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소(북위)

덤프버전 :







북위 추존 황제
효선제 | 孝宣帝

출생
507년 이전
북위 하남군 낙양
(現 허난성 뤄양시)
사망
528년 5월 17일
북위 하남군 낙양
(現 허난성 뤄양시)
능묘
미상
재위기간
북위 무상왕(無上王)
528년 5월 15일 ~ 528년 5월 17일

[ 펼치기 · 접기 ]
성씨
하남 원씨

소(劭)
부모
부황 숙조
모후 문목황후
형제자매
4남 5녀 중 차남
배우자
문공황후
자녀
2남
종교
불교

자눌(子訥)
작호
팽성왕(彭城郡)
→ 무상왕(無上王) → 무상황(無上皇)
시호
효선황제(孝宣皇帝)

1. 개요
2. 생애
3. 가족 관계



1. 개요[편집]


남북조시대 북위 말기의 황족으로 자는 자눌(子訥)이었다. 제6대 현조 헌문제 탁발홍의 손자이자, 팽성왕 원협(元勰)의 아들이었다. 모친은 팽성왕비 이씨로 제10대 경종 효장제 원자유와는 동복형제였다.


2. 생애[편집]


원소는 팽성왕 원협이 죽고 나서 부친의 작위를 계승했다. 제9대 숙종 효명제 즉위 초에, 양나라무제 소연이 군대를 보내 북위의 변경을 침범하자, 팽성왕 원소가 표문을 올려 곡식 5,000곡과 명주 600필, 팽성국의 관리 200명을 바치며 군용으로 충당하고자 했으나, 당시 태후였던 호태후는 원소의 뜻을 가납했지만 허락하지 않았다.

원소는 북위에서 종정소경으로 제수되었고, 사지절, 산기상시, 평동장군, 청주자사로 임명되었다. 이때 제주의 유균(劉均)과 방경(房頃) 등이 반란을 일으켰고, 양나라의 군대가 유균과 방경의 반란에 맞춰 국경을 침입하자, 원소가 빈번히 이들을 막아냈다.

524년 육진의 난이 일어나면서 선비화한 갈족인 글호족 이주부의 추장 이주영이 두각을 나타냈다. 호태후는 육진의 난 과정에서 덕행을 잃었고, 원소는 이때부터 두 마음을 품기 시작했다. 528년, 이주영이 호태후와 원조를 살해하고, 효명제의 종숙인 원자유를 옹립하니, 이가 북위의 제10대 경종 효장제이다. 효장제가 즉위한 후 원소는 무상왕(無上王)으로 높여졌다가, 이주영이 하음의 변을 일으키면서 이때 살해되었다. 사후 원소는 무상황으로 높여졌다가, 529년 효선황제(孝宣皇帝)로 추시되었다.


3. 가족 관계[편집]


원소에게는 두 아들 원소(元韶)와 원습(元襲)이 있었다.


파일:크리에이티브 커먼즈 라이선스__CC.png 이 문서의 내용 중 전체 또는 일부는 2023-12-11 08:54:10에 나무위키 원소(북위) 문서에서 가져왔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