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민당(캐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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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왕 폐하의 정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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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당


159석

신임과 보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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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민당


25석

국왕 폐하의 가장 충성스러운 야당
파일:캐나다 보수당 흰색 아이콘.svg
보수당


119석

교섭단체 야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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퀘벡 블록


33석

비교섭단체 야당
파일:캐나다 녹색당 로고 (영프 조합 white).svg
녹색당


2석

[[무소속|무소속

1석
]]
재적

338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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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ew Democratic Party
Nouveau Parti démocratique
한국어명칭
신민당, 신민주당
영어명칭
New Democratic Party
불어명칭
Nouveau Parti démocratique
약칭
NDP(영어), NPD(불어), NDP-NPD
창당일
1961년 8월 3일
전신
협동연방당[1]
이념
사회민주주의
민주사회주의
진보주의
스펙트럼
중도좌파 ~ 좌익
당 색
오렌지
주소
캐나다 온타리오오타와
300 - 279 Laurier West
당대표
자그미트 싱
총재
마티외 빅(Mathieu Vick)
국제조직


청년 정당
캐나다의 젊은 신민당(CYND)
당원 수
124,620명 (2017년 기준)
상원 의석 수
0석[43대][2] / 105석 (0%)}}}
하원 의석 수
25석[44대] / 338석 (7.4%)}}}
웹사이트
영어 사이트 / 불어 사이트
SN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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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2. 역사
2.1. 2019년 연방 선거
2.2. 2021년 연방 선거
2.3. 2021년 연방 선거 이후
3. 지지 세력
4. 여담
5. 역대 선거



1. 개요[편집]


캐나다사회민주주의 정당. 캐나다 주요 정당 중 가장 좌파 성향이 강하다. 캐나다에서는 자유당보수당에 이은 제3당의 입지를 차지하고 있으며 양당을 제외하면 15% 이상의 고정적 지지층이 있는 유일한 전국정당이다. 소선거구제의 단점에 가장 크게 영향을 받는 정당이기도 하다.

2. 역사[편집]


1960년 협동연방당(CCF) 대표였던 토미 더글러스가 원외 진보정당이었던 신당과 합당하면서 창당하였다.

창당 이래 10% 중후반대의 상당한 득표율을 기록하며 원내 3~4당 자리를 차지해왔지만, 집권하기엔 부족한 득표율이고 연정도 안해서 연방 차원의 집권 경험은 없었다. 그러다 1993년 총선때는 좌파 성향의 퀘벡 지역당인 퀘벡 블록과 앨버타를 중심으로 한 우파 성향의 서부 지역정당인 개혁당에 밀려 9석짜리 군소정당 신세로 쇠퇴하기도 했다.

하지만 2003년 잭 레이턴이 대표가 되면서 다시 지지율이 올라가기 시작했고, 이 과정에서 기존 진보 진영의 거두였던 자유당을 지지하던 진보 지지층들이 대거 옮겨오면서 2011년 총선에선 자유당을 밀어내고 제2당을 차지하기도 했다.[3]

그러나 보수당에 밀려 집권에는 실패하고 같은 해 당의 간판이던 잭 레이턴이 으로 사망하면서 지지율은 정체된다. 이후 퀘벡 출신 톰 멀케어를 대표로 선출하였으나 2015년 총선에서 지지층들이 다시 대거 자유당으로 이탈하는 바람에 다시 제3당으로 밀려났다.

2017년 인도 이주민 가정 출신인 온타리오 주 의원 자그미트 싱이 새로운 대표로 선출되었다. 참고로 자그미트 싱 대표는 2019년 3월 버나비 사우스 보궐 선거에서 당선되며 2017년 10월 당 대표 당선 후 약 18개월 만에 하원에 입성하였다.

2018년까진 사회주의 인터내셔널진보동맹에 동시 회원으로 있었다가 사회주의 인터내셔널에서 탈퇴하였다.


2.1. 2019년 연방 선거[편집]


2019년 내내 지지율이 10% 중반대로 지지부진해서 집권 가능성은 그다지 점쳐지지 않았지만, 선거 직전 실시한 여론조사에서 19%까지 올라가는 등 제법 반등하며 지지층에서 기대감이 나타나기도 했다. 허나 도리어 실제 선거에선 지난번 선거보다 의석을 15석이나 잃으며 24석을 차지, 32석으로 대약진한 퀘벡 블록에 제 2야당 자리를 내주게 되었다. 다만 득표율만 보자면 여전히 15.9%를 차지한 신민당이 7.7%를 득표한 퀘벡 블록보다 많이 앞서는 제 3정당이긴 하다.

심지어 정치 신인이라고 할 수 있는 싱 대표의 개인적 인기, 평가 및 호감도는 자유당의 트뤼도나 보수당의 시어 대표보다도 높은 것으로 조사되었다.# 게다가 여당인 자유당이 과반 의석을 확보하지 못하면서 연정 가능성이 대두되기도 하였으나, 트뤼도 총리는 연정 가능성을 부인하고 법안마다 야당의 협력을 받아내겠다는 구상을 밝혀[4] 일단은 자유당 소수정부로 출범하였다.

