돌아오지 않는 다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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돌아오지 않는 다리
Bridge of No Retur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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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치
[[북한|
파일:북한 국기.svg
북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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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개성특별시 조산리





1. 개요
2. 역사
3. 기타




1. 개요[편집]


남한북한군사분계선을 통과하는 다리다. 공동경비구역에 포함되며, 교량 한가운데에서 북한과 남한의 경계가 나뉜다.[1] 사천강의 지류인 판문천을 건널 수 있다.[2] 원래 이름은 널문다리[3]라 한다. 1번 국도가 이 다리를 지나간다.[4] 현재는 DMZ 견학을 할 때 차 안에서만 볼 수 있는 곳이다.

통일안보관광을 할 때 예약해야 하며, 당일 예약은 안 될 수도 있다.


2. 역사[편집]


6.25 전쟁 당시 1953년 4월에서 5월 동안 포로들을 남쪽 또는 북쪽으로 갈 수 있도록 하는 역할을 한 포로 송환 목적의 다리로 사용되었으며, 이로 인해 한 번 다리를 건너가면 돌아올 수 없게 됐기 때문에 '돌아오지 않는 다리'라는 이름이 붙었다. 임진각 근처에 있는 자유의 다리가 국군 및 국제연합군(유엔군)을 휴전 협정 조인 후에 옮기는 역할을 하였다면, 이 다리는 휴전 협정 조인 전에 일부 포로들을 송환 조치하는 다리로 사용되었다.

이후 미국의 정보수집선으로 알려진 푸에블로호가 북한에 의해 나포된 후, 푸에블로호 선원들을 남측으로 보내는 데도 사용되었다.

공동경비구역 설치 이후 공동경비구역 내에서는 군사분계선이 사실상 기능하지 않아 관계자들이 자유롭게 다닐 수 있었지만, 1976년 8월 판문점 도끼 만행 사건 이후 군사분계선 너머 서로의 병력을 철수하였으며 군사분계선을 넘어다닐 수 없게 되었다. 그로 인해 다리의 왕래가 불가능해졌고, 돌아오지 않는 다리는 더 이상 사용되지 않았다.

이로 인해 공동경비구역 북측 지역에 도로 연결이 끊기자 북한은 도로와 교량을 건설하였다. 일주일 정도 바빴다고. 돌아오지 않는 다리 위쪽에 건설하는데 72시간이 걸린 '72시간 다리'도 이때 만들어졌다.


3. 기타[편집]


  • 돌아오지 않는 다리는 오랫동안 보수공사를 하지 않아 수리가 필요하다.

  • 다리 남측 군사분계선 지역에 푸른색의 볼라드가 길을 막고 있다.

  • 북한이 판문점에 지뢰매설을 하였는데, 군인들의 탈북을 방지하기 위해서라고 한다. 판문점 인근에 지뢰를 매설한 것은 정전협정 체결 이후 처음이다. 당연하지만 이는 정전협정 위반이다. 그럼에도 2017년 오청성 하전사가 72시간 다리를 건너 탈북을 감행하자, 북한은 72시간 다리에도 통문을 설치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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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왼쪽의 검은 팻말이 군사분계선임을 나타내는 표지판이다. 물론 실제 군사분계선은 다리 가운데 있다.[2] 돌아오지 않는 다리가 놓인 강의 이름은 "판문천"이다. 북한측 지도나 일제시대 지형도를 보면 제대로 표시되어 있다. 그러나 어째서인지 남한에는 사천강으로 잘못 알려져 있고, 하천법상 지방하천 명칭도 "사천"으로 잘못 붙어 있다. 진짜 사천강은 개성 시내 방향에서 흘러들어와 판문천을 삼키고 임진강으로 흘러들어가는, 판문천의 본류에 해당하는 더 큰 강이다. 휴전선을 넘어오는 소하천의 경우 수문학적 실측 조사가 불가능하다 보니 엉뚱한 이름을 잘못 붙여 관리하는 사례가 접경지역 이곳저곳에 걸쳐 많이 확인된다. 일례로 두타연 폭포로 유명한 양구의 "사태천"도 자기 지류의 이름인 "비아천"으로 잘못 등록되어 있다.[3] 판문점의 원래 지명은 널문리였다.[4] 하지만 막혀있기도 하고 관리 상태도 의문이기에 차가 지나갈 수 없고, 실질적인 역할은 하지 않는다. 남북통일이 된다면 이 다리가 아니라 희망로가 1번 국도의 역할을 할 확률이 높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