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를린 훔볼트 대학교/동문 및 유명 교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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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일:나무위키+상위문서.png   상위 문서: 베를린 훔볼트 대학교

1. 개요
2. 명단


1. 개요[편집]


  • 이 대학에서 학위를 받았거나 교원으로 활동했던 유명 인사들을 정리한 문서이다.
  • 위키백과나무위키에 단독 문서가 있을 정도로 인지도가 높은 인물들만 작성한다.
  • 가나다순으로 정렬한다.


2. 명단[편집]


  • 강세형: 철학 전공으로 박사 학위까지 취득.
  • 게오르크 빌헬름 프리드리히 헤겔(Georg Wilhelm Friedrich Hegel): 1818년부터 1831년까지 교수.
  • 게오르크 지멜(Georg Simmel): 사회학자, 철학자. 이 대학에서 학석사부터 박사, 교수자격 학위(Habilitation)까지 모든 학위를 취득했지만, 유대인인데다 주로 에세이 형식으로 저술 활동을 한 탓에 학술적 가치를 제대로 인정 받지 못하여 정교수가 아닌 외래 교수로 임명되었다. 하지만 지멜의 강의는 항상 수강생들로 북적이는 인기 행사였다.
  • 게오르크 칸토어(Georg Cantor): 1867년 이 대학에서 수학 전공으로 박사 학위 취득.
  • 게오르크 헤르만 크빙케(Georg Hermann Quincke): 크빙케의 간섭관(Quinckesches Interferenzrohr)으로 유명한 물리학자로, 이 대학에서 박사 학위를 받고 1865년부터 외래 교수로 재직하다 1872년에 뷔르츠부르크 대학교 정교수로 취임하였다. 이후 1875년에 하이델베르크 대학교로 이직하였다.
  • 게지네 뢰치(Gesine Lötzsch): 2010년부터 2012년까지 좌파당의 당대표였던 정치인. 이 대학에서 영어, 독어 전공.
  • 고트홀트 아이젠슈타인(Gotthold Eisenstein): 수학자. 이 대학에서 학사 학위부터 교수자격 학위까지 취득. 이후 강사 활동.
  • 구멍위: 중화민국 초대 행정원 부원장. 경제학, 정치학 전공.
  • 구스타프 라트브루흐(Gustav Radbruch): 법학자로 바이마르 공화국 시기에 두 차례에 걸쳐 법무장관 직을 맡았다. 이 대학에서 박사 학위까지 취득.
  • 구스타프 루트비히 헤르츠(Gustav Ludwig Hertz): 1925년 노벨 물리학상을 받은 물리학자로 이 대학에서 1911년 박사 학위를 받은 후 강사로 활동했다.
  • 귄터 템브로크(Günter Tembrock): 동물행동학 분야에서 동독의 권위자로 평가 받은 인물로 TV에 자주 출연하여 일반 대중들에게도 인지도가 높았다. 이 대학에 동물학 전공으로 입학해 박사 학위까지 받았다. 1983년 정년 퇴임할 때까지 이 대학 교수로 활동.
  • 그레고어 기지(Gregor Gysi): 이 대학 법학과 졸업. 독일 사회주의통일당 개혁파의 핵심이었던 인물로, 2005년에서 2015년까지 좌파당 원내교섭단체의 수장이었다.
  • 그림 형제(Jacob Grimm/ Wilhelm Grimm): 두 형제 모두 이 대학에서 강사로 활동. 2009년 새로 개관한 이 대학 중앙도서관을 두 형제를 기려 ‘야코프-빌헬름 그림 센터’라고 명명했다.
  • 디터 베른하르트 헤르만(Dieter Bernhard Herrmann): 이 대학에 물리학 전공으로 입학하여 교수자격 학위까지 취득. TV 출연이나 소설 집필 등을 통해 대중들에게 과학 지식을 전달하는 활동을 충실히 하며 동독인들에게 눈도장을 찍었다.
  • 디트리히 본회퍼(Dietrich Bonhoeffer): 이 대학에서 신학으로 박사 학위를 취득하고 강사로 활약했다.
  • 라이너 하젤로프(Reiner Haseloff): 작센안할트 주의 총리로 재직. 이 대학에 물리학 전공으로 입학해 박사 학위까지 취득하였다.
  • 라차루스 푹스(Lazarus Fuchs): 선형 미분 방정식 발전에 이바지한 수학자로 이 대학에서 교수자격 학위까지 취득하고 1884년에 정교수로 부임했다. 1899년엔 이 대학의 총장이었다.
  • 라헬 예기(Rahel Jaeggi): 자유대 교수였던 우르스 예기[1]의 딸이며 하버마스의 애제자 악셀 호네트의 제자. 프랑크푸르트 학파 인물로 간주되는 클라우스 오페가 2005년 정년퇴임을 하고 4년이 지난 2009년, 이 대학 철학과 교수로 임용된다. 훔볼트대에선 좀처럼 듣기 힘든 카를 마르크스, 자본주의 비판 관련 강의를 진행하고 있다.
  • 레기네 힐데브란트(Regine Hildebrandt): 독일 사회민주당 소속 정치가였다. 브란덴부르크 주정부의 노동사회보건부 장관을 역임했다. 이 대학에서 학석사 및 박사 학위를 받았다. 전공은 생물학.
