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쿠데리아 페라리 HP

덤프버전 :

스쿠데리아 페라리 관련 틀
[ 펼치기 · 접기 ]








<nopad> 파일:페라리 로고.svg
스쿠데리아 페라리 HP
Scuderia Ferrari HP
법인명
Scuderia Ferrari S.p.A.
국적
[[이탈리아|

이탈리아
display: none; display: 이탈리아"
행정구
]]

모기업
페라리
타이틀 스폰서
HP Inc.
프리미엄 파트너
쉘 plc / 산탄데르 은행 / VGW 홀딩스 / 푸마
창단
1929년 11월 16일 (94주년)
레이스 참가 횟수
1079회[1](1076회 출발[2])
설립자
파일:이탈리아 국기.svg 엔초 페라리 (Enzo Ferrari)
본부
이탈리아 에밀리아로마냐 주 모데나 현 마라넬로
CEO
파일:이탈리아 국기.svg 베네데토 비냐 (Benedetto Vigna)
감독
팀장 & 총괄 매니저
파일:프랑스 국기.svg 프레데릭 바수르 (Frédéric Vasseur)
스포팅 디렉터
파일:이탈리아 국기.svg 디에고 로베르노 (Diego Ioverno)
섀시 총괄
파일:이탈리아 국기.svg 엔리코 카르딜레 (Enrico Cardile)
PU 총괄
파일:이탈리아 국기.svg 엔리코 구알티에리 (Enrico Gualtieri)
전략 총괄
파일:인도 국기.svg 라빈 자인 (Ravin Jain)
물류 공급 & 제조 총괄
파일:이탈리아 국기.svg 엔리코 라카 (Enrico Racca)
드라이버
16. 파일:모나코 원형 국기.svg 샤를 르클레르 (Charles Leclerc)[3]
55. 파일:UEFA ESP.png 카를로스 사인츠 주니어 (Carlos Sainz Jr.)[4]
테스트 드라이버
39. 파일:UEFA ISR.png 로버트 슈워츠만 (Robert Shwartzman)리저브
99. 파일:UEFA ITA.png 안토니오 지오비나치 (Antonio Giovinazzi)리저브
38. 파일:UEFA GBR.png 올리버 베어먼 (Oliver Bearman)리저브
-. 파일:UEFA ITA.png 다비데 리곤 (Davide Rigon)개발
-. 파일:UEFA ITA.png 안토니오 푸오코 (Antonio Fuoco)개발
-. 파일:모나코 원형 국기.svg 아르투르 르클레르 (Arthur Leclerc)개발
링크
파일:페라리 로고.svg | 파일:인스타그램 아이콘.svg |
파일:X Corp 아이콘(블랙).svg
| 파일:페이스북 아이콘.svg
차량
섀시
SF-24
엔진
페라리 066/12
경기 기록
드라이버 챔피언 (15회, 최다)
1952, 1953, 1956, 1958, 1961, 1964, 1975, 1977, 1979, 2000, 2001, 2002, 2003, 2004, 2007
컨스트럭터 챔피언 (16회, 최다)
1961, 1964, 1975, 1976, 1977, 1979, 1982, 1983, 1999, 2000, 2001, 2002, 2003, 2004, 2007, 2008
레이스 우승
244회
포디움
810회
폴 포지션
249회
패스티스트 랩
261회
최근 시즌 성적 (2023)
3위(406 pts)

페라리의 포뮬러 1 엔진 컨스트럭터 참가 기록
파일:148824FB-52B1-4DA3-90A2-F5E1B4C3C959.png
첫 참가
1950 모나코 GP
레이스 참가 횟수
1083 경기(1079 경기 출발)
커스터머
커티스 크래프트, 쿠퍼, 드 토마소, 미나르디,
달라라, 롤라, 레드불, 토로 로쏘,
스파이커, 포스 인디아, 자우버, 마러시아,
하스, 알파 로메오
레이스 우승
246회
포디움
818회
폴 포지션
251회
패스티스트 랩
270회
챔피언십 횟수
드라이버
15회
컨스트럭터
16회

1. 개요
2. 상세
3.1. 2024 시즌 경기 성적
3.2. 역대 스쿠데리아 페라리 차량
3.3. 역대 출전 드라이버 및 기록
4. 여담
4.1. 일관성 없는 작명법



1. 개요[편집]


파일:scuderia ferrari.png
#essereFerrari🔴
포뮬러 1에 참가 중인 이탈리아 국적의 레이싱 팀. F1에서 가장 오래 된 레이싱 팀이며, '스쿠데리아'는 이탈리아어로 '마구간'을 뜻한다. 1958 시즌부터 시행된 컨스트럭터 챔피언십 이래 최다 챔피언 타이틀과 최다 그랑프리 우승 기록을 보유하고 있는 명문 팀이다.


