찬덕 주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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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의 후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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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제국 태조의 후궁
찬덕 주씨 | 贊德 周氏


조선 태조의 후궁
찬덕 주씨 | 贊德 周氏

본관
미상
배우자
태조 고황제
자녀
슬하 1녀
장녀 - 의령옹주(義寧翁主, ? ~ 1466)
봉작
찬덕(贊德)
1. 개요
2. 생애



1. 개요[편집]


찬덕 주씨는 조선 태조의 후궁이다. 의령옹주의 생모이다.

2. 생애[편집]


태조의 제문 및 지문에 찬덕 주씨에 대한 언급이 없으며 조선왕조실록 에도 찬덕 주씨가 태조의 후궁이며 의령옹주의 생모라는 직접적인 기록이 없다. 이로 인해 숙종 때 간행된 왕실 족보인 선원계보기략 에도 누락되었다. 그러나 태종실록, 세종실록, 세조실록에 그녀의 존재를 증명하는 간접 기록이 존재한다.

계천위 이등이 졸하였다. 이등은 태조의 딸 의령옹주에게 장가들었으나, 성질이 부지런하고 삼가서 게을리 하지 않았다. 이때에 이르러 졸하니, 나이가 79세였다. 관가에서 장사를 치러주고 '호안'이라 시호하니, 나이가 많고 오래 산 것을 '호'라 하고 화목을 좋아하고 다투지 않을 것을 '안'이라 한다. 아들이 4인이 있는데, 둘째아들 이선은 임자년 과거에 급제하여 지위가 추밀에까지 이르렀다.

조선왕조실록 세조 8권, 3년 7월 1일 1번째기사


"이등의 아들 이선은 태조께서 사랑하시던 외손이요, 그 어미가 비록 천생이나 나의 누이이다. 그러므로 나 역시 사랑하는 처지이다. 그런데 일찍이 전 지평주사 평득방과 더불어 혼인 말이 있어 득방이 허락하였었는데, 요새 와서 집이 가난하다고 사절한다니, 득방을 의금부에 하옥시키고 그 연유를 문초하라."

조선왕조실록 세종 3권, 1년 2월 20일 7번째기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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