  • 레오폴트 크로네커(Leopold Kronecker): 크로네커 정리로 유명한 수학자. 이 대학에서 학부를 거쳐 박사 학위 취득. 1883년 베를린대 교수로 임용.
  • 레오폴트 폰 랑케(Leopold von Ranke): 1834년부터 1871년까지 이 대학 교수.
  • 로베르트 무질(Robert Musil): 이 대학에서 철학으로 박사 학위를 취득.
  • 로베르트 코흐(Robert Koch): 1905년 노벨 생리학·의학상을 받은 의학자, 미생물학자. 1885년부터 1910년까지 이 대학 교수.
  • 로베르트 하페만(Robert Havemann): 1950년 이 대학 교수로 임명된 화학자로 동독 반체제 운동의 대표 인사로도 잘 알려져 있다.
  • 로타어 드메지에르(Lothar de Maizière): 1990년 동독의 마지막 총리로 취임했다. 이 대학에서 법학 전공.
  • 롤프-페터 호르스트만(Rolf-Peter Horstmann): 철학가로 1995년부터 2007년까지 이 대학 교수로 재직. 저명한 헤겔 전문가였지만 점점 칸트 연구로 관심사를 돌리게 된다.
  • 루돌프 클라우지우스(Rudolf Clausius): 열역학 법칙의 기초를 세운 물리학자로 이 대학에서 물리학과 수학 전공.
  • 루돌프 폰 예링(Rudolf von Jhering): 법학자로 이 대학에서 박사 학위를 취득.
  • 루돌프 피르호(Rudolf Virchow): 근대 병리학의 창시자로 평가 받는 인물로 이 대학에서 박사 학위 취득 후 1856년 교수로 임명된다.
  • 루이 페르디난트 폰 프로이센 왕자(Louis Ferdinand, Prinz von Preußen): 21세에 경제학 박사 학위를 받았다.
  • 루트비히 포이어바흐(Ludwig Feuerbach): 이 대학에서 철학을 전공. ‘기독교의 본질’을 쓴, 당대를 대표하던 무신론자였다.
  • 리제 마이트너(Lise Meitner): 1922년에 이 대학에서 교수자격 학위를 받고 강사로 활동하다 1926년에 외래교수로 임용되었다.
  • 리타 쇼버(Rita Schober): 소설가, 문예학자. 빅토어 클렘퍼러의 제자로 클렘퍼러가 훔볼트대에 부임하면서 이 대학으로 적을 옮겨 교수자격 학위를 취득하였다. 1957년부터 1978년까지 이 대학 교수.
  • 리하르트 라도(Richard Rado): 베를린에서 태어난 유대인 수학자로 이 대학에서 박사 학위 취득. 나치 집권 이후 영국으로 망명, 레딩 대학교에서 교수로 활약했다.
  • 리하르트 아베크(Richard Abegg): 아베크의 법칙으로 유명한 화학자로 이 대학에서 박사 및 교수자격 학위를 받았다.
  • 막스 슈티르너(Max Stirner): 철학자로 이 대학에서 문헌학, 철학, 신학 전공.
  • 막스 슐체(Max Schultze): 저명한 19세기 세포학자로 이 대학에서 박사 학위까지 취득.
  • 막스 폰 라우에(Max von Laue): 1914년 노벨 물리학상을 받은 물리학자. 이 대학에서 학석사 및 박사 학위를 받고 1906년 뮌헨 대학교에서 교수자격 학위를 획득한 뒤 강사로 활동하다 1919년 베를린대 교수로 임용, 1943년까지 교수직을 보유한다.
  • 막스 플랑크(Max Planck): 1918년 노벨 물리학상을 받은 물리학자로 1889년부터 1928년까지 이 대학 교수.
  • 만프레트 클림(Manfred Kliem): 동독의 역사학자. 이 대학에 역사학 전공으로 입학해 교수자격 학위까지 모든 학위를 취득했다. 동독의 제1 출판사였던 디츠(Dietz Verlag)에서 편집인으로 활동하였고, 특히 마르크스 엥겔스 저작집(Marx-Engels-Werke) 편집에 깊이 관여했다.
  • 모니카 마론(Monika Maron): 소설가로 1981년 동독에서 본격적으로 환경 문제를 논한 첫 소설로 평가 받는 '흩날리는 먼지(Flugasche)'를 출간하는 등 기성 체제와 갈등을 겪은 후 1988년 서독으로 이주했다. 이 대학에서 연극학 전공.
  • 모리츠 슐리크(Moritz Schlick): 빈 학파의 대부로 이 대학에서 물리학으로 박사 학위 취득.
  • 미하엘 브리(Michael Brie): 이 대학에서 철학 전공으로 교수자격 학위까지 취득하여 1990년 교수로 부임. 하지만 슈타지의 비정규 요원이었다는 사실이 공개되며 1994년에 파면되었다. 이후 좌파당의 연구기관인 로자 룩셈부르크 재단에서 핵심 인물로 활동.
  • 바르톨트 게오르크 니부어(Barthold Georg Niebuhr): 대학 설립에 깊게 관여했던 역사학자로 창립된 해부터 교수로 활약.
