것은 다음의 미래가 정말 불투명하다는 것을 뜻하고 이에 카카오측은 다음 계정을 카카오로 통폐합해버렸다.
이러한 문제가 컸는지 2022년 8월 31일 다음카카오는 공지사항으로 신규 다음 로그인을 종료하고 10월 1일 카카오 계정으로 통합시키겠다고 알렸다. 그러자 다음 카페 이용자들이 우리식당 정상영업합니다라고 반발하였다.
대형 포털의 카페 서비스 같은 곳에 불법광고가 몰리는 것은 흔한 사안이긴 하지만, 2012년 1~2월부터 다음 카페에서 댓글과 게시글로 이루어진 불법광고가 계속 몰려들고 있다. 물론 이것을 처리하는 것은 해당 카페의 관리자들이기는 하나, 다음 측에서 이것을 미리 막지 못하는, 즉 보안이 허술하다는 비판을 받고 있는 것은 사실이다. 2011년 말까지는 해당 광고를 올릴 경우 "~에 의해 차단된 글입니다."라는 문구로 대체되었지만[14] 2012년 6월 기준으로 그마저도 안 되고 있는 상황이다. 덕분에 카리모[15] 에서는 해당 일 때문에 많이 시끄러운 상황이다.
2016년 12월 25일 네이버와 함께 내부 규정 중에 정부나 기업이 요청할 경우 특정 검색어를 실시간 검색어에서 날리는 규정이 있다는 것이 확인되었다. 연합뉴스아카이브1아카이브2
18대 대선 개표가 진행되던 2012년 12월 20일 새벽, 이미 박근혜 후보의 당선이 '확정'으로 넘어간 상황에서 다음은 아래와 같이 문재인 후보가 대한민국 대통령에 당선됐다는 치명적인 오보를 대문에 내보냈다.
다음은 뒤늦게 잘못된 대문을 교체했지만 이 상황은 이미 여러 접속자들에게 목격되어 퍼 날라진 상태였고, 보수 지지층에선 어이가 없다는 반응을 보였다. 물론 개표 내내 단 한순간도 문재인 후보가 박근혜 후보를 이긴 적은 없었지만, 결과적으로 고작 3.5% 정도 차이의 박빙이 지속되고 있었기 때문에, 어느 쪽이 승리해도 이상할 게 없는 상황이었다. 게다가 이런 선거나 스포츠 승패 같은데 사용되는 이미지는 결과가 알려지고 나서 제작하면 기사 전달이 늦어질 수밖에 없어서, 결과가 나오기 전 양쪽의 이미지를 미리 만들어 놓는데, 새벽에 결과가 알려지고 이미지를 링크하는 과정에서 실수가 있었을 가능성이 있다. 실제로 이런 승패 관련 이미지 사고는 굉장히 많이 일어나는 편이다. #
다음은 2008년 5월, 2014년 5월, 2015년 6월 세무조사를 받았다. 2008년의 광우병 촛불집회, 2014년의 세월호 참사 직후, 2015년의 메르스 사태 발생한 직후 진행된 특별 세무조사여서 정치적인 의도가 포함된 세무조사라는 논란이 있었다. 다음은 정부에 대한 여론이 나빠지는 시기마다 특별 세무조사를 받아 정부가 민주당계 지지자들이 포진된 다음을 겨냥한 '다음 길들이기'를 하는 것이 아니냐는 의혹을 낳았다.
2003년부터 창업자 이재웅 대표에 의해 시작된 프로젝트로 정례 조찬회의 때 지각한 신입사원과의 에피소드에서 영감을 받아 시작했다고 한다.[17] 대표의 결단에 따라 통째로 이전하는 것이 아니라 직원들의 자발적인 결정을 이끌어 내기 위해 단계적으로 이전하기로 결정, 2004년 펜션 2동으로 시작한다. 2006년에는 제주도에 "다음글로벌미디어센터"를 열어서 미디어본부를 이전[18] 시켰고, 결국 2009년 3월에 본사를 제주도로 이전시키기로 주주총회에서 결의했다.[19][20] 이로 인하여 다른 인터넷 기업에 다음 출신 인원들이 많이 퍼졌다는 소문이 났는데, 다음 직원의 확인 결과 그런 일은 없었다고 한다. 여기에는 제주특별자치도청의 후한 대접이 한몫하였는데, 다음이 새 본사를 선정하려고 하자 여러 지방들이 뛰어들었는데, 그중 제주특별자치도청이 제시한 것은 무려 서울 왕복 출퇴근 항공편 지원, 지원자에 한해 제주도 정착비 지원, 그 외 제주관광코스 무료 및 할인이었다고 한다.
1. 개요[편집]
1995년 이재웅이 창업해서 만든 포털 사이트다. 2014년에 카카오에 인수되었다.
본래는 예술사이트로 출발했지만 패션사이트, 커뮤니티 사이트, 영화 웹진 서비스, 여행 정보 서비스, 한메일넷 등 각종 사업을 벌이다가 IMF 외환위기로 인한 침체기 때 무료 이메일 서비스로 대박을 터뜨렸고, 그 후 검색 엔진 서비스와 뉴스 서비스 등을 대대적으로 도입하여 종합 포털사이트로 거듭났다.
