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 퀴즈 온 더 블럭/103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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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피소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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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즌 2
13회 · 14회 · 15회 · 16회 · 17회 · 18회 · 19회 · 20회 · 21회 · 22회 · 23회 · 24회 · 25회 · 26회 · 27회 · 28회 · 29회 · 30회 · 31회 · 32회 · 33회 · 34회 · 35회 · 36회 · 37회 · 38회 · 39회 · 40회 · 41회 · 42회 · 43회 · 44회 · 45회 · 46회
시즌 3
47회 · 48회 · 49회 · 50회 · 51회 · 52회 · 53회 · 54회 · 55회 · 56회 · 57회 · 58회 · 59회 · 60회 · 61회 · 62회 · 63회 · 64회 · 65회 · 66회 · 67회 · 68회 · 69회 · 70회 · 71회 · 72회 · 73회 · 74회 · 75회 · 76회 · 77회 · 78회 · 79회 · 80회 · 81회 · 82회 · 83회 · 84회 · 85회 · 86회 · 87회 · 88회 · 89회 · 90회 · 91회 · 92회 · 93회 · 94회 · 95회 · 96회 · 97회 · 98회 · 99회 · 100회 · 101회 · 102회 · 103회 · 104회 · 105회 · 106회 · 107회 · 108회 · 109회 · 110회 · 111회 · 112회 · 113회 · 114회 · 115회 · 116회 · 117회 · 118회 · 119회 · 120회 · 121회 · 122회 · 123회 · 124회 · 125회 · 126회 · 127회 · 128회 · 129회 · 130회 · 131회 · 132회 · 133회 · 134회 · 135회 · 136회 · 137회 · 138회 · 139회 · 140회 · 141회 · 142회 · 143회 · 144회 · 145회 · 146회 · 147회 · 148회 · 149회 · 150회 · 151회 · 152회 · 153회 · 154회 · 155회 · 156회 · 157회 · 158회 · 159회 · 160회 · 161회 · 162회
시즌 4
163회 · 164회 · 165회 · 166회 · 167회 · 168회 · 169회 · 170회 · 171회 · 172회 · 173회 · 174회 · 175회 · 176회 · 177회 · 178회 · 179회 · 180회 · 181회 · 182회 · 183회 · 184회 · 185회 · 186회 · 187회 · 188회 · 189회 · 190회 · 191회 · 192회 · 193회 · 194회 · 195회 · 196회 · 197회 · 198회 · 199회 · 200회 · 201회 · 202회 · 203회 · 204회 · 205회 · 206회 · 207회 · 208회 · 209회 · 210회 · 211회 · 212회 · 213회 · 214회 · 215회 · 216회 · 217회 · 218회 · 219회 · 220회 · 221회 · 222회 · 223회 · 224회 · 225회 · 226회 · 227회 · 228회 · 229회 · 230회
관련 문서
상금 수령자 · 부제 및 시청률 · 잇템 · 난리났네! 난리났어 · 논란 및 사건 사고



1. 개요
2. 첫 번째 참가자: 조명신
3. 두 번째 참가자: 핲기
4. 세 번째 참가자: 신계숙
5. 마지막 참가자: 이문수 가브리엘 신부
6. 기타



1. 개요[편집]


유 퀴즈 온 더 블럭의 103화 방영 내용에 관한 문서.



2. 첫 번째 참가자: 조명신[편집]


고대 이집트에서는 신체 부위인 ‘이것’의 색상으로 신분을 구분했다고 합니다. 왕족들은 ‘이것’에 진한 적색을 칠했으며, 신분이 낮을수록 색이 점점 옅어졌다고 하는데요. 예로부터 ‘이것’만 보고 건강상태를 알 수 있다 하여 우리 몸의 작은 거울로 비유되기도 하는 ‘이것’은 무엇일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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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톱