  • 바실리 레온티예프(Wassily Leontief): 1973년 노벨 경제학상을 받은 경제학자로 이 대학에서 박사 학위를 받았다.
  • 발터 고르돈(Walter Gordon): 독일의 이론물리학로 이 대학에서 물리학 전공으로 박사 학위까지 받았다.
  • 발터 네른스트(Walther Nernst): 독일의 물리학자, 화학자로 1920년 노벨 화학상을 받았다. 1905년에 이 대학 정교수로 부임했고, 1920년에서 1921년까지 이 대학 총장이었다. 이 대학에서 수학한 경력도 있다.
  • 발터 보테(Walther Bothe): 1954년 노벨 물리학상을 받은 물리학자. 이 대학에 물리학, 수학, 화학 전공으로 입학하여 교수자격 학위까지 모든 학위를 취득하였다.
  • 베르너 좀바르트(Werner Sombart): 경제학자 및 사회학자로 1888년 이 대학에서 박사 학위를 받고 1918년 교수로 부임하여 1931년까지 재직했다.
  • 베르너 테스케(Werner Teske): 슈타지 요원이었지만 서독 망명을 도모하며 슈타지 내부 자료를 비밀리에 입수하다 발각되어 1981년 처형되었다. 참고로 동독에서 처형 당한 마지막 인물. 이 대학에서 경제학 전공으로 학부를 거쳐 박사 학위까지 받았다.
  • 베르너 포르스만(Werner Forssmann): 1956년 노벨 생리학·의학상을 받은 의학자. 이 대학에서 학석사 및 박사 학위를 받았다.
  • 베르너 폰 브라운(Wernher von Braun): 이 대학에서 박사 학위 취득. 조카인 크리스티나 폰 브라운이 이 대학 교수(1994년~2012년)였는데 평생 반유대주의를 비판하는 작업을 수행해 왔다.
  • 베르너 하이젠베르크(Werner Heisenberg): 1932년 노벨 물리학상을 받은 물리학자로 1943년부터 1945년까지 이 대학 교수.
  • 베르톨트 라우퍼(Berthold Laufer): 독일에서 태어난 유대인 인류학자로 나치 집권 이후 미국으로 망명했다. 이 대학에서 중국어, 말레이어 전공.
  • 볼프강 티어제(Wolfgang Thierse): 독일 사회민주당 소속 정치가로 1998년부터 2005년까지 독일 연방의회 의장 역임. 이 대학에서 독어학, 문화학 전공.
  • 볼프강 하이제(Wolfgang Heise): 에른스트 블로흐와 함께 현실사회주의 체제에 비판적인 마르크스주의자로 명성이 높았던 동독 철학자. 이 대학에서 교수자격 학위까지 모든 학위를 취득한 후 철학과 교수로 임명된다. 볼프 비어만이 이 사람의 애제자였다. 아버지인 빌헬름 하이제도 이 대학 교육학과 교수였다.
  • 볼프 비어만(Wolf Biermann): 동독을 대표하던 음유시인으로 반체제 인사로도 유명했다. 이 대학에서 철학, 수학 전공으로 졸업 시험까지 통과했지만 정치적인 이유로 학위를 받지 못했다. 결국 45년이 지난 2008년에 훔볼트대에서 디플롬(학석사 통합 학위)을 수여하며 명예회복을 시켜 주었다.
  • 브루노 바우어(Bruno Bauer): 헤겔 좌파의 주요 사상가 중 하나였던 철학자 겸 신학자. 이 대학에 신학, 철학 전공으로 입학해 교수자격 학위까지 취득하였다.
  • 빅토어 클렘퍼러(Victor Klemperer): 문예학자. 특히 나치 시대에 작성한 일기장으로 유명한 인물로 1951년 이 대학 교수로 부임하였다. 20세기의 명지휘자 오토 클렘퍼러의 사촌.
  • 빌헬름 딜타이(Wilhelm Dilthey): 역사, 철학, 신학 전공으로 이 대학에 입학해 교수자격 학위까지 취득한 후 강사로 활동했다.
  • 빌헬름 빈(Wilhelm Wien): 1911년 노벨 물리학상을 받은 인물로 이 대학에서 교수자격 학위까지 취득했다.
  • 빌헬름 폰 훔볼트(Wilhelm von Humboldt): 대학 설립을 주체적으로 건의해서 관철시킨 명실상부한 이 대학의 아버지. 교육학, 언어학, 정치학 등 다방면에 걸쳐 박학다식했던 인물로, '인간의 인간다움 그 자체만을 위한 주체적 자아 형성을 위한 교육'이라는 대원칙을 제시하였다. 이러한 보편주의적, 인본주의적, 이성주의적 교육관을 흔히 훔볼트 모델이라 칭한다.
  • 실라르드 레오(Szilárd Leó): 헝가리 출신 유대인 물리학자로 이 대학에서 박사 및 교수자격 학위를 받고 강사로 활동하다 나치 집권 이후 영국을 거쳐 미국으로 망명.
