숙의 김씨(헌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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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의 후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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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종 ~ 고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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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대 국왕 · 역대 왕비 · 환조 ~ 연산군 후궁
※ 정식 후궁 첩지가 있는 사람만 기재
※ 고종의 후궁 보현당 귀인 정씨, 광화당 귀인 이씨, 복녕당 귀인 양씨, 삼축당 김씨, 정화당 김씨는 대한제국 멸망 이후에 후궁이 되었으므로 조선의 후궁이었던 적이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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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제국 헌종의 후궁
숙의 김씨 | 淑儀 金氏


조선 헌종의 후궁
숙의 김씨 | 淑儀 金氏


파일:서삼릉숙의묘역.jpg

서삼릉 후궁 묘역 전경
출생
1814년 1월
사망
1895년 11월 12일 (향년 82세)
능묘
경기도 고양시 덕양구 서삼릉 후궁묘역
재위기간
조선 궁인
1848년 이전 ~ 1895년 1월 12일
대조선국 궁인
1895년 1월 12일 ~ 1895년 11월 12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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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관
김해 김씨
부모
부친 김학성(金鶴聲)
배우자
헌종 성황제
자녀
슬하 1녀
장녀 - 옹주(翁主, 1848)
봉작
궁인(宮人) → 숙의(淑儀)
당호
화락당(和樂堂)


1. 개요
2. 생애



1. 개요[편집]


조선 헌종후궁. 아버지는 김학성(金鶴聲)이며 어머니는 알 수 없다. 본래 궁녀 출신으로 슬하에 딸 하나가 있었으나 옹주로 봉작받기 전에 일찍 죽었고, 이 딸이 헌종의 유일한 자식이다.[1] 현재 서삼릉 묘역에 숙의 김씨와 그녀가 낳은 딸의 묘소가 있다.

2. 생애[편집]


1848년(헌종 14) 헌종의 유일한 딸을 낳았지만, 생후 일 년도 되지 못해 일찍 죽었기 때문에 정식 후궁이 되지 못한 것으로 보인다. 더군다나 이듬해 헌종이 승하하면서 그대로 궁인의 처지로 남은 듯. 사후, 고종 대에 이르러서야 비로소 종2품 숙의(淑儀)로 봉작되었다.

조령(詔令)을 내리기를, "헌종조(憲宗朝)에 승은(承恩)을 입은 궁인(宮人) 김씨(金氏)에 대해서 지난날 이해를 생각하니 특별히 은전을 베풀어야 할 것이니 숙의(淑儀)로 봉작(封爵)하라." 하였다.

고종실록》 고종 43년 5월 25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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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헌종실록 1권, 총서.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