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영광(정치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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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편집]
대한민국의 전 공무원, 정치인이다. 본관은 광산(光山)[2] , 호는 우곡(牛谷), 인해(仁海).
2. 생애[편집]
1931년 10월 20일 경기도 진위군 송탄면 지산동(현 평택시 지산동)[3]#에서 아버지 김충현(金忠鉉, 1909. 12. 11 ~ ?)과 어머니 남양 홍씨 홍이희(洪二姬, 1905. 11. 15 ~ 1989. 8. 6)[4] 사이의 3남 4녀 중 장남으로 태어났다. 수원공립농림학교[5] 를 졸업하였다. 그리고 1965년에 고려대학교 경영대학원 연구과정을 수료하였다. 1981년 2월 한양대학교 대학원에서 정치외교학 석사 학위[6] 를 취득하였으며, 서울대학교 행정대학원을 수료했다.
이후 박정희 정권 때 중앙정보부에서 근무하였다. 특히 중앙정보부 제5국 내 판단기획국장으로 역임하면서 박정희 대통령에게 제출한 보고서에 대해 박정희가 상당한 신뢰를 표시했다고 하였다.
박정희 저격 미수 사건 후 중앙정보부 작전차장보에서 오사카 총영사로 부임해간 조일제가 취임사에서 재일동포들의 모국방문을 발표하자 김영광은 사직할 것을 각오하고서 박정희에게 건의하였고 박정희는 국익우선이라는 측면에서 이를 수용하는 결단을 내린다. 박정희의 승인 아래 일사천리로 진행된 재일동포 모국방문 사업은 북한, 조총련이 주도하던 재일교포 사회가 남한, 민단 우위로 바뀌는 계기가 되었으며 경제성장 결과를 대내외적으로 선전하는데 큰 역할을 했다고 평가받는다.#
그뒤, 1979년 제10대 국회에서 유신정우회 국회의원으로 임명되어 1980년까지 역임하였다.
전두환 정부가 출범한 1980년에 한국국민당 창당에 참여하였고 같은 해 한국국민당 사무총장에 임명되었다. 1981년 제11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한국국민당 전국구 국회의원에 당선되었다. 당선 직후 한국국민당 사무총장은 신철균으로 교체되었다. 1985년 제12대 국회의원 선거에서는 한국국민당 전국구 국회의원 공천을 받지 못하였다.
1987년 제13대 대통령 선거를 앞두고 김윤덕, 신윤창 등의 전직 국회의원들과 함께 민주정의당에 입당하여 노태우 후보를 지지하였다. 1988년 제13대 국회의원 선거를 앞두고 민주정의당에 경기도 평택시 송탄시 선거구로 공천 신청을 하였으나 권달수에 밀려 탈락하였다.
1992년 제14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민주자유당 후보로 경기도 평택시-송탄시 선거구에 출마하여 당선되었다. 1995년 민주자유당 국책자문위원장에 임명되었다.
1996년 제15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신한국당 후보로 경기도 평택시 갑 선거구에 출마하였으나 무소속 원유철 후보에 밀려 낙선하였다. 게다가 원유철이 신한국당에 입당하면서 평택시 갑 지구당위원장 자리도 내 놓아야 했다.
국회의원 재임 기간 동안 순국선열유해 한국봉안위원회를 발족시켰고 안의사숭모회 부이사장으로서 안중근 의사의 유해를 발굴을 위해 헌신적으로 활동했다.
대표적으로 제10대 국회의원 시절부터 본격적으로 유해 찾기를 시작해 안중근 의사가 묻혀 있는 것으로 추정되는 중국 뤼순에 11차례나 찾아가는 등 중국 30여회, 일본 20여회, 미국 3~4회 등을 방문해 관련 증언과 자료를 수집했다.
2010년 9월 숙환으로 세상을 떠났다. 향년 78세.
3. 선거 이력[편집]
당 내부 선거가 아닌 대한민국 선출직 공직자 선거 결과만 기록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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