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당(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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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편집]
新黨 / New Party: NP
범람연맹에 속하는 대만의 정당. 본부는 타이베이시 쑹산구에 위치해 있다.
2. 상세[편집]
리덩후이 정권에서 리덩후이가 중국 국민당을 대만화하자 린양강[4] 과 하오보춘을 위시로 한 외성인과 리덩후이계의 본성인 간 갈등이 극에 달해 린양강의 파벌인 신국민당연선(新國民黨連線)이 당권 경쟁에서 패배해 뛰쳐나와서 만든 정당이다. 이로 인해 중국 국민당과 신당으로 분당되었다. 이 과정에서 사회민주당, 신당, 공당 등 당시 비주류 좌파 정당들과 합당하면서[5] 당을 세웠기 때문에 시작부터 사회복지를 중시하는 노선을 내세웠다. 1994년 지방선거 당시 타이베이에서 높은 득표율을 올리며 천수이볜 후보가 당선되는 데 기여(?)했고, 1995년 입법원 총선에서 외성인 표를 대거 확보했고, 수구적인 이미지를 벗어버리고 위해서 사회복지정책을 적극적으로 주창한 덕택에 국민당 비토파의 지지도 일부 얻으면서 21석의 의석을 확보했다. 이 선거에서 국민당이 과반을 겨우 넘는 의석을 확보했고 민진당도 생각보다 의석을 못늘렸기 때문에 성공적으로 데뷔했다는 평을 들었지만, 1996년 총통선거와 국민대회 선거에서 리덩후이가 민진당 성향 유권자들의 표까지 일정부분 가져가면서 압승을 거두고 국민대회 선거에서도 국민당이 압승하면서 시원하게 망하고 말았다. 이렇게 된 이유는 신당의 근본적 정체성 한계에 있었는데 신당의 최대 표심은 외성인을 중심으로 한 독립 반대론자들이었다. 즉 총선에서도 '(독립파로부터) 중화민국을 지키자!'라는 캐치프라이즈로 나갔는데 막상 실전에서는 중국이 군사훈련을 하면서 대만을 압박했고, 이 때문에 리덩후이가 중국에게 강력하게 대항하는 지도자라는 이미지를 갖추면서 신당의 포지션이 애매해진 것이다. 신당 당원들조차 '그럼 군소정당보다 기성정당에 투표하는게 더 현실성있지 않느냐'라는 논리로 국민당에 몰표해버렸기 때문이었다. 그래도 득표율은 생각보다 많이 건지기는 했다.(14%)
어쨌든 총통선거에서 패배한 이후로 망조가 들기 시작하여서 내분이 터졌고, 1997년 지방선거와 1998년 입법원 선거-지방선거에서도 잇따라 패배했으며 상당수 세력들이 국민당을 지지하며 국민당으로의 탈당을 거듭했다. 거기에다 2000년에 쑹추위가 친민당을 창당하자, 신당의 외성인 당원 중에 친민당으로 빠져나간 당원도 적지 않았다. 2000년 총통선거에서도 0.1%대의 득표율을 내는데 그치며 철저하게 망해버렸다.
2000년 총통선거 이후로 리덩후이가 국민당에서 제명되었기 때문에 신당의 존재 이유도 사라졌고, 이후로 진먼을 중심으로 겨우 겨우 세를 유지하고 있는 형편이다. 하지만 아직도 신당이라는 이름을 쓰며 살아 있다.
사회복지를 주장하나, 보수주의와 대리민주주의를 주장하고 대만의 독립에는 대놓고 반대하
진먼/롄장 등지에서 지지세가 꽤 된다. 비례대표도 그렇고 2016년 입법위원 선거에서 신당 후보가 국민당 후보에 이어 2위를 했다. 이 외에 타이베이 등지도 그렇다. 민진당과 대만단결연맹/시대역량과의 단일화를 하듯이 국민당과의 단일화를 어느 정도 하면 의석을 얻을 것 같은데 단일화가 안 되니 국민당에게 표를 빼앗겨 의석이 없다.
이후 군소정당으로 일부 지방자치단체(타이베이 시의회 2석)에서만 의석을 확보하고 있다. 입법원 선거에도 계속해서 후보는 내고 있으나 득표율이 부진하여 계속해서 낙선한다. 2016년 총선에서는 비례대표 득표율이 4%로 5위를 기록했고, 특히 진먼·롄장 지역에서는 두 자리 수 득표율을 기록했으나 원내 진출은 역시나 실패했다.
하오보춘의 아들 하오룽빈이 타이베이 시장 선거에 출마하기 위해 중국 국민당으로 복당하기 전까지 이 정당 당원이었다.
