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터 위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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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터 위어의 주요 수상 이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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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터 위어
Peter Weir


이름
피터 린제이 위어
Peter Lindsay Weir
출생
1944년 8월 21일 (79세)
뉴사우스웨일스 주 시드니
국적
[[호주|

호주
display: none; display: 호주"
행정구
]]

직업
영화 감독, 각본가, 프로듀서
활동
1967년 – 2010년
신체
180cm
학력
시드니 대학교 (법학 / 중퇴)
배우자
웬디 스타이츠 (1966년 결혼)[1]

1. 개요
2. 생애
2.1. 초기 경력
2.2. 할리우드
2.3. 은퇴
3. 특징
4. 필모그래피
5. 여담
6. 외부 링크



1. 개요[편집]


호주영화 감독, 각본가, 프로듀서

호주 뉴웨이브를 이끈 거장 감독으로, 일련의 찬사를 받은 할리우드 영화를 연출해 호주 영화 제작의 르네상스에 기여했다.


2. 생애[편집]



2.1. 초기 경력[편집]


피터 위어는 1944년 8월 21일 시드니에서 태어났다. 부동산 중개인의 아들인 그는 모범생으로 자랐고, 시드니 대학교 로스쿨에 입학했지만, 이후 학교를 그만뒀다. 위어는 아버지가 사업을 시도한 후, 1965년에 유럽으로 여행을 떠났다. 이듬해 위어는 호주로 돌아왔는데, 연예계에서 경력을 쌓기로 결심했다. 위어는 텔레비전 방송국에서 무대 감독으로 일하기 시작했고, 그곳에서 다른 직원들과 재미로 단편 영화를 만들었다. 1968년에는 TV용 단편 프로그램 Count Vim's Last Exercise을 제작했다.

1969년부터는 정부가 지원하는 영연방 영화 부대에서 일을 구해, 카메라맨과 감독일을 시작한다. 그곳에서 다큐멘터리와 교육 영화 세트를 제작하며 영화 연출 기술을 배웠다. 피터 위어는 1971년 '스리 투 고'로 감독 데뷔를 했는데, 이 작품은 관객들과 비평가들 모두에 의해 거의 주목받지 못했다. 3년 뒤인 1974년, 그의 첫 장편 영화인 '파리를 삼킨 자동차'가 개봉했다. 공포물과 블랙 코미디를 섞은 장르 영화이며, 25만 달러의 저예산으로 만들어진 독립 영화다. 매드 맥스에 지대한 영향을 준 영화로 평가받고 있다. 위어는 이 작품으로 평론가들에게 일약 주목받게 된다.

다음 해에 연출한 '행잉록에서의 소풍'은 더욱 성공적이었다. 45만 달러의 저예산으로 만들어진 이 작품은 비평가들에게 호평을 받았고, 상업적으로도 성과를 거뒀다. 여학생들이 쥐도 새도 모르게 사라진 실화를 토대로 제작했는데, 초현실적인 이야기를 매우 잘 연출해 큰 반향을 일으켰고, 지금까지도 컬트 고전으로 유명하다. 또한 이 작품은 호주 뉴웨이브를 전세계적으로 알리는데 큰 기여를 한 영화이며, 호주 영화 전성기의 한 축을 담당하는 작품이다. 피터 위어의 초기 대표작이라고 할 수 있다. 1977년 개봉작인 시드니를 배경으로 한 비슷한 느낌의 몽환적인 살인 미스터리 영화 '잃어버린 시간'도 좋은 평가를 받았다. 현대인이 집단적 무의식에서 이탈해 가는 것이 드러나면서 나타나는 문화적 충돌에 대해 뛰어나게 묘사했다.


