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리키 사토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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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일:도쿄 야쿠르트 스왈로즈 심볼(1994~2014).svg
NPB 일본시리즈
우승반지
2001




파일:external/news.kbs.co.kr/8027573.jpg

이리키 사토시
入来智 / Satoshi Iriki

생년월일
1967년 6월 3일
사망
2023년 2월 10일 (향년 55세)
국적
[[일본|

일본
display: none; display: 일본"
행정구
]]

출신지
미야자키현 미야코노죠시
학력
카고시마실업고등학교[1]
신체
178cm, 80kg
포지션
투수
투타
우투우타
프로 입단
1989년 드래프트 6순위 (킨테츠)
소속팀
킨테츠 버팔로즈 (1990~1996)
히로시마 도요 카프 (1996)
킨테츠 버팔로즈 (1997~1998)
요미우리 자이언츠 (1999~2000)
야쿠르트 스왈로즈 (2001~2002)
두산 베어스 (2003)
라뉴 베어스 (2004)
가족 관계
동생 이리키 유사쿠

1. 개요
2. 선수 생활
2.1. NPB 시절
2.2. KBO 리그 시절
2.3. CPBL 시절
3. 연도별 성적
4. 사망
5. 기타
6. 관련 문서



1. 개요[편집]


일본의 前 프로야구 선수. 일본프로야구, 한국 프로야구, 대만 프로야구 리그 3개 리그에서 활동했던 저니맨이자 KBO 리그 역사상 최초의 일본인[2] 선수다.


2. 선수 생활[편집]



2.1. NPB 시절[편집]


카고시마 실업 고등학교 진학을 거쳐 사회인야구팀 미츠비시 자동차 미즈시마에서 뛰다가 1989년 킨테츠 버팔로즈에 6순위로 지명받아[3] 프로에 데뷔했다. 입단 후 6년간 임시 선발과 불펜 투수를 오고갔으나 1996년에 1군에 등판하지 못하다가 6월에 포수 요시모토 료와 맞트레이드되어 히로시마 도요 카프로 이적했다. 그러나 히로시마에서도 딱히 기회를 받지 못하며 6경기 등판, 0승 3패의 부진한 성적에 그쳤고 시즌 후 다시 요시모토와 트레이드되어 킨테츠로 돌아가게 된다.

1999년에 사토 히로유키와의 맞트레이드로 동생인 이리키 유사쿠[4]가 뛰고 있는 요미우리 자이언츠로 이적하면서 요미우리 구단 역사상 최초의 형제 선수로 기록되지만, 1999년에는 22경기 출장에 그쳤고 2000년에는 아예 1군에 올라오지 못하면서 시즌 후 방출되었다. 그리고 2001년 야쿠르트 스왈로즈에 입단했는데, 여기서 이리키는 10승 3패 평균자책점 2.85의 성적을 거두며 만 34세의 나이에 커리어하이를 기록했다. 마찬가지로 그 해 13승을 거두면서 커리어 하이를 기록한 동생 유사쿠와 함께 올스타전에도 출장했고, 그 해 야쿠르트의 센트럴리그-일본시리즈 우승에 공헌하는 최고의 시즌을 보냈다.

하지만 이듬해인 2002년에는 1승 3패 평균자책점 6.66으로 크게 부진했고, 결국 시즌 후 전력외 통보를 받으며 방출되었다.


2.2. KBO 리그 시절[편집]


2003 시즌을 앞두고 이리키는 두산 베어스와 계약을 맺으며 (재일교포를 제외한) 한국프로야구 역사상 최초의 일본인 선수로 등록된다. 김인식 감독은 진필중KIA 타이거즈로 이적하면서 비게 된 마무리 자리를 이리키에게 맡길 계획이었으나 이리키는 마무리 자리에서 썩 좋지 못한 모습을 보였고, 결국 김인식 감독은 마무리 투수를 구자운으로 바꾸는 대신 이리키를 선발 투수로 전환시킨다.

여담으로 이리키의 첫 세이브 장면을 취재하기 위해 일본 방송에서 한국을 찾아왔으나 두산의 연패가 길어지면서 예정보다 훨씬 한국에 머물러있는 해프닝이 있었다.

갑작스럽게 결정된 보직 변경이었으나, 결과는 성공적이었다. 이리키는 선발 전환 후 리그 최다인 5번의 완투를 기록하는 등 이닝이터로서의 모습을 보여주면서 시즌 중반 합류한 마크 키퍼와 함께 선발진을 이끌었다. 시즌 성적은 39경기(5완투 1완봉) 7승 11패 5세이브 평균자책점 3.74. 다만 재계약은 하지 못하면서 한국 무대를 떠나게 된다. 승운이 좀 없었던 것을 빼면 훌륭한 성적이었지만, 이 시절 선수를 평가하는 기준은 투승타타였던지라 10승을 못 거둔 것이 컸다.

굉장히 공격적인 투구 스타일을 가지고 있었다고 한다.


2.3. CPBL 시절[편집]


2004년 이리키는 대만프로야구 팀 라뉴 베어스(現 라쿠텐 몽키스)와 계약을 맺었다. 라뉴에선 11경기에서 4승 6패 평균자책점 3.39를 기록하다 시즌 도중에 방출되었고 결국 그 해를 끝으로 현역에서 은퇴했다.