'신당'이라는 당명에 걸맞지 못하게 광고가 기괴하다.광고(발퀄주의!) 대만 내에서도 악평이 자자하다.
당가가 꽤나 비범하다. 제목은 '대지일성뢰(大地一聲雷)'. 노래는 창당 당시 대만의 유명한 가수 리젠푸(李建復)[6] 를 섭외했다. 한국의 태극기 집회나 국민당의 한궈위 지지자들처럼 깃발이 휘날리고 있다. 이때만 해도 신당이 국민당보다 골수 친중이 될지 몰랐을 것이다.[7] 2017년 친중공 간부 왕빙충(王炳忠)이 리메이크했다. #
가사
大地一聲雷 驚醒了我和你
Dàdì yī shēng léi jīngxǐngle wǒ hé nǐ
대지에 천둥이 울려 너와 나를 깨웠네
新的你 新的我
xīn de nǐ xīn de wǒ
새로운 너 새로운 나
開創無限新的希望
kāichuàng wúxiàn xīn de xīwàng
새 희망을 열어가네
風雨中 我成長 風雨中 我茁壯
fēngyǔ zhōng wǒ chéng cháng fēngyǔ zhōng wǒ zhuózhuàng
비바람 속에 나는 자라고 비바람 속에 나는 튼튼해지네
新的思想 新的力量
xīn de sīxiǎng xīn de lìliàng
새로운 사상 새로운 힘으로
創造新的中華民國
chuàngzào xīn de zhōnghuá mínguó
새로운 중화민국을 만들자
我們心中開滿自由的花
wǒmen xīnzhōng kāi mǎn zìyóu de huā
우리 마음 속에 자유의 꽃이 피었고
我們雙手點燃民主的光
wǒmen shuāng shǒu diǎnrán mínzhǔ de guāng
우리 두 손은 민주의 빛을 켜네
讓我民主的台灣照耀中華到永遠
ràng wǒ mínzhǔ de táiwān zhàoyào zhōnghuá dào yǒngyuǎn
우리의 민주 대만이 영원히 중화를 비추도록
我們一步一步一腳印
wǒmen yībù yībù yī jiǎoyìn
우리 한 걸음 한 걸음 나아가고
我們千人萬人一條心
wǒmen qiān rén wàn rén yītiáoxīn
우리들은 한 마음 한 뜻으로
捍衛青天白日滿地紅的大中華
hànwèi qīngtiānbáirì mǎn dì hóng de dà zhōnghuá .
청천백일만지홍의 대중화를 지키자
대만 백괴사전에서는 발음이 비슷한 신당(腥黨)의 당 로고 모양을 보고 비린내 나는 당, 계란후라이로 까댄다.
2017년 12월 19일에는 왕빙충(王炳忠) 등 신당 간부 4명에 대해 대만 정부가 국가안전법 위반 혐의로 가택수색을 하고 강제로 연행해 사정 청취를 시도했으며 이를 거부한 1명을 구금했다. 왕 의원 등이 9일에서 16일까지 중국을 방문해 중국 국무원 대만판공실과 접촉했고 중국 전국정치협상회의 주석 위정성(兪正聲) 등을 만난 것이 문제가 된 것으로 보이며 사정 청취는 9월에 국가안전법 위반 혐의로 유죄 판결을 받은 중국인 유학생 저우훙쉬(周泓旭)가 신당과 접촉한 사실이 드러난 것으로 인해 감행되었다.
2020년 국민당이 이미지 관리를 위해 축출한 친중공 정치인 추이(邱毅)가 신당 비례대표 1번으로 출마했지만 지역구에서조차 한 표도 얻지 못해서 비례대표조차 낙선.
한궈위가 파면되고 나서 왕빙충은 뜬금없이 한궈위 파면에 도움을 준 대만기진 타이중 제2 선거구 천보웨이(陳柏惟)를 파면시키자는 운동을 했다. 발기일 때 옌콴헝(顔寬恒) 국민당 입법위원을 파면시키자고 말실수를 했다. #[8]
코로나19와 국가보안법으로 인해 대만 내에서 반중 감정이 격화되면서 점점 더 중앙정계에 미치는 영향력이 작아질 수 있다. #
3. 당명 변경 가능성[편집]
젊은 대만인들 사이에서 중국 정체성이 옅어짐에 따라 중국 국민당이 당명에서 '중국'을 떼버릴 가능성이 제기되고 있다. 그런데 신당에서는 중국 국민당이 당명을 바꾸면 자기네가 당명을 중국 국민당으로 개명할 수 있음을 내비치기 시작했다. 하지만 진짜 중국 국민당으로 명칭을 바꾸면 원래의 중국 국민당과 당명이 비슷하기 때문에 혼동할 가능성이 높을 수 있으므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