  • 아돌프 폰 바이어(Adolf von Baeyer): 1905년 노벨 화학상을 받은 화학자. 이 대학에서 학석사 학위를 받은 뒤 하이델베르크 대학교에서 박사 학위를 취득한 후 다시 베를린대에서 교수자격 학위를 땄다. 이후 대학 강사로 활약하다 1866년 베를린대 외래교수로 임명된 뒤 1875년 뮌헨 대학교 정교수로 임명된다.
  • 아르투어 쇼펜하우어(Arthur Schopenhauer): 이 대학에서 학석사 학위를 받고 예나 대학교에서 박사 학위 취득. 1820년 강사직을 얻었지만 여러 불만을 안고 대학을 떠나게 된다.
  • 아브라함 요주아 헤셸(Abraham Joshua Heschel): 20세기의 대표 랍비 중 하나로 이 대학에서 유대학으로 박사 학위 취득.
  • 아우구스트 쿤트(August Kundt): 쿤트관을 발명한 물리학자로 이 대학에서 박사 학위까지 취득한 후 1888년에 베를린대 정교수로 임명됐지만 1894년 사망한다.
  • 알렉산더 폰 훔볼트(Alexander von Humboldt): 강사로 활동. 대학 창립 멤버로 소개되곤 하지만 실제로는 형인 빌헬름을 주도자로 보는 견해가 우세하다.
  • 알리스 잘로몬(Alice Salomon): 독일 여성운동 및 사회복지사업의 선구자 중 하나로 이 대학에 경제, 철학, 역사 전공으로 입학하여 1906년에 철학으로 박사 학위를 취득했다.
  • 알베르트 슈베글러(Albert Schwegler): 철학자, 신학자. 이 대학에서 철학 박사 학위 받음.
  • 알베르트 아인슈타인(Albert Einstein): 1921년 노벨 물리학상을 받은 물리학자로 1914년부터 32년까지 이 대학 교수.
  • 알프레트 베게너(Alfred Wegener): 이 대학에서 박사 학위 취득.
  • 알프레트 코징(Alfred Kosing): 독일 사회주의통일당의 핵심 이론가 중 한명이었고 특히 민족 문제 전문가였다. 이 대학에서 철학 전공.
  • 앤절라 데이비스(Angela Davis): 철학자로 미국의 60년대 저항운동의 아이콘이었다. 훔볼트대에서 박사 학위 취득.
  • 언스트 체인(Ernst Chain): 1945년에 노벨 생리학·의학상을 받은 유대인 생화학자로 이 대학에서 화학을 전공했다. 나치 집권 이후 고향인 독일을 떠나 영국으로 망명했다.
  • 에두아르트 부흐너(Eduard Buchner): 1907년 노벨 화학상을 받은 화학자. 이 대학에서 교수자격 학위를 취득했고, 1934년 이 대학과 통합된 베를린 농업대학교에서 1898년에서 1909년까지 교수.
  • 에두아르트 하이네(Eduard Heine): 특수 함수와 실해석학 연구에 공헌한 19세기 수학자로 이 대학에서 박사 학위 취득.
  • 에드문트 란다우 (Edmund Landau): 해석학과 해석적 정수론에 크게 공헌한 독일의 수학자. 학사부터 박사까지 전부 이 대학에서 취득.
  • 에르빈 슈뢰딩어(Erwin Schrödinger): 1933년 노벨물리학상을 받은 물리학자. 1927년 막스 플랑크의 후임으로 이 대학 교수로 임용. 하지만 1933년 나치 집권에 반대하여 교수직을 내던지고 그라츠 대학교로 적을 옮긴다.
  • 에르하르트 슈미트(Erhard Schmidt): 수학자. 1917년 베를린대 교수로 임용되며 1929년부터 1930년까지 총장 역임.
  • 에른스트 다비트 베르크만(Ernst David Bergmann): 독일에서 태어난 유대인 화학자로 이 대학에서 교수자격 학위까지 취득했지만, 나치 집권 이후 영국으로 망명했고, 이후 이스라엘로 이주해 그곳의 핵개발을 진두지휘했다.
  • 에른스트 카시러(Ernst Cassirer): 베를린대에 철학 전공으로 입학한 후 마르부르크 대학교에서 박사 학위를 받았다. 1906년 이 대학에서 교수자격논문(Habilitationsschrift)이 통과되어 강사로 활동하다 함부르크 대학교 교수로 임용되었지만 나치 집권 이후 망명하게 된다.
  • 에른스트 체르멜로(Ernst Zermelo): 체르멜로-프렝켈 집합론으로 유명한 수학자로 이 대학에서 박사 학위 취득.
  • 에밀 바르부르크(Emil Warburg): 화학 전공으로 하이델베르크 대학교에 입학했지만 물리학으로 관심사가 바뀌었고 이후 1865년에 베를린대로 학적을 옮겨 본격적으로 물리 연구에 매진하게 됐다. 이 대학에서 교수자격 학위까지 취득했고 결국 1894년에 베를린대 정교수로 임명됐다.
  • 에밀 아돌프 폰 베링(Emil Adolf von Behring): 1901년 노벨 생리학·의학상을 받은 생리학자. 1878년 이 대학에서 박사 학위를 받았다.
  • 에밀 피셔(Emil Fischer): 1902년 노벨 화학상을 받은 화학자. 1892년부터 1919년까지 교수.
