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니 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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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니 맥의 수상 경력 / 역임 직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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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드 시리즈 우승 반지
1910
1911
1913
1929
1930





파일:MLB 로고.svg 명예의 전당 헌액자
파일:맥전당.png
코니 맥
헌액 연도
1937년
헌액 방식
베테랑 위원회 선정










파일:코니맥.png

코넬리어스 "코니" 맥
Cornelius "Connie" Mack

출생
1862년 12월 22일
매사추세츠 이스트브룩필드
사망
1956년 2월 8일 (향년 93세)
펜실베이니아 필라델피아
묘역
홀리 세펄크레 묘역
펜실베이니아 첼튼햄
국적
[[미국|

미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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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정구
]]

가족
아들 얼 맥
포지션
포수
투타
우투우타
소속팀
워싱턴 내셔널스 (1886~1889)[1]
버팔로 바이슨스 (1890)
피츠버그 파이리츠 (1891~1896)
지도자
피츠버그 파이리츠 감독 (1894~1896)
필라델피아 애슬레틱스 감독 (1901~1950)
프런트
필라델피아 애슬레틱스 구단주 (1901~1954)
필라델피아 애슬레틱스 단장 (1901~1950)
1. 개요
2. 선수 시절
3. 지도자 시절



1. 개요[편집]


"늙어서 그만두는 게 아니라 사람들이 원하는 것 같아서 그만두는 거야."[2]

-

은퇴 당시 코니 맥이 했던 말

미국의 야구선수, 감독이자, 필라델피아 애슬레틱스의 초대 감독이자, 구단주이다. 본명은 코넬리어스 맥길커디(Cornelius McGillicuddy) 였으나 너무 길어서 선수표에 올릴 수 없었기 때문에 22자이던 이름을 10자로 줄였다.[3]

통산 최다 경기(7,755경기) 감독, 최다 승(3,731승), 최다 패(3,948패), 그리고 감독으로서 최다 연임(50년)까지 어지간한 기록을 동시에 갖고 있다. 필라델피아를 연고지로 삼고 있던 오클랜드 어슬레틱스를 말 그대로 코니 맥의 시대로 성장시킨 전설의 감독이다.


2. 선수 시절[편집]


코니 맥은 선수 시절 메이저리그에서 11년을 뛰는 동안 포수로 활동하였다. 하지만 감독으로서의 명성과는 달리 선수시절엔 크게 각광받을 만한 성적을 내진 못했는데, 야구평론가 빌 제임스에 따르면 "똑똑한 선수라는 평판을 가진 가볍게 치는 포수였지만 선수로서 특별히 잘하는 것은 없었다"고 한다. 1890년에는 123경기에서 몸에 맞는 볼을 무려 20개나 기록하며 이 부분 리그 1위에 오르기도 했다.

또한 포수가 백스톱(Backstop) 네트의 앞이 아닌 홈플레이트 뒤에 자리를 잡는 전통을 최초로 시작하였다.[4] 또한 타자가 투스트라이크에 몰린 뒤에 포수가 파울팁으로 포구를 하면 아웃 선언이 되는 1891년 룰의 제정에 그의 역할이 있었을 것으로 보고 있다.

통산 선수시절 성적은 11시즌 724경기 출장 .244/.305/.300이다.


3. 지도자 시절[편집]


1894년 피츠버그 파이리츠의 선수 겸 감독을 맡으며 지도자 생활을 시작하였다. 1901년에는 필라델피아 애슬레틱스(현 오클랜드 애슬레틱스)의 구단주 겸 단장 겸 감독을 맡으며 50년 장기집권의 시작을 알렸다.

1937년과 1939년에는 건강상의 이유로 시즌의 일부를 아들인 얼 맥에게 맡겼다. 1937년 감독 자격으로 미국 야구 명예의 전당에 헌액되었다.

감독직을 역임하면서 단 한번도 유니폼을 입지 않고 정장을 입고 팀을 지휘했던 것으로도 유명하다. 이것 때문에 그라운드로 나갈 수가 없어 그라운드로 나가야할 일이 생겼을 때는 코치를 대신 내보냈다고 한다. 이러한 특징으로 맥은 '그라운드 위의 신사'라는 별명을 얻었다. 이 때문에 명예의 전당에 헌액될 때도 모자를 쓰지 않고 정장을 입은 모습이 동판에 새겨졌다.

1950시즌 종료 후 감독직을 애슬레틱스의 프랜차이즈 내야수였던 지미 다익스에게 넘겨주고 뒷선으로 물러났다. 1954년에는 아놀드 존슨에게 구단을 매각하며 구단주와 단장으로서의 역할에도 마침표를 찍었다.

1956년 2월 8일, 93세의 일기로 생을 마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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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현재의 팀과는 관계 없다.[2] "I'm not quitting because I'm getting old, I'm quitting because I think people want me to."[3] 코넬리어스 알렉산더 맥길커디라고 잘못 알려져 있으나, 이거은 그의 아들인 코넬리어스 맥 주니어가 알렉산더라는 이름을 중간에 넣었기 때문에 아버지도 그런 줄 알고 잘못 기록한 것이다. 코니 맥은 미들네임이 없었다.[4] 이런 플레이를 최초로 했다고 알려진 선수로는 이견이 많은데 최초의 10인 중 하나인 덕 앨리슨이나 훗날 감독으로 명예의 전당에 오르는 윌버트 로빈슨같은 선수도 홈플레이트 뒤에 자리를 잡는 플레이를 했다고 알려져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