2. 역사[편집]
2.1. 한메일넷[편집]
세계 최초의 포털 사이트는 야후이지만, 한국에서 포털 사이트 개념을 최초로 전파한 기업은 다음(당시 한메일넷)이다. 야후의 한국 서비스 출범보다 2년여 정도 앞선다. 1995년에 이재웅과 박건희[2] , 이택경[3] 3명이 인터넷에 대해 관심을 가지는 김에 자본금 5000만 원을 모아서 회사를 차렸는데 사업 초기에는 버추얼 갤러리라고 해서 사진과 회화를 전시하거나 광주 비엔날레와 서울 국제 만화 페스티벌을 생중계하는 등 예술 사이트였었고, 당대 온라인 상에서 주류를 차지하고 있던 하이텔이나 천리안, 나우누리 같은 종합 PC통신 업체의 모습과는 멀리 떨어져 있었다. 그러다가 외부 개발용역을 통해 벌어들인 돈으로 영화 웹진 서비스를 만든다거나 패션이나 여행정보도 제공하는 서비스를 개시하는 등 사업을 하나하나 확장함으로써 포털사이트 다음의 모습이 조금씩 갖춰지기 시작했다.
1997년에 무료 메일로 유명한 '한메일넷'을 오픈하고 검색 서비스도 도입하며 본격적으로 성장하기 시작했다. 그 이전에도 메일 개념이 없지는 않았지만 보통은 PC통신을 통해서 메일을 써야 했는데 당시까지만 하더라도 정액제가 도입되었다고 하지만 여전히 PC통신 이용으로 돈이 적지 않게 나가던 데다가 PC통신에서 제공하던 메일은 대부분 해당 PC통신사 내부용으로 이용하던 메일을 기반으로 확장한 것이라 본격적인 메일이라 하기에는 이래저래 부족한 점이 있었기 때문에 호응을 얻으며 본격적으로 거대 포털사이트화가 진행되었다.
그 흔적으로 한동안 다음의 이메일 주소는 [email protected]이었다. 이때까지만 하더라도 인터넷 시장이 벌어들이는 돈이 변변치 않은데 반해 사업 투자비 때문에 운영비는 월등하게 많이 들고 있다. 1999년 매출액이 77억원 정도이다. 독일계 언론재벌인 베텔스만[4] 의 도움으로 서버 증설하고 포털사이트 사업을 해낼 수 있었다는 후문이 있던걸 보면 사업자금 투자로 상당한 애로사항이 꽃피었던 것은 사실인 듯하다. 여하튼 베텔스만은 2002년까지도 다음의 2대 주주였지만 2002년에 주식을 죄다 처분해서 현재는 별 관계가 없다. 이 당시에 심히 놀랍게도 네이버 검색엔진을 썼었다. 이때는 네이버가 본격적으로 포털 사업을 벌였던 시절이 아닌 삼성 SDS산하의 기술벤처였던 시절이었기 때문이다.
2.2. 다음[편집]
1998년에 회원 수 100만 명을 달성한 이후로 1999년에 지금의 다음으로 바뀌었다.
1990년대 말 야후 코리아와 더불어서 1위를 다투었으며 IT버블 시기로 주가가 폭등하였기에[5] 미래의 성장 가능성이 높게 평가되어서 1999년 11월에 코스닥시장에 등록[6] 했을 때 26 일 연속 상한가를 쳤던 기록이 있다. 당초 공모가는 1만 1200원으로 책정되었으나 거래가 거의 이루어지지 않음에도 40만 원까지 주가가 폭등하는 기적이 일어났고, 최종적으로 54만 원(무상증자 후에는 27만 원)까지 치솟기도 했었다. 코스닥에 등록하는 김에 전 직원들에게 우리사주 식으로 일정 수준의 주식을 나눠준 덕택에 이 시기 한정으로 전 직원이 수억 원대의 자산을 가지는 일이 벌어지기도 했다. 그렇지만 닷컴 버블이 꺼지면서 다음의 주가도 동반 폭락하였고 현재까지도 10만 원을 좀체 넘어서지 못하고 있다.[7] 그래도 점유율 2위를 지키면서 다른 포털사이트들이 네이버에 밀려 몰락하는 것에 비하면 썩어도 준치는 준치였기에 코스닥 대장주로써의 위상은 지키기는 했다.
IT버블이 꺼졌다고 해도 매출액 자체는 급속히 늘었기에 2000년 하반기부터 흑자로 전환했고, 이후로는 사업 확장에 소극적인 야후 코리아를 뒤집고 포털 사이트 시장점유율 1위를 지켜왔으며 2002년 매출액 1000억 원을 달성했다. 그러나 2003년부터 '네이버 지식iN' 덕분에 네이버가 급성장하면서 Daum은 상대적으로 크게 위축돼 시장 점유율 2위로 내려앉았고, 그 이후로도 네이버와 다음의 격차가 벌어지며 카카오와 합해도 매출액이 두배 이상의 격차가 벌어지는 수준이 되어버렸다. 다음 카페도 먼저 론칭했지만 이후 네이버 카페에게 추월당해 버렸고 과거의 영광으로 먹고사는 수준. 또 다음 블로그와는 별개로 티스토리를 서비스한다.
의외로 구글과 인연이 깊었다. 2003년에 검색 기능을 강화시키려고 구글과 제휴관계를 맺었고 그 이후로 2009년까지 웹문서 검색 결과를 구글에서 제공받았으며 2006년부터 2009년까지 구글에게 광고 외주를 준 적도 있었을 정도였다. 그러나 제휴관계가 생각보다 시너지를 일으키지 못하는 바람에 2009년을 전후하여 제휴관계가 종료되었고 제갈길을 가게 되었다. 그럼에도 이러한 인연 때문에 증권가에서 구글이 다음을 인수할 것이라는 썰이 파다하게 돌았는데 결국에는 카카오와 통합하는 길을 선택하면서 다음이 구글에 인수되는 일은 벌어지지 않았다. 하지만 카카오에 여러 서비스들이 통폐합당한 것을 보면, 차라리 구글과 합병했을 때 구글 지도+다음 지도나 tv팟+유튜브 등의 조합으로 잘 먹고 잘 살았을 수도 있었을 것이다.
