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드리스 데비 이트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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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52년 6월 18일 ~ 2021년 4월 20일 (68세)

1. 개요
2. 생애
2.1. 사망
3. 독재 정치
4. 기타


1. 개요[편집]


이드리스 데비 이트노(Idriss Deby Itno).

북부 아랍인무슬림 출신으로 이드리스 데비라는 이름 자체가 아랍어 성명이다.[1]

차드독재자이자 학살자.

차드 내전에서 그나마 버티고는 있지만, 독재 정치와 폭압 통치를 일삼는 아주 악랄한 독재자로, 대표적인 아프리카의 잔인한 독재자 중 하나로 꼽혔다.


2. 생애[편집]


이드리스 데비는 북부 출신의 아랍인 계 차드인이다. 정확히는 아랍화된 함계 흑인이다.

데비는 수단에 망명했을 때 리비아의 지원을 받으면서 반정부 세력인 애국구제운동을 결성했고, 1982년 정치적 동지인 같은 아랍계 후세인 하브레와 함께 군사 쿠데타를 일으켜 구쿠니 우에데이 당시 차드 대통령을 축출했으며 이 쿠데타를 통해 자신의 동료인 후세인 하브레가 차드의 대통령에 취임했다.

하지만 하브레가 집권한 이후 데비는 리비아와의 영토문제를 두고 하브레와 갈등을 겪었고 결국 서로 갈라서기로 마음먹은 데비는 리비아의 지원으로 다시 애국구원운동당을 만들어 게릴라전을 통해 다시 수도를 점령하고 권력을 잡았다.

그렇게 이드리스 데비는 1990년 9월 2일 수도 은자메나를 장악하고 한때 자신의 편이였던 후세인 하브레 또한 다시 쿠데타로 몰아내고 1990년 12월 4일 스스로 대통령에 취임한 뒤 국가평의회를 구성했고 이후, 현재까지 차드의 대통령으로 30년 가까이 장기집권을 하고 있으며 차드의 집권당인 애국구원운동의 당수로도 활동 중이다.

이렇게 권력을 잡았지만 문제는 현재까지도 차드는 수많은 내전과 쿠데타를 일으키며 차드가 현재 개판이라는 점에 있다.

쿠데타로 정권을 잡은 이후 1998년 남부 기독교계 흑인 반군과의 평화협정이 체결됨으로 내전이 끝나는 듯 했으나 1999년 이번엔 같은 아랍계 무슬림 흑인 중에서 다시 반군이 새롭게 일어났다(...). 특히 2008년 2월 3일에는 굉장히 위기에 몰리기도 했다. 차드 수도인 은자메나로 진입한 반군이 이드리스 데비를 축출하기 위한 공격을 개시하면서 차드 정부군과 본격적인 전투를 벌였으며, 차드 정부군은 이날 헬리콥터장갑차를 동원해 대통령 사무실과 관저를 방어했으며 이후 반군을 격퇴했다고 한다.

결국에는 반군 공세가 강화되면서 은자메나가 장악되어 대통령이 대통령궁에 고립되기도 했다.

그래도 이드리스 데비가 어지쩌지 막아내서 반군은 쫓겨났지만 2009년에도 차드 동부 지역에서 교전이 계속되었다고 하며, 이들 반군은 상당수가 수단에서 지원하거나 수단에 근거지를 둔 이유로 차드가 수단 몇몇 지역의 반군 거점을 폭격하는 등의 행동을 해 수단과의 외교 마찰도 자주 일어나 결국 단교했다가 나중에 재수교했다.

이런 내전으로 인해 2008년에 확인된 바에 따르면 약 28만 5천명의 난민과 18만명의 차드 내 피난민들이 발생했다고 한다. 기사

이런 막장 내전이 지속되자 많은 사람들이 내전을 피해서 카메룬이나 리비아, 알제리, 튀니지 등 주변국으로 건너간다고 하며 주민들의 피난이 계속되고 있는 형편이다. 그나마 차드 내전은 2015년 현재 이드리스 데비의 통제로 안정을 찾아가고 있지만 국제 전문가들은 지속적인 반군들의 활동과 차드의 만성적인 가난으로 인해 데비 대통령이 정권을 유지할 수 있을지 의문을 제기하는 시선도 많다.

당연한 말이지만 차드는 아랍 연맹에서 소말리아, 예멘과 함께 파탄국가로 전락해 버린 지 오래이며, 북아프리카의 죽은 심장이라는 비아냥까지 듣는 판이다. 그 수단이나 남수단의 상황보다 더 심각하다.