2.2. 2021년 연방 선거[편집]


직전 여론조사에서 적어도 30석 이상을 많으면 40석 가까이 차지하며 대약진을 거둘것 처럼 보였으나 선거 결과의 실제 뚜껑을 열어보니 득표율은 17.83%로 지난 총선 대비 더 올랐으나 소선거구제의 피해를 가장 많이 받고 있는 신민당답게(?) 의석은 하나 늘어난 25석에 그쳤다.

그래도 근래의 하락세를 극복하고 지지율이 다시 올랐다는 점은 고무적이다. 특히 보수당 텃밭인 앨버타에서 의석을 1석 더 확보했고, 브리티시 컬럼비아에서도 의석을 2석 더 확보하면서 서부 지역에서 이전 선거보다 선전했다.

2.3. 2021년 연방 선거 이후[편집]


2022년 3월에 신민당은 자유당과 협약을 맺어 자유당 정부의 예산안을 지지해주고 불신임안에 반대해주는 대신, 자유당 정부는 신민당의 주장을 정책에 반영하기로 하였다. 관련 기사(영어)

2023년 6월에는 캐나다의 최대도시 토론토의 시장 보궐선거에서 사회운동가이자 신민당 전 당수 잭 레이튼의 미망인 올리비아 차우(Olivia Chow)[5]가 시장에 당선되었다. 캐나다 정당법상 시장은 무소속이지만 차우 시장은 오랫동안 NDP 소속이었으며 현재도 NDP와 함께 활동하고 있기에 사실상 NDP의 보궐선거 승리로 간주되고 있으며, 이와 함께 전국단위 지지율 역시 20%를 넘어서는 등 순항 중이다.

3. 지지 세력[편집]


전국적으로 보자면 브리티시컬럼비아 주, 누나부트 준주 그리고 온타리오주에서 주로 강세를 보인다.[6] 2015년2019년의 투표 성향을 보면, 모국어가 불어인 인구가 많은 지역[7], 저소득 지역, 고학력 인구가 많은 지역[8], 원주민 인구가 많은 지역[9][10], 인구 밀집도가 높은 대도시 지역, 노동조합들이 많은 공장 지대 등에서 지지를 얻는 편이다.


4. 여담[편집]


캐나다 주요 정당 중 유일하게 연방과 주의 정당이 하나인 단체이다. 즉, 캐나다 하원의 원내정당 중 각 주의 개별정당과 가장 관계가 두터운 연방정당이다.[11] 캐나다에서는 주와 연방의 정치체계가 달라서 연방정당과 주 정당이 별개인데, 퀘벡을 제외한 주급 신민당에 가입을 하면 연방 신민당에 가입을 할 수 있으며 다른 연방정당에 가입을 할 수 없다. 옛 퀘벡 신민당은 주정부 방침으로 1989년 연방 신민당과의 관계를 끊고 다른 퀘벡의 당들과 합당하고 결국 소멸했다. 2014년 연방 신민당이 새로운 퀘벡 신민당의 창당을 했으나 퀘벡 법에 따라 각 주의 당과 연방당은 아무런 관계를 맺을 수 없으므로 당원 명단 넘겨주기 등의 업무를 할 수 없으며 퀘벡 신민당원들은 연방에 신민당에 이미 가입되어 있지 않는 한에 다른 당을 지지하거나 입당할 수 있다.

신민당의 초대 리더이기도 했던 토미 더글라스 전 서스캐처원 주지사는 2004년 한 조사에서 가장 존경받는 캐나다인으로 뽑히기도 했을 정도로[12] 캐나다에서 많은 존경을 받고 있는 인물이다. 그는 북미 지역에서 주 정부긴 하지만 그래도 최초로 집권한 사민주의 정치인으로서, 당대 미국에선 메카시즘 광풍이 휘몰아칠 시절 활동했다는 점에서도 의미가 있다. 그는 위니펙에서 있었던 파업 사태를 보고 정계에 입문했다.[13] 그의 가장 큰 업적은 캐나다식 의료보험의 최초 도입과 정착 성공. 이게 전국화되면서 현재까지도 캐나다에서는 거의 모든 병원비가 무료다. 당시 의사들은 캐나다에 의사가 남아나지 않을 것이다, 질 좋은 의료 서비스를 받지 못할 것이다 등으로 파업도 하며[14] 반발도 했지만, 캐나다 시민들은 이 정책을 압도적으로 지지했다. 지금도 캐나다 국민의 약 90%가 지지하는 정책이라 보수당도 딴지를 못건다.[15] 토미 더글라스는 명연설도 제법 남겼는데, 대표적으로 1962년 연설한 이른바 마우스랜드가 있다. 그 내용을 기반으로 만든 영상. 노동자로 대표되는 쥐들이 쥐는 안뽑거나 오히려 욕하고 흑백 고양이만 번갈아 뽑는 시대상을 풍자한 연설이다. 그의 외손자인 키퍼 서덜랜드가 영상에 등장한다.