현재는 네이버와 구글에 밀려 위상이 떨어졌고, 결국 카카오 그룹 내에서 2023년 5월 사내독립기업(CIC)로 분사되기에 이르렀다.
카카오의 ‘다음’ CIC 출범…체질개선인가 분사 수순인가
3. 제공 서비스[편집]
서비스 전체 목록
다음의 많은 서비스들의 이름이 카카오로 바뀌거나, 서비스가 종료되고있다.
3.1. 다음 검색[편집]
다음 검색창에 /를 이용한 몇 가지 숨은 기능이 있다.
첫 번째로, 사이트명 뒤에 /를 붙이면 그 사이트가 팝업[8] 으로 바로 이동할 수 있다.(참조)
두 번째로, 검색에 뒤에 /네이버나 /구글등을 입력한 뒤에 검색하면 그 사이트의 검색 결과를 보여준다. (위키백과를 검색할 때는 /위키라고 해야 한다.) 또한 /블로그나 /카페를 입력해서 블로그 검색 및 카페 검색 등을 할 수 있다.
유튜브 동영상을 검색할 때는 /유튜브 혹은 /youtube를 입력하면 된다.
인물검색 기능의 경우 네이버와 달리 생년월일이나 출신지 등 특정 조건을 입력하면 검색결과를 보여준다.
3.2. 다음 메일[편집]
자세한 내용은 다음 메일 문서를 참고하십시오.
3.3. 다음 주소록[편집]
- 다음 메일의 주소록 서비스
3.4. 다음 카페[편집]
자세한 내용은 다음 카페 문서를 참고하십시오.
3.5. 다음 뉴스[편집]
자세한 내용은 다음 뉴스 문서를 참고하십시오.
3.6. 다음 연예[편집]
자세한 내용은 다음 연예 문서를 참고하십시오.
3.7. 다음 스포츠[편집]
자세한 내용은 다음 스포츠 문서를 참고하십시오.
3.8. 다음 영화[편집]
자세한 내용은 다음 영화 문서를 참고하십시오.
3.9. 다음 자동차[편집]
2011년 3월 29일 오픈한 자동차 전문 사이트이다. 2012년 5월 22일 모바일 서비스도 오픈했다. 아무리 포털 사이트에서 구색 갖추기로 가지고 있는 분야라고 하지만 경쟁사 네이버에 비해 꽤나 부실하다. 모바일 웹 기준 네이버는 첫 상단 카테고리에 차-테크, 부분을 명시해 놓고 꽤나 공을 들여놓았지만 다음 모바일 웹에서 있던 자동차 페이지는 어느새 라이프 섹션 구석으로 옮겨간 지 오래. 자동차 관련 기사, 칼럼들을 '리뷰 게시판'이라는 곳에 몰아 놓고 운영하나, 꽤나 부실한다. 동영상 게시판에는 오토바이 사고가 나서 사고자가 머리가 깨진 모습, 덤프트럭에 깔리는 모습이 나와서 상당히 관리가 안 되는 모습도 보인다.
참고로 다음 자동차에 게시된 모든 자동차들의 메인사진의 앞 번호판이 메가오토로 되어 있다. 후원사인걸로 보이는데 앞 번호판이 없는 게 정상인 슈퍼카 같은 차들에게도 부착되어 있다는 게 좀 거슬린다.
현재는 경쟁사인 네이버가 네이버 자동차 사이트를 서비스 종료하였다.
3.10. 다음 게임[편집]
자세한 내용은 카카오게임즈 문서를 참고하십시오.
3.11. 다음 금융[편집]
- (국내, 해외 주요 증시 및 증권과 관련된 다양한 투자정보를 제공하는 서비스)
- 국내: 국내지수, 종목, 업종, 테마 등에 대한 상세 지표와 투자정보를 제공한다.
- 해외: 해외 각국의 주요 지수 및 종목 시세를 제공한다.
- 뉴스: 증권 / 금융과 관련된 뉴스를 제공한다.
- 투자정보: 재테크 이야기, 칼럼과 같은 투자정보와 기업의 배당정보 및 추정실적 등을 제공한다.
- 토론: 종목, 업종 등 증권에 대한 다양한 의견을 나눌 수 있는 소통의 장을 제공한다.
- MY: 관심종목과 보유종목을 관리하여 자산현황을 한눈에 확인할 수 있다.
- 환율: 환율정보를 실시간으로 확인하며, 환율 계산기를 통해 환율 정보를 쉽게 확인할 수 있다.
3.12. 다음 부동산[편집]
자세한 내용은 다음 부동산 문서를 참고하십시오.
3.13. 다음 사전[편집]
자세한 내용은 다음 사전 문서를 참고하십시오.
3.14. 다음 캐쉬[편집]
다음 유료서비스를 현금처럼 사용할 수 있는 인터넷 결제 수단
다음 웹툰, 다음 부동산 법원경매정보 이용권, 다음 게임 등에 사용가능하다.
