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의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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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일:정의도.jpg
출생
1891년 11월 9일
황해도 평산군 세곡면 여천리
사망
1966년 12월 8일
서울특별시
묘소
국립대전현충원 독립유공자 묘역
상훈
건국훈장 독립장

1. 개요
2. 생애



1. 개요[편집]


한국독립운동가. 1963년 건국훈장 독립장을 수여받았다.

2. 생애[편집]


정의도는 1891년 11월 9일 황해도 평산군 세곡면 여천리에서 태어났다. 호는 칠성(七星)이다. 그는 1907년 평양(平壤)에 경흥야간학교(慶興夜間學校)를 설립하고 청소년 교육에 전념하였으며, 1909년 11월에는 이완용 암살계획에 가담하였으나 실패하고 이재명 등과 함께 체포되어 6개월간 수감되었다가 불기소처분되었다. 재판 기록에 따르면 당시 그의 직업은 인장조각사(印章彫刻士)였다고 한다.

1919년 4월 대한민국 임시정부가 수립되자, 그는 국내외의 통신업무를 관장하고 군자금을 모집하며, 각종 정보의 수집 등을 위해 황해도 사리원(沙里院)과 서울 사이에 교통국(交通局)을 설치하고, 임시정부의 문서를 배포하고, 공채를 수집하며, 군자금을 모집하는 등 활동을 전개하다가 일본 경찰에 의해 체포되었다. 이후 1921년 5월 17일 경성지방법원에서 징역 4년형을 받고 다시 옥고를 치렀다. 출옥 후 중국 지린성 혼춘현에 건너가 항일활동을 계속하였으며, 8.15 광복 후 서울로 귀환해 조용히 지내다 1966년 12월 8일에 사망했다.

대한민국 정부는 1963년 정의도에게 건국훈장 독립장을 수여했다. 그리고 1988년 그의 유해를 국립대전현충원 독립유공자 묘역에 안장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