2. 상세[편집]


1950년 포뮬러 1 탄생 이래 74년의 모든 순간을 함께한 살아있는 역사이자 모터스포츠 역사상 가장 강력한 브랜드 가치와 헤리티지, 팬덤[5]을 가지고 있으면서 동시에 레이싱의 대명사로도 불리는 팀이다. 1929년 창립 이후 미하엘 슈마허, 니키 라우다, 키미 래이쾨넨, 질 빌르너브, 후안 마누엘 판지오 등 수많은 유명 드라이버들이 페라리를 거쳐갔고,[6] 현재도 F1 드라이버들이 페라리의 시트를 따는 것을 가장 큰 목표 중 하나로 여기고 있다.

페라리의 창립자인 엔초 페라리가 자동차 생산업체인 페라리를 만들기 전에 레이싱 팀을 만들었고 이후 레이싱 팀의 자본을 조달하기 위해 로드카를 만들어 판매하기 시작한 것이 스쿠데리아 페라리 역사의 시작이다.[7] 페라리에서 생산하는 모든 차량의 앞 펜더에 부착된 방패 모양 엠블럼[8]에 새겨진 S.F가 바로 이 레이싱팀의 약자로, 이 팀의 존재 자체가 페라리에게 있어서 단순한 상징성을 넘어 페라리 그 자체임을 증명한다.

때문에 페라리는 본디 레이싱 팀에서 출발한 만큼 포뮬러 1을 비롯한 다른 레이싱 카테고리와 떼려야 뗄 수 없는 관계에 있다. 포뮬러 1에서 가장 많은 우승 횟수를 기록했으며, 현재까지 모든 시즌에 참가한 유일한 팀이기도 하다.[9] 위에서도 기술했듯이 다른 메이커와 달리 양산차나 슈퍼카를 팔기 위해 포뮬러 1에 출전하는 게 아니라 포뮬러 1에 출전하기 위해 차를 팔기 시작한 회사이니 당연한 것일지도 모른다.[10] 지금은 양산차 사업의 크기가 비교도 안 될 만큼 커져 대기업이 되었지만 여전히 페라리라는 자동차 회사에 모터스포츠의 비중은 절대적이라 할 수 있다.

이러한 인기 덕분인지, 한때 포브스에서 매년 발표하는 세계에서 가장 가치 있는 50개 스포츠팀에 2010년부터 2015년[11]까지 6년 연속으로 등재되었던 적도 있었고, 현재도 F1 팀들 중에서는 가장 가치있는 팀들 중 하나로 평가받고 있다.[12] 2010년대에 들어서 레드불이나 메르세데스 같은 팀이 거대한 팬덤을 거느리고 있어도 여전히 일반 사람들은 F1 하면 미하엘 슈마허와 빨간색의 페라리 레이스카를 떠올리는 것을 보면 그러하다.

2023 시즌 기준으로 스쿠데리아 페라리는 로열 더치 쉘, 산탄데르 은행[13], VGW 홀딩스, 푸마를 프리미엄 스폰서로 두고 있다. 2023 시즌 들어 하만, 뱅앤올룹슨, DXC 테크놀로지[14] 등 새로운 스폰서들도 많이 영입했다.

2024시즌 기준 페라리의 드라이버는 모나코 국적의 샤를 르클레르스페인 국적의 카를로스 사인츠 주니어이며 2025년부터 메르세데스 F1 팀의 리빙 레전드 루이스 해밀턴이 페라리와 계약을 체결해 사인츠를 대체할 것이다.


3. 역사[편집]


파일:scuderia ferrari.png
파일:다른 뜻 아이콘.svg
은(는) 여기로 연결됩니다.
상세한 역사에 대한 내용은 스쿠데리아 페라리/역사 문서
, {{{#!html }}}에 대한 내용은 문서
#s-번 문단을
#s-번 문단을
# 부분을
# 부분을
, {{{#!html }}}에 대한 내용은 문서
#s-번 문단을
#s-번 문단을
# 부분을
# 부분을
, {{{#!html }}}에 대한 내용은 문서
#s-번 문단을
#s-번 문단을
# 부분을
# 부분을
, {{{#!html }}}에 대한 내용은 문서
#s-번 문단을
#s-번 문단을
# 부분을
# 부분을
, {{{#!html }}}에 대한 내용은 문서
#s-번 문단을
#s-번 문단을
# 부분을
# 부분을
, {{{#!html }}}에 대한 내용은 문서
#s-번 문단을
#s-번 문단을
# 부분을
# 부분을
, {{{#!html }}}에 대한 내용은 문서
#s-번 문단을
#s-번 문단을
# 부분을
# 부분을
, {{{#!html }}}에 대한 내용은 문서
#s-번 문단을
#s-번 문단을
# 부분을
# 부분을
, {{{#!html }}}에 대한 내용은 문서
#s-번 문단을
#s-번 문단을
# 부분을
# 부분을
참고하십시오.