4. 중단 서비스[편집]
카카오는 최근 다음의 여러 사업들을 잇달아 접고 있다. 카카오와 합병한 이후 전반적인 서비스들(즉, 다음 커뮤니케이션 측)을 기존의 PC 중심에서 모바일 중심으로 이동시키는 추세다.[9] 그러나 다음 클라우드 등 향후 신성장 소재로 이용 가능한 사업들을 급작스럽게 종료하는 데 있어 유저들의 반응은 좋지 못한 편이다. 이에 따른 기존 다음 유저들의 네이버나 구글으로의 이전[10] 등 사용자 이탈도 우려된다. 아래는 서비스가 종료되었거나 종료 예정인 목록이다.
4.1. 문서가 있는 서비스[편집]
4.2. 문서가 없는 서비스[편집]
- 다음 꿈나무: 다음 키즈짱의 전신으로, 2005년 7월 15일 서비스가 종료.
- 다음 캘린더: 2015년 9월 1일 종료.
- 다음터치 메신저: 2012년 3월 7일 종료
- 다음 텔존: 공식 명칭은 '다음 텔레비존'. 연예계 관련 정보와 커뮤니티가 주가 되지만, 온갖 아이돌 빠순이, 덕후, 안티들이 난립하여 잦은 병림픽을 벌이는 난장판이었다. 2014년 1월 9일 종료.
- Pomm: 통합 멤버십 카드로 2007년경에 출시하여 2009년에 신규가입 중단. 당시 마이비/티머니 선불교통카드 탑재가 가능해 버스 갤러리 같은 곳에서도 의외의 호응이 있었다. 하지만 통합 멤버십 카드라는 게 이용하는 사람에겐 편하고 좋지만 사업자 입장에선 마땅한 수익모델이라는 게 없다 보니 운영에 애로사항이 꽃 폈던 모양. 나중에는 하나SK카드 제휴카드까지 나왔지만 결국 신규가입이 중단되고야 말았다. 비제휴 기본 카드에도 유효기간이 표시되어 있지만, 표시된 유효기간과 관계없이 계속 이용할 수 있다. 그런데 그런 다음이 2011년에 마이원을 인수했다. 그리고 2012년 하반기 pomm서비스와 마이원 서비스가 통합될 예정이라는 공지가 떴었으나... 진행되지 않았고, 2013년 4월 30일 자로 모든 폼 서비스의 폐지 공지가 떴다.
- 다음 위젯뱅크: 2007년부터 2015년까지 했던 서비스다. 네이버 블로그나 티스토리에 가면 사이드바에 미니게임이 있거나 블로그차트가 나와있는 걸 볼 수 있었다. 2015년 2월 28일에 뜬금포로 "나 서비스 종료함. 성원 감사~" 3월부터 새로운 위젯 추가 금지, 6월 30일 최종적으로 사이트가 폐쇄되었다.
- 다음 문자, 쪽지: 2015년 8월 24일부로 문자와 쪽지 서비스 종료.
- 다음 뮤직: 카카오뮤직에 집중하기 위해 2015년 6월 30일 자로 종료. 방금그곡 기능은 카카오뮤직(이후 멜론)으로 이전되었다.
- 다음 운세: 2015년 6월 30일 자로 종료.
- 다음 뷰: 쉽게 말하면 티스토리, 다음 블로그의 인기글 및 수익을 내주는 일종의 메타블로그였다.
- 다음 자료실: 2016년 12월 20일 자로 종료.
- 다음 플래닛: 일종의 마이크로 블로그였다. 2011년 8월 1일 자로 서비스 종료.
- DNA와 미러링: 카카오 디벨로퍼스와 통합되었다.
- Live 스토리: 활동 중인 카페나 위에서 이미 언급된 서비스인 요즘, 자동차, 지도, 레시피 등을 모아 최근에 가장 인기가 많은 이슈를 가장 먼저 보여주는 서비스다.
- durl.kr: durl.kr, durl.me는 다음의 동영 상개발팀에서 제작한 주소를 줄여주는 단축 도메인 서비스다. 현재 들어가지지 않는다.
- 다음 계정으로 로그인한 것을 카카오 계정으로 통합. 2022년 10월 1일로 카카오 계정으로 로그인 할 예정.
4.2.1. 온라인 우표제[편집]
다음 계정이 수신처인 대량 메일을 보내면 수신 차단된다. 다만 보내기 위해서는 한통에 얼마씩 줘야 했다. 대신 수신자가 "정보성"이라는 버튼을 눌러주면 발신자가 낸 '우표값'을 돌려줬다. 대량 메일 발신자에는 요금을 지불하거나 정보성을 입증하려면 사업자등록증 및 관련 서류를 다음 측에 보내라라는 기업간 거래를 안내하는 오류 메시지가 한국어로 나타났는데, 각종 학회/취미 메일링 리스트들을 비롯한 해외 뉴스레터 같은 경우는 이게 대체 무슨 말이냐며 한국어를 할 수 있는 사람에게 물어보고 사정을 듣고 나서는 황당해 할 뿐이었고 한국 내에 사업자가 없으니 우표값을 내고 싶어도 낼 방법도 없었다.
다음 입장에서도 변명거리는 있었다. 당시 한메일넷은 막 PC통신에서 벗어난 한국 인터넷 시장을 거의 독점하다시피 하고 있었고, 특히 스팸으로 인해 시스템 부하가 늘어나자 대책을 마련할 필요가 생겼던 것이다. 고도화된 필터링 기능도 없던 시절이라 스패머가 스팸 메일을 보내면 서버도 사용자도 그 메일을 다 받아야했던 시절이었다. 그래서 스팸 메일을 근본적으로 차단하고자 고안한 방법이 메일을 대량으로 발신하는 사이트의 메일 수신을 거부하고 온라인 우표제라는 딱지를 붙여서 스팸도 막고 수익도 창출하겠다는 목적이었다.
