테르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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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일:테르벨.jpg
이름
테르벨
(영어: Tervel, 불가리아어: Тервел)
출생
미상
사망
721년
직위
불가리아 제1제국

1. 개요
2. 생애




1. 개요[편집]


불가리아 제1제국 2대 칸. 유스티니아노스 2세의 복위를 도와준 대가로 동로마 제국카이사르(부황제)가 된 인물이다.


2. 생애[편집]


초대 군주 아스파루흐의 아들로 짐작되나, 이를 입증할 기록은 부족하다. 701년경 하자르와의 전쟁을 치르던 아스파루흐가 전사하자 뒤를 이어 칸이 되었다. 705년 폐위된 황제 유스티니아노스 2세는 망명 생활을 하다가 그를 찾아와 자신을 도와달라고 청했다. 그는 유스티니아노스 2세를 따뜻하게 맞이했고, 15,000명의 군대를 빌려주는 대가로 제국의 부황제가 되기로 약조받았다. 유스티니아노스 2세는 불가리아군의 지원에 힘입어 황위를 되찾고 자신을 축출한 레온티오스티베리오스 3세를 처형한 뒤, 테르벨을 콘스탄티노폴리스에 초청했다. 그리고는 그의 어깨에 자주색 황제복을 걸쳐주며 부황제로 공식 선임했다. 그는 이외에도 자르고나 일대와 황금 및 다양한 귀중품들을 받고 불가리아로 귀환했다.

708년경, 유스티니아노스 2세는 불가리아가 너무 커지자 위협을 느끼고 원정군을 일으켜 다뉴브 강 하구의 앙키알로스를 공격했다. 그러나 테르벨의 역공으로 제국군이 참패했다. 711년 유스티니아노스 2세가 필리피코스의 반란으로 참살된 뒤, 그는 원수를 갚겠다는 명분을 내세워 712년 동로마 제국을 침략하여 여러 촌락을 파괴하고 콘스탄티노폴리스의 성벽으로 들이닥쳤다. 그러다 옵시티온 테마 부대가 보스포로스 해협을 건너와 필리피코스를 폐위하고 수도에 주둔하자, 본국으로 귀환했다. 이후에도 매년 동로마 제국을 침략하였고, 716년 콘스탄티노폴리스로 재차 진격했다. 당시 우마이야 왕조의 압박에 시달리던 테오도시오스 3세 황제는 그와 협의 끝에 다음과 같은 조건으로 평화 협약을 맺었다.

1. 값비싼 붉은 가죽을 불가리아에 기증한다.

2. 자고리아 지역을 포함한 불가리아 왕국의 영역을 인정한다.

3. 양국은 정당한 통치자에 대해 음모를 꾸민 혐의로 기소되어 망명한 자들을 인도한다.

4. 각국 정부의 인감이 있는 상품만 수입할 수 있으며, 위반 시 압수될 수 있다.


717년 여름 우마이야 왕조군이 콘스탄티노폴리스를 대대적으로 침략하자(제4차 콘스탄티노폴리스 공방전), 동로마 제국 황제 레온 3세는 테르벨에게 구원을 청했다. 그는 이에 응했고, 718년 초 콘스탄티폴리스 인근에서 혹독한 추위로 고통받던 아랍군을 상대로 완승을 거두었다. 참회자 테오파네스의 연대기에 따르면, 이 전투에서 22,000명에 달하는 아랍인이 전사했다고 한다. 아랍군은 패배의 여파를 견디지 못하고 철수했다. 이후 719년, 지난 날 테오도시오스 3세에게 축출되었었던 전 황제 아나스타시오스 2세는 불가리아를 찾아가서 자신을 복위시켜달라고 청했다. 그는 군대와 50 센타나리온의 금화를 주었고, 아나스타시오스 2세는 콘스탄티노폴리스로 쳐들어갔다. 그러나 레온 3세는 이를 격퇴하고 아나스타시오스 2세를 붙잡아 처형했다. 이후 테르벨에게 서신을 보내 "지난날 아랍에 공동으로 싸워놓고 어찌 이러느냐?"라고 항의했다. 이에 테르벨은 제국 국내문제에 끼어든 걸 사과하였고, 불가리아에 망명한 아나스타시오스의 잔당을 레온 3세에게 보냈다.

이후의 행적은 기록이 미비해 알 수 없으나, 721년경 사망한 것으로 전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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