3.1. 2024 시즌 경기 성적[편집]


<rowcolor#fff> 라운드
구분
드라이버 종합 순위 및 레이스 결과
컨스트럭터 순위 및 획득 포인트
샤를 르클레르
카를로스 사인츠 jr.
올리버 베어먼
3위 59pts
4위 55pts
12위 6pts
2위 120pts
1R
[[바레인|
파일:바레인 국기.svg
바레인
]][[틀:국기|
]][[틀:국기|
]]
바레인 GP
P4
P3
-
27pts +27pts
2R
[[사우디아라비아|
파일:사우디아라비아 국기.svg
사우디아라비아
]][[틀:국기|
]][[틀:국기|
]]
사우디아라비아 GP
파일:패스티스트랩.png P3[F]
-[15]
P7[16]
49pts +22pts
3R
[[호주|
파일:호주 국기.svg
호주
]][[틀:국기|
]][[틀:국기|
]]
오스트레일리아 GP
파일:패스티스트랩.png P2[F]
P1
-
93pts +44pts
4R
[[일본|
파일:일본 국기.svg
일본
]][[틀:국기|
]][[틀:국기|
]]
일본 GP
P4
P3
120pts +27pts
5R
[[중국|
파일:중국 국기.svg
중국
]][[틀:국기|
]][[틀:국기|
]]
중국 GP
P4
P5
151pts +31pts
6R
파일:마이애미 시기.svg 마이애미 GP
P
P
pts +pts
7R
파일:에밀리아로마냐 주장.svg 에밀리아 로마냐 GP
P
P
pts +pts
8R
[[모나코|
파일:모나코 국기.svg
모나코
]][[틀:국기|
]][[틀:국기|
]]
모나코 GP
P
P
pts +pts
9R
[[캐나다|
파일:캐나다 국기.svg
캐나다
]][[틀:국기|
]][[틀:국기|
]]
캐나다 GP
P
P
pts +pts
10R
[[스페인|
파일:스페인 국기.svg
스페인
]][[틀:국기|
]][[틀:국기|
]]
스페인 GP
P
P
pts +pts
11R
[[오스트리아|
파일:오스트리아 국기.svg
오스트리아
]][[틀:국기|
]][[틀:국기|
]]
오스트리아 GP
P
P
pts +pts
12R
[[영국|
파일:영국 국기.svg
영국
]][[틀:국기|
]][[틀:국기|
]]
영국 GP
P
P
pts +pts
13R
[[헝가리|
파일:헝가리 국기.svg
헝가리
]][[틀:국기|
]][[틀:국기|
]]
헝가리 GP
P
P
pts +pts
14R
[[벨기에|
파일:벨기에 국기.svg
벨기에
]][[틀:국기|
]][[틀:국기|
]]
벨기에 GP
P
P
pts +pts
15R
[[네덜란드|
파일:네덜란드 국기.svg
네덜란드
]][[틀:국기|
]][[틀:국기|
]]
네덜란드 GP
P
P
pts +pts
16R
[[이탈리아|
파일:이탈리아 국기.svg
이탈리아
]][[틀:국기|
]][[틀:국기|
]]
이탈리아 GP
P
P
pts +pts
17R
[[아제르바이잔|
파일:아제르바이잔 국기.svg
아제르바이잔
]][[틀:국기|
]][[틀:국기|
]]
아제르바이잔 GP
P
P
pts +pts
18R
[[싱가포르|
파일:싱가포르 국기.svg
싱가포르
]][[틀:국기|
]][[틀:국기|
]]
싱가포르 GP
P
P
pts +pts
19R
[[미국|
파일:미국 국기.svg
미국
]][[틀:국기|
]][[틀:국기|
]]
미국 GP
P
P
pts +pts
20R
멕시코 GP
P
P
pts +pts
21R
브라질 GP
P
P
pts +pts
22R
파일:라스베이거스 시기.svg 라스베가스 GP
P
P
pts +pts
23R
카타르 GP
P
P
pts +pts
24R
아부다비 GP
P
P
pts +pts


3.2. 역대 스쿠데리아 페라리 차량[편집]





3.3. 역대 출전 드라이버 및 기록[편집]





4. 여담[편집]


  • 자신들의 차량에 대해 자부심이 높기 때문에, 페라리 드라이버는 차가 구려도 차가 구리다고 하지 못하는 딜레마에 처하는 경우가 많다. 알랭 프로스트가 그랬듯이[17] 차가 구리다고 대놓고 욕하면 아무리 최고의 드라이버라 해도 쫒겨나는 경우가 있다.

