숙의 윤씨(연산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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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의 후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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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대 국왕 · 역대 왕비 · 중종 ~ 고종 후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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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연산군의 후궁
숙의 윤씨 | 淑儀 尹氏

출생
1481년 3월 11일
사망
1568년 8월 1일
(향년 88세)
재위기간
조선 숙의
1501년 9월 22일 ~ 1568년 8월 1일
부모
부친 - 윤훤(尹萱, 1444 ~ 1504)
모친 - 부안 김씨 김모(金模)의 딸
형제자매
3남 2녀 중 장녀 [ 펼치기 · 접기 ]
오빠 - 윤은보(尹殷輔, 1468 ~ 1544)
오빠 - 윤은필(吏曹參)
남동생 - 윤은좌(尹殷佐)
여동생 - 윤씨
여동생 - 윤씨

배우자
연산군
자녀
없음
봉작
숙의(淑儀)

1. 개요
2. 생애
3. 여담



1. 개요[편집]


조선 연산군간택 후궁. 아버지는 군기시 첨정을 지내고 사후 영의정에 증직된 윤훤(尹萱)이며, 어머니 홍주현감 김모(金模)의 딸 부안 김씨로 3남 2녀 중 장녀이다.[1]

슬하에 자식은 없고, 오빠 윤은보(尹殷輔)[2]의 딸인 권찬(權纘)의 처를 양녀로 삼았다. 기록에 따르면 연산군보다 오래 산 후궁 중 한 사람이다.


2. 생애[편집]


1501년(연산군 7) 후궁으로 간택되어 숙의(淑儀)에 봉작되었다.[3] 그러나 1506년(중종 1) 중종반정이 일어나면서 연산군이 폐위되고, 윤씨도 폐출되어 오빠 윤은보(尹殷輔)의 집에 거처하였다.[4]

"노산(魯山)의 후궁을 혜양(惠養)하는 절목(節目)은 이미 전례가 있거니와, 폐조(廢朝)의 숙의(淑儀)로는 오직 곽씨(郭氏)·윤씨(尹氏)가 살아 있으니 전례에 따라 혜양하라."

중종실록》 중종 14년 12월 17일


이미 단종의 후궁 숙의 권씨, 숙의 김씨에 대해 쌀과 소금 등 필요한 물품을 내려주는 등 돌봐주었기 때문에 연산군의 후궁에 대해서도 똑같이 적용한 것으로 보인다.

1568년(선조 1) 88세의 나이로 세상을 떠났다.[5]


3. 여담[편집]


  • 숙의 윤씨의 동복남매인 윤은보(尹殷輔), 윤은필(尹殷弼), 윤은좌(尹殷佐)가 모두 중종반정 이후에도 관직 생활을 하였고, 특별히 연산군과 관련하여 처벌받은 행적이 없다. 그러므로 연산군을 믿고 악행을 저지른 적이 없는 것으로 보인다.

  • 숙의 윤씨가 양녀로 삼은 윤은보의 딸은 권찬(權纘)의 처가 되어 딸을 낳는다. 이 딸이 중종과 숙의 이씨의 아들 덕양군 이기의 정실 영가군부인(永嘉郡夫人)이다.

  • 훗날 숙의 윤씨의 오빠 윤은필의 증손녀[6]선조정빈 민씨의 아들 인성군 이공의 정실 군부인 윤씨가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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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만가보》에서 확인된다. [2] 윤은보는 중종 대에 기용되어 예조판서·대사헌·좌찬성 등의 여러 자리를 거쳐 영의정까지 올랐다. [3] 연산군일기 41권, 연산 7년 8월 1일 병오 1번째기사. # [4] 이때 "숙의는 사제(私第)로 돌아가게 하고, 숙용·숙원은 죄를 다스려야 한다"고 하였으므로 숙의 윤씨도 친정으로 돌아갈 수 있었다. # [5] 『숙의윤씨묘지(淑儀尹氏墓誌)』 현재 이화여자대학교 박물관에서 소장 중이다.[6] 윤승길(尹承吉)의 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