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레산드로 파르네세(15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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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페인 제국의 장군, 귀족.
북해 연안의 네덜란드, 벨기에 같은 연안 저지대의 행정을 담당하는 합스부르크 네덜란드의 총독이자 펠리페 2세의 이복누이(서녀)인 마르가레테와 교황 바오로 3세의 둘째 손자 파르마 공작 오타비오 파르네제[1] 의 아들이다. 보통 본명보다는 작위인 파르마 공국 공작으로 더 많이 불린다.
레판토 해전에 참전한 경력이 있다. 또한, 펠리페 2세가 저지대의 독립 운동을 진압하기 위해서 파병을 했을 때 지휘관이자 저지대의 총독으로서 구교 신자의 수가 더 많고, 부유했던 남부의 벨기에 지역을 전투와 회유를 통해 다시 되찾았다.[2] 그 후에 계속 벨기에에 주둔해 있다가 스페인의 잉글랜드 침공 작전 당시 브리트느 섬 본토에 상륙하기 위해 칼레에서 아르마다가 도착하여 함대에 합류하길 기다렸지만 아르마다가 칼레에 오기도 전에 개발살이 나는지라 그대로 손가락 빨고 벨기에에 주둔해야했다.
그 뒤에 프랑스와의 전쟁에서 화려한 공로를 세웠지만 프랑스 국왕 앙리 4세에게 루앙 전투에서 패하면서 중상까지 입은 채로 쓸쓸하게 귀국해야 했고 그를 시기하던 궁정은 그의 직책이던 네덜란드령 총독에서 해임했다. 절망과 슬픔에 빠진 그는 그해 1592년 12월 2일 지방 수도원에서 한창 나이로 부상이 악화되어 숨을 거뒀다.
[1] 추기경 알레산드로 파르네제의 동생. 당대 일류의 화가 티치아노가 그린 교황 바오로 3세와 이들 형제의 초상이 남아있다.[2] 하지만 그 전의 병사들에게 펠리페 2세가 임금체불을 했었고, 악이 받친 스페인 군대는 안트베르펜을 약탈했었는데 이 때부터 저지대의 경제 주도권이 북쪽의 네덜란드 공화국으로 넘어가고 암스테르담이 중심지로 급부상했다. 이런 연유로 인해서 17세기의 네덜란드를 황금의 17세기라고 부르지만 그 놈의 튤립 사재기 광풍이 불어닥쳤고 거품이 터지면서 네덜란드는 비실비실 거리다가 영국의 항해조례 이후의 영란 전쟁으로 결정적 크리를 먹게된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프랑스 혁명 당시 돈이 모자란 국민 공회가 네덜란드의 은행을 털자는 목적하에 불란 전쟁이 벌어졌고 이 때 어이없는 실책을 저지르면서 프랑스의 속국 정도로 몰락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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