'갈리폴리' 촬영 당시의 피터 위어(오른쪽)[2]

1981년 피터 위어는 전쟁 영화 '갈리폴리'로 처음으로 국제적인 인정을 받았다. 당시 상대적으로 무명이었던 멜 깁슨이 주연으로 출연하는데, 제1차 세계 대전(갈리폴리 전투)에 참전하는 두 친구 중 한 명으로 출연했다. 이 영화는 호주 영화 협회에서 8개의 상을 수상했고, 국제 비평가들로부터 큰 호평을 받아, 호주 밖에서 위어의 명성을 확립했다. 위어의 마지막 호주 작품은 그가 각본을 쓰고 감독을 맡은 1982년 개봉작 '가장 위험한 해'다. 시고니 위버와 멜 깁슨이 출연한 이 영화는 1965년 인도네시아 수카르노 정권의 몰락을 배경으로 한 로맨스 영화로 1983년 칸 영화제에서 처음으로 경쟁 부문에 진출해 국제적인 비평적 성공작임을 입증했다.


2.2. 할리우드[편집]


'죽은 시인의 사회' 촬영 당시의 피터 위어(오른쪽)[3]
'트루먼 쇼' 촬영 당시의 피터 위어(오른쪽)[4]
모국에서 성공적으로 경력을 쌓은 피터 위어는 본격적으로 할리우드로 진출했고, 1985년에 미국 영화 '위트니스'를 연출했다. 미국 땅으로 첫 여행을 떠나 아미시 가족의 농장에서 부상에서 회복한 필라델피아 경찰(해리슨 포드)의 눈에서 바라본 문화 충돌을 그려낸 영화다. 이 작품은 평론가들에게 높은 평가를 받았고, 흥행에서도 제작비 대비 무려 10배의 수익을 올리는 등 큰 성공을 거뒀다. '위트니스'는 위어에게 첫 아카데미 감독상 후보 지명을 안겨주었고, 해리슨 포드를 대규모 액션 영화 배우 이상의 능력을 갖춘 실력파 배우로 자리매김하게 했다. 포드는 이 작품의 연기로 커리어 최초로 아카데미 남우주연상 후보에 오르게 된다.[5]

첫 할리우드 영화를 성공적으로 장식한 피터 위어는 다음 작품으로 폴 서루(Paul Theroux)의 소설 '모스키토 코스트'를 각색한 영화를 연출했다. 각본은 택시 드라이버로 유명한 폴 슈레이더가 담당했다. 1986년 개봉한 이 작품은 이전 작품들보다 덜 성공적이었다. 강렬한 소재와 해리슨 포드, 헬렌 미렌, 리버 피닉스를 포함한 훌륭한 캐스팅에도 불구하고, '모스키토 코스트'는 비평가들이나 관객들에게 큰 반향을 일으키지 못했다. 2,500만 달러의 제작비로 만들어져서, 1,430만 달러의 수익만을 거둬들였다. 다만, 최근 들어서 어느정도 재평가를 하는 분위기도 있다.

'모스키토 코스트'의 실패 이후 4년 뒤인 1989년, 학원 영화 '죽은 시인의 사회'를 연출했다. 각본은 톰 슐만이 담당했다. 10대 학생들의 성장물인 이 영화는 비평적으로나 상업적으로나 매우 큰 성공을 거뒀고, 부진에 빠져있던 위어는 성공적으로 재기하게 된다. 위어의 깊이 있고 서정적인 연출이 매우 잘 나타난 작품이다. 또한 주연 로빈 윌리엄스는 커리어 최고의 연기 중 하나를 보여줬는데, 이 작품으로 코미디 배우에서 드라마 배우로 거듭나게 된다. '죽은 시인의 사회'는 위어에게 두 번째 아카데미 감독상 후보 지명을 안겨주었고, 로빈 윌리엄스도 두 번째로 아카데미 남우주연상 후보에 오른다.[6] 또한 영국 아카데미에서 작품상을 수상했고, 프랑스 세자르상에서 최우수 외국 영화상을 수상했다. '죽은 시인의 사회'는 지금까지도 가장 인기가 많은 위어의 작품 중 하나이며, 성장물의 고전으로 평가받고 있다.

