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워드 K. 스미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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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워드 킹스버리 스미스
Howard Kingsbury Smith


출생
1914년 5월 12일
미합중국 루이지애나주 페리데이
사망
2002년 2월 15일 (향년 87세)
미합중국 메릴랜드주 베데스다
직업
저널리스트, 앵커
소속
뉴욕 타임스
CBS(1940~1962)
ABC(1962~1979)
배우자
베네딕트 트라베르그(Benedicte Traberg)
자녀
2명
당적


약력
CBS 기자
CBS 유럽 최고 특파원
Behind the News 진행자
ABC 기자
ABC Evening News 진행자

1. 개요
2. 생애



1. 개요[편집]


미국 CBS, ABC기자 겸 뉴스 앵커. ABC 월드 뉴스 투나잇의 전신인 ABC Evening News를 진행하였다.

2. 생애[편집]


1914년 미국 루이지애나페리데이 마을에서 태어났다.

제2차 세계 대전 동안 뉴올리언스 아이템과 유나이티드 프레스, 뉴욕 타임스에서 기자로 근무했고 1940년 1월, 전쟁 중에 나치 독일 베를린으로 파견되어 아돌프 히틀러, 하인리히 힘러를 비롯해 수많은 나치당 수뇌부와 슈츠슈타펠 군 장교들을 인터뷰했다.

이후 스미스는 1942년 미국이 참전하자 미국으로 복귀했다가 1945년 5월독일 항복을 취재하기 위해 베를린으로 돌아갔고 1946년나치당 수뇌부를 취재한 공로로 CBS 유럽 최고 특파원에 임명되었다.

1950년대에는 The Behind News를 진행하며 주로 진보 진영을 대변하였고[1] 흑인민권운동에 대해 심층 보도하기도 했다. 그러나 이 심층 보도의 영향으로 CBS 수뇌부가 고소 당하는 일이 벌어졌고 스미스는 정직 처분되었다가 결국 1961년에 해고되었다.

1962년에 ABC에 입사한 그는 논평가로서만 활동하다가 1969년 해리 리소너(Harry Reasoner)와 함께 ABC Evening News의 공동 진행자로서 복귀하였고 이때부터 리처드 닉슨과의 친분을 갖고 논조가 보수적으로 기울기 시작하고 베트남 전쟁을 강력히 지지하며 린든 B. 존슨 대통령의 베트남전 정책을 비판하는 논평을 했다.

1972년 미국 대선에서는 민주당에드먼드 머스키 후보를 지지했는데 스미스가 머스키에게 개인적으로 쓴 편지가 출판되기도 하였다. 이 때문에 논란이 되기도 했지만 결론적으로는 큰 영향을 주지는 못했고 스미스는 계속 Evening News의 앵커로 남았다.

그러나 1960년대 닉슨과의 친분에도 불구하고 1973년 워터게이트 사건이 터지자 반닉슨주의자로 변모하여 Evening News를 통해 닉슨의 사임을 촉구하였다. 닉슨 하야 후 스미스는 이브닝 뉴스를 계속 진행하다가[2]1975년 이브닝 뉴스 진행을 그만두고 1979년까지 ABC의 분석가로 활동했다.

이후 2002년 2월 15일 메릴랜드 베데스다에서 사망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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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이 때문에 블랙리스트에 오르기도 했다.[2] 해리 리소너(Harry Reasoner)와 공동진행.