  • 하지만 재미있게도, 역사적으로 보면 페라리의 경주차는 주 경쟁자에 비해 성능이 뒤쳐지는 경우가 상당히 많았다. 엔진성능을 우선시하던 엔초의 고집[18]때문에 로터스를 필두로 한 영국 백야드 빌더 팀들에 미드십, 모노코크 섀시, 다운포스 등 기술의 도입에 모조리 뒤쳐졌던 1960년대 - 70년대도 있었고, 당장 2000년대 초중반의 전성기가 끝나고 2007년에 키미 래이쾨넨이 마지막으로 챔피언을 차지한 이후로는 매년 경쟁팀들에 비해 묘하게 나사빠진 차를 만들고 있다. 그러나 2012년 시즌처럼 시즌 초반에는 중위권에 어울리는 만들었으나 말미에 가서는 꾸준한 업데이트를 통해 끝까지 챔피언쉽 경쟁을 할 정도로 차 성능을 끌어올린 경우도 있다. 이런 딜레마는 존 프랑켄하이머의 영화인 <그랑프리>[20]에도 나오며, 론 하워드의 러시 : 더 라이벌에도 간접적으로 등장한다.

  • 또한 이 팀의 치명적인 고질병 중 하나는 중요한 상황에서 전략부의 대삽질로 말아먹는 경우가 아주 많다는 것이다. 탑 3팀 중에서도 유독 페라리만 이런 일이 많다. 2010년대의 경쟁자인 메르세데스와 비교하면 이 특성이 매우 두드러지는데, 메르세데스의 경우는 실버애로우 전쟁이 벌어졌던 2015년 및 2016년을 제외하면 칼날같이 정확한 작전구상으로 좋은 결과를 거둔 적이 많은 반면, 페라리는 터무니없는 미스로 결과를 날려버린 케이스가 많다. 드라이버가 전략팀보다 전략을 더 잘 짜는 팀 이것 또한 팀의 특성으로 넘기기엔 고질병 수준.

  • 반대로 다른 팀에서 기껏 좋은 드라이버들을 데리고 와서 전략이나 차의 성능으로 발목을 잡아버리는 것을 페라리의 팀컬러로 여기는 마조히스트 티포시들도 존재한다. 명문으로 유명한 맥라렌, 메르세데스, 윌리엄스가 다 그렇지만, 당장 차의 성능이 안 좋거나 실망스러운 모습을 보여줘도 팀 네임을 믿고 들어와주는 뛰어난 드라이버들이 많은데 그런 드라이버들의 통수를 치는것이 전통.

  • 전반적으로 퍼스트 드라이버와 세컨드 드라이버의 구분을 철저하게 했다. 한 팀이지만 독립된 선수로써 경쟁을 하는 F1 안에서는 잔인하다는 얘기를 많이 듣는 편. 실제로 쫒기고 있거나 우승을 노리고 있을 때에 더 빠른 드라이버를 위해 다른 드라이버를 서포트 역할로 돌려 놓는 경우가 많았다. 특히 슈마허-바리첼로, 알론소-마싸 시절에 이런 현상이 심했고 그만큼 비판도 많이 받았으나 최근엔 오히려 다른 팀들의 팀 오더가 더 심해지고 페라리는 두 드라이버를 거의 동등한 위치에 놓는 입장이 되었다.

  • 페라리의 팀 오더 관련 이슈 중 가장 대표적인 예시가 미하엘 슈마허의 전성기 시절 루벤스 바리첼로의 사례들로, 상당한 기량을 갖추고 있었음에도 누가 봐도 슈마허의 서포터였다.[21] 사실 이런 서열 구분은 월드 챔피언을 다투는 팀들은 자주 쓰는 방법이긴 하다. 특히 포뮬러 원 월드 드라이버 챔피언은 팀당 2명의 선수가 있어도 딱 한 명에게만 주어지는 영광의 자리이기 때문에 팀의 입장에선 둘 사이에 완전 자유 경쟁을 허락하거나, 단 한 명에게 모든 전력을 집중시켜야 하는 양자택일을 해야 한다. 자유 경쟁의 경우는 말이 그렇다는 것이고, 실제로는 타이틀에 도전하는 팀들은 대체로 팀킬을 막기 위해 두 드라이버 사이의 경쟁의 여지를 없애고자 노력한다. 그래서 2007, 2008 시즌 때도 페라리는 2007년에는 키미를, 2008년에는 마싸에게 월드 타이틀에 도전할 수 있도록 했다. 그리고 미카 해키넨이 챔피언이 되던 시절의 맥라렌도 데이빗 쿨싸드를 서포터 역할로 두었었다. 이는 쿨사드 본인이 인터뷰에서 밝힌 부분. 그리고 해밀턴-보타스 체제의 메르세데스나 베르스타펜-페레즈 체제의 레드불에서도 팀 오더가 나온 바가 있었다. 특히 2021년 실로 오랜만에 승기를 잡았던 레드불은 페레즈를 예선부터 레이스까지 내내 윙맨으로 부려먹기도 했을 정도.