피터 위어는 '죽은 시인의 사회'의 성공 이후 다음 해인 1990년에 '그린카드'를 연출했다. 이 작품은 가벼운 로맨틱 코미디 영화인데, 할리우드 진출 이후 처음으로 각본을 썼다. 앤디 맥도웰이 출연하며, 프랑스의 국민 배우 제라르 드파르디외가 할리우드로 진출하게 된 작품이다. '그린 카드'는 평론가들에게 호평을 받았고, 피터 위어는 처음으로 아카데미 각본상 후보에 오른다. 다만, 흥행에서는 고전을 면치 못했다. 3년 뒤인 1993년 위어는 제프 브리지스가 항공 추락 사고 생존자로 출연한 드라마 영화 '공포 탈출'로 돌아왔다. 라파엘 이글레시아스의 소설을 원작으로 한 작품이다.[7] 이 작품은 베를린 영화제 경쟁 부문에 초청됐다. '공포 탈출'은 비평가들의 찬사를 받았음에도 불구하고, 박스오피스에서 굉장히 고전했다.[8] '공포 탈출'의 흥행 실패로 인해, 피터 위어는 5년 동안 영화계에 모습을 드러내지 못했다. 다만, 작품 자체는 위어의 가장 저평가 된 작품 중 하나로 평가받을 정도로 잘 만든 수작이다.

1998년 피터 위어는 SF 코미디 영화 '트루먼 쇼'로 영화계에 복귀했다. 각본가는 '가타카'를 연출한 앤드류 니콜이다. 이 작품의 대성공으로 위어는 다시 재기하게 된다. 피터 위어의 깊이있고 세밀한 연출이 잘 담겨져 있는 작품으로, 지금까지도 그의 최고작이라고 평가하는 사람들이 많다. 당시 코미디 배우로 인식되고 있었던 짐 캐리가 역대급 열연을 펼쳤으며, 골든 글로브 시상식에서 남우주연상을 수상했다. 흥행에서도 '그린카드'와 '공포 탈출'의 부진을 만회할 정도로 큰 성공을 거뒀는데, 피터 위어의 작품들 중 상업적으로 가장 성공을 거둔 작품이다.[9] '트루먼 쇼'는 현재까지 대중적으로 많은 지지를 얻고 있는 작품이다. 1990년대를 상징하는 SF 영화 반열에 올랐으며, 위어를 대표하는 작품이 됐다. 관객과 비평가들에게 호평을 받은 피터 위어는 세 번째로 아카데미 감독상 후보에 올랐지만, 강력한 경쟁자들로 인해 수상하지 못했다. 당시 감독상은 '라이언 일병 구하기'의 스티븐 스필버그가 가져갔다.


'마스터 앤드 커맨더: 위대한 정복자' 촬영 당시의 피터 위어(왼쪽)[10]

'트루먼 쇼' 이후에는 다시 공백기를 가졌는데[11], 2003년 역사 영화 '마스터 앤드 커맨더: 위대한 정복자'의 각본가 겸 감독으로 영화계에 복귀했다. 각본가 존 콜리[12]와 공동으로 각본을 집필했으며, 제작자로도 참여했다. 이 영화는 범선 항해를 그야말로 그림으로 그려놓은 듯 상세히 묘사한 소설 시리즈 '오브리-머투린 시리즈'를 원작으로 했다. 위어는 시대적 디테일에 관심이 많은 것으로 알려졌는데, 압도적인 비주얼과 캐릭터 중심의 감성적인 연출을 보여줬다. 주연 러셀 크로우 역시 굉장히 뛰어난 연기를 보여줬다. 결과적으로 배가 등장하는 역사물 영화의 한 획을 그은 수작이었다는 평이 많다. 다만, 흥행면에서는 미묘한 수익을 거둬들여 큰 성공을 거두지는 못했다. 이 영화는 개봉과 동시에 많은 상을 받았으며, 위어의 네 번째 아카데미 감독상 후보 지명과 아카데미 작품상 후보 지명을 포함하여 10개의 아카데미상 후보 지명을 받았다. 하지만 이번에도 피터 위어는 후보에 그치게 된다. 당시 상을 휩쓴 작품이 바로 '반지의 제왕: 왕의 귀환'이었다.

