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키 코크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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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편집]
미국의 전 야구선수이자 야구감독. 미국 야구 명예의 전당에 입성했다.
2. 커리어[편집]
2.1. 선수 시절[편집]
보스턴 대학교 재학 당시에는 야구 외에도 농구, 미식축구에도 재능을 보였다. 최종적으로는 야구로의 진로를 택했고, 1924년 아마추어 자유계약으로 필라델피아 애슬레틱스에 입단한다. 마이너에서 1년간 뛰며 300타수 .333의 성적을 기록한 후 1925년부터 빅리그에서 뛰기 시작했다. 데뷔 첫 해 부터 134경기에 출장, .331/.397/.448의 슬래쉬라인을 기록하며 눈도장을 찍었고, 이후 화려한 선수생활을 이어나간다. 1928년에는 리그 MVP를 수상했고, 1929년부터 1931년까지 3회 연속 월드 시리즈에 진출하며 2회 우승을 거두었다. 1934년에는 디트로이트 타이거즈의 선수 겸 감독으로 이적하였고, 1934년과 1935년 연속해서 올스타에 뽑히는 등 계속해서 활약했다.
그러나 1937년, 코크런의 야구생활을 조기에 그만두게 하는 사건이 발생한다. 5월 25일 뉴욕 양키스와의 경기 중 상대 투수 범프 해들리의 투구에 머리를 강타당해 뇌진탕에 빠진 것. 결국 이 사건의 후유증으로 선수 복귀를 하지 못하고 34살의 나이에 은퇴를 하게 된다. 이 사건으로 인해 이후 메이저리그에서는 타자들의 헬멧 착용이 확대되기 시작하였다. 은퇴 이후에는 제2차 세계 대전에 해군으로 참여하였다.
선수로서의 통산 성적은 타율 .320, 119홈런, 830타점, 1652안타, 1041득점, 333 2루타, 64 3루타이며, 통산 타율 기록은 현재까지도 역대 포수들 중 1위이다.
2.2. 은퇴 이후[편집]
은퇴 이후 다른 팀의 감독으로 부임하지는 않았으며, 1950년 코니 맥 당시 필라델피아 애슬레틱스 단장이 고령의 나이로 은퇴하자 잠시 단장직을 맡기도 했다. 이후 1950년대 중반까지 자동차업에 종사했다. 1962년 59세의 나이에 폐암으로 사망했다.
3. 여담[편집]
- 코크런의 모교인 보스턴 대학교에서는 미키 코크런의 업적을 기리기 위해 1964년부터 미키 코크런 상을 수여하고 있다. 종목과 학년을 불문하고 매년 가장 좋은 활약을 펼친 남자 선수에게 상을 수여한다.
- 디트로이트 타이거스의 다른 올드 레전드 선수들과 함께 코메리카 파크 외야 담장에 헌액되면서 사실상의 영구결번 대우를 받고 있다.
타이 콥, 트리스 스피커, 에디 콜린스가 필라델피아 코치 겸 선수 시절 가장 아끼던 제자[2] 였고, 후에 디트로이트 감독으로 갈때 구단에 그를 추천했던 사람도 디트로이트 레전드였던 타이 콥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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