3. 연도별 성적[편집]


역대 기록[5]
연도
소속팀
경기수
이닝




ERA
피안타
피홈런
볼넷
사구
탈삼진
WHIP
2003
두산
39
159
7
11
5
0
3.74
155
17
53
9
87
1.31
KBO 통산
(1시즌)
39
159
7
11
5
0
3.74
155
17
53
9
87
1.31


4. 사망[편집]


2023년 2월 10일 오후 9시 50분경 미야코노죠 시내에서 운전 도중 반대 방향에서 오던 승용차와 충돌하여 운전 중이던 차가 도로 근처의 논밭으로 추락하는 교통사고를 당했고[6], 의식불명에 빠진 상태로 긴급히 병원으로 이송되었지만 결국 약 2시간 후인 오후 11시 45분에 중증 두부외상으로 사망했다. 향년 55세. # 당시 인근의 미야자키시에서 투수코치로 오릭스 버팔로즈 스프링캠프를 지도하던 동생 유사쿠는 형의 사망 소식을 듣고 곧바로 미야코노죠시로 가느라 사고 다음 날인 11일 훈련에 참석하지 못했다.

사후 미야자키현 경찰본부에 따르면 사회복지 분야에서 개호사로 일하고 있었다고 하며, 한일 야구 팬들은 모두 이리키의 사망을 애도했다. 사망 1주일 전 가족들이 다 같이 어머니의 기일에 같이 모였는데 그 자리에서 동생 유사쿠가 아버지를 부탁한다고 말하자 '(자신에게) 맡겨두라'고 한 것이 가족들에게 마지막으로 남긴 말이 되고 말았다는 소식이 전해지며 안타까움을 더하고 있다.

5. 기타[편집]


  • 첫째 동생인 이리키 유사쿠는 현재 오릭스 버팔로즈의 투수 코치를 맡고 있으며 막내동생 이리키 히로유키도 야구선수였다. 단 히로유키는 프로에 진출하진 않았다.
  • 동생 유사쿠와 일본프로야구 시절 통산 승수가 35승으로 동일하다. 심지어 형제 모두 커리어하이가 2001년 시즌이었고 그 해 올스타전에서 나란히 등판했다.
  • 동생 유사쿠의 회고에 따르면, 포수 사인을 잘 외우지 않고 자기 멋대로 던져서 요미우리 시절 주전 포수이자 함께 배터리를 짰던 무라타 신이치가 엄청 고생했다고 한다. 증언
  • 박명환야구TV에서 잠깐 언급됐다. 정수근이 말하기로는 맥주와 여자를 좋아했다고 한다. 아예 욕조에 얼음과 물을 부어놓고 맥주를 가득 담근 후에 주변 동료들에게 마시자고 꼬셨다고.[7]
  • 프로 입단 후에 2차례 결혼했는데, 2번째는 은퇴 후 학생 시절에 만났던 여자친구를 다시 만나 재혼했다고 한다. 은퇴 후에 전처에게 줄 위자료와 본인의 낭비벽 등으로 생활고를 겪고 일용직을 전전하는 등 고생하고 있었는데 이때 지금의 아내가 많이 도와 주면서 결혼까지 이어지게 되었고, 아내 덕에 처남이 운영하는 도시락 체인점에서 일하게 되었지만 튀김 등 각종 요리를 할 때 이것저것 주의를 받는 것을 못 견뎌서 몇년 만에 그만뒀고 이후 취직과 실직을 거듭하며 아내에게 의존하는 삶을 사는 바람에 아내가 결국 본업인 미용실까지 그만두면서 남편을 재취업시키고자 노력했다고 한다. 생전 이리키 본인의 말에 의하면 한평생 야구만 해왔기 때문에 무엇을 하고 살아야 할 지를 모르겠다고.


6. 관련 문서[편집]


[1] 스기우치 토시야, 혼다 유이치의 고교 선배다.[2] 재일교포 제외.[3] 노모 히데오의 8구단 동시 1위 지명으로 유명했던 드래프트로, 노모 이외에도 후루타 아츠야, 사사오카 신지, 사사키 카즈히로, 신죠 츠요시 등 거물 선수들을 여럿 배출해낸 드래프트다.[4] 이쪽도 요미우리 자이언츠-홋카이도 닛폰햄 파이터즈-뉴욕 메츠, 토론토 블루제이스 산하 마이너리그-요코하마 베이스타즈를 거친 저니맨이었다. 여담으로 2006년 메츠 스프링캠프에서 당시 복용하던 영양제가 금지약물 검사에 걸려 50경기 출장정지 처분을 받은 적이 있다.[5] KBO에서의 성적만 기입[6] 상대 승용차 운전자는 별다른 부상을 당하지 않았다고 한다.[7] 이 이후 두산 외국인 선수들은 술 관련하여 이야기가 없으며, 오히려 더스틴 니퍼트는 "지금 먹은 술이 좋을수도 있지만 이 한잔 때문에 너희들 인생이 바뀔 수도 있다. 대리운전 없이 운전하고 가면 나한테 혼날줄 알라"라는 코멘트를 남겼다. 오히려 니퍼트의 출신지인 웨스트버지니아 주는 미국에서도 음주 관련 규제가 엄격한 편에 속하며, 다른 외국인 선수들도 맷 랜들은 음악, 로버트 스탁리그 오브 레전드를 좋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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