피터 위어는 '마스터 앤드 커맨더: 위대한 정복자' 이후 또다시 긴 공백기를 보내다가 2010년 폴란드 전쟁 포로의 회고록을 바탕으로 한 영화 '웨이 백'으로 7년만에 복귀했다. 1942년 시베리아 굴라그에서 탈출해 인도로 떠나는 군인들의 위험한 탈출극을 다룬 영화다. 배우는 짐 스터지스, 에드 해리스, 시얼샤 로넌, 콜린 패럴 등이 출연했다. 영화는 평론가들이나 관객들에게 호평을 받았지만, 박스오피스에서 실패를 거뒀다.


2.3. 은퇴[편집]



아카데미 공로상을 수상한 피터 위어

피터 위어는 2010년 개봉한 '웨이 백' 이후, 더 이상 영화계에 복귀하지 않았다. 공식적으로 은퇴에 대해 이야기하지는 않았지만, 사실상 은퇴라고 봐도 될 정도로 활동을 하지 않고 있다. 죽은 시인의 사회에 출연했던 에단 호크는 2022년 7월 "위어가 영화에 대한 흥미를 잃었다고 생각한다."라고 말하며, 그의 은퇴 계기를 추측했다. #[13]

2022년 6월, 영화 예술 과학 아카데미가 피터 위어에게 아카데미 공로상을 수여한다는 기사가 발표됐다. 이 상을 수상하며 지금까지의 업적을 인정받게 됐다. 위어는 아카데미상에서 여섯 차례[14]나 후보에 올랐지만 모두 수상에 실패했는데, 드디어 아카데미 트로피를 거머쥐게 됐다. 또한 아카데미 공로상을 받은 최초의 호주 영화 감독이 되었다. 11월 19일, 오래간만에 공식 석상에 나와 아카데미 공로상 수상 소감을 말했다.[15] 그는 호주 영화가 국제적인 주류에서 막 싹트고 있던 1970년대의 자신의 전성기를 회상하며 "우리는 아무것도 몰랐다. 하지만 우리는 단호했다. 우리는 발밑에 앉을 수 있는 기성세대가 없었다. 당신이 틀렸다고 말해줄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라고 말했다.

공로상 수상과 동시에 시드니 모닝 해럴드하고도 인터뷰를 가졌는데 에단 호크의 추측을 부정하면서도, 은퇴는 공식적으로 확정지었다. 고대 유적과 2차 세계 대전 침몰선 탐사하면서 지낸다고 근황을 밝혔다.

3. 특징[편집]





인간의 모든 경험을 드러내는 영화의 힘을 우리에게 일깨워주는 완벽한 기술과 예술성을 가진 감독.

아카데미 공로상 선정 이유 #


위어가 1970년대 후반 호주 영화 르네상스에 기여한 것은 우리의 평범한 삶 바로 너머를 맴도는 비이성적인 힘에 의해 이성적인 세계의 임박한 혼란을 묘사하는 능력에 있다. 새로운 호주 감독들 중 가장 스타일리시한 그의 명성은 경이로움을 가지고 그 나라의 풍경과 문화적 특이점을 도표로 작성한 것에 기반을 두고 있다.

