루돌프 1세(보헤미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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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편집]
루돌프 1세는 합스부르크 가문 출신의 오스트리아 공국 공작, 슈타이어마르크 공국 공작, 보헤미아 국왕이다. 보헤미아 국왕이 더 높은 작위이기는 하지만 실제로는 오스트리아와 슈타이어마르크의 공작으로 재위한 기간이 더 길다. 오스트리아 공국의 공작으로서는 루돌프 3세이다.
2. 생애[편집]
독일왕 알브레히트 1세와 그의 아내인 케른텐의 엘리자베트 사이에서 태어났다. 1300년 프랑스 국왕 필리프 3세와 그의 두 번째 아내 브라반트의 마리 사이에서 태어난 딸인 블랑슈와 결혼했지만 1305년에 사별했다.
1306년 보헤미아 왕국, 헝가리 왕국, 폴란드 왕국의 국왕이었던 바츨라프 3세가 후사 없이 암살되자 보헤미아의 귀족들은 바츨라프 3세의 여동생 프르셰미슬의 안나의 남편인 인드르지흐 코루탄스키를 보헤미아의 국왕으로 선출했다. 1307년 프라하를 점령한 알브레히트 1세는 루돌프 3세로 하여금 바츨라프 2세의 왕비이자 폴란드의 공주였던 릭사 엘즈비에타(Ryksa Elżbieta)와 결혼하게 했고, 루돌프 3세가 보헤미아의 국왕인 루돌프 1세로 즉위했음을 선언했다.
이후 보헤미아의 귀족들이 인드르지흐를 지지하는 진영과 루돌프 1세를 지지하는 진영으로 나뉘면서 양측 간의 무력 충돌이 계속되었다. 1307년 7월 루돌프 1세는 호라주됴비체(Horažďovice) 요새에서 일어난 공성전 도중에 이질로 사망했다.
1308년 그의 아버지 알브레히트 1세는 상속 문제에 분노한 조카 요한 파리키다에 의해 암살되었다. 알브레히트 1세는 가문 내에서 조카 요한의 상속권을 실질적으로 인정하지 않았을 뿐만 아니라, 혈연적으로 바츨라프 3세와 더 가까웠던 요한[1] 대신 아들인 루돌프 1세를 보헤미아 국왕으로 밀어주어 요한을 더욱 분노케 했다.
루돌프 1세가 후사 없이 사망하면서 인드르지흐가 보헤미아의 국왕으로 복위했지만 1310년 보헤미아의 귀족들이 얀을 보헤미아의 국왕으로 선출하면서 퇴위당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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