  • 엘자 노이만(Elsa Neumann): 물리학자. 여성의 대학 진학을 법적으로 보장하지 않던 시절이었지만, 막스 플랑크, 에밀 바르부르크 등의 후원으로 특별 허가를 받고 1894년부터 이 대학에서 학업을 이어나갈 수 있었다. 결국 1899년 물리학으로 박사 학위를 취득하며 베를린대에서 여성 최초로 박사 학위를 받은 인물이 된다.
  • 옌스 라이히(Jens Reich): 의학자 겸 정치가로 1989년 정국에 동독 반체제 시민운동가로 주목 받았다. 이 대학에서 의학, 분자생물학 전공.
  • 오드 하셀(Odd Hassel): 1969년에 노벨 화학상을 수상한 인물로 이 대학에서 박사 학위 취득.
  • 오스왈드 톰슨 앨리스(Oswald Thompson Allis): 신학자로 이 대학에서 박사 학위 취득.
  • 오이겐 루게(Eugen Ruge): 소설가 겸 연극 감독. 소설 '빛이 줄어드는 시절에(In Zeiten des abnehmenden Lichts)'로 2011년 독일 서적상(Deutscher Buchpreis)을 수상했다. 이 대학에서 수학 전공.
  • 오토 딜스(Otto Diels): 1950년 노벨 화학상을 받은 화학자. 이 대학에서 학석사 및 박사 학위를 받은 후 강사 생활을 하다 1915년에 외래교수로 임명되었고, 이후 1916년 킬 대학교 정교수로 부임하였다.
  • 오토 라인홀트(Otto Reinhold): 1961년부터 89년까지 독일 사회주의통일당의 핵심 연구기관이었던 사회과학 아카데미(Akademie für Gesellschaftswissenschaften)의 소장이었다. 이 대학에서 경제학 전공으로 박사 학위까지 취득했다.
  • 오토 폰 비스마르크(Otto von Bismarck): 법학 전공.
  • 오토 하인리히 바르부르크(Otto Heinrich Warburg): 1931년 노벨 생리학·의학상을 받은 생화학자. 이 대학에서 학석사 및 박사 학위를 받은 후 1912년 하이델베르크 대학교에서 교수자격 학위를 취득한다. 이후 강사로 활동하다 1921년에서 1923년까지 이 대학 외래교수로 재직했다.
  • 오토 한(Otto Hahn): 1944년 노벨 화학상을 받은 화학자. 1907년 이 대학에서 교수자격 학위를 받고 강사로 활약하다 1910년 교수로 임용되어 1934년까지 교수직을 보유한다.
  • 요아힘 아우트(Joachim Auth): 동독의 유명 물리학자로 소련 유학을 거쳐 이 대학에서 물리학으로 학위를 받았다.
  • 요아힘 자우어(Joachim Sauer): 양자화학자. 이 대학에 화학 전공으로 입학하여 교수자격 학위까지 취득한 후 1993년 교수로 임용되어 2017년까지 재직하였다. 참고로 앙겔라 메르켈의 남편이다.
  • 요한 고트프리트 갈레(Johann Gottfried Galle): 이 대학에서 수학, 철학 전공. 해왕성을 발견한 인물이다.
  • 요한 고틀리프 피히테(Johann Gottlieb Fichte): 1811년에서 1812년까지 베를린대 총장.
  • 울리히 폰 빌라모비츠-묄렌도르프(Ulrich von Wilamowitz-Moellendorff): 고전 문예학자로 이 대학에서 교수자격 학위까지 취득했다.
  • 위르겐 쿠친스키(Jürgen Kuczynski): 동독을 대표하던 경제사, 노동사 전문가로 엄청난 다작을 남긴 학자이다. 대표 저작은 총 40권에 달하는 자본주의 하 노동자 현실에 관한 역사(Die Geschichte der Lage der Arbeiter unter dem Kapitalismus) 시리즈. 1945년부터 1968년까지 이 대학 교수였다. 이 대학에서 수학한 경력도 있다.
  • 위르겐 쿠트너(Jürgen Kuttner): 문화학자 겸 연극 감독으로 라디오 진행자로도 명성이 높았다. 이 대학에 문화학 전공으로 입학해 박사 학위까지 받았다.
  • 이극로: 경제학 박사 학위 취득.
  • 이사이 슈어(Issai Schur): 수학자. 이 대학에서 교수자격 학위까지 취득한 후 강사로 활동.
  • 조지 케넌(George Kennan): 냉전하면 떠오르는 외교관으로 이 대학에서 역사 전공.
  • 제임스 프랑크(James Franck): 1925년에 노벨 물리학상을 받은 인물로 이 대학에서 박사 학위를 취득했다. 1916년 이 대학 외래교수로 부임했고 1920년에 괴팅엔 대학교 교수로 취임했다. 1933년 나치가 집권하자 그에 대한 항의로 교수직을 내려 놓고 미국으로 망명했다.
  • 카르멘 네벨(Carmen Nebel): 독일의 아나운서로 이 대학에서 교육학 전공.
  • 카를 구스타프 야코프 야코비(Carl Gustav Jacob Jacobi): 야코비 행렬로 유명한 수학자. 고전어, 수학 전공으로 이 대학에 입학하여 교수자격 학위까지 취득. 이후 쾨니히스베르크 대학교 교수로 임용되었다.
