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병호 ↔ 오재일 트레이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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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2. 추진 배경
3. 트레이드 결과
4. 평가
4.1. 트레이드 당시
4.2. 2024년
5. 여담


1. 개요[편집]


2024년 5월 28일 kt wiz삼성 라이온즈 사이에서 진행된 트레이드를 다루는 문서.


2. 추진 배경[편집]


파일:박병호 방출 요청.jpg

2024년 5월 28일, 수도권 팀의 간판급 타자가 소속팀 구단에 방출 요청을 했으며 조만간 웨이버 공시될 예정에 있다는 베이스볼 코리아 전수은 기자의 보도가 발표되었는데, # 직후 스포츠춘추 소속인 배지헌 기자의 트위터를 통하여 해당 선수는 박병호이며 선수가 kt wiz한테 방출을 요청했다고 밝혔다. # 본래 kt는 트레이드를 고려했으나 여의치 않아서 박병호 본인의 요청에 따라 방출로 가닥을 잡았다고 한다.

이후 실제로 박병호가 웨이버 공시를 요구했다는 기사가 보도되며 사실로 확인되었다. 방출 요청 사유로는 2024년 들어 줄어든 출장 기회에 대한 박병호의 불만이었다고 밝혀졌다. 이강철 감독은 언론 인터뷰를 통해 "(박병호를) 배려를 하다 여기까지 왔는데 배려하다 끝나야 하겠다. 참는 사람에게 이기는 사람이 없다. 잘 참는 사람이 언젠가는 이긴다"라고 표현하였다.#

이강철 감독이 박병호의 타격감이 좋지 않은데도 그를 중심 타선에 배치하며 기용해왔음에도 불구하고 좁아진 입지를 이유로 들며 방출을 요청했다는 것에서 분노를 자아냈고[1], 박병호를 문상철과 함께 기용하기 위해 시즌 중에 강백호의 포지션을 포수로 바꾸기도 했다. 그동안 베테랑으로서 모범적인 모습을 보여온 선수이기에 더욱 아쉬운 결과로 보이며, kt 최고의 영입으로 평가받았던 박병호의 FA 계약도 아쉬운 마무리를 맞이할 가능성이 높다. 더불어 상승세인 팀에 언해피를 남기고 떠났다는 점에서 더욱 아쉽다.

다만 이후 발표된 박병호 본인의 인터뷰는 해당 내용들을 정면으로 반박하는 내용이다. 박병호 본인은 언해피가 아닌 오히려 후배들의 앞길을 위해 잔여 연봉도 포기한채 은퇴를 생각하고 구단에 얘기했지만 구단이 오히려 만류했다는 것. 28일 선수단과 정식으로 인사를 나눴으며 이강철 감독과도 인사를 나눴다고 밝혔다. # 이강철 감독도 트레이드 이후 박병호를 감싸며 응원했다. #

박병호가 스포츠경향과 진행한 인터뷰에 따르면 박병호는 4월부터 구단과 대화를 나눠왔다고 밝혔다. 부진으로 인해 자신의 입지가 줄어들기 시작했고 팀 상황상 어쩔 수 없다는 것을 충분히 이해하고 있었기에 구단에게 타팀으로의 이적을 먼저 얘기했었다고 밝혔다. 그러나 두 달이 지나도록 트레이드가 되지 않는 것을 보고[2] 25일 경기[3]가 끝난 후 은퇴를 요청했으나 구단에서 만류했고 박병호의 깔끔한 커리어 마무리를 위해 트레이드를 다시 한번 추진해보겠다는 답을 받았다고 말했다. 그래도 트레이드가 되지 못할 경우에는 웨이버 공시를 택하자고 이야기를 나눴고 웨이버 공시를 했는데도 아무도 원하지 않으면 그때는 은퇴를 선언하기로 합의했다고 전했다.

같은 날 오후 8시경, 지역[4] A팀 내야수와 트레이드가 임박했다는 베이스볼 코리아 전수은 기자의 단독 보도가 발표되었다. # 야구 커뮤니티에서는 사진의 실루엣이 오재일의 사진과 똑같다는 점과 해시태그에 #두산 #갤럭시s24울트라가 있었다는 점을 토대로 오재일 ↔ 박병호 트레이드가 아니냐는 추측이 많았다.

3. 트레이드 결과[편집]


방출 요청 박병호, 결국 kt 유니폼 벗는다삼성 오재일과 1대1 트레이드 빅딜 성사

결국 5월 28일 22시쯤에 트레이드가 최종 합의, 공식 발표되었다. 그리고 삼성과 kt간의 사상 첫 트레이드이다.

4. 평가[편집]




4.1. 트레이드 당시[편집]


선수들의 이름값만 따지자면 메가 트레이드이기에 많은 팬들의 주목을 받았다. 박병호는 넥센, 오재일은 두산 시절 맹활약을 펼치며 간판 타자로 두각을 나타냈고, FA로 이적한 트레이드 당시 소속팀에서도 합류 초반에는 좋은 모습을 보였다. 그러나 두 선수 모두 전성기가 지나 선수 생활 말년에 접어들었고, 올 시즌에는 나란히 부진한 모습을 보이며 과거와 같은 활약을 펼치진 못하고 있었기 때문에 부진하는 두 베태랑에 대한 환기의 의미가 더 강하다. 이름값과 당장 팀에서 가지는 입지는 구분할 필요가 있다.