  • 그 중 유명하면서 욕을 엄청 먹고 있는 경우가 그 유명한 알론소-마싸 시기의 페르난도 이즈 패스터 댄 유. 당시 마싸는 알론소보다 앞에서 달리고 있었고 랩 타임도 빠른 편이었지만, 알론소가 챔피언십 우승을 노리고 있었기 때문에 팀은 교신으로 마싸에게 "알론소가 너보다 빠르다. 내 말 무슨 말인지 알겠나"라고 말했다. 2002년부터 2010년까지는 직접적인 팀 오더가 금지되어 직설적으로 통보하지 못했기 때문에 알론소가 뒤에 왔을 때 방어하지 말고 포지션을 내 주라고 돌려 말한 것이다. 물론 마싸에게 그렇게 말하고 나서 미안하다고는 했지만 당시 마싸 팬들에게 엄청난 욕을 먹었다. 자매품으로 과거 슈마허-바리첼로 시절 오스트리아 GP에서 챔피언십을 위해 미하엘을 보내 줘라라고 당시 팀 감독 장 토드 가 대놓고 요구한 경우가 있었다.

  • 공교롭게도 2018년 시즌에서도 독일 GP에서 앞서가던 키미에게 페텔에게 양보하라는 팀 오더가 있었다. 중계진들도 여기에 대해서 '2018년 버전 페르난도 이스 패스터 댄 유'라고 언급할 정도. 다만 여기선 래이쾨넨이 다음 번에는 돌려 말하지 말고 그냥 요점만 말하라고 떽떽거린 것 빼고는 별다른 트러블은 없었지만, 정작 자리를 비켜줬더니 1등으로 달리고 있던 페텔은 얼마 못 가서 방호벽에 부딪히고 리타이어, 독일 GP 우승은 해밀턴에게 돌아갔다.

  • 어쨌든, 언제나 이런 팀 오더에 대해서 의견이 분분한 F1이기 때문에[22] 페라리의 이런 확고한 철학은 호불호가 극명하게 갈린다. 그래서 보통 드라이버와 계약할 때도 미리 퍼스트 드라이버인지 세컨드 드라이버인지 정해놓고 싸인을 하거나[23] 빠르면 1~2년 사이에 두 드라이버 사이의 서열을 정리시키려 하는 성향이 있다. 그러나 페텔을 영입하고 나서는 키미와 페텔이 상당히 찬한 사이기 때문인지, 혹은 페라리가 공식적으로는 퍼스트 세컨드 드라이버 체제를 버리겠다고 해서인지는 모르겠으나 키미에게 세컨드 드라이버로서의 희생을 강요하지도 않고 지원도 잘해주었다.

  • 이와 가장 대조적인 팀이 레드불 레이싱으로, 레드불은 강팀 반열에 올라선 이래로 매년 팀메이트 간의 경쟁이 매우 치열하며, 매년 최소 한 번씩은 팀킬이 발생한다. 베르스타펜과 리카도가 드라이버로 있던 시절까진 그랬지만, 가슬리, 알본, 페레즈로 이어지는 세컨드 드라이버 라인업부터는 베르스타펜이 팀 내에서 독보적인 위치를 점하게 되면서 명실상부한 퍼스트로 올라섰다.

  • 페라리는 F1이 공식적으로 열린 1950 시즌부터 섀시 컨스트럭터로도 활동했는데, 당시 이탈리아 국적의 드라이버였던 클레멘테 비온데티는 페라리의 V12 엔진이 아닌 재규어의 XK 3.4L 직렬 6기통 엔진을 페라리 166S 섀시에 얹고 참가한 적이 있었다.[24]
파일:DYbR1YeWAAIw2FQ.jpg
7 VOLTE CAMPIONE DEL MONDO[25]
SIMPLY THE BEST
  • 어느 팀이나 전성기와 침체기를 겪지만 특히 페라리는 한 번 슬럼프에 빠지면 상당히 오랜 기간 헤매는 모습을 보여주었는데, 이는 단일 시즌을 놓고 봐도 마찬가지이다. F1은 1년에 20경기 안팎의 그랑프리를 치르게 되며, 매 경기마다 조금씩 피드백을 거치며 시즌 막판까지 차량 업데이트를 한다. 이 과정에서 페라리는 다른 팀에 비해 상대적으로 버벅대는 경우가 많았다. 특히 2007년에는 키미가 시즌 막바지에 이르러 극적으로 챔피언에 등극한 이후로는 [26]이러한 모습이 더욱 두드러진다. 특유의 고집으로 인해 차량 개발이 망한 적도 있고, 차량이 잘 개발되어도 경기에서의 거대한 삽질로 말아먹는 경우가 많았다. 또는 1976년 라우다, 1998/2006년 슈마허, 1999년 어바인, 2008년 마싸, 2017-18년 페텔, 2022년 르클레르 등 연속되는 불운으로 뒷심이 약해져 챔피언이 날아간 경우도 많았다. 최대 전성기였던 슈마허 시절도 슈마허와 로스 브런, 장 토드 등이 힘을 합쳐 몇 년간 팀을 싹 뜯어고친 결과물이었다. 물론 프론트 엔진에서 미드십 구조로 넘어가는 시기였던 1961년에 대단히 잘 적응해서 압도적인 모습을 보인 적이 있었고, 라우다나 슈마허 시대로 대표되는 압도적인 전성기도 있었던 만큼 이 팀이 절대 수준이 떨어지는 팀은 아니다. 사인츠도 "페라리는 생각보다 훨씬 멋진 팀"이라고 칭찬한 바가 있다.

