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형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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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형래(金炯來)
1940년 1월 4일 ~ 2010년 2월 25일
1. 개요[편집]
대한민국의 정치인이다. 호는 후백(后伯)이다. 종교는 개신교이다.
2. 생애[편집]
1940년 전라북도 정읍군에서 태어났다. 전주고등학교, 중앙대학교 및 동 대학교 대학원 행정학 석사 과정을 졸업하였다.
1970년대 대한민국 국회 전문위원, 신민당 사무국 직원으로 근무하면서 정치에 입문하였다. 신민당에서 민주전선 편집국장 등을 역임하였다. 1978년 제10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전라북도 정읍군-김제군 선거구로 신민당에 공천을 신청하였으나 김원기에 밀려 탈락하였다.
1981년 제11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민주한국당 전국구 국회의원에 당선되었다. 이후 민주한국당에서 부대변인, 당보국장 등을 역임하였다. 1984년 말 민주한국당을 탈당하여 신한민주당에 입당하였다.
1985년 제12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신한민주당 후보로 서울특별시 강남구 선거구에 출마하여 민주한국당 이중재 후보와 동반 당선되었다. 참고로 이 당시 서울에서 유일하게 여당인 민주정의당이 당선자를 못낸 선거구가 되었다. 1987년 이민우 파동으로 DJ와 YS가 자파의 국회의원을 모두 신한민주당에서 빼낼 때 마찬가지로 탈당하여 통일민주당에 입당하였다.
1988년 제13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통일민주당 후보로 서울특별시 서초구 갑 선거구에 출마하였으나 무소속 박찬종 후보에 밀려 낙선하였다.
원래 호남출신이었지만 DJ계가 아니라 이철승계였기 때문에, 1987년 양김결별 때 통일민주당과 평화민주당이 분당할 때도, DJ를 따라가지 않고 통일민주당에 남았지만, 1990년 3당 합당으로 민주자유당이 출범할 때 불참했다.
이어 꼬마민주당에 잠시 몸담았다가, DJ의 신민주연합당에 몸담았다. 1992년 제14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민주당에 서울특별시 강서구 갑 선거구로 공천을 신청하였으나 박계동에 밀려 탈락했다.
1996년 제15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새정치국민회의 후보로 서울특별시 강동구 갑 선거구에 출마했으나 통합민주당 이부영 후보에 밀려 낙선했다. 1998년 국민체육진흥공단 상임고문에 임명되어 활동했다.
이후 대한민국 헌정회 대변인을 역임했다.
2010년 2월 25일 지병으로 인하여 향년 70세의 나이로 사망했다.[1] 장지는 전라북도 정읍시 영원면 후지리에 위치한 선산이다.#
3. 선거 이력[편집]
당 내부 선거가 아닌 대한민국 선출직 공직자 선거 결과만 기록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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