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성수(법조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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韓聖壽
1910년 7월 7일 ~ 1988년 5월 6일 (향년 77세)
1. 개요[편집]
대한민국의 전 법조인이다. 본관은 청주(淸州)[1] , 창씨명은 타카모토 세이이치(高本淸一)[2] 이다.
장남이 한대현 전 헌법재판소 재판관, 사위가 이회창 전 국무총리이다.
2. 생애[편집]
1910년 7월 7일 경상남도 산청군 군내면 새동(現 산청군 산청읍 산청리)에서 아버지 한용호(韓湧浩, ?. 10. 11 ~ ?. 5. 21)와 어머니 진주 정씨(1892. 5. 5 ~ ?) 사이에서 3남 3녀 중 장남으로 태어났다. 경성사범학교 보통과, 경성사범학교 연습과(1년제)를 졸업했다.
경성사범학교 졸업 후 1930년부터 1936년까지 진주제2공립보통학교(現 진주 봉래초등학교)에서 훈도로 재직했으며, 이후 중등교원 자격 검정시험에 합격해 1937년 전주사범학교, 1938년부터 1939년까지 신의주동중학교, 1940년 진주사범학교 등지에서 교유(敎諭)로 재직하였다.
그 뒤 일본 제국 고등문관시험 예비시험을 거쳐 1942년 7월 고등문관시험 사법과에 합격했다. 1943년 7월 31일부터 대구지방법원 및 대구지방법원 검사국에서 조선총독부 사법관시보로서 사무 수습을 받았고, 12월 6일 대구지방법원 검사국 검사대리에 임명되었다. 1945년 2월 23일 대구지방법원 검사대리에 임명되었고, 1945년 3월 23일 고등관 7등 조선총독부 검사에 임명되는 동시에 대구지방법원 검사국 예비검사에 임명되었다.
8.15 광복 후 대구지방법원 등에서 판사로 근무하였다. 1948년 3월 22일 제헌 국회의원 선거 당시 국회의원선거위원회 경상남도위원회 후보위원장에 선임되었다. 이후 법원행정처 차장, 법전편찬위원회 위원, 부산지방법원 수석부장판사, 법원행정처장, 1956년 대법원 판사(대법관)로 재직하다가 1961년 6월에 대법원장 직무대행에 임명되었다. 1961년 서울고등법원장을 거쳐 1964년 3월부터 1968년 10월까지 대법관을 역임했다.
1988년 5월 6일 서울특별시 종로구 연건동 서울대학교병원에서 숙환으로 별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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