The Virgin International Encyclopedia of Films


피터 위어의 성공은 1970년대1980년대에 호주의 가장 시급한 문제들 중 일부를 다루면서 호주 영화의 재탄생을 정의하는 데 도움을 주었다. 호주에 대한 그의 흥미로운 이미지들은 국제적인 아트 하우스 씬에 영향을 미쳤고, 주류 영화가 간과하는 지정학적 영역과 문화에 대한 설득력 있는 비전을 열망했다. 호주를 대표하는 상징적인 영화 감독 중 한 명으로서 국제적인 인정을 받은 후, 위어는 실험과 예술적 탐구의 감각을 유지하면서 할리우드로 진출해 큰 성공을 거뒀다. 아카데미상은 "위어는 세계에서 가장 존경 받는 영화 감독 중 한 명으로 남아 있으며, 20세기 후반 호주에서 제작된 영화에 더 큰 관심을 가져주는 데 도움을 준 호주 뉴웨이브 운동의 거인으로 여겨진다."라고 평했다. #

피터 위어는 캐릭터와 사회적 환경 사이의 관계를 자주 탐구하는 지적이고 감성적인 드라마 영화를 주로 연출했다. 사회 변화나 격변에 휘말린 남성들의 감정적 투쟁에 초점을 맞추는 분위기 있고 복잡한 드라마도 굉장히 잘 연출했다. 같은 생각과 같은 갈등을 가지고 씨름하며, 같은 기본적인 이야기의 깊이있고 색다른 변형을 들려줬다. 위어의 모든 영화들은 지리적, 사회학적, 직업적, 이념적으로 자신이 어울리지 않는 장소에 있는 자신을 발견하는 사람들에 관한 것이기도 하다. 또한 사회적 메시지와 비판적 화법 속에서도 훈훈한 휴머니즘을 담고 있다.

그의 영화들은 한 사람의 개인이 세상에서 어떻게 살아가야 하는 지에 대한 고민으로 가득차 있다. 더 정확히 말하면 '이질적인 개인'의 이야기들이다. 위어는 자신의 작품에서 명백한 주제를 다루었음에도 불구하고, 그들이 말하고 있는 이야기의 구체적인 내용에 톤과 장르가 놀라울 정도로 다양했다. 그는 스릴러, 드라마, 미스터리, 액션 서사, 전쟁 영화, 서바이벌 스토리, 지역 드라마, 블랙 코미디, 로맨틱 코미디, 부조리주의 우화, 학원 영화 등을 만들었고, 이 모든 것들은 작가로서 독자적인 조건으로 작업했다. 또한 배우들의 연기를 잘 이끌어내는 감독으로 유명하다. 대표적으로 위어의 작품의 주연으로 출연한 해리슨 포드, 멜 깁슨, 로빈 윌리엄스, 제프 브리지스, 짐 캐리 등이 자신들의 경력 최고의 연기 중 하나를 보여줬다.

작품의 편차가 별로 없는 감독으로, 연출한 대부분의 작품들이 평론가들에게 좋은 평가를 받았다. 2022년 '로저 이버트 닷컴'에서는 이에 대해 "1974년부터 2010년까지 14편의 장편 영화를 만들었는데, 모두 좋을 뿐만 아니라 대부분 훌륭하다"라고 평가했다. # 다만, 흥행면에서는 편차가 굉장히 심했다.


4. 필모그래피[편집]


년도
제목
연출
각본
제작
비고
1971
홈즈데일
Homesdale



중편 영화
1974
파리를 삼킨 자동차[16]
The Cars That Ate Paris



장편 영화 데뷔작
1975
행잉록에서의 소풍
Picnic at Hanging Rock



죽기 전에 꼭 봐야 할 영화 1001 선정
1977
잃어버린 시간
The Last Wave



죽기 전에 꼭 봐야 할 영화 1001 선정
1981
갈리폴리
Gallipoli



죽기 전에 꼭 봐야 할 영화 1001 선정
1982
가장 위험한 해
The Year of Living Dangerously




1985
위트니스
Witness



아카데미 감독상 후보
1986
모스키토 코스트
The Mosquito Coast




1989
죽은 시인의 사회
Dead Poets Society



아카데미 감독상 후보
1990
그린카드
Green Card



아카데미 각본상 후보
1993
공포 탈출
Fearless




1998
트루먼 쇼
The Truman Show



아카데미 감독상 후보
2003
마스터 앤드 커맨더: 위대한 정복자
Master and Commander: The Far Side of the World



아카데미 감독상 후보
2010
웨이 백
The Way Back






5. 여담[편집]


  • 슬하의 두 명의 자식이 있는데, 딸 잉그리드 위어(Ingrid Weir)는 인테리어 디자이너로 활동하고 있다.