하지만 희한하게 올 스팸은 다 오고 뉴스레터들만 먹통이었다. 국내 스패머들이 이를 알고 계정을 쪼개서 스팸 메일을 보내는 방법을 택했기 때문이다. 이와 같은 일이 휴대전화 문자에서도 일어난다. 발신자 번호를 못 바꾸게 법이 바뀌었지만 스패머는 번호를 잘 바꿔서 보내고, 부득이하게 다른 사람 전화기를 이용해서 문자를 보낼 때 보내는 이 번호를 자신의 번호로 바꿔서 보내는 선량한 이용자만 불편하게 된 것이다. 이것은 불법 중계기를 이용해서 발신 번호를 바꾸는 방법을 썼다.
어쨌든 이 때문에 수많은 사이트들은 이메일란에 다음 메일을 적으면 가입을 거부하였고 결국 사람들이 다른 이메일을 적게 쓰는 원인이 되었다. 결국 이 제도는 2004년에 폐지되었지만 사이트를 개편하지 않은 곳은 지금까지도 다음 메일 사용자를 거부한다. 심지어, 온라인 우표제 철폐 이후에도 일부 사이트는 메일 주소 변경하지 않은 회원의 개인정보를 주민등록상 신생아로 만들어버리기도 하였다. 결국 다음은 @hanmail2.net이라는 이메일 주소를 만들어 그런 곳에 쓰라고 했고, hanmail 키워드 자체가 막힌 경우에는 @daum.net을 쓰라고 했다. 그래서 한메일넷 계정을 가지고있는 사람은 계정 하나로 @hanmail.net, @hanmail2.net, @daum.net 세개를 모두 쓸 수 있다.
결국 사이트들이 다음 메일 가입을 거부하자 사람들은 그 당시 지식인 서비스로 부상하던 네이버로 모조리 옮겨갔고,[11] 굳이 네이버 메일을 쓰는 상황에서 다음 메일을 같이 써야만 할 이유가 없으니[12] 다음 메일을 아예 벗어나는 쪽으로 옮기게 되었다. 그렇게 해서 사용자가 많아진 네이버는 블로그 등 다른 서비스로도 다음을 정복했고, 최후의 보루 카페까지 빼앗겨 버렸다. 결과적으로 온라인 우표제 하나 때문에 잘 나가던 회사 하나가 꼬꾸라지게 된 것이다. 결과적으로 다음의 최대 오판이었다.
포털을 바꾸려면 이메일 주소를 바꿔야 하고, 그러면 다른 수많은 사이트에 가입했던 이메일 정보를 새로 시작하는 사이트로 돌려놔야 하는 이메일의 특성상 무언가 크게 뒤집을 만한 상황이 나타나지 않는다면 예전의 전성기를 되찾는 것은 암울하기만 하다.
온라인 우표제 폐지 이후 다음 메일은 일일이 사이트 관리자들을 설득하여 한메일넷을 다시 복구시키려고 노력했지만, 온라인 우표제로 신뢰가 한번 깨지자 만에 하나 발생할지도 모르는 재논란을 피하고자 한메일넷을 끝까지 거부하는 사이트들도 있었다고 한다. 대부분 개편되지 않아 너무 오래된 사이트들이 한메일넷을 거부하지만 일부 개편된 사이트들도 한메일넷을 거부하는 경우가 있는 이유는 바로 이 때문이다.
이 실수는 프리챌 유료화와 더불어 IT 기업 최악의 실수로 꼽힌다. 이후 2011년을 기해 한메일넷은 서비스명을 다음 메일으로 변경하였고, 2014년 카카오에게 우회상장 형식으로 인수합병이 되면서 다음은 사실상 간판만 남게 되었다.
5. 서비스 문제[편집]
5.1. 급진적인 양 정치 세력의 격돌[편집]
다음 뉴스의 경우 더불어민주당이나 정의당 등 민주, 진보정당의 행보에 대해 지지세가 매우 강하다. 17대선 이전에도 이런 인식이 있었지만 이후에는 민주당 인사, 친여권 멤버들을 조금이라도 비판하면 같은 진보인사라도 극우 친일파에 인신공격까지 하는 빈도가 잦아졌다. 특별히 반미와 반일, 민족주의 성향이 두드러진다. 우파적인 색이 매우 짙은 네이버와는 꽤 대조적이다.[13]
최근 들어 정부에 비판적이거나 우익 성향의 유저들이 대거 유입되었고 이로 인해 뉴스 댓글 분위기는 정말 험악해졌다. 서로에 대한 신경전과 악플 공격은 가히 상상을 초월한다.
문제는 이러한 악플에 대해 다음 측에서 별다른 조치를 하지 않고 방조하고 있는 점이다. 일종의 언론 형태로 보아도 무방한 포털에서 편향적이고 욕설이 난무하는 악플에 대해 방치하는 것 자체가 여론 왜곡에 보이지 않게 나서고 있는 것이 아닌가 하는 우려를 낳게 할 수 있다.
자세한 것은 다음 뉴스 참고.
