숙의 기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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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편집]
조선 정종의 후궁이다. 본관은 행주이며 공조전서(工曹典書)를 지낸 기면(奇勉)의 딸이다. 정무공(貞武公) 기건(奇虔)의 누이로, 이름은 기자재(奇自在)이다. 슬하에 순평군 이군생, 금평군 이의생, 정석군 이융생, 무림군 이선생을 비롯해 숙신옹주와 상원옹주를 낳아 4남 2녀를 두었다.[1]
본래 공안부(恭安府)[2] 궁인 출신으로 태종이 영구히 양인(良人)으로 삼았다는 기록이 있다 .[3]
상왕(上王)의 궁인(宮人) 가운데 이름이 자재(自在)라는 자가 있는데, 공안부(恭安府) 여종이었다. 상왕이 불쌍히 여겨 임금에게 부탁하여 왕패(王牌)를 주어 영구히 양인(良人)으로 방면(放免)하도록 하였다. 대개 상왕에게 총애를 받아 자녀 여덟을 낳았는데, 이군생(李群生)이 그 맏이다.
《태종실록》 태종 9년 4월 7일
숙의 기씨(淑儀 奇氏)의 부친(父親)인 기면(奇勉)은 고려조(高麗朝) 권문세족인 기중평(奇仲平)의 아들이며 공조전서(工曹典書)를 지냈다. 기면(奇勉)의 외조모(外祖母)는 고려조(高麗朝) 태자태사(太子太師)를 지낸 진위 이씨(振威 李氏) 이중육(李仲育)의 딸이다.
2. 생애[편집]
정종의 총애를 가장 많이 받았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우선 정종이 특별히 태종에게 부탁한 덕분에 면천된 데다가 《선원록》에 실린 정종의 15남 8녀 중 4남 2녀를 낳아 가장 많은 자식을 낳았다.
1457년(세조 3)에 죽었는데, 당시 세조는 쌀과 콩 20석과 종이 70권(卷)과 관곽(棺槨)을 부조하였다.[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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