  • 1982년 영화 산업에 발전을 이끈 공로로, 호주 훈장 중 세 번째로 높은 등급의 훈장인 멤버(Member of the Order of Australia) 등급을 수훈했다.

  • 열렬한 독서가다. 그가 가장 좋아하는 세 권의 책은 나데즈다 만델스탐의 'Hope Against Hope', 알렉산더 와트의 'My Century', 그리고 '조너선 프랜즌'의 '자유(Freedom)'이다.


  • 그가 연출한 영화는 들어 봤어도 국내에서는 감독의 이름을 아는 사람은 드문데, 공백기가 굉장히 긴 과작 감독이었기 때문이다. 한국에서는 트루먼 쇼의 각본을 쓴 앤드류 니콜이 감독할 영화 크로스를 소개하면서 트루먼 쇼의 앤드류 니콜 감독이라는 엉터리 정보를 기사에서 쓰기도 했다.

  • 2010년 은퇴 이후에는 시드니의 북쪽 해변 지역에서 거주하며 살고 있다.

  • 2016년 영국 영화 협회가 선정한 5편의 훌륭한 영화를 연속으로 만든 영화 감독 중 한 명이다. #

  • 2022년 기자가 인터뷰에서 아직도 영화를 만들고 싶은 마음이 있냐는 질문에 이렇게 답했다.
화산과 같은 영화 감독들에게는 활동적, 휴면적, 멸종의 세 가지 주요 단계가 있다. 나는 후자에 도달한 것 같아! 또 다른 세대들은 "액션"과 "컷"을 외치며 그들에게 행운을 빈다.

  • 1998년 중앙일보인터뷰를 했다. 이 인터뷰에서 "나는 항상 소수의 지적인 관객보다는 일반대중의 입장에서 영화를 만든다"라고 말했다.


6. 외부 링크[편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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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호주의 미술 감독이자 의상 디자이너로, 남편의 작품에도 자주 참여했다.[2] 왼쪽은 주연 멜 깁슨.[3] 왼쪽은 주연 로빈 윌리엄스.[4] 왼쪽은 주연 짐 캐리.[5] 이 작품이 최초이자 마지막인 해리슨 포드의 아카데미 남우주연상 노미네이션이다.[6] 첫 번째 후보 지명은 굿모닝 베트남이었다.[7] 피어리스의 각본가로도 참여했다.[8] 2,000만 달러로 만들어졌는데, 전세계 흥행 수익이 700만 달러였다.[9] 두 번째로 흥행한 작품은 죽은 시인의 사회이다.[10] 오른쪽은 주연 러셀 크로우.[11] 2001년에는 1977년작 '잃어버린 시간'이 재개봉을 했다.[12] 해피 피트의 각본가이기도 하다.[13] 에단 호크는 이 인터뷰에서 "그는 배우들이 그를 힘들게 하지 않았을 때 자신의 작품을 정말 즐겼다. 러셀 크로우와 조니 뎁이 그를 부쉈다."라고 말했는데, 위어는 호주 언론 인터뷰에서 이 말이 사실이 아니라고 말했다. #[14] 감독상 4회, 각본상 1회, 작품상 1회[15] 시상자는 위어의 연출작 '공포 탈출'의 주연인 제프 브리지스였다. 해리슨 포드콜린 파렐 역시 헌사를 했다.[16] 1회 부천국제판타스틱영화제 상영제목.