5.2. 2030세대의 유입 저조[편집]
다음의 주 사용자 연령층은 4050세대로, 다음의 점유율이 갈수록 떨어짐과 동시에 인터넷을 주로 사용하는 2030 청년 세대 유입이 거의 없다. 오히려 2030세대들은 다음을 인수한 카카오와 다음과는 달리 지속적인 개발과 개선과정을 거쳐 국내 포털 1위를 차지한 네이버는 공공기관 이용시 필요한 인증서류나 국민비서 서비스를 제공하는 편의 기능이 있는 곳으로 유입한다.
유입 인원이 대부분 4050세대 이상이라는 것은 다음의 미래가 정말 불투명하다는 것을 뜻하고 이에 카카오측은 다음 계정을 카카오로 통폐합해버렸다.
5.2.1. 다음 로그인 종료 및 카카오 계정 통합[편집]
이러한 문제가 컸는지 2022년 8월 31일 다음카카오는 공지사항으로 신규 다음 로그인을 종료하고 10월 1일 카카오 계정으로 통합시키겠다고 알렸다. 그러자 다음 카페 이용자들이 우리식당 정상영업합니다라고 반발하였다.
5.3. 불법 광고 관련[편집]
대형 포털의 카페 서비스 같은 곳에 불법광고가 몰리는 것은 흔한 사안이긴 하지만, 2012년 1~2월부터 다음 카페에서 댓글과 게시글로 이루어진 불법광고가 계속 몰려들고 있다. 물론 이것을 처리하는 것은 해당 카페의 관리자들이기는 하나, 다음 측에서 이것을 미리 막지 못하는, 즉 보안이 허술하다는 비판을 받고 있는 것은 사실이다. 2011년 말까지는 해당 광고를 올릴 경우 "~에 의해 차단된 글입니다."라는 문구로 대체되었지만[14] 2012년 6월 기준으로 그마저도 안 되고 있는 상황이다. 덕분에 카리모[15] 에서는 해당 일 때문에 많이 시끄러운 상황이다.
5.4. 실시간 이슈(실시간 급상승 검색어) 조작[편집]
2016년 12월 25일 네이버와 함께 내부 규정 중에 정부나 기업이 요청할 경우 특정 검색어를 실시간 검색어에서 날리는 규정이 있다는 것이 확인되었다. 연합뉴스아카이브1아카이브2
5.5. 문재인 후보 당선 오보[편집]
18대 대선 개표가 진행되던 2012년 12월 20일 새벽, 이미 박근혜 후보의 당선이 '확정'으로 넘어간 상황에서 다음은 아래와 같이 문재인 후보가 대한민국 대통령에 당선됐다는 치명적인 오보를 대문에 내보냈다.
다음은 뒤늦게 잘못된 대문을 교체했지만 이 상황은 이미 여러 접속자들에게 목격되어 퍼 날라진 상태였고, 보수 지지층에선 어이가 없다는 반응을 보였다. 물론 개표 내내 단 한순간도 문재인 후보가 박근혜 후보를 이긴 적은 없었지만, 결과적으로 고작 3.5% 정도 차이의 박빙이 지속되고 있었기 때문에, 어느 쪽이 승리해도 이상할 게 없는 상황이었다. 게다가 이런 선거나 스포츠 승패 같은데 사용되는 이미지는 결과가 알려지고 나서 제작하면 기사 전달이 늦어질 수밖에 없어서, 결과가 나오기 전 양쪽의 이미지를 미리 만들어 놓는데, 새벽에 결과가 알려지고 이미지를 링크하는 과정에서 실수가 있었을 가능성이 있다. 실제로 이런 승패 관련 이미지 사고는 굉장히 많이 일어나는 편이다. #
5.6. 특별 세무조사 논란[편집]
다음은 2008년 5월, 2014년 5월, 2015년 6월 세무조사를 받았다. 2008년의 광우병 촛불집회, 2014년의 세월호 참사 직후, 2015년의 메르스 사태 발생한 직후 진행된 특별 세무조사여서 정치적인 의도가 포함된 세무조사라는 논란이 있었다. 다음은 정부에 대한 여론이 나빠지는 시기마다 특별 세무조사를 받아 정부가 민주당계 지지자들이 포진된 다음을 겨냥한 '다음 길들이기'를 하는 것이 아니냐는 의혹을 낳았다.
6. 여담[편집]
- 지식공유 프로젝트(위키백과)
대인배적 품성 발휘, 한국어 위키백과를 위해 "글로벌 세계 대백과사전"의 저작권을 사서 한국어 위키백과에 기증(GFDL로 공개)했다. 또한 2009년 삼일절 서울특별시청이 공개한 서울특별시 관련 자료를 위키백과에 올리는 프로젝트를 중계하기도 했다. 일련의 사건을 계기로 한국어 위키백과에는 "지식공유 프로젝트"라는 개념이 생겨났다.
- 직원에게 스마트폰 지급
2009년 11월, 870명쯤 되는 전 직원에게 스마트폰을 무상으로 지급하며, 2년간 다음이 데이터 요금을 부담한다고 밝혔다. 종류는 iPhone과 T 옴니아2(...)중에서 직원이 자유롭게 선택. 국내에 스마트폰 시장이 초기단계인 데다가, 다음 직원 연령이 대부분 30세 밑으로, 국내 스마트폰 사용층을 대표하는지라 느닷없이 스마트폰 전쟁의 시금석으로 떠올랐다. 이에 삼성전자는 직접 제주도로 내려가서 T 옴니아를 홍보하기도 했다.(참조)
- 좀 철 지난 자료이긴 하지만 한국언론진흥재단의 연구보고서에 따르면 화이트칼라와 대학 졸업자, 월 가구소득 500만 원 이상의 고소득자 비율은 모두 다음이 가장 높았으며 네이버와 네이트가 뒤를 이었다고 한다.#
MS 빙과 제휴해서 이런 사이트를 오픈하기도 했다.(참조) 마이크로소프트가 만든 검색사이트 빙 한국을 폐쇄하는 대신 다음이 모든 쿼리를 가져가겠다는 의미다. 그래서 한국에서는 빙神을 제대로 이용할 수 없고 외국어로 설정을 바꿔야 했다. 2014년부터는 한국어 빙에 다음 검색이 노출되지 않게 돌아왔다.