5. 역대 선거[편집]


1962년 총선 19/265 13.57%
1963년 총선 17/265 13.22%
1965년 총선 21/265 17.91%
1968년 총선 22/264 16.96%
1972년 총선 31/264 17.83%
1974년 총선 16/264 15.44%
1979년 총선 26/282 17.88%
1980년 총선 32/282 19.77%
1984년 총선 30/282 18.81%
1988년 총선 43/295 20.38%
1993년 총선 9/295 6.88%
1997년 총선 21/301 11.05%
2000년 총선 13/301 8.51%
2004년 총선 19/308 15.68%
2006년 총선 29/308 17.48%
2008년 총선 37/308 18.18%
2011년 총선 103/308 30.63%[16]
2015년 총선 44/338 19.71%
2019년 총선 24/338 15.90%[17]
2021년 총선 25/338 17.8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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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Co-operative Commonwealth Federation, CCF.[43대] 국회; 2020년 5월 28일 기준.[2] 상원 폐지를 당론으로 밀고 있는 당이라 상원에 진출하지 않는다. 참고로 캐나다는 하원의 권한이 상원보다 크며, 상원은 일종의 추천제로 직접 선거로 뽑는 자리가 아니다.[44대] 국회; 2021년 9월 24일 기준.[3] 잭 레이턴의 퀘벡 하드캐리 외에도, 스테판 디옹과 마이클 이그나티에프 대표 시절 자유당 내부분열에 따른 반사이익을 얻은 것도 있었다.[4] 캐나다 의회 역사 전체를 보아도 연립정부를 구성한 것은 단 한번에 불과하고, 그것조차 1917년의 일이라 캐나다 정치에서 연정을 한다는 것이 말처럼 쉽진 않을 것으로 보인다.# 또 굳이 연정을 안하더라도 보수당을 제외한 신민당, 퀘벡 블록, 녹색당 모두가 성향이 자유당과 비슷한 부분이 많아서 법안별로 협상할 여지가 많다.[5] 중국계 이민자 출신이자 첫 여성 시장이기도 하다.[6] 20세기만 해도 서스캐처원이 주요 텃밭이었지만, 21세기 들어선 보수당에 주도권을 내줬다.[7] 한마디로 퀘벡주. 즉, 성향이 상당히 비슷한 퀘벡 블록과 지지기반이 꽤 겹치기 때문에, 2019년 총선 등처럼 퀘벡블록의 인기가 치솟는 선거의 경우 신민당의 의석이 줄어들 수 밖에 없다.[8] 저소득 지역과 고학력 인구가 많은 지역은 정반대의 지지계층처럼 들릴 수도 있지만 실상은 꼭 그렇지만도 않다. 고학력임에도 저소득일수도 있고, 반대로 고학력층과 저소득층이 다양한 이유로(예: 고학력층은 리버럴한 성향, 저소득층은 복지 등) 각각 지지한다고 볼 수도 있다. 캐나다 자유당도 비슷한 세력권을 보이는데, 실제 두 당은 지지 기반이 상당히 겹치는 편이다. 이 점은 쥐스탱 트뤼도가 자유당 대표로 취임하면서 더 두드러졌다.[9] 이들은 자유당, 보수당 상관 없이 차별을 받았던 집단이라 이 둘의 대한 증오심이 상당하다.[10] 서스캐처원 북부, 매니토바 북부, 서드버리 이북 온타리오에서 두드러지는 편이다.[11] 다른 주요 정당인 자유당과 보수당은 연방 당과 주 당이 비록 같은 이름을 가지고 있을지라도 하나의 정당이 아닌 경우도 많고, 심지어 일부는 이념이나 정책상에서도 차이를 보이기도 한다.[12]
파일:CBC.png선정 위대한 캐나다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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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05년 캐나다의 공영TV인 CBC가 제작한 다큐멘터리 "The Greatest Canadian" 에서 발표한 내용이다
1위
2위
3위
4위
5위
토미 더글라스
테리 폭스
피에르 트뤼도
프레더릭 벤팅
데이비드 스즈키
6위
7위
8위
9위
10위
레스터 피어슨
돈 체리
존 A. 맥도날드
알렉산더 그레이엄 벨
웨인 그레츠키
같이 보기: 위대한 인물 시리즈


[13] 당시 공장 노동자들이 업무활동 개선과 임금 상승을 요구하며 파업했으나 정부는 이들을 강경하게 진압했다.[14] 다만 한국의 파업과는 다르게 응급실까지 닫진 않았다.[15] 2020년 코로나 사태가 터졌을때도 캐나다의 의료 정책은 빛을 발했는데, 미국의 확진자가 당장 천만대를 찍는 동안 캐나다는 20만대로 상당히 안정적이라는 점, 미국에서 가난한 사람은 감염되었을 시에 치료비 때문에 적절한 치료를 받지 못해 사망하는 경우가 많은 반면 캐나다는 모두 지원해 주기 덕분에 더 많은 생명을 구할 수 있었다.[16] 최초로 보수당 다음의 제1야당을 맡았다. 한국으로 치면 정의당이 민주당 밀어내고 진보 진영의 대표 정당이 된 셈.[17] 제3당의 자리를 퀘벡당에게 뺏기면서 제4당이 되었다. 다만 이는 의석 기준이고, 득표율에선 여전히 제3당.