숙의 방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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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의 후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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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종 ~ 고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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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대 국왕 · 역대 왕비 · 환조 ~ 연산군 후궁
※ 정식 후궁 첩지가 있는 사람만 기재
※ 고종의 후궁 보현당 귀인 정씨, 광화당 귀인 이씨, 복녕당 귀인 양씨, 삼축당 김씨, 정화당 김씨는 대한제국 멸망 이후에 후궁이 되었으므로 조선의 후궁이었던 적이 없다.






숙의 방씨 관련 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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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제국 철종의 후궁
숙의 방씨 | 淑儀 方氏


조선 철종의 후궁
숙의 방씨 | 淑儀 方氏


파일:서삼릉숙의묘역.jpg

서삼릉 후궁 묘역 전경
출생
연대 미상
사망
1878년 11월 6일
능묘
경기도 고양시 덕양구 서삼릉 후궁묘역
재위기간
조선 숙의
1853년 3월 31일 ~ 1878년 11월 6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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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관
온양 방씨
배우자
철종 장황제
자녀
2녀 (조졸)
봉작
숙의(淑儀)


1. 개요
2. 생애
3. 사후
4. 가족 관계
4.1. 시가(전주 이씨)
4.2. 배우자 / 자녀
5. 창작물에서
6. 참고 문서



1. 개요[편집]


조선 제25대 국왕 철종후궁. 본래 궁녀였으며, 본관은 온양(溫陽)이나 가계에 대해 알려진 바 없다.

슬하에 두 딸을 두었으나 첫째 딸은 3살 때 죽었고 둘째 딸 역시 어릴 때 죽었다고 한다. 옹주의 봉작을 받기 전이었으므로, 부마도 맞이하지 않았기 때문에 철종의 사후에는 홀로 여생을 보냈다.[1]


2. 생애[편집]


1853년(철종 4년) 종2품 숙의(淑儀)에 봉작되었다.[2] 그러나 두 딸과 철종을 모두 먼저 보내고, 1878년(고종 15년) 11월 6일, 숙의 방씨도 세상을 떠났다. 이에 고종은 철종의 다른 후궁이었던 조 귀인(종1품)의 장례 규례를 따라서 장례에 필요한 물품 일체와 관을 짜는 목판을 함께 지급하라고 호조에 어명을 내렸다.[3][4]


3. 사후[편집]


묘는 원래 서울특별시 성북구 하월곡동에 있었으나, 1969년 경기도 고양시 덕양구 원당동에 있는 서삼릉 경내의 후궁 묘역으로 이장하였다. 봉분 앞에 세운 묘표(墓表)에는 숙의온양방씨지묘(淑儀溫陽方氏之墓)라는 글귀가 새겨져 있으며 높이는 150cm이다. 1970년 5월 26일에는 서삼릉과 함께 대한민국의 사적 제200호로 지정되었다.


4. 가족 관계[편집]



4.1. 시가(전주 이씨)[편집]


  • 시조부: (추존)정조 선황제(正祖 宣皇帝) 이산(李祘)
  • 시조모: (추존)효의선황후 김씨(孝懿宣皇后 金氏)[7]
    • 시아버지: (추존)순조 숙황제(純祖 肅皇帝) 이공(李玜)[5]
    • 시어머니: (추존)순원숙황후 김씨(純元肅皇后 金氏)[6]


4.2. 배우자 / 자녀[편집]


  • 남편: (추존)철종 장황제(哲宗 章皇帝) 이원범/이변(李元範/李昪)
    • 1남: 왕녀 - 요절
    • 2남: 왕녀 - 요절


5. 창작물에서[편집]


  • tvN 드라마 철인왕후에서는 철종의 실존했던 3명의 숙의가 등장하고, 숙의 방씨를 포함한 철종의 3명의 숙의 봉작을 받은 이들이 나오는데, 이들은 숙의 방씨 외에도 숙의 범씨, 숙의 김씨를 모티브로 한 캐릭터로 보인다. 다만 드라마에서의 이들의 집안이 안동 김씨를 견제할 만한 명문가라는 극중 설정과 달리, 실제 이들은 세도 명문가 정도까지는 아니었다. 셋 다 궁인이었던데다 방씨는 그나마 둘째 딸을 낳고 철종 생전에 숙의 작위를 받았지만, 나머지 둘은 고종 때가 되어서야 종2품 품계인 '숙의' 작위를 받았다.
  • 사극 로맨스 임금님의 첫사랑에서는 철종과 대왕대비 김씨, 대비 조씨, 중전 김씨를 비롯하여 후궁인 숙의 방씨와 더불어 귀인 박씨(박선영), 귀인 조씨(조선애), 소용 박씨(박꽃분), 숙의 범씨(범희연), 나인 이씨가 나온다. 이 사극 로맨스에는 주인공이 귀인 박씨(박선영)인데, 여기서 숙의 방씨는 죽은 선애(귀인 조씨)처럼 조 대비의 적극적인 추천으로 바로 단번에 후궁 숙의가 되지만 한번도 철종에게 승은을 입지 못한다. 딱히 왕의 총애를 두고 다투지않는 차분하고 조용한 성품의 소유자로 나온다.


6. 참고 문서[편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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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모두 성년까지 성장하지 못했을 뿐, 의외로 철종에게는 왕비 철인왕후에서 본 자식 이외에도 자식이 많았다. 문제는 그나마 봉작까지 받은 영혜옹주마저 일찍 죽었을 정도로 사망률이 높다는 점.[2]철종실록》 5권, 철종 4년(1853년, 청 함풍(咸豊) 3년) 2월 22일 (정유) 1번째기사. #.[3]승정원일기》 2856책 (탈초본 132책), 고종 15년(1878년, 조선 개국(開國) 487년) 11월 13일 (무오) 10/16 기사. #.[4]고종실록》 15권, 고종 15년(1878년, 조선 개국(開國) 487년) 11월 14일 (기미) 2번째기사.[5] 혈연상 시아버지는 정조의 이복동생인 은언군의 서자인 전계대원군 이광이다.[6] 혈연상 시어머니는 용성부대부인 염씨이다.[7] 남편 철종순조의 법적인 양자로 공식 입적되었기 때문에 법적상 시조모는 효의왕후가 맞으나, 법적상의 혈연 시조모는 철종의 양아버지 순조의 어머니인 수빈 박씨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