  • 유퀴즈 곁청자다. 아내는 애청자지만 본인은 곁으로만 시청을 한다고..
  • 1988년에 의사 생활을 시작했고 이후 1999년부터 타투이스트를 시작했다. 겸업 생활한지 22년이 되었다고
  • 타투이스트를 하게 된 계기에 대해 이야기했다. 1999년도 조폭들의 문신을 제거해주던 의사 자기님은 우연히 본 장미 타투에 반했고 손님에게 물어 봐서 직접 찾아가서 6개월 동안 배웠다고 한다. 하지만 실력이 없어서 돈을 안받았고 미국에서 6개원간 공부했다고...
  • 타투도 의료 행위인데, 의사가 해야한거 아닌가 생각들었다고 한다. 하지만 법적으로 의사가 타투를 할 수 있음에도 하는 이가 없어서 본인이 처음으로 시도를 했다고..
  • 가장 죄송했던 사연으로 초창기 호랑이 문신을 해야 하는데 고양이 문신을 했고 결국 미안해서 돈을 안받았다고 한다.
  • 90년대에는 주로 무서운 분들이 방문한다고 한다.
  • 의사와 타투이스트를 병행하는 좋은 점에 대해 이야기했다.
  • 가장 보람있는 에피소드로 백반증에 있는 제빵사에 대한 에피소드를 이야기했다. 당시 제빵사는 피부병으로 인해, 손님들에게 '제가 만든 빵이에요. 먹어보세요'라고 말을 할 수가 없었다고 한다. 이에 조명신 자기는 피부색과 같은 살색 문신도 해드렸다고 한다.
  • 조명신 자기는 남의 상처들을 보면 제발 못 본 척 했으면 좋겠다고 당부했다. 지나친 관심은 도리어 피해를 준다고... 이에 큰 자기도 왜 이렇게 말랐냐는 이야기를 자주 듣나다면서 이야기에 공감간다고 한다.
  • 타투를 많이 받은 직업군은 위협을 받은 직업(군인이나 선원, 소방관)들이 주로 받는다고 한다.
  • 9·11 테러 당시 순직한 소방관들의 이름을 새긴 분을 보고 소방관들에게 무료 타투를 봉사한다고 한다.
  • 소방관들은 화상이나 상처들을 가리는 다투를 한다고 한다. 이에 관한 어느 소방관의 이야기를 전했다.
  • 치매 노인 실종 방지 타투 프로젝트를 하고 있으며, 주로 이름과 자식들의 전화번호, 주민등록 번호를 세긴다고 한다. 이 프로젝트를 하게 된 계기에 대해 이야기했다.
  • 가족들에게 타투를 한 적이 있다고 한다. 아내에게 발목 문신을 했지만 싸우고 난 후 지워졌다고 한다. 또한 현장에 아내가 왔다.
  • 조명신 자기는 겸업이 도움이 많이 된고 원동력은 재미와 의미라고 한다. 성형수술은 쌍꺼풀은 3만건 이상 했고 아내 쌍꺼풀도 내가 해줬는데 기억에 남지 않는다. 내가 해드린 분들의 타투는 20년 동안 다 기억난다고 밝혔다.
  • 상품으로 받은 에어컨은 기부했다.


3. 두 번째 참가자: 핲기[편집]


흔히 다재다능하거나 다양한 매력으로 이미지 변신하는 사람을 이것에 비유합니다. 이것은 ‘숲의 요정’이라 불리는 새로, 무지개와 같이 여러 가지 색의 깃털을 가진 것이 특징인데요. 천연기념물 204호로 지정된 이 새는 무엇일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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팔색조



  • 래퍼, 배우, 법률사무소 사무장 3중 생활을 하고 있다.
  • 드라마에서의 사무장하고 느낌이 사뭇 다르다는 큰 자기의 말에 그는 "사무장을 찾아간 느낌일 것"이라며 너스레를 떨었다.
  • 법률 변호사 사무장에 대해 이야기했다. 주변 상황을 전해 듣고 법리적인 대처가 가능한지 알아보거나 변호사님이 굳이 하기 싫은 일들을 도와주는 것이 사무장의 역할이라고 한다.
  • 원래 꿈은 음악을 한 거였지만 미국 방송을 보면서 미국 방송을 보고 처음 힙합을 접했는데 래퍼들의 생김새가 왠지 나와 닮았다는 느낌을 받았다. 그때부터 한국의 ‘투팍’이 되고자 래퍼의 꿈을 키우기 시작했다고 한다. 이후 기획사에 데모를 돌렸고 한 대형 기획사에 갔지만 선호하는 외모가 아니라서 거절 당했다고 한다. 결국 좌절과 다짐을 하면서 언더그라운드 활동을 하다 군대에 가게 됐다고 한다. 제대 후 헬스 트레이너로 돈 벌었으나 교통사고가 나게 되었다. 어차피 다시 사는 인생 원하는 거 하자고 해서 32살 나이에 앨범을 냈다고 한다.
  • 독립영화를 포함해서 20여편이나 출연했다.[1] 배우를 하게 된 이유에 대해 이야기했다. 친구 따라 연예인 축구단 구경을 갔다가 영화관계자의 눈에 들었다고 한다. 독립영화를 찍고 ‘26년’으로 상업영화 데뷔도 했다고 한다. 다만 이미지가 험악해서 조폭 역할이나 비스무리한 전문 배우로 활동한다.[2] 배우로서 하고 싶은 역할로는 정육점 아저씨나 순정남을 맡고 싶다고 한다.
  • 2017년 백상 예술 대상에서 한 공연이 화제가 된 바 있다.
  • 현재 8년차 사무장인데, 이 일을 하게 된 계기에 대해 이야기했다.[3] 법률 사무장이 되는 조건에 대해 이야기했다.
  • 변호사 겸 트로트 가수인 한승훈이 직접 왔고 하게 된 일과 업무에 대해 이야기했다.
  • 같은 래퍼지만 이해가 안가는 에피소드에 대해 이야기했다.
  • 모범 납세자가 되는 게 꿈이라고 한다.