  • 카를 구스타프 헴펠(Carl Gustav Hempel): 이 대학에서 철학 박사 학위 취득.
  • 카를 룽에(Carl Runge): 룽게-쿠타 방법으로 유명한 수학자로 이 대학에서 박사 학위 취득.
  • 카를 리프크네히트(Karl Liebknecht): 이 대학에서 학석사 학위를 받은 후 뷔르츠부르크 대학교에서 박사 학위 취득.
  • 카를 리버만(Carl Liebermann): 화학 전공으로 이 대학에 입학하여 박사 학위까지 취득했다. 이후에 1870년 아돌프 폰 바이어의 후임으로 베를린대 교수로 부임했다.
  • 카를 리터(Carl Ritter): 알렉산더 폰 훔볼트와 함께 근대 지리학의 선구자로 평가 받는 인물로, 이 대학에서 박사 학위를 취득하고 1825년에 정교수로 부임했다.
  • 카를 마르크스(Karl Marx): 법학, 철학 전공. 헤겔 사망 이후 대학 정세가 급속도로 우경화한 상황인데다 이 대학에 대한 프로이센 당국의 간섭도 심했기 때문에 예나 대학교로 학적을 옮겨서 그곳에서 박사 학위를 취득하였다.
  • 카를 바이어슈트라스(Karl Weierstraß): 현대 해석학의 아버지로 불리는 수학자로 1864년 베를린 대학교 교수로 임용.
  • 카를 슈미트(Carl Schmitt): 1933년부터 1945년까지 이 대학 교수.
  • 카를 슈툼프(Carl Stumpf): 철학자 겸 심리학자로 1894년에서 1921년까지 이 대학 교수.
  • 카를 페르디난트 브라운(Karl Ferdinand Braun): 1909년에 노벨 물리학상을 받은 인물로 이 대학에서 박사 학위 취득.
  • 카린 얀츠(Karin Janz): 1967년 동독 올해의 선수로 선정되었으며 1972년 뮌헨 올림픽에서 2단평행봉과 도마 부문 금메달을 획득. 1971년 이 대학 의학과에 입학하여 교수자격 학위까지 취득하였고 이후 정형외과 의사로 활동.
  • 코미타스(Կոմիտաս): 아르메니아 근대 음악의 선구자로 이 대학에서 음악학으로 박사 학위 취득.
  • 콘스탄틴 카라테오도리(Constantin Carathéodory): 수학자. 이 대학에서 학석사 학위를 취득한 후 괴팅엔 대학교에서 박사 학위 취득. 1918년에 베를린대 교수로 임용되었다.
  • 쿠르트 레빈(Kurt Lewin): 독일에서 태어난 유태인 심리학자로 이 대학에서 교수자격 학위까지 취득하고 강사로 활동했지만 나치 집권 후 미국으로 망명했다.
  • 크리스티나 폰 브라운(Christina von Braun): 1994년부터 2012년까지 이 대학 교수. 문화학자 겸 다큐멘터리 감독으로 특히 젠더, 반유대주의 문제 전문. 집안이 매우 화려한데, 아버지인 지기스문트 폰 브라운은 프랑스 대사 등을 역임한 고위급 외교관이고, 삼촌이 바로 베르너 폰 브라운이다. 공교롭게도 외할머니인 힐데가르트 마르기스는 폰 브라운 형제와는 정반대로 나치에 저항하다 1944년 고문으로 인해 사망하였다.
  • 크리스티아네 파울(Christiane Paul): 독일의 배우로 원래 훔볼트대에서 의학을 전공하여 박사 학위까지 받고 의사로 활동하다 전업한 케이스.
  • 클라우스 오페(Claus Offe): 프랑크푸르트 학파 출신 사회학자로, 계보상 하버마스호네트 사이에 놓인다. 학생운동68운동에 열렬히 참여했던 좌파 지식인으로, 영어 저술이 많고 계량사회학적 방법론을 적극 도입해서 영미권에서도 상당히 유명. 동독 붕괴 이후 좌파색이 대폭 제거된 훔볼트대에 1995년 교수로 임명돼 2005년까지 재직. 2009년 라헬 예기가 교수로 부임하며 비판이론 계보가 이 대학에서 부활한다.
  • 테오도어 몸젠(Theodor Mommsen): 1902년 노벨 문학상을 받은 역사학자로 1861년에 이 대학 교수로 임용되어 1885년까지 활동.
  • 테오도어 슈반(Theodor Schwann): 독일의 생리학자로 이 대학에서 학부부터 시작해 박사 학위까지 취득하였다.
  • 토마스 오버엔더(Thomas Oberender): 작가 겸 연극인으로 2012년 부터 베를린 페스티벌(Berliner Festspiele) 감독으로 활약. 이 대학에 연극학 전공으로 입학하여 박사 학위까지 받았다.
  • 파울 쾨베(Paul Koebe): 균일화 정리를 증명한 수학자로 이 대학에서 박사 학위 취득.
  • 파울 프리드리히 아우구스트 아셔존(Paul Friedrich August Ascherson): 19세기의 저명한 식물학자. 이 대학에 의학 전공으로 입학하여 식물학으로 박사 학위를 받았다. 1873년 베를린대 외래교수로 임명되었다.
