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호(조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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申浩
1539년(중종 34년) ~ 1597년(선조 30년)
조선 중기의 무신. 본관은 평산(平山)[1] , 자는 언원(彦源, 彦原) 또는 심원(深源), 호는 고정(古亭).
이명으로 신길(申洁)로 기재된 문헌도 있다.
고려 개국공신인 신숭겸의 후손이다. 시호는 무장(武壯).
신호는 1539년 전라도 고부군 우일면 원당리(현 전라북도 정읍시 북면 남산리 원당마을)#에서 충순위(忠順衛)로 복무하던 아버지 신희중(申希仲)과 어머니 창녕 장씨(昌寧 張氏) 장희령(張希齡)의 딸 사이의 아들로 태어났다.#
정병(正兵)으로 복무하다가 1567년(명종 22) 식년시 무과에 갑과 2위 (아원)으로 급제하여#, 북방에서 조산보만호(造山堡萬戶), 도총부도사(都摠府都事), 경력(經歷) 등을 역임하다가 임진왜란 몇 년 전 조정에서 일본의 침략을 우려하여 북방에서 무용이 뛰어난 장수들 중에서 발탁하여 남쪽으로 배치하였는데, 신호는 낙안군수(樂安郡守)에 임명되었다. 그렇게 낙안 군수로 재임하던 중에 임진왜란을 맞았다.
임진왜란 중에는 이순신을 도와 견내량(見乃梁)·안골포(安骨浦) 등의 해전에서 큰 공을 세워 통정대부(通政大夫)에 임명되었고, 정유재란 중인 1597년에는 교룡산성수어사(蛟龍山城守禦使)로 있던 중 남원성(南原城)이 왜군에게 포위되자 구원하러 갔다가 그곳에서 전사했다.
사후 원종공신(原從功臣) 1등에 임명되고 형조판서에 추증되었다.
1962년 영화 성웅 이순신에서는 배우 구종석이 연기했다.
불멸의 이순신에서는 배우 정진각이 맡았다.[2] 부하들을 아끼는 덕장(德將)으로 묘사되나 그 외의 특징은 딱히 없는 편이라, 비서실장 겸 첩보실장 격인 권준이나 개그 캐릭터 김완, 작중 초반 원균빠 정운, 조류의 달인 어영담 등에 밀려 임팩트가 없는 편. 극 중에서는 전라 좌수영에 전염병이 걸려 병사들이 죽어나가자[3] 한양에 바쳐야 할 세금을 빼돌려 약재로 바꾸는 바람에 이순신이 문책당하는 것을 막기 위해[4] 스스로 관직을 버리고 떠나는 것으로 묘사되었다. 즉 정유재란 당시의 활동은 생략당한 셈. 46화에서는 방답군이 단체기합을 받자 병졸들의 과실은 곧 장수의 과실이라고 이순신이 진노한 것도 무리한 일은 아니라고 했다. 47화에서 군량미의 점검, 관리조달을 맡으면서 장기적으로 둔전을 설치 계획을 말하기도 했다.
한산: 용의 출현에서는 거의 공기 수준의 비중이지만, 이순신이 작성한 학익진도에서 녹도만호 정운과 함께 좌선을 호위하는 위치로 배정되어 좌선 근처에서 가끔씩 그의 판옥선이 모습을 비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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申浩
1539년(중종 34년) ~ 1597년(선조 30년)
1. 개요[편집]
조선 중기의 무신. 본관은 평산(平山)[1] , 자는 언원(彦源, 彦原) 또는 심원(深源), 호는 고정(古亭).
이명으로 신길(申洁)로 기재된 문헌도 있다.
고려 개국공신인 신숭겸의 후손이다. 시호는 무장(武壯).
2. 생애[편집]
신호는 1539년 전라도 고부군 우일면 원당리(현 전라북도 정읍시 북면 남산리 원당마을)#에서 충순위(忠順衛)로 복무하던 아버지 신희중(申希仲)과 어머니 창녕 장씨(昌寧 張氏) 장희령(張希齡)의 딸 사이의 아들로 태어났다.#
정병(正兵)으로 복무하다가 1567년(명종 22) 식년시 무과에 갑과 2위 (아원)으로 급제하여#, 북방에서 조산보만호(造山堡萬戶), 도총부도사(都摠府都事), 경력(經歷) 등을 역임하다가 임진왜란 몇 년 전 조정에서 일본의 침략을 우려하여 북방에서 무용이 뛰어난 장수들 중에서 발탁하여 남쪽으로 배치하였는데, 신호는 낙안군수(樂安郡守)에 임명되었다. 그렇게 낙안 군수로 재임하던 중에 임진왜란을 맞았다.
임진왜란 중에는 이순신을 도와 견내량(見乃梁)·안골포(安骨浦) 등의 해전에서 큰 공을 세워 통정대부(通政大夫)에 임명되었고, 정유재란 중인 1597년에는 교룡산성수어사(蛟龍山城守禦使)로 있던 중 남원성(南原城)이 왜군에게 포위되자 구원하러 갔다가 그곳에서 전사했다.
사후 원종공신(原從功臣) 1등에 임명되고 형조판서에 추증되었다.
3. 대중매체[편집]
1962년 영화 성웅 이순신에서는 배우 구종석이 연기했다.
불멸의 이순신에서는 배우 정진각이 맡았다.[2] 부하들을 아끼는 덕장(德將)으로 묘사되나 그 외의 특징은 딱히 없는 편이라, 비서실장 겸 첩보실장 격인 권준이나 개그 캐릭터 김완, 작중 초반 원균빠 정운, 조류의 달인 어영담 등에 밀려 임팩트가 없는 편. 극 중에서는 전라 좌수영에 전염병이 걸려 병사들이 죽어나가자[3] 한양에 바쳐야 할 세금을 빼돌려 약재로 바꾸는 바람에 이순신이 문책당하는 것을 막기 위해[4] 스스로 관직을 버리고 떠나는 것으로 묘사되었다. 즉 정유재란 당시의 활동은 생략당한 셈. 46화에서는 방답군이 단체기합을 받자 병졸들의 과실은 곧 장수의 과실이라고 이순신이 진노한 것도 무리한 일은 아니라고 했다. 47화에서 군량미의 점검, 관리조달을 맡으면서 장기적으로 둔전을 설치 계획을 말하기도 했다.
한산: 용의 출현에서는 거의 공기 수준의 비중이지만, 이순신이 작성한 학익진도에서 녹도만호 정운과 함께 좌선을 호위하는 위치로 배정되어 좌선 근처에서 가끔씩 그의 판옥선이 모습을 비춘다.
[1] 밀직공파 21세.[2] 무인시대에서 한뢰로 유명한 그 배우이다.[3] 1594년의 일로, 실제로 어영담이 전염병으로 세상을 떠났다.[4] 당시부터 선조가 이순신을 적잖이 의심하고 있던 판이었기에 권준이나 이순신(무의공) 등은 세금으로 제대로 바칠 것을 주장했지만 신호가 독단으로 한 일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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