숙의 신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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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명종의 후궁. 아버지는 강서 현령을 지낸 신언숙(申彥淑)이며, 어머니는 최응(崔凝)의 딸 해주 최씨이다.
1548년(명종 4) 숙의(淑儀)가 궁궐에 들어오려면 본가에서 마련할 물품이 많으니 아버지 신언숙에게 6품의 직을 제수하라는 기록이 있다.[1] 이때 자전(慈殿) 즉, 왕의 어머니가 전교하는 것으로 보아 당시의 후궁 봉작은 문정왕후의 뜻으로 추측된다. 그러나 숙의 신씨는 입궁하여 3년이 되도록 자식을 낳지 못해서 1551년(명종 6) 문정왕후는 숙의를 한 사람 더 뽑자는 이야기를 하게 된다.[2][3]
1562년(명종 17)에는 숙의 신씨의 본가 옆집에 살던 윤홍중(尹弘中)이 담장 문제로 신씨의 본가 여종을 매질하는 일이 일어났다. 이에 숙의 신씨가 명종에게 호소해 윤홍중이 강진(康津)으로 유배를 가게 되었다.[4] 이 일에 대해 사관은 본래 윤홍중의 사람됨이 좋지 않아서 애석한 일은 아니지만, 후궁을 위해 사사로운 사건에 왕이 나섰다고 비판하였다.
한편, 숙의 신씨의 정확한 생몰년은 알 수 없으나 《선조실록》을 보면 임진왜란이 발발했을 때까지 살아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1593년(선조 26) 숙의 신씨는 아산에 머무르고 있었는데, 아산현감 권유(權愉)가 교만하고 포악하여 대접을 제대로 하지 않았다.[5] 숙의 신씨가 '종을 시켜 언문 편지를 보내어 기아(飢餓)를 호소'했다고 하니 전쟁 중에 많은 고생을 겪은 듯.
숙의 이씨와 함께 황해도 연안(延安)에서 지낸 것으로 보이지만, 1595년(선조 28) 이후부터는 기록에서 등장하지 않는다.
1. 개요[편집]
조선 명종의 후궁. 아버지는 강서 현령을 지낸 신언숙(申彥淑)이며, 어머니는 최응(崔凝)의 딸 해주 최씨이다.
2. 생애[편집]
1548년(명종 4) 숙의(淑儀)가 궁궐에 들어오려면 본가에서 마련할 물품이 많으니 아버지 신언숙에게 6품의 직을 제수하라는 기록이 있다.[1] 이때 자전(慈殿) 즉, 왕의 어머니가 전교하는 것으로 보아 당시의 후궁 봉작은 문정왕후의 뜻으로 추측된다. 그러나 숙의 신씨는 입궁하여 3년이 되도록 자식을 낳지 못해서 1551년(명종 6) 문정왕후는 숙의를 한 사람 더 뽑자는 이야기를 하게 된다.[2][3]
1562년(명종 17)에는 숙의 신씨의 본가 옆집에 살던 윤홍중(尹弘中)이 담장 문제로 신씨의 본가 여종을 매질하는 일이 일어났다. 이에 숙의 신씨가 명종에게 호소해 윤홍중이 강진(康津)으로 유배를 가게 되었다.[4] 이 일에 대해 사관은 본래 윤홍중의 사람됨이 좋지 않아서 애석한 일은 아니지만, 후궁을 위해 사사로운 사건에 왕이 나섰다고 비판하였다.
한편, 숙의 신씨의 정확한 생몰년은 알 수 없으나 《선조실록》을 보면 임진왜란이 발발했을 때까지 살아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1593년(선조 26) 숙의 신씨는 아산에 머무르고 있었는데, 아산현감 권유(權愉)가 교만하고 포악하여 대접을 제대로 하지 않았다.[5] 숙의 신씨가 '종을 시켜 언문 편지를 보내어 기아(飢餓)를 호소'했다고 하니 전쟁 중에 많은 고생을 겪은 듯.
좌승지 이덕열(李德悅)에게 전교하였다.
"혜빈 정씨는 광주(廣州)에서, 숙빈 윤씨는 남양(南陽)에서, 숙의 이씨ㆍ신씨는 연안(延安)에서 음식물을 제급(題給)하여 줄 것을 감사에게 유지(有旨)를 내리도록 하라."
《선조실록》 선조 28년 5월 26일
숙의 이씨와 함께 황해도 연안(延安)에서 지낸 것으로 보이지만, 1595년(선조 28) 이후부터는 기록에서 등장하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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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명종실록 8권, 명종 3년 12월 21일 임술 1번째기사. # [2] 명종실록 11권, 명종 6년 2월 25일 계미 2번째기사. # [3] 인종이 후사없이 일찍 죽었고, 명종도 이때까지 자식이 없어서 왕실에서는 후궁 소생이라도 태어나기를 바라는 상황이었다. 다행히 그해 5월에 인순왕후가 순회세자를 낳았지만, 결과적으로 명종의 후궁들 중에서는 자식을 낳은 사람이 한 사람도 없다. [4] 명종실록 28권, 명종 17년 4월 12일 을축 1번째기사. # [5] 선조실록 40권, 선조 26년 7월 11일 계해 1번째기사.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