줄리언 데구즈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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캐나다의 축구인


이름
줄리언 데구즈만
Julian de Guzman
본명
줄리언 보비 데구즈만
Julian Bobby de Guzman
출생
1981년 3월 25일 (43세) /
캐나다 온타리오토론토
국적
[[캐나다|

캐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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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정구
]]

신체
170cm
직업
축구선수 (미드필더 / 은퇴)
축구 감독
소속
선수
노스 스카보로 SC (1994~1997 / 유스)
올랭피크 드 마르세유 (1997~2000 / 유스)
1. FC 자르브뤼켄 (2000~2002)
하노버 96 (2002~2005)
RC 데포르티보 데 라 코루냐 (2005~2009)
토론토 FC (2009~2012)
FC 댈러스 (2012)
SSV 얀 레겐스부르크 (2013)
크산티 FC (2013~2014)
오타와 퓨리 FC (2015~2016)
감독
오타와 퓨리 FC (2017 / 수석코치)
오타와 퓨리 FC (2017 / 감독 대행)
기타
오타와 퓨리 FC (2017~2019 / 단장)
1812 FC 배리에 (2020 / 회장)
국가대표
파일:캐나다 축구 국가대표팀 엠블럼.svg 89경기 4골 (캐나다 / 2002~2016)
가족관계
동생 요나탄 더구즈만
1. 개요
2. 클럽 경력
3. 국가대표 경력
4. 선수 은퇴 이후
5. 여담



1. 개요[편집]


캐나다의 축구 감독. 2019년까지 오타와 퓨리의 감독으로 재직했다.

현역 시절 캐나다 축구 국가대표팀의 핵심 미드필더였으며 동생이 바로 네덜란드 대표팀으로 2014년 월드컵에 출전했던 요나탄 더구즈만이다. 형제끼리 다른 국적의 대표팀으로 활약하는 드문 사례 중 하나였다.[1]


2. 클럽 경력[편집]


노스 스카보로 SC라는 자국 클럽에서 유소년 선수로 뛰다가 1997년 프랑스 명문 팀 올랭피크 드 마르세유 팀에 스카웃되었다. 그러나 3년 동안의 유소년 생활에도 불구하고 마르세유 1군 데뷔를 하지 못한 채 독일 하부리그 팀인 1. FC 자르브뤼켄에 입단해 처음 프로에 데뷔할 수 있었다. 2001-02 시즌부터 2. 분데스리가 19경기에 뛰며 본격적으로 성인 무대에 발을 디뎠다.

이후 2002-03 시즌 새로이 분데스리가에 승격한 하노버 96으로 이적해 역사상 세 번째 캐나다인 분데스리가 선수가 되었다. 하노버에서는 주전급 미드필더로 자리매김하며 2003-04 시즌 분데스리가 데뷔골을 넣는 등 활약했다.

이후 2005-06 시즌 라리가의 중견 팀 RC 데포르티보 데 라 코루냐에 입단했다. 당초 FA 신분으로 대표팀 동료 폴 스톨테리가 있는 토트넘 홋스퍼 FC 이적이 유력했으나 데포르티보 이적으로 급선회한 것으로 알려졌다. 그러면서 그는 캐나다인 최초의 라리가 진출 선수가 되었다. 데포르티보에서 그는 전성기를 맞이했고 특히 2007-08 시즌 데포르티보의 기적과도 같은 강등권 탈출의 주역으로써 시즌 베스트에 뽑히는 등 최고의 활약을 했다. 네 시즌 동안 리그 97경기 포함 통산 116경기 1골을 기록하고 데포르티보와의 계약 만료에 맞춰 팀을 떠났다.

이후 2009년 여름 고향팀 토론토 FC에 입단해 경력 처음으로 MLS에 입성했다. 캐나다인 선수로는 최초로 DP, 즉 샐러리캡이 적용되지 않는 지정 선수 계약으로 화려하게 토론토에 입단했다. 토론토 구단 입장에서도 상징적인 선수라, 2010년 토론토가 재정난으로 힘들 당시 그를 트레이드로 풀어줄 것이라는 예상과 다르게 그를 지키기 위해서 무려 4장의 차기 시즌 드래프트 지명권을 포기할 정도였다.