  • 원래 페라리 레이스카의 도색은 지금보다 훨씬 진한 와인색에 가까운 빨강이었다. 2020년 토스카나 그랑프리에 1000번째 GP 기념으로 들고 나온 리버리가 원래 페라리의 색이다. 컬러 TV 보급 초창기에 채도가 낮아 페라리의 레드가 까맣게 보인다는 것을 이유로 더 연해진 레드를 채택했고 이후 90년대부터 말보로가 스폰서로 참여하면서부터 더 밝아진 레드를 사용하게 되었다.


4.1. 일관성 없는 작명법[편집]


섀시 코드 네임이 상당히 불규칙한 편이다. 이리저리 튀긴 해도 2000년대에는 'F2004' 같은 식으로 F 뒤에 해당 년도를 붙이는 경우가 많았던 것처럼 나름대로 새 규칙을 만들어서 그것대로 잘 적용했던 경우가 대부분이었는데, 이마저도 2010년대 이후로는 그냥 자기네들 마음대로 이름을 짓는 경우가 많아졌다. 섀시 코드 네임 명이 일정한 규칙을 따르는 경우가 많은 타 팀들[27]과는 매우 대조적이다.

포뮬러 원 초창기였던 1960년대까지는 란치아가 개발하던 차를 사 온 1956년의 D50 등의 몇 번의 예외를 제외하면 275 F1, 512 F1처럼 양산차 작명법처럼 세 자릿수 숫자에 F1을 붙이는 방식을 고수하였고 1970년대부터 한 숫자를 고정적으로 적용하여 312 B, 312 T, 312 T2, ... 방식으로 뒤에 붙는 알파벳과 숫자로 모델을 구별하고 큰 차이가 없다면 모델명 뒤에 그 해 년도 붙여 312 F1-66, 312 B3-74 등 나름 일관적인 태도를 보이다가 1985년 156/85가 이 규칙을 깬 후 1986년 F1-86의 등장 후 1991년 F1-91[28]까지 F1- 명칭을 이어갔다.

1992년 F 92 A의 등장부터 작명법이 변경되며 슬슬 네이밍이 들쑥날쑥 해졌는데, 이 작명법은 다음 해까지 쓰인 후 갑자기 70년대의 작명법으로 돌아가 1994년과 1995년에 각각 412 T1, T2로 이름지은 후 1996년 Ferrari의 F를 70년대 작명법 앞에 붙여 F310으로 이름짓고, 다음 해엔 -97이 아닌 B를 뒤에 붙이며 규칙을 또 깨더니, 1998년에는 F300, 1999년에는 F399라는 규칙 없는 이름들을 짓게 된다.

이렇게 요동을 치던 이름은 F1-2000 이후 2001년부터 F2001부터 2006년을 제외하면 'F+그 해의 연도' 작명법을 사용하며 잠잠해졌으나, F2008을 마지막으로 다시 이 작명법이 깨졌다.[29]

이후 섀시명은 매번 달라지는데, 2009년엔 F60, 2010년엔 F10, 2011년엔 150° 이탈리아[30], 2012년엔 갑자기 예전의 작명법으로 회귀해 F2012, 2013년엔 F138, 2014년엔 F14 T였다. 2015년부터는 앞에 붙던 F가 SF로 변경되며 SF-15T가 되고 그 다음 해에는 숫자는 이어받았으나, 뒤의 터보를 의미하던 T를 하이브리드의 H로 바꾸며 SF-16H로 명명했다.