- 2013년부터 다음 백과사전 서비스 내부에서 엔하위키 미러를 엔하위키라는 이름으로 서비스하고 있었다.
- 다음 아이디가 갑자기 사라지고 있다. 지금 네이버에 '다음 아이디 사라짐'이라고 치면 네티즌들의 분노의 절규를 들을 수 있다. 어떤 사람은 사라졌다가 다시 나타나기도 하고, 어떤 사람은 가입하면 2~3일이면 아이디가 사라지고 다시 가입하려니 같은 이메일을 두 번 사용할 수 없고 그렇다고 고객센터에 따지자니 절차가 복잡하고 해서 가입을 아예 포기하는 경우도 발생한다.(관련 글)
- 2014년 5월 26일 카카오와 합병한다는 소식이 정식 발표되었고# 10월 1일에 합병이 완료되었으며#. 10월 31일 다음카카오로 사명이 변경되었다#. 명목상으로는 다음이 인수하는 것으로 되어 있지만, 합병 후 실제 최대주주가 김범수 이사회 의장 등 카카오 측이다. 때문에 사실은 카카오가 다음을 역합병하여 우회상장을 하는 쪽에 더 가까워 한국거래소, 공정위, 국세청 등 관련기관에선 매우 부정적으로 보고있으며 이후 회사명이 카카오로 변경되었다. 카카오 참조.
- 2016년 1월 16일 기준 네이버와 달리 엣지에서 다음을 접속할 경우 아직 호환성 문제로 Internet Explorer로 접속하라는 문구가 뜬다.
2016년 2월 8일 현재 접속이 되고 있다.(접속 문제와는 무관한 문제로 Internet Explorer 필요라는 문구로 다음으로 이동시 불편함을 끼치고 있다) 이점은 2016년 3월 3일 자 재차 확인한 결과 해당 페이지가 더 이상 발생하지 않는 것을 보았을 때 해당 문제점이 해결된 것으로 보인다.
- 1인당 가입 가능한 아이디 개수가 네이버(3개)와 달리 무제한이다.[16] 아고라 글의 추천수는 믿을 수 없다는 이유가 이 때문도 있다고 한다. 단 언제 명시된지는 모르지만 2011년 1월 기준 ID는 주민번호 1개당 5개까지 생성할 수 있다고 한다.(현재 삭제됨) 다음에서 서비스하는 온라인 게임을 다음 계정으로 접속해 이용할 수 있었기 때문에, 특히 부분 유료화 게임 계정을 여럿 만들기 위해 다음 계정을 이용하기도 한다.
- 우분투 한국 사용자 모임이나 KLDP 등의 오픈소스 커뮤니티에서 이미지가 좋다. 우분투, 페도라, 젠투 등의 큼직한 배포판들의 업데이트 미러를 지원해주며, 한국에서 가장 속도가 빠르다는 평가가 있다. 파이어폭스 지원 등의 웹 표준을 일찍 지원하고, 태터툴즈 지원과 오픈소스 미러링 등의 오픈소스도 신경을 써 줬다고. 그런데 정작 자기 서비스 개선은 등한시하기도. 2011년 5월 들어서는 마이피플과 다음 클라우드의 리눅스 버전을 제공하기도 했다(서비스 종료). 위키피디아에 한국판 문서 일체를 기증하기도 했다.
6.1. 제주도 이전[편집]
2003년부터 창업자 이재웅 대표에 의해 시작된 프로젝트로 정례 조찬회의 때 지각한 신입사원과의 에피소드에서 영감을 받아 시작했다고 한다.[17] 대표의 결단에 따라 통째로 이전하는 것이 아니라 직원들의 자발적인 결정을 이끌어 내기 위해 단계적으로 이전하기로 결정, 2004년 펜션 2동으로 시작한다. 2006년에는 제주도에 "다음글로벌미디어센터"를 열어서 미디어본부를 이전[18] 시켰고, 결국 2009년 3월에 본사를 제주도로 이전시키기로 주주총회에서 결의했다.[19][20] 이로 인하여 다른 인터넷 기업에 다음 출신 인원들이 많이 퍼졌다는 소문이 났는데, 다음 직원의 확인 결과 그런 일은 없었다고 한다. 여기에는 제주특별자치도청의 후한 대접이 한몫하였는데, 다음이 새 본사를 선정하려고 하자 여러 지방들이 뛰어들었는데, 그중 제주특별자치도청이 제시한 것은 무려 서울 왕복 출퇴근 항공편 지원, 지원자에 한해 제주도 정착비 지원, 그 외 제주관광코스 무료 및 할인이었다고 한다.
