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용 정씨(문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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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편집]
조선 문종의 간택 후궁. 아버지는 의정부 좌참찬을 지낸 정갑손(鄭甲孫)이며, 어머니는 김양남(金揚南)의 딸로 3남 8녀 중 장녀로 태어났다.
2. 생애[편집]
1431년(세종 13) 세종은 경복궁 사정전에서 왕세자 이향의 후궁을 간택하였는데, 가산군지사 권전(權專)의 딸, 장흥고 직장 홍심(洪深)의 딸과 함께 정씨를 낙점하였다.[1] 이때 세종은 정갑손을 장령(掌令)[2] 으로 삼고, 쌀과 콩 30석을 내려주었다.
승휘(承徽)가 된 정씨는 아들을 낳았으나, 오래 살지 못하고 요절한 것으로 보인다.[3][4] 1451년(문종 1) 정갑손이 죽었는데, 그의 졸기에 '딸은 자라서 후궁(後宮)에 들어가 소용(昭容)이 되었다.'고 썼다. 이것으로 볼 때, 문종이 즉위한 뒤에 정3품 소용으로 봉작되었을 것으로 보인다.[5]
그 이후의 행적을 찾을 수 없다. 다만, 문종의 사후에 그의 후궁들은 모두 수성궁(壽成宮)으로 옮겨 거처하였기 때문에 소용 정씨도 수성궁에서 살았을 것이다.[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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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세종실록 51권, 세종 13년 1월 19일 갑신 6번째기사. # [2] 사헌부에 소속된 정4품의 관직으로 시정을 논하고 백관을 규찰하여 탄핵하는 일에 참여하고, 때로는 어사가 되어 밖으로 나가 백성들의 삶을 살폈다. [3] 세종실록 112권, 세종 28년 6월 6일 임인 2번째기사. # [4] 만약 오래 살았다면, 비록 서자이지만 문종의 아들이라는 이유로 세조에게 경계 대상이 될 수 밖에 없다. [5] 그런데 이때 같이 간택되었던 홍심의 딸은 종1품 귀인으로 봉작되었으니 품계에 많은 차이가 난다. [6] 수성궁은 문종의 후궁들이 모여 살던 궁가로, 연산군 대에는 성종의 후궁들이 들어가 살면서 정청궁(貞淸宮)으로 개칭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