4. 세 번째 참가자: 신계숙[편집]


19세기 유럽에서 콜레라가 유행하자 향신료인 이것을 소독약으로 사용했다고 합니다. 당시에는 악취가 모든 병의 근원이라 여겨져 향이 강한 이것으로 소독한 것인데요. 과거 실크로드와 중국을 통해 전해져서 호국의 산초라 불렸던 이 향신료는 무엇일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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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아버지가 이상해, 리멤버, 우리 갑순이, 투깝스 등 출연했다.[2] 심지어 분장도 안했다고 한다.[3] 곡 작업 중 트로트 앨범을 준비하던 변호사 형을 만나게 됐다고 한다. 사무실을 개업한다면서 사무장을 제안하더라. 다행히 내가 도울 수 있는 부분들이 있어서 8년차까지 근무를 하게 됐다고 한다.


  • ‘N중생활의 끝판왕’인 신계숙 자기님은 단국대학교 중어중문학과에서 중국어를 전공했고, 이화여자대학교 대학원에서 식품학을 전공했으며, 하루 14시간씩 뜨거운 불 앞에서 조리하는 중식 요리사이자 배화여자대학교 조리학과 대학교수로 활약 중이다. 뿐만 아니라 색소폰, 기타, 드론 등의 취미 생활은 물론, 최근에는 모터사이클의 매력에 푹 빠져 바이커로서 전국 방방곡곡을 누비고 있으며, EBS에서 프로를 진행중이다.
  • EBS 세계 테마 여행 중국편에 출연한 바있다.
  • 오토바이를 타게 된 계기에 이야기했다. '타던 것도 관둬야 하는 나이'라며 모두가 만류할 때, 오히려 신계숙 자기는 "앞으로 못 하는 일이 더 많아지겠구나. 그러면 오늘 당장 하자"라며 과감하게 뛰어들었다고 한다. 원래는 할리가 아니라 125cc 오토바이를 탔으나 바람 부니까 스쿠더가 넘아질려고 해서 1200cc로 바꿨다고 한다.[4]
  • 스쿠더 탈때의 원칙이 있는데, 시장 갈 때는 스쿠터를 탄다. 사람 만날 때는 할리를 탄다고 한다. 이유는 멋있다는 이야기를 3번은 듣는다고...
  • 오토바이를 탈 때 기분을 묻자 “하늘을 나는 느낌이다. 하늘에서 낙하산을 타고 내려오는 느낌이다. 이걸 타고 내리면 몸과 마음이 시원해진다”라며 말했다.
  • 현재 EBS에서 신계숙의 맛터사이클 다이어리에 출연 중인데, 5060대의 여성들에게 대리 만족감을 얻으며 꽃중년 아이콘이라는 호칭을 얻으며 인기를 얻고 있다고 한다.
  • 중문학과에 가게 된 계기는 "여자는 공부를 더 해야 한다"는 아버지의 교육 지침에 따라 한자 교육을 받았고 14살때 서울로 유학갔다고 한다. 고등학교 때까지 자리를 못잡았지만, "내가 대학교 때부터는 인생을 달리 살아봐야겠다, 내가 잘하는 걸 해야 되겠다"는 마음에 3수를 한 끝에 중문학과에 진학하게 되었다고 한다.
  • 중식 요리사가 된 계기는 교수님의 추천이었다고 한다. 그의 생각으로는 "내가 중국 요리를 하기엔 적합한 사람이라고 보인 게 아닐까"고 생각했다고 한다.
  • 이후 교수님의 추천으로 이향방 선생님의 가게를 소개를 받아 요리를 배웠다고 한다. 하지만 요리를 안 배우고 닭발 발톱을 자르는 일만 했고, 배우겠다고 하자 "여자들이 주방에 들어가기엔 매우 힘든다"는 소리를 듣게 되었다고 한다. 하지만 자기는 주방에서 8년간 견뎌서 튀김 2만 접시를 튀겼다고 한다.
  • 주방일을 하다가 몸에 데여서 오빠와 갈등으로 군인 담요 하나만 가지고 집을 나갔다고 한다. 이후 식당에서 숙식 생활을 했었다고 한다.
  • 신계숙 자기가 가장 잘하는 중국 요리로는 동파육이라고 꼽았다.
  • 대학 교수가 된 계기에 대해 이야기했다.
  • 방송에 입문한 계기는 5년 전 한 프로덕션에서 중국 음식계통 한 사람을 찾는다고 연락을 받았고 황석정, 김풍과 사천 지역 여행을 1주일 다녀왔다고 하는데, 이게 방송활동의 시작이 됐다. 신계숙 자기는 "방송이 어떻냐"는 말에 “할수록 어렵더라. 늘 멘트를 생각해야 하고.”라고 털어놨다.[5]
  • 서울에 오면서 인생에 대한 중대 결심에 대해 이야기했다. 부모님이 보고 싶어 울다가 인생에 대해 평생 혼자 있겠다며 마음 속에 선언했다고 한다
  • 이중생활을 하게 된 원동력으로 호기심을 꼽았으며, “인생 1막은 요리, 2막은 학문, 3막은 오토바이”라고 정리했다.

