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누일 마우로조미스
덤프버전 :
1. 개요[편집]
동로마 제국 라스카리스 왕조의 반란자. 룸 술탄국으로 망명한 뒤 상당한 영향력을 행사하며 테오도로스 1세와 대적했다.
2. 생애[편집]
펠로폰네소스 출신 군사귀족 가문일 것으로 추정되는 마우로조마이 가문의 일원이다. 마누일 1세 밑에서 활약한 테오도로스 마우로조미스의 아들이며, 어머니는 동로마 제국 황제의 사생아였다는 설이 있지만 확실하지 않다. 1200년 룸 술탄국의 케이휘스레브 1세가 콘스탄티노폴리스로 망명했다. 케이휘스레브 1세는 마누일의 딸과 결혼했고, 정교회로 개종했다. 셀주크 제국 연대기 작가 이븐 비비(Ibn Bibi)에 따르면, 그는 당시 카이사르 칭호를 받았다고 한다.
1203년 알렉시오스 3세가 십자군을 피해 콘스탄티노폴리스를 탈출했을 때, 그는 케이휘스레브 1세와 함께 알려지지 않은 요새 또는 섬으로 피난했다. 그러다 1204년 쉴레이만샤 2세가 죽었다는 소식이 전해지자, 그는 케이휘스레브 1세와 함께 룸 술탄국으로 향했다. 그러나 클르츠 아르슬란 3세가 이미 새 술탄으로 즉위했고, 테오도로스 1세는 클르츠 아르슬란 3세의 요청에 따라 마누일과 케이휘스레브 1세를 억류했다. 하지만 가까스로 탈출한 뒤 클르츠 아르슬란 3세를 몰아내고, 케이휘스레브 1세를 술탄으로 복위시켰다.
그 후 룸 술탄국의 지원을 토대로 프리기아에 공국을 세우고자 한 그는 1205년 여름 니케아 제국과 전쟁을 벌였지만 테오도로스 1세에게 참패했다. 하지만 1206년 초 테오도로스 1세는 케이휘스레브 1세와 협의하여 메안데르 강의 상류 계곡에 있는 초나에와 라오디케아 시를 포함한 상당한 영토를 그에게 양도하기로 했다. 이후 아미르로서 룸 술탄국의 정세에 상당히 관여했다. 1220년 외손자인 카이쿠바드 1세가 술탄이 되는 데 크게 기여했으며, 킬리키아 아르메니아 왕국에 대한 원정에 참여했다. 1230년경 사망했으며, 그의 후손은 13세기 말까지 룸 술탄국 궁정에 강력한 영향력을 행사했다.
이 문서의 내용 중 전체 또는 일부는 2023-11-26 14:25:11에 나무위키 마누일 마우로조미스 문서에서 가져왔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