  • 페르디난트 게오르크 프로베니우스(Ferdinand Georg Frobenius): 수학자. 이 대학에 입학하여 박사 학위까지 취득하였고 1892년 베를린대 교수로 임용되었다.
  • 프란츠 메르텐스(Franz Mertens): 메르텐스 함수로 유명한 수학자로 이 대학에서 박사 학위까지 취득.
  • 프란츠 에른스트 노이만(Franz Ernst Neumann): 이론 물리학의 기초를 닦은 인물로 이 대학에서 박사 학위까지 취득.
  • 프란츠 폰 리스트(Franz von Liszt): 1898년부터 1917년까지 이 대학 교수.
  • 프랑크 카스토르프(Frank Castorf): 독일의 저명한 연극인으로 1992년에서 2017년까지 베를린 인민극장(Die Volksbühne Berlin) 총감독이었다. 이 대학에서 연극학 전공.
  • 프리드리히 마이네케(Friedrich Meinecke): 1920년대부터 근 30년간 독일 역사학계의 거두로 군림했던 근현대사학자. 이 대학에 역사, 독어 전공으로 입학하여 교수자격 학위까지 취득했다. 온건 보수파를 대변했던 인물로 나치 세력에 적극 찬동하진 않았지만 반유대주의를 공유하고 있었다. 1914년 이 대학 교수로 임명되나 종전 후 공산주의에 반대하며 자유대 설립에 앞장섰다.
  • 프리드리히 빌헬름 요제프 셸링(Friedrich Wilhelm Joseph Schelling): 1841년 헤겔의 후임으로 이 대학 교수로 임명.
  • 프리드리히 빌헬름 무르나우(Friedrich Wilhelm Murnau): 영화감독. 재학 당시엔 문헌학을 공부했다. 하이델베르크 대학교에서도 공부했다.
  • 프리드리히 슐라이어마허(Friedrich Schleiermacher): 1810년에서 1834년까지 교수.
  • 프리드리히 카를 폰 자비니(Friedrich Carl von Savigny): 대학 설립에 깊게 관여했던 법학자로 창립된 해부터 교수로 활약.
  • 프리드리히 케슬러(Friedrich Kessler): 이 대학에서 법학 전공으로 박사 학위까지 받았다. 하지만 나치 집권 이후 미국으로 이주, 예일대 법대에서 교수로서 활약하였다.
  • 프리드리히 키틀러(Friedrich Kittler): '디지털 시대의 데리다'로 불리던, 독일이 자랑하던 미디어 이론 전문가였다. 1993년부터 2011년까지 이 대학 교수.
  • 프리츠 리프만(Fritz Lipmann): 1951년에 황열병에 관한 연구로 노벨 생리학·의학상을 수상한 유대인 면역학자로, 이 대학에서 박사 학위까지 취득. 나치 집권 후 미국으로 망명했다.
  • 프리츠 하버(Fritz Haber): 1918년 노벨화학상을 받은 화학자로 이 대학에서 박사 학위 취득. 이후 1912년부터 생리화학 외래교수로 활동하다가 1920년에 화학과 전임교수로 임명되었다.
  • 피터 디바이(Peter Debye): 1936년 노벨 화학상을 받은 물리학자 겸 화학자. 1935년에서 1939년까지 이 대학 교수.
  • 필립 샤프(Philip Schaff): 스위스 출신 신학자로 이 대학에서 교수자격 학위까지 취득하고 강사로 활동하다 미국으로 이주하였다.
  • 하르트무트 뵈메(Hartmut Böhme): 본 대학교에서 독문학을 전공, 1977년부터 1993년까지 함부르크 대학교에서 독문학과 교수로 재직하였지만, 1994년 이 대학 문화학과 교수로 임용되어 2012년까지 재직하였다. 통일 독일 문화학(Kulturwissenschaft)의 선구자로 평가 받는 인물.
  • 하르트무트 켈블레(Hartmut Kaelble): 한스-울리히 벨러, 한스 몸젠[2] 등의 뒤를 이어 위르겐 코카와 함께 사회사 연구를 대표하는 역사학자로 활약했다. 1991년부터 2008년까지 이 대학 교수.
  • 하르트무트 호이서만(Hartmut Häußermann): 독일의 도시사회학 권위자였다. 1993년에서 2008년까지 이 대학 교수. 서독 68운동의 최중심지였던 베를린 자유대에서 1967년에 총학생회장으로 활약한 경력이 있다.
  • 하인리히 구스타프 마그누스(Heinrich Gustav Magnus): 마그누스 효과 하면 떠오르는 화학자 겸 물리학자. 이 대학에서 박사 학위까지 취득한 뒤 1845년 베를린대 정교수로 부임.
  • 하인리히 루돌프 헤르츠(Heinrich Rudolf Hertz): 이 대학에서 물리학 전공으로 박사 학위 취득.
  • 하인리히 루트비히 다레스트(Heinrich Louis d’Arrest): 요한 고트프리트 갈레와 함께 해왕성을 발견한 천문학자로 유명. 이 대학에서 수학을 전공했다.