하지만 2011년 1월, 큰 무릎 부상을 당하면서 그의 폼이 꺾였다. 2011년 후반기 팀에 복귀했지만, 이전과 같은 스태미너를 기대하긴 어려웠고, 시즌 20경기 이하로 출전수가 확 줄게 된다. 2012 시즌 초중반 다시 주전급으로 복귀했으나 이전과 같은 퍼포먼스는 아니었고, 결국 토론토는 그를 앤드류 비더만과의 트레이드로 FC 댈러스로 보내게 된다. 댈러스에서 남은 시즌 동안 12경기에 출전했고, 팀은 그를 웨이버 공시하면서 웨이버 공시된 선수들만 참여하는 2차 드래프트에 내놓게 된다.

하지만 그는 2차 드래프트 참가 대신 독일 행을 선택해 다시 2. 분데스리가에 도전한다. 2012-13 시즌 후반기 SSV 얀 레겐스부르크에 입단해 15경기를 뛰었으나 팀이 3. 리가로 강등되는 바람에 다시 자유계약이 되었고, 그리스 리그 크산티 FC에서 한 시즌을 보낸 뒤 2014년 계약 만료 후 약 1년을 무소속으로 쉬었다. 2015년 NASL의 오타와 퓨리에 입단한 그는 2시즌을 치른 뒤 2016년 선수 생활을 마무리했다.


3. 국가대표 경력[편집]


2001 FIFA 월드 유스 챔피언십 아르헨티나 대회에 출전했고, 2002 CONCACAF 골드컵에서 캐나다 A대표팀 데뷔전을 치뤘다.

2007 CONCACAF 골드컵에서 매우 좋은 활약으로 캐나다의 4강 진출에 일조했다. 특히 홀로 2골을 넣으며 조별리그 최대 난적인 코스타리카를 2-1로 이기는 데 1등공신이 되었고, 대회 MVP에도 선정될만큼 전 경기 좋은 활약을 보였다. 이후에도 2009, 2011, 2013, 2015까지 네 번의 골드컵을 더 출전하며 캐나다 대표팀의 중심을 잡아주었다. 2016년을 마지막으로 대표팀 생활을 마무리했다. 그의 출전 기록은 89경기는 꽤 오랜 기간 동안 캐나다 A매치 최다 출전기록이었고, 몇 년이 더 지나서야 아티바 허친슨에 의해 깨졌다.


4. 선수 은퇴 이후[편집]


오타와에서 2016년 선수 생활을 마무리한 뒤 곧바로 2017년 1월 오타와의 수석 코치로 부임했다. 이후 2017년 8월 폴 달글리시 감독이 경질되자 남은 시즌 동안 감독 대행 업무를 맡게 되었고, 2017년 시즌 종료 후 새 감독 니콜라 포포비치의 선임이 확정되자 구단의 단장으로 임명되었다.

2017년부터 2019년까지 오타와 퓨리의 단장으로 일했고, 이후 2020년 새롭게 창단된 구단 1812 FC 배리에의 회장 겸 공동소유자로 자리를 옮겼다. 그러나 1년만에 구단을 떠났고, 이후 2년 가까이 행적이 없는 상황이다.


5. 여담[편집]



  • 필리핀인 아버지와 자메이카인 어머니 사이에서 태어난 혼혈이다. 때문에 그 또한 자메이카, 필리핀, 캐나다 3개국의 국가대표를 선택할 수 있었지만 태어난 곳인 캐나다 대표팀을 선택했다.
    • 동생 또한 캐나다 축구협회에서 대표팀 합류를 위해 접촉했다고 한다. 그러나 2008년 3월, 네덜란드 U-21 대표팀 소집을 요나탄이 받아들이고 그 해 올림픽 출전을 하게 되면서 형과 동생이 같은 유니폼을 입고 뛰는 일은 없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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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비슷한 사례로 폴 포그바- 플로랭텅 포그바, 제롬 보아텡-케빈 프린스 보아텡 형제 등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