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1군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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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징명칭(충렬)이 같은 부대에 대한 내용은 충렬부대 문서
, 조선인민군 육군 11군단에 대한 내용은 조선인민군 특수작전군 문서
참고하십시오.1. 개요[편집]
경상남도 창녕군 고암면을 근거지로 했던 대한민국 육군 제2군사령부 소속 군단. 별칭은 충렬부대.
1987년 4월 1일에 창설되었으며, 해체 전까지 5개의 사단과 1개의 여단을 예하에 두고 있으며, 국방개혁 2020에 따라 2007년 10월 31일 해체되었다.
2. 상세[편집]
1987년 4월 1일에 창설되었다. 같은 날에 창설된 1군 예하 제8군단, 같은 2군 예하 (구)제9군단과 함께 창설되어 2군 예하의 군단으로 존재했었다.
제39보병사단, 제50보병사단, 제53보병사단, (구)제69보병사단, (구)제70보병사단 등 지역방위 및 동원사단을 예속받았다. 해체된 (구)제2군관구사령부, (구)제5군관구사령부의 위수지역을 그대로 물려받았다.[1]
후방지역에 해당하는 제2군(現 제2작전사령부)의 책임지역에 군단을 두는 것은 지휘계통상 불필요하다는 의견이 끊임 없이 제기되었다. 이에 국방개혁 2020에 따라 제9군단과 같이 해체되는 것이 결정되었으며 2007년 10월 31일부로, 국방개혁에 따라 제2야전군을 제2작전사령부로 개편하면서 9, 11군단의 부대해체가 이뤄졌다. 11군단 사령부 후적지에는 제39보병사단 예하 제119보병여단이 주둔해 있다.
특이한 사항이 있다면 그동안 육사만 독식해오던 대장자리였으나 ROTC 및 3사 출신 첫 대장이 이 부대 지휘관 출신이라는 점이다.
3. 편제[편집]
3.1. 직할부대[편집]
3.2. 예하부대[편집]
- 제39보병사단(충무부대)
- 제50보병사단(강철부대)
- 제53보병사단(충렬부대)
- (구)제70보병사단(충효부대)
- (구)제205특공여단(백호부대)[2]
4. 과거부대[편집]
-
(구)제69보병사단(태풍부대)
5. 출신인물[편집]
5.1. 군단장[편집]
5.2. 장교/부사관[편집]
- 이상철(학군28기): 중령 시절 본부 작전계획과장을 역임했다.
5.3. 병[편집]
6. 기타[편집]
6.1. 근무환경[편집]
6.2. 군단가[편집]
낙동강 굽이치는 신라의 터전
화랑의 얼을 이은 대한의 건아
필승의 신념과 강철같은 투지로
젊음을 불태우는 조국의 방패
아 우리는 천하의 무적 11군단 용사들
겨레의 꿈 조국의 꿈 이루어 가자
7. 여담[편집]
- 부대 창설 당시 부지를 잘못 잡아 식수가 부족하여 장병들이 직접 물을 길어와 썼고, 주변 마을에서도 물부족으로 고생했다고 한다.#
- 1996년 12월 29일 MBC <우정의 무대>, 1999년 6월 21일 KBS1
를 통해 예하 충렬공병부대가 소개된 바 있었다.(#)
- 제11군단장은 중장 1차보직 중에 한직에 속했으며, 대장 진급은 꽤나 드물었다. 제11군단장을 역임한 역대 군단장 중 김연각 장군과 김진호 장군, 박영하 장군, 황의돈 장군까지 4명만이 대장으로 진급했다. 또한 김진호 장군의 경우 제2야전군사령관을 거쳐 국군의 군령권을 책임지는 합동참모의장까지 올랐고, 황의돈 장군은 한미연합군사령부 부사령관을 거쳐 육군참모총장에 오른 바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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