희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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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해 8대 국왕
僖王 | 희왕

시호
희왕(僖王)
연호
주작(朱雀)
성씨
대(大)

언의(言義)
왕자
대연준(大延俊) 혹은 대정준(大廷俊)[1]
생몰연도
770년대 이후[2] ~ 817년
재위기간
812년 ~ 817년(5년)

1. 개요
2. 생애
3. 연표
4. 둘러보기



1. 개요[편집]


발해의 제8대 가독부. 연호는 주작(朱雀). 강왕의 아들이며 정왕의 동생이고 간왕의 형이다.


2. 생애[편집]


형인 정왕이 죽자 몇 개월간 국정을 대리(권지국무)하다가 즉위하였는데, 형인 정왕이 아들이 있었음에도 그가 권지국무로서 나라를 다스리다 고사(故事, 전례)에 의거해 즉위했다는 점이 의문이다. 희왕 2년(813년)에 고예진(高礼進) 등 37명을 당나라에 파견하였고 불상을 보냈으며 일본과의 교류도 활발했다.

발해의 자료가 빈약한 데다 희왕의 재위 기간이 짧고 희왕에 대한 자료가 없어서 희왕이 재위 시에 어떤 일을 했는지 현재로서는 알 수 없다. 아들로 대연준(大延俊) 혹은 대정준(大廷俊)이 있었지만 이후 왕위를 동생 대명충이 물려받은 것을 보면 의구심이 들고 석연치 않은데 상세한 기록이 없어서 알기 어렵다.


3. 연표[편집]


  • 812년 정왕이 죽었고 권지국무 대언의가 국정을 대리하였다.
  • 813년 1월 권지국무 대언의가 고사(故事)에 따라 즉위하였다.
  • 813년 12월 (대)신문덕 등 97인을 당에 사신으로 보냈다[3]
  • 814년 1월 고예진 등 37인을 당에 사신으로 보냈다
  • 814년 9월 왕효렴, 고경수 등을 일본에 사신으로 보냈다
  • 814년 12월 대효진 등 59인을 당에 사신으로 보냈다
  • 815년 1월 묘정수 등을 당에 사신으로 보냈다
  • 815년 2월 대여경을 당에 사신으로 보냈다
  • 815년 7월 아들 대연준(혹은 대정준) 등 101명을 당에 사신으로 보냈다
  • 817년 3월 대성신 등을 당에 사신으로 보냈다
  • 817년 희왕이 죽고 동생 대명충이 즉위하였다


4. 둘러보기[편집]




등극한 강왕의 아들
7대
8대
9대
정왕(定王)
희왕(僖王)
간왕(簡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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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책부원구에는 大俊 으로 기록되어 있다.[2] 형인 정왕이 770년대 생으로 추정되므로 그보다 나이가 많을 순 없다.[3] 원문에는 '발해왕자 신문덕'이라고 적혀있는데 발해왕자인 (대)신문덕인지 아님 발해왕자 대○○와 신문덕인지 의견이 분분한 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