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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제국 고종의 후궁 귀인 이씨 | 貴人 李氏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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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고종의 후궁 귀인 이씨 | 貴人 李氏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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휘
| 완덕(完德)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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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생
| 1885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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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망
| 1967년 11월 10일 (향년 83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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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 서울 종로구 삼청동 사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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능묘
| 광화당묘(光華堂墓)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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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우자
| 고종 태황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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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녀
| 슬하 1남 장남 - 이육(李堉, 1914 ~ 19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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봉작
| 궁인(宮人) → 숙원(淑媛) → 귀인(貴人)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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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호
| 광화당(光華堂)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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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화당 귀인 이씨(光華堂 貴人 李氏, 1885년 ~ 1967년 11월 10일[1])는 조선의 제26대 왕이자, 대한제국의 초대 황제인 고종의 후궁이다.
본명은 이완덕(李完德)으로 유복한 중인계급 출생이며 13세에 고모의 소개로 경복궁 지밀에 세수간 나인으로 입궁했다.
[1] 신명호, 《조선공주실록》, 역사의 아침, 2009, p.307
덕수궁의 궁인이었던 1914년 고종의 승은을 입고 왕자를 낳아 광화당(光華堂)이라는 당호를 받았다.
[2] 《조선왕조실록》, 순종실록부록 5권, 7년(1914) 7월 3일
그러나 왕자 이육은 1916년에 죽었다. 이육 외에 어려서 죽은 딸이 하나 더 있었다고도 한다.
[3] 최선경, 《왕을 낳은 후궁들》, 김영사, 2007, p.227
귀인 이씨는 고종이 죽고 난 후 같은 고종의 후궁이었던
삼축당 김씨와 함께 사간동 집에서 살았다. 대한민국 정부가 수립된 후 제정된 구황실재산법의 구황족 범위에 포함되어 매달 10만환을 지급받았다.
[4] ““황족의 품위가 말이 아니오””. 한겨레21. 2006년 8월 24일. 2014년 1월 7일에 원본 문서에서 보존된 문서. 2012년 5월 25일에 확인함.
죽은 뒤에도 삼축당 김씨와 나란히 묻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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