그러나 두 선수의 입지와 별개로 두 팀의 이해관계는 명확하다. 두 선수 모두 1루 겸 지명타자로 뛸 수 있는 거포라는 것은 비슷하지만, 삼성은 안 그래도 우타자가 적은데다 구자욱, 김지찬 등 주전 좌타자들이 좌상바 경향을 보여 우타 거포가 급했다. 반대로 kt는 주전 1루수로 도약한 문상철이 우타자라서 좌타 1루수 카드를 내민 삼성에게 혹했을 것이고, 그 외에도 내야진이 거의 우타자 일색이라[5] 좌타자인 오재일이 합류하면서 플래툰이 더욱 다채로워지는 것이 팀 구성상 더 나을 수 있었을 것이다. 다만 양쪽 팀 모두 부활에 기대치를 걸고 있는 왕년의 대형 야수들끼리, 그것도 포지션도 역할도 유사한 선수들끼리 트레이드 했다는 것에 의아하다는 반응을 보이는 경우가 상당히 많았다. 또한 박병호가 1군 엔트리에서 말소된 틈에 오재일이 트레이드 발표 당일 대타로 나와 솔로 홈런을 치면서[6] 상당히 분위기가 미묘해졌다.

일반적인 트레이드는 남는 포지션을 내주고 부족한 포지션을 받아오는 경우가 대부분이기에 이번처럼 나이, 포지션, 플레이 유형 모두 비슷한 선수들끼리 트레이드 되는 경우는 매우 드물다. 두 선수 모두 팀에서의 입지가 예전과 같지 않은 베테랑 선수면서 한 명은 좌타자, 한 명은 우타자라는 차이점이 있고, 결정적으로 박병호가 먼저 이적을 요청하고 이게 일파만파 커진 영향을 받은 덕에 성사된 트레이드이다.

공교롭게도 두 선수는 비슷한 점이 많은데, 2024년 트레이드일 기준 두 선수의 타격 지표가 굉장히 좋지 못하다는 점, 두 선수 모두 1986년생 37세로 야구선수 중 고령에 속한다는 점, 올해 계약이 끝난다는 점 등이다.

4.2. 2024년[편집]




5. 여담[편집]



  • 두 선수는 2005년에 데뷔한 동갑내기이자 상무 동기로 모두 트레이드 경험이 있었고, 트레이드 후 기량이 만개했던 선수다. 박병호는 2011년 7월 31일 KBO 공식 트레이드 마지막 날에 LG에서 넥센으로 트레이드가 있었고 오재일은 2012년 7월 9일 이성열을 상대로 트레이드되어 넥센에서 두산으로 트레이드 된 적이 있었다. 두 선수가 2011년 7월 31일부터 2012년 7월 9일까지 넥센에서 약 1년간 같이 동료로 지낸 적이 있다.

  • 트레이드가 확정되자마자 kt wiz의 공식 홈페이지 선수단 목록에서 박병호가 삭제되었고 곧바로 오재일이 추가되었다. 보통의 경우 선수가 새로운 팀의 유니폼을 입고 사진 촬영을 했거나 합성 사진이라도 만든 후에 추가하는게 대부분인데 삼성 시절 프로필 사진으로 바로 추가되었다. 심지어 2024년 최신 프로필 사진도 아닌 2023년까지 쓰던 프로필 사진이다. #

  • KBO 역사상 단일시즌 50홈런을 기록한 3명의 타자(이승엽, 심정수, 박병호)가 모두 선수생활 말년을 삼성에서 보내게 되었다.

  • 박병호의 트레이드 마크와도 다름 없는 본인의 응원가가 삼성으로 이적하고도 그대로 쓰일 수 있을지 주목받고 있다. 박병호는 히어로즈로 이적한 이래로 메이저리그에 진출했을 때도, kt wiz로 이적한 뒤로도 When the Saints Go Marching In 응원가를 꾸준히 사용해 왔었는데, 삼성의 허니크루가 과연 이 응원가를 계속 사용할지에 대해 많은 기대를 받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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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대타 출전을 제외하면 가장 낮은 타순이 클린업 트리오 바로 다음인 6번으로, 거듭되는 부진 속에서도 거의 중심 타선에 준하는 역할을 맡았다.[2] 기사에 따르면 kt는 4월부터 일부 구단에 박병호의 트레이드를 시도했지만 성사가 어려웠다고 밝혔다. 박병호의 극심한 부진과 적지 않은 연봉, 포지션 문제와 더불어 트레이드를 논의하던 시점이 아직 시즌 초반에 가까웠던지라 타구단들이 트레이드에 소극적인 모습을 보였다.[3] 1군 엔트리에서 말소되기 바로 전 날.[4] 어느 지역인지는 구체적으로 언급되지 않았다. 복수의 팀이 있는 수도권과 영남권과 달리 호남권과 충청권은 팀이 1팀씩밖에 없어서 유추가 쉽기 때문에 의도적으로 언급하지 않은 것으로 보인다.[5] 트레이드 성사 시점에서의 1군 엔트리를 보면 천성호를 제외한 모든 내야수들이 우타자로 구성됐고, 백업에도 오윤석, 장준원 등 우타자들이 비교적 많다. 그 천성호도 최근 타격감이 안좋아 오히려 우타자인 신본기가 더 방망이를 잘 돌리고 있는 상황이기도 하다. 반대로 외야수는 사실상 1루수로 뛰고 있는 문상철과 이제 막 부상에서 돌아온 배정대를 빼면 전부 좌타자 혹은 스위치 히터.[6] 트레이드가 경기 종료 직후 발표됐는데 오재일의 추격포는 9회 말에 터졌다. 즉 홈런이 나온 후 트레이드 발표까지 채 10분도 걸리지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