5. 마지막 참가자: 이문수 가브리엘 신부[편집]


매년 영국버킹엄 궁전에서는 종교 분야에서 인류를 위해 큰 업적을 남긴 사람에게 수여하는 ‘이 상’의 시상식이 열립니다. ‘이 상’은 노벨상에 종교 부문이 없는 것을 안타깝게 생각한 영국의 사업가가 만든 상으로 1973년 1회 수상자는 가난한 자들의 어머니라 불리는 마더 테레사 수녀였는데요. ‘종교계의 노벨상’이라 불리는 ‘이 상’은 무엇일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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템플턴상

[4] 참고로 바이크 가격이 2,200만원이라 가격을 밝혔다.[5] 그럼에도 그 프로에선 최고 시청률을 기록했다고 한다.


  • 가톨릭 글라렛선교수도회 소속 수도사제 겸 ‘어쩌다’ 김치찌개 밥집 사장
  • 식당에 대해 "청년들이 편안한 마음으로 식사하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시작하게 됐다"라고 밝혔다.
  • 식당을 운영하게 된 배경은 서울 대학로 고시원에서 생활하시던 청년이 생활고로 세상을 떠나게 된 일이었다. 그 뉴스를 본 수녀님이 '식사를 할 수 있는 공간이 있었으면 좋겠다'라고 제안했다고 한다.
  • 식당에 설립한 과정에 대해 이야기했다.
  • 가격 선정에 대해서 "가난한 청년들을 위한 식당이라고 하면, 청년들이 무료 식당에 가는 순간 자기가 어떻다는 걸 드러내 부담돼서 못 올 수가 있어, 부담없이 올 수 있도록 무료 대신 저렴한 가격을 택했다"고 한다.
  • 메뉴는 김치찌개 하나만 있고 가격은 1인분에 3,000원, 공깃밥은 무료, 추가 사리는 천원씩 제공하고 있다고 한다.
  • "너무 가격이 싸서 운영이 되냐"는 질문에 매해 "적자가 왔지만[6] 그래도 주변의 손길들의 도움으로 그럭저럭 운영하고 있다"고 한다.
  • 식당이 서울 성북구 정릉동에 위치했는데, 거기로 정한 이유에 대해 이야기했다.
  • 기억에 남는 손님은 식당의 취지를 알게 된 대학생이 무료 봉사를 해준 일이라고 한다.[7]
  • 가톨릭 신부가 된 계기를 설명했다. 본래는 3수를 했고 명문대를 다니는 평범한 학생이었으나 피정에 갔다온 후 가치관이 바뀌게 되었다고 한다. 가족들은 전부 성당에 다니지만 가족들에게 비밀로 하다가 가족들에게 이야기를 했지만 어머니의 반대가 심해서 2년간 마음의 문을 닫았다고 한다. 하지만 2년 후에 어머니가 돌아가셨고 결국 아들의 사제서품식을 보지 못하고 돌아가셨다고 한다.
  • 직업병에 대해서도 이야기 했는데, 식당에서 음식을 만드면 3천원에 팔까 생각한다고 한다. 신부로서는 별다른 점은 없으나, 뜬끔없이 경건한 말을 한다고 한다.
  • 받은 상금 100만원은 청년들을 위해 100만원 만큼 제공한다고 했고 제작진과 ppl 업체의 회의 결과 특별히 자기백에서 상품을 뽑아 4도어 냉장고를 받았다.[8]

6. 기타[편집]


  • 은밀한 이중생활 특집.
  • 지난 주 PPL 이후 남은 상품을 큰 캡슐에 담았다.
  • 교촌치킨 CF가 들어와 오랫만에 점심 식사를 찍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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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 처음 계산 할때 매달 30만원씩 오면 적자없이 일 할 수 있지만 현실은 적자라고 한다.[7] 그 학생은 2020년 9월 달까지 봉사하다가 졸업했다. 이후 좋은 곳으로 취직했다고 한다.[8] 본래는 김치냉장고를 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