물론 그러면서도 아프리카 독재자로서의 독재 테크를 착실히 수행중이다.

그는 2005년 국민투표를 통해 자신의 3선 연임을 가능하게 하는 대통령 임기제한을 없애는 개헌에 성공한 뒤 2006년 대통령 선거에서 승리했다. 2006년 5월 3일 차드에서 대통령 선거 투표가 이뤄졌는데 데비는 주로 친정부 인사들인 4명의 다른 후보들과 경쟁하고 있기 때문에 이겨봤자 거기서 거기라는 것을 안 야당 지도자들은 지지자들에게 투표를 거부할 것을 촉구했다.

여담으로 이 때 차드 정부는 선거를 방해하겠다는 반군의 위협에 대비하여 차드 수도의 보안을 강화했는데, 실제로 반군들은 선거 3주 전에 데비 정부를 전복시키기 위해 엔자메나를 공격하기도 했을 정도로 내전이 격화된 상태였다고.

2011년 5월 실시된 대선에서는 무려 89%의 지지율로 다시 당선돼 5년 임기를 다시 시작했다.

한편 차드 야권은 여당 애국구원운동당(MPS)이 2011년 2월에 실시된 총선에서 선거결과를 조작한 데다 이번 대선도 부정행위로 얼룩진 만큼 선거를 거부한다고 했다.

2015년 들어서는 나이지리아 이슬람 극단주의 무장반군 보코하람 소탕작전에 참여하고 있는 그는 보코하람 지도자 아부바카르 셰카우가 숨어 있는 곳을 알고 있다고 경고하면서 항복하지 않으면 쓸어버리겠다고 말하며 강력한 보코하람 퇴치작전을 펴는 중이다.[2]

2015년말리 인질극 사건이 발생하자 그는 즉각 성명을 발표하고 "야만적이고 미개한 행위를 비난한다"며 그런 말 할 자격이 없을텐데? "망설임 없이 말리를 도울 것."이라고 말했다.

현재 이슬람 원리주의 국가이자 아랍세계의 형님 국가인 사우디아라비아가 그의 뒤를 봐 주고 있다. 그렇게 독재자를 혐오하는 미국은 정작 이 인간은 반미 독재자가 아니라는 이유 하나만으로 신경도 쓰지 않고 있다.[3]

2.1. 사망[편집]


2021년 4월 20일, 반군 차드변화협력전선(FACT)의 북부차드 공세 중 전사했다. 현재 아들 마하마트 데비 이트노가 대통령 권한대행을 맡고 있다.

3. 독재 정치[편집]


그러나 이런 행보들과는 다르게 데비 정권은 악랄한 독재 정치와 고문 및 학살 등을 벌이고 있다.

2010년 엠네스티 인터내셔널 보고서에 의하면 차드의 민간인과 인권운동가들이 살해당하거나, 납치당하고 있으며, 여성과 소녀들이 성폭행을 당하고 있다. 또한 정부에 반대해 온 정치 세력이 불법적으로 체포되고 있으며, 무차별적인 구금과 고문이 행해지고 있으며, 기자와 인권단체에 대한 가혹행위와 협박도 이루어지고 있다고 한다.

그러나 차드 정부군과 데비 정권이 가장 비난받는 이유는 아이들이 군인으로 징집되고 있다는 점이다. 한마디로 아이들을 소년병으로 만들고 있다는 점이다.

증언에 의하면 가끔 좋은 옷을 입힌 아이들이 돈과 담배를 가지고 새 소년병 모집을 위해 다시 캠프로 보내지기도 하며, 이들은 미국 달러로 소년병으로 자원하는 아이들에게 20달러에서 500달러 정도의 보수를 제안한다고 한다. 약 10세 정도의 어린 아이들이 주로 연락책과 짐꾼으로 이용되며 13 ~ 17세 사이의 소년들은 대부분 전투에 직접 투입된다고 한다.

이에 국제앰네스티 아프리카국 에르윈 반 데르 보르트(Erwin van der Borght) 국장은 “수천명의 소년들이 아동으로서의 삶을 빼앗기고 어른들의 전쟁에서 싸우기 위해 내몰린다는 것은 비극이다. 이 부끄러운 아동 학대가 절대로 계속되어서는 안 된다.” “차드 정부와 동부 차드 지역에서 활동 중인 차드와 수단 무장 단체들은 즉각 18살 이하의 소년들을 징집하고 병사로 사용하는 행위를 멈추고 즉각 소년병들을 풀어줘야만 한다.”라고 차드 정부를 비난했다.자료

현재 차드 군이 소년병을 모집하는 문제 때문에 국제 사회의 비판을 받고 있지만 미군은 오히려 차드 특공대를 계속 훈련시키고 있어서 미국에 대한 비난이 상당히 거센 상황이다.[4]

게다가 이드리스 데비는 반군에 의해 자행된 범죄에 대한 사면 명령을 내렸는데, 이는 사실상 소년병 문제나 차드 정부군이 저지른 온갖 전쟁범죄에 대한 처벌을 무효화하는 법이라서 큰 비난을 받고 있다.