  • 하인리히 아우구스트 빙클러(Heinrich August Winkler): 독일 역사학계의 거두로 1991년에서 2007년까지 이 대학 교수로 재직.
  • 하인리히 폰 지벨(Heinrich von Sybel): 역사가 겸 정치가로 이 대학에서 역사학으로 박사 학위까지 취득.
  • 하인리히 하이네(Heinrich Heine): 법학 전공.
  • 하인츠 베르크그륀(Heinz Berggruen): 세계적인 미술품 수집가 중 한명으로 베르크그륀 박물관(Museum Berggruen) 설립자이기도 하다. 이 대학에서 문예학, 미학사 전공.
  • 하인츠 융(Heinz Jung): 이 대학에서 경제학 전공. 이후 서독으로 이주했지만 끝까지 공산주의에 충실했다. 서독 공산당(DKP)의 대표 사상가 중 하나였다.
  • 하인츠 펠페(Heinz Felfe): KGB를 위해 활동하던 BND 요원이었다. 1961년에 체포되어 징역을 살다 1969년에 스파이 교환으로 석방된 후 동독으로 이주했다. 훔볼트대에서 범죄학 교수로 재직하다 동독 붕괴 이후 파면되었다. 이 대학에서 공부한 경력도 있다.
  • 한스 카일존(Hans Keilson): 의사 겸 소설가로 이 대학에서 의학 전공. 나치 집권 후 유대인이라는 이유로 출간한 소설도 판매 금지가 되고 의사 면허도 박탈되는 고초를 겪다 1936년 네덜란드로 망명, 남은 일생을 그곳에서 보내게 된다.
  • 한스-페터 뮐러(Hans-Peter Müller): 저명한 막스 베버 권위자로 1992년부터 2019년까지 이 대학 교수. 베버 외에 지멜, 만하임 같은 사회학자들 연구에도 공을 들여 왔지만, 부르디외 입문서를 내놓는 등 자본주의 비판론에도 관심을 표명해온 사회학자. 실제로 미국의 유명 좌파 사상가 에릭 올린 라이트의 독일 강연에 깊이 관여했고 라이트의 저작 '리얼 유토피아'로 수업을 진행하기도 했다.
  • 한스 폰 오일러-헬핀(Hans von Euler-Chelpin): 독일 출신 화학자로 이 대학에서 박사 학위를 취득하였다. 이후 스웨덴으로 이민.
  • 헤닝 하르니쉬(Henning Harnisch): 독일의 전 농구 선수로 1993년 유럽선수권 우승팀의 멤버였다. 선수 은퇴 후 이 대학에서 문화학을 전공하였고 이후 언론인으로 활동.
  • 헤르만 그라스만(Hermann Grassmann): 선형대수학의 기초를 닦은 수학자. 베를린대에서 신학, 고전어를 전공했지만 수학 강의를 들은 적은 없었다고 한다.
  • 헤르만 폰 헬름홀츠(Hermann von Helmholtz): 의학 전공으로 이 대학에 입학해 박사 학위까지 취득했다. 1871년 베를린대 물리학과 교수로 임용되며 1877년에서 1878년까지 총장으로 활약함.
  • 헤르프리트 뮝클러(Herfried Münkler): 1992년부터 2018년까지 이 대학 교수. 정치사상 분야의 권위자로 인정 받는 정치학자로 특히 니콜로 마키아벨리, 토머스 홉스에 정통하다. 정치이론에 그치지 않고 다방면에 걸쳐 방대한 저술 활동을 해왔으며, 미디어에도 자주 노출된 인물이라서 훔볼트대 교수들 중에서도 특히 인지도가 높았다.
  • 헬가 피히트(Helga Picht): 이 대학에 입학해 교수자격 학위까지 받고 1986년 훔볼트대 교수로 임명됐지만 동독 붕괴 이후 단행된 숙청 조치로 인해 해임되고 만다. 동독에서 조선학으로 정교수가 된 첫 인물이며 에리히 호네커의 전담 통역가로서 활약한 경력도 있다. 교수직에서 해임된 이후 번역, 강연 활동에 매진하게 되는데 특히 토지를 번역하면서 한국에도 이름을 알릴 수 있었다.
  • 헬무트 레크나겔(Helmut Recknagel): 1960년 스쿼밸리 올림픽에서 독일인으로서 스키점프 부문에서 첫 금메달을 딴 인물로 1962년 동독 올해의 선수로 선정되었다. 선수 은퇴 후 이 대학에 수의학 전공으로 입학하여 박사 학위까지 받고 이후 수의사로 활동.
  • 헬무트 코흐(Helmut Koch): 동독의 대표 수학자 중 한명이었다. 이 대학에서 학석사 학위를 받았고 수학과 교수로도 활동했다.
  • 호르스트 마쉴러(Horst Maschler): 금속 관련 전문가이자 독일 사회민주당 소속 정치인으로 브란덴부르크 감사원장 역임. 이 대학에서 제철학(Eisenhüttenkunde) 전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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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서독 신좌파 운동의 진원지였던 자유대에서도 진보 교수로 부각되던 사회학자. 서독 68운동의 아이콘 루디 두치케의 박사논문 지도교수이기도 했다.[2] 테오도어 몸젠의 증손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