2017년에는 페라리 창립 70주년을 기념한다며 년도 대신 70을 붙이고 뜬금없이 하이픈을 떼며 SF70H로 점프하였고, 2018년의 섀시 코드 네임은 SF71H로, 그냥 1을 더했다. 2019년엔 SF90으로 점프했으며, 2020년에는 2018년처럼 SF90에 1을 더한 SF91이 되지 않을까하고 예상했었으나 스쿠데리아 페라리의 1000경기 출전을 기념하여 SF1000으로 백의 자리도 아니고 천의 자리로 숫자를 점프시켜 버렸다.

2021년에는 2018년까지의 규칙으로 돌아와 SF21로 명명했으며,[31] 기념 네이밍인 2022년 F1-75[32]을 제외하고는 'SF+당 해 년도' 네이밍이 도입되었고, 2023년부터는 다시 사이에 하이픈을 넣은 후 SF-23, SF-24로 정하며 현재에 이른다.

사실 페라리가 생산하는 차량들의 코드 네임도 상당히 직관적이지 않은 편이다. 다른 회사들의 경우는 어느 정도 일관적인 이름을 붙이는 데 반해, 페라리의 코드 네임은 그 나름의 규칙을 알지 못하는 사람이 봤을 땐 상당히 혼란스럽다. 그 와중에 288 GTO-F40-F50-Enzo Ferrari-LaFerrari로 이어지는 미드쉽 하이퍼카 라인업의 네이밍도 중구난방.[33]




