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란시스코 데 아시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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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편집]
스페인의 이사벨 2세의 부군. 카를로스 4세의 막내아들 프란시스코 데 파울라의 아들이다.
2. 생애[편집]
1846년 10월 10일에 정치적인 이유로 친가쪽과 외가쪽 모두 사촌 관계[1] 가 되는 이사벨 2세와 결혼했다. 두 사람 사이에서는 12명의 아이가 태어났지만, 유아기를 넘긴 건 5명뿐이었다.
정략결혼이었기에 부부 사이는 좋지 않았다. 궁중에서는 프란시스코 데 아시스가 동성애자라거나 성적 기능에 문제가 있다는 소문이 돌았다. 성적 기능에 대한 부분은 프란시스코 데 아시스가 요도하열[2] 로 인해 앉아서 소변을 보던 것이 와전된 소문이었다. 카를로스파[3] 에게 이는 좋은 먹이감이었고, 사실여부를 막론하고 소문을 끝없이 퍼트렸다. 심지어 이 소문을 이용해 이사벨 2세가 낳은 아이들 모두 프란시스코 데 아시스의 자식이 아니라는 말을 흘리기도 했다. 소문대로라면 군주의 배우자는 성적 기능에 문제가 있고 여왕은 그런 와중에 아이를 12명이나 낳은 문란한 여자가 되니, 여왕 세력에게 큰 타격을 줄 수 있는 주장이었다. 그러나 프란시스코 데 아시스는 아이들 모두 자신의 자식이라고 일갈했다.
이사벨 2세의 치세는 불안정했다. 1868년에 프란시스코 세라노 장군과 후안 프림 장군이 쿠데타를 일으키면서 여왕과 프란시스코 데 아시스는 프랑스로 망명했다. 결혼 생활은 불행했지만 망명 기간 동안 부부는 친구같은 사이가 되었다. 망명하고 얼마 후 두 사람은 친애의 작별을 하고 각자의 길을 갔다. 1902년 4월 17일, 프란시스코 데 아시스는 프랑스 에피네쉬르센에서 두 딸 이사벨과 에우랄리아가 지켜보는 아래 숨을 거두었다.
3. 가족관계[편집]
3.1. 조상[편집]
3.2. 자녀[편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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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아버지 프란시스코 데 파울라와 이사벨 2세의 아버지 페르난도 7세가 형제지간이고, 어머니 양시칠리아의 루이사 카를로타와 이사벨 2세의 어머니 양시칠리아의 마리아 크리스티나도 자매지간이다.[2] 요도 입구가 원래 있어야 하는 곳보다 아래에 있는 선천성 기형.[3] 이사벨 2세의 숙부이자 정적 몰리나 백작 카를로스를 지지하는 세력.[4] 아우구스트 3세의 장녀이자 요제프 1세의 외손녀이다.[5] 펠리페 5세의 5남이다.[6] 루이 15세의 장녀이자 스타니스와프 1세 레슈친스키의 외손녀이다.[7] 프란츠 1세와 마리아 테레지아의 10녀이다.[8] 펠리페 5세의 손녀이자 루이 15세의 외손녀이다.[9] 페르디난도 2세의 5남이다.[10] 루이필리프 1세의 손녀이자 페르난도 7세의 외손녀이다.[11] 마리아 데 라스 메르세데스, 알폰소 13세 등[12] 루트비히 1세의 손자이다.[13] 루이필리프 1세의 손자이자 페르난도 7세의 외손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