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류조부리지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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宇流助富利智干
생몰년도 미상


1. 개요[편집]


일본 측 기록인 일본서기에만 등장하는 신라의 왕.


2. 정체[편집]


신라 왕 우류조부리지간(宇流助富利智干)을 포로로 삼고 해변으로 와서 무릎뼈를 뽑고 돌 위에 포복시켰다. 조금 있다가 베어서 모래 속에 묻었다. 한 사람을 남겨 신라에 있는 대사로 하고 돌아갔다. ... 죽은 왕의 처는 신라인과 공모하여 일본 대사에게 "왕의 시신이 있는 곳을 알려주면 그대와 결혼하겠다"고 속여 왕의 시신이 있는 곳을 알자 곧바로 대사를 죽이고 왕의 시신을 꺼내 다른 곳에 묻었다. 그때 대사의 시신을 왕의 시신 밑에 묻고 "존비(尊卑)의 순서는 마땅히 이와 같아야 한다."라고 말했다. 천황이 이 소식을 듣고 진노하여 신라를 정벌하러 군대를 보내자 신라인들이 왕의 처를 죽이고 사죄하여 일본군은 철수했다.

'우류조부리지간'에서 이름 부분에 해당하는 '우류'(宇流)가 석우로와 음운상 공통점이 크다. '조부리지간'은 신라 고유의 관등인 서불한의 음을 다른 글자로 표기한 것이다. 여기서 '신라 왕'이라 한 이유는 당시에는 왕이 국가수반뿐 아니라 귀족층들의 존칭으로도 쓰였기 때문이라는 의견이 지배적이다. 그 예로 영일냉수리비에서 간지(干支)층의 귀족들도 '왕'(王)으로 칭하고 있는걸 볼 수 있다. 혹은 《일본서기》와 <신공황후기> 기록에 가필이 심하게 들어가 있다는 특성을 고려하면, 왜국에서 자신들의 전공을 선전하기 위해 석우로를 일부러 '왕'으로 높여 불렀을 가능성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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