[1] NART 참가 포함.[2] NART 참가 포함, 1950시즌 프랑스 GP 미포함.[3] 레이스 엔지니어는 샤비에르 마르코스 파드로스 (Xavier Marcos Padros)[4] 레이스 엔지니어는 리카르도 아다미 (Riccardo Adami)[5] 티포시라고 불리는 페라리의 팬덤은 전 세계적으로 강력한 팬덤 중 하나로 불린다.[6] 선술한 드라이버들은 빌르너브를 제외하고 모두 페라리에서 챔피언을 달성한 드라이버들이다.[7] F1에 공식 엔트리된 이름도 심플하게 '팀', '레이싱'이 아닌 'Scuderia Ferrari' 라고 명시된다. 페라리는 F1 이외에도 전세계의 수많은 모터스포츠에 참가했다. 지금도 참가하지만 스쿠데리아 페라리라는 이름의 팀은 보통 F1에 참가 중인 페라리 팀을 지칭하는 이름이다. F1 이외의 다른 카테고리 레이스에 참가할 경우엔 다른 이름을 쓴다. 대표적으로 르망 24시가 있는데 1960년대 포드 GT40과 붙을 당시엔 S.p.A Ferrari SEFAC라는 이름으로 출전했었고, 미국의 데이토나 24시 등의 경기에 N.A.R.T (North American Racing Team)라는 이름으로 참가하기도 했다.[8] 엠블럼을 제거하는 별도의 주문도 가능하지만 그 누구도 그렇게 하지 않는다.[9] 다만 처음부터 끝까지 100% 참가한 것은 아니다. 모든 해에 참전을 한 건 맞으나, 1976년 시즌 오스트리아 GP 때와 같이 모든 그랑프리에 참전한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그러나 모든 해에 참전을 한 것만으로도 이 팀의 위상을 쉽게 알 수 있다.[10] 이러한 행보는 맥라렌의 창업자 브루스 맥라렌과도 일맥상통한다. 그 역시 레이싱을 위해 기타 사업을 시작했고 양산차 사업으로 현재까지 이어지는 중.[11] 2010년은 공동 16위, 11년은 3계단 올라간 공동 13위, 12년은 2계단 하락한 공동 15위, 13년은 6계단 떨어진 21위, 14년 공동 21위, 15년은 14년도보다 11계단이 떨어진 32위로 해가 갈수록 순위가 하락되었는데, 이 다음 해부터 랭킹에서 빠지게 되었다.[12] 현재 대략 1조 4~5천억대로 추산된다.[13] 2010년대 초중반 페라리의 타이틀 스폰서였다. 이후 스폰서쉽을 중단했다가 같은 스페인 국적인 카를로스 사인츠 주니어의 이적에 힘입어 2022 시즌부터 다시 후원한다. 사인츠의 개인 스폰서로 알려져 있기도 하다.[14] 미국 버지니아 주 애쉬번에 본사를 둔 미국의 다국적 정보 기술 서비스 및 컨설팅 회사로, 프리미어리그를 즐겨 보는 사람이라면 빠르게 눈치챘을 수 있겠지만 다름 아닌 맨유의 서브 스폰서이다.[F] A B 패스티스트 랩 달성으로 인한 1pt 추가 득점[15] 맹장염으로 인해 결장. 베어먼이 대체 출전[16] F1 데뷔[17] 1991년 페라리가 계속 삽질을 하는 상황에서 프로스트는 당시 차량인 642의 저조한 성능을 꾸준히 언론에 노출했고, 결정타로 서스펜션이 맛이 갔던 일본 GP에서는 642의 끔찍한 성능을 두고 핸들링이 트럭을 타는 것 같다고 표현하였다. 프로스트는 이 당시에도 이미 3회 챔피언에 달하는 당대 최고의 드라이버였는데 비록 한 경기만 남아 있던 시점이긴 했지만 이 발언 때문에 시즌 도중 잘려서 실직자가 됐다.[18] 공기역학은 스스로 엔진 하나 못 만드는 것들이나 신경쓰는 것이라는 투의 말을 남긴 적이 있다. 1960년에 한 드라이버가 250 테스타로사의 윈드실드 설계 때문에 최고 속도가 높게 안 나온다고 하자 했던 발언인데, 당시까지만 해도 에어로보다는 엔진의 성능이 차량의 종합적인 성능에 끼치는 영향이 컸던 시기이긴 했기 때문에 아주 틀린 소리는 아니었다. 내구 레이스계에서는 페라리의 전성기였어서 '에어로 따위'는 딱히 신경 안 써도 됐던 시기이기도 했고. 비슷한 것으로, 재규어 E-타입을 보고 "우리는 우리가 신형 엔진 직접 개발해서 쓰는데 쟤네는 구식 엔진 쓰면서 겉만 번지르르하다" 라는 투로 비꼬았는데 이게 '엔초 페라리가 E-타입을 예쁘다고 인정했다'라고 와전된 이야기도 유명하다.[19] 솔 바스가 많은 부분을 담당했다.[20] 60년대라고는 믿기지 않는 촬영과 편집[19]을 자랑하는 영화로, 레이싱 팬이 아니라면 지루할 수 있지만 레이싱 팬이라면 반드시 봐야 할 고전영화이다.[21] 하지만 실제로 슈마허가 바리첼로의 덕으로 그 대단한 커리어를 쌓은 것은 아니였으며, 실제로 바리첼로 덕을 본 경기도 손에 꼽을 정도이다. 그러나 둘이 맞붙을 상황이 되면 여지없이 바리첼로에게 팀오더를 내렸다.[22] 팀오더가 순수한 경쟁을 부정한다고 하는 의견과 이해할 수 있는 하나의 전략이라고 하는 의견으로 나뉜다.[23] 샤를 르클레르도 페라리에 들어올 때 감독 마티아 비노토가 페텔이 퍼스트, 자신이 세컨드라는 것을 확실히 했었다고 했다.[24] 아마도 이 엔진이 당시 양산차 최초로 200 km/h를 기록한 XK120의 엔진이어서 장착하였던 것으로 보인다.[25] 이탈리아어로 "7회 세계 챔피언". 개인 통산 7번째 월드 챔피언을 확정지은 2004 벨기에 그랑프리에서 촬영되었다.[26] 2등인 해밀턴과 알론소와는 고작 1점 차이였다. 만약 맥라렌의 불화가 없었다면 챔피언을 빼앗겼을 가능성이 높다.[27] 대표적으로 메르세데스, 레드불, 윌리엄스 등. 페라리 다음으로 역사가 가장 긴 맥라렌은 설립자가 사망한 뒤로 팀 소유주, 감독이 여러 번 바뀌면서 상당히 혼란한 역사를 보냈는데도 작명법이 4번만 바뀌었고 그 내에서 체계적인 작명법을 유지한 것과는 상반되게 페라리는 엔초 페라리 혼자서 쭉 우두머리로 있었던 시절에도 중구난방이었다(...)[28] 다만 89년과 91년 사이의 차량들은 F1-89 같은 공식 명칭보다 640 같은 코드네임으로 더 많이 불리는 편으로, 이 시기의 작명이 개판으로 보이는 것이 바로 이것 때문이다.[29] 다만 이 시기에도 차량 뒤에 붙던 이름은 2002, 2003년에는 F2001, F2002에 B를 붙여 F2001B, F2002B로 명명하더니, 2년 후에는 F2004B가 아닌 F2004M가 되는 등 뒤죽박죽이었다.[30] 이탈리아 통일 150주년을 기념하는 섀시명인데 원래는 F150이었다가 이거 때문에 포드에게서 고소를 당해 이름을 바꾸었다.[31] F1 전문 유튜브 채널인 WTF1에서는 "네이밍 시스템을 매번 바꾸는 페라리 전통의 네이밍 시스템을 따랐다"고 평했다.[32] 1947년에 125S의 엔진을 처음으로 점화한지 75주년이 되는 해를 기념하기 위함이라고 한다.[33] 참고로, 엔초 페라리의 정식 명칭은 페라리 엔초가 아닌 페라리 엔초 페라리이다. 그리고 라페라리는 페라리 라페라리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