2012년에는 제주GMC(미디어본부) 이외에 새로 Space.1(스페이스닷원)이라고 새로 사옥을 신축한 후 이곳으로 본사 등기를 이전하였다. 따라서 이제 공식적으로 다음의 본사는 제주가 되었다. 하지만 아직 서울에 근무하는 직원이 더 많은 상태. 장기적으로 Space.1 근처에 사옥을 더 확장할 계획인데 다음-카카오 합병과 거의 비슷한 시점에 제2사옥이 완공되었다. 스페이스닷원은 2013년 동아일보와 SPACE가 선정한 월간 SPACE 선정 한국 현대건축 명작에 8위로 선정되기도 하였다. 그런데 그 SPACE에 실린 제2사옥 완공 기사를 보면 스페이스닷원이 제주도에 있는 것에 의미를 둔다느니 하는 소리가 있는 걸 보면 완벽하게 좋은 건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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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방송통신위원회 - 2018년도 이용자 보호업무 평가계획 자료, 네이버에 이은 2위이다.[2] 본디 촉망받던 사진작가로 파리에서 유학하던 도중에 이재웅과 이택경과 만난 이후로 인터넷과 예술의 결합이나 인터넷으로 사진을 전시하는 것에 대해 관심을 가져서 같이 회사를 차렸는데 회사를 차리자마자 무리를 많이 해서인지 회사를 차린 지 8개월 만에 28세의 나이로 심장마비로 세상을 떴다. 여러 번 주목을 받았던 촉망받던 사진작가였던데다가 다음이 나름 거대기업으로 성장하는 것을 못 보고 일찍 세상을 떴기 때문인지 이재웅과 이택경이 미안함을 가져서 나중에 둘이 돈을 출자해서 유족들과 같이 박건희의 이름을 딴 문화재단을 차렸는데 바로 박건희 문화재단. 이 사람이 살아있었다면 다음의 콘셉트가 예술적인 취향이 다소 반영되는 등 다소 달랐을 것이라는 얘기가 도는 편이다.[3] 다음에서 퇴사한 후 매쉬업엔젤스라는 액셀러레이터(스타트업)를 설립하였다. 벤처투자라는 업의 특성상 일반 소비자에게는 생소할 수 있으나 업계에서는 상당히 인지도가 있는 편이다.[4] 한국에서는 유럽 대륙 방송하면 ZDF나 프랑스2 정도나 좀 알려진 수준이기에 별로 유명하지 않지만 독일, 룩셈부르크, 네덜란드, 벨기에의 민영방송인 RTL과 프랑스의 민영방송인 M6를 소유하고 있는 거대 언론재벌그룹이다. 또한 한국에서도 베텔스만 북클럽이라는 출판사를 운영했다가 이후 대교그룹에 인수되었다.[5] 1998년 6월에 277P까지 폭풍까지 떨어졌던 코스피 지수가 4배 가까이 오르고 코스닥 지수는 6배 이상 올랐다.[6] 코스닥 시장에서 상장이라는 표현을 쓰기 시작한 것은 2005년이 되어서부터였고 그 이전에는 등록이라는 표현을 썼다.[7] 카카오와 회사를 합병한 이후로 잠시 동안 주가가 급등하기도 했지만 생각보다 시너지 효과를 불어 일으키지 못하면서 10만 원을 넘어서지 못하고 있는 중이다.[8] 단, 팝업 차단 기능이 동작하므로 예외 설정을 해줘야 한다.[9] 수익성이 안 좋다고 판단되는 사업만 접는 것 같다. 다음 입장에서는 계정당 50GB의 무료 클라우드 서비스가 상당한 부담이었던 듯.[10] 이건 네이트에서도 동일하게 나타나는 상황이다. 둘 다 유저가 조금씩 줄어들고 있다.[11] 2000년대 초반에는 메일 정보를 요구하는 사이트가 많지 않았으나 IT붐이 일면서 사이트가 폭발적으로 증가했고 새롭게 부상하는 사이트들이 다음 메일을 거부하자 사람들은 일단 지식인을 쓰는 네이버 메일로 가입했다가 나중에 가입 당시 한메일을 썼던 사이트를 네이버로 회원정보를 수정해서 옮기는 방식을 썼다.[12] 게다가 당시에는 인터넷 속도가 많이 느렸다. 모뎀에서 벗어나 ADSL이 깔리면서 그나마 좀 할만한 인터넷이 된 정도였다. 이런 상황에서 여러 개의 메일을 돌려가며 쓴다는 것은 시간낭비에 불과했다.[13] 반면 성소수자, 이민자 문제, 페미니즘 이슈에서는 네이버의 보수적인 반응과 다르지 않다.[14] 이것도 말이 많은 게, 차단되긴 했지만 이 차단 흔적을 지울 수 없는 상태가 되어버렸다. 쉽게 말하자면 마룻바닥의 껌을 떼었는데 흠집을 내버린 격이다.[15] 카페 리더 모임. 즉 다음 카페 관리자들의 모임이라고 보면 된다.[16] 간단히 일회용 메일 사이트에서 주소 생성한 후 무한 가입이 가능하다. 어처구니없게도 2020년 5월 17일 현재, 해외 가상번호로도 가입이 가능하다. (구글이나 네이버는 가상번호를 이용한 가입을 막고 있다.) 이렇게 허술한 가입 시스템이 뉴스 서비스에서 조직적 댓글 추천 조작, 어그로 등의 원인이 되기도 한다.[17] 한경비즈니스 특집 기사 참조.[18] 기사 참조.[19] 조선일보 기사 참조.[20] 이때 제주도로 본사를 이전시킨 게 아니라 주주총회에서 '결의'만 한 것이다. 본사 이전 등기는 2012년에 이루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