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축당 김씨

덤프버전 :



대한제국의 후궁
{{{-1 [[틀:대한제국의 후궁(태조 ~ 고종)|

태조 ~ 고종
]]

{{{#!wiki style="margin: -5px -10px; padding: 5px 0 0; background-image: linear-gradient(to right, #373679, #403F95 20%, #403F95 80%, #373679); color: #ffd400; min-height: 31px"
[ 펼치기 · 접기 ]






대한제국 고종의 후궁
삼축당 김씨 | 三祝堂 金氏


옥기(玉基)
출생
1890년
사망
1970년 9월 23일 (향년 81세)
대한민국 서울특별시 서대문구 세브란스 병원
능묘
삼축당묘(三祝堂墓)
본관
안동 김씨
부모
부친 - 김순옥(金順玉)
형제자매
2남 2녀 중 장녀
배우자
고종 태황제
봉작
궁인(宮人)
당호
삼축당(三祝堂)
1. 개요
2. 생애



1. 개요[편집]


삼축당 김씨(三祝堂 金氏, 1890년 ~ 1970년 9월 23일)는 대한제국 고종의 8번째 후궁이다.

2. 생애[편집]


본명은 김옥기(金玉基)[1][2] 양반 출신이던 김순옥(金順玉)의 2남 2녀 중 맏딸로 태어나, 8세에 나인으로 입궁하였으며 21세가 되던 해에 고종의 승은을 입고 8번째 후궁으로 책봉되었다.[3] 가장 나이가 어린 후궁이었기 때문에 고종의 총애를 받았으나 후사를 낳지 못해 특별상궁의 지위에 머무르다가 고종 사망 후 사간동 집에서 고종의 또다른 후궁인 광화당 이씨[4]함께 살았다.[5] 이 때 순종은 법도를 깨고 아이를 낳은 후궁에게만 내리는 당호(堂號)와 금반지를 내려 삼축당(三祝堂)이라 부르게 하였다. 대한민국 정부가 수립된 후 제정된 구황실재산법의 구황족 범위에 포함되어 매달 10만환을 지급받았다.[6][7] 말년에는 비구니로 불교에 귀의해 실상행(實相行)이라는 법명을 받았으며 1970년 9월 23일 오후 2시경 서울 세브란스 병원에서 사망했다.[8] 묘는 경기도 남양주시의 홍유릉 안에 있다.
파일:크리에이티브 커먼즈 라이선스__CC.png 이 문서의 내용 중 전체 또는 일부는 2024-04-15 23:59:55에 나무위키 삼축당 김씨 문서에서 가져왔습니다.

[1] 당시 궁중에서 옥토끼라는 애칭으로 불리던 여인[2] 신명호, 《조선공주실록》, 역사의 아침, 2009, p.307[3] 고종황제 마지막 후궁 삼축당김씨 별세 《경향신문》, 1970년 9월 24일[4] 궁중에 있을 적에 같은 방에서 지내던 사이로 광화당은 형님, 삼축당은 동생으로 지냄[5] 신명호, 《조선공주실록》, 역사의 아침, 2009, p.307[6] ““황족의 품위가 말이 아니오””. 한겨레21. 2006년 8월 24일. 2014년 1월 7일에 원본 문서에서 보존된 문서. 2012년 5월 25일에 확인함.[7] 구황족의 범위 : 순정효황후, 의친왕, 의친왕비, 덕혜옹주, 흥친왕비[8] 고종황제 마지막 후궁 삼축당김씨 별세 《경향신문》, 1970년 9월 24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