오죽하면 데비가 집권한 이후 석유의 이권 독점과 부정부패를 일삼고, 2006년에는 3선을 위해 헌법을 개정하면서 장기집권에 나서자 데비 대통령의 장기 독재와 부정부패에 반발하여 데비 정권의 일부 관료들도 반군에 합류했을 정도이며 현재 차드 반군을 이끄는 지도자 중에는 마하마트 누리 전 국방장관 등 데비 대통령 정부에서 일했던 고위 관료출신들이 적지 않은 것으로 알려진다.

그렇기 때문에 이드리스 데비가 저지르는 독재정치 때문에 내전이 더 격화되고 있다는 분석이 많다.

이러한 막장 독재행각, 그리고 그 때문에 격화되는 내전 덕분에 산유국임에도 차드는 북아프리카의 죽은 심장이라 불리는 비아냥을 들을 정도로 처참한 세계 최빈국으로 주저앉아 있다. 진짜로 먹을 게 없어서 과거 리비아에서 씹으면 돌맛 나는 맛대가리 없는 공갈빵을 마구 뿌렸을 때 차드인들은 그거라도 먹으려고 아쉬운 소리를 했으며, 뉴질랜드의 한 사료 회사가 개밥(...)이라도 줄까라며 사료를 원조해주겠다고 해서 국제사회의 몰매를 맞을 때도 차드인들은 그거라도 먹었으면 할 정도로 극심한 기아에 시달리고 있다.

4. 기타[편집]


이드리스 데비는 생전의 카다피와는 꽤나 친한 관계로 알려져 차드 역시 카다피의 망명 가능 국가로 언론보도에 나오기도 했다. 그리고 실제로 리비아 내전 당시 차드 출신의 베르베르인 용병 부대가 대거 참전하기도 했다. 리비아인들 사이에서 불어를 사용하고 흰색 터번을 쓴 정체불명의 흑인 무슬림 용병부대의 소문이 나돌았는데 이들의 정체가 차드와 이웃 니제르의 베르베르 용병들이었다.

이드리스 데비의 아들이 소화기로 살해된 사건이 있었다. 자료.

뇌물을 받자 '"왜 아프리카 지도자는 모두 부패한 것처럼 생각하냐"'(...)며 화를 냈다. #

카다피와 친한 관계였지만 미국에도 특별히 밉보인 건 없고 되려 보코 하람 퇴치에 앞장서서 이 인간의 독재행각에 대해 미국은 봐 주고 있다.

[1] 이드리스는 아랍어로 죽음을 경험하지 않고 승천한 선지자인 에녹을 뜻한다. 이드리스라는 이름은 과거 리비아 왕국의 국왕 이드리스 1세도 있었다.[2] 물론 이 인간이 특별히 정의감이 높아 그런 건 절대 아니고 보코하람이 자꾸 차드 남부지역을 쳐들어 오며 신경을 긁어서 보복에 나선 것 뿐이다. 카메룬의 독재자 폴 비야도 마찬가지로 북부 국경지대인 사헬 일대에서 보코하람이 속을 긁어서 응징하러 참전한 것 뿐이었다.[3] 사실 미국이 친미 독재자를 그냥 놔 두거나 오히려 지원하는 예는 흔하다. 사우디아라비아 왕가만 해도 인권탄압으로 악명 높지만 친미니까 그냥 봐 주고 못본 체 하고 있으며 과거 이란팔레비 왕조대한민국 박정희 및 전두환도 친미 독재자라 그냥 놔 두다가 나중에 한국인의 민주화 요구가 거세지자 그제서야 전두환을 버렸다. 장제스대만에서 50년 가까이 계엄을 선포하며 중국 국민당이 벌인 1당독재도 미국은 그냥 봐 줬다.[4] 전술했듯 미국은 이 인간이 반미 성향이 아닌데다 보코 하람 퇴치전을 벌이고 있는지라 봐 주고 있다. 그렇게 독재자를 혐오해 레짐 체인지도 마다치 않으며 사담 후세인카다피도 끌어내린 미국이 정작 자신들 비위에 맞는 독재자는 봐 주고 있는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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