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tanding on the Shoulder of Giant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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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편집]
2000년 2월 28일에 발매된 오아시스의 정규 4집 앨범.
앨범의 제목은 2파운드짜리 동전에 새겨진, 아이작 뉴턴의 "If I can see further than anyone else, it is only because I am standing on the shoulders of giants."라는 구절에서 따왔다. 앨범 제목에 문법적인 오류가 있는데, 당시 노엘은 새로 나온 2파운드 동전에 새겨진 저 문구를 보고 앨범의 제목으로 써먹어야겠다고 생각했다고 한다. 그래서 술에 취한 채로 담배곽에 적어뒀는데, 다음날 보니 문법이 엉망이었다고 한다.[2] 다만 그걸 보고 재밌어한 노엘은 오히려 그냥 그 문장을 앨범 제목으로 사용했던 것이다. 오아시스의 사보타주적인 경향을 보여주는 일화.
앨범 재킷은 미국 뉴욕 록펠러 센터에서 찍은 사진인데[3] , 30분에 한 장씩 18시간동안 촬영하여 저 사진이 언제 찍은 것인지 모를 정도로 합성한 것이다. 또한 겜 아처가 디자인한, 새로운 폰트를 사용한 밴드 로고가 등장하는데 이 로고는 5집 Heathen Chemistry까지 사용된다. 어쩌다보니 밴드의 가장 안 좋은 시기를 대표하는 로고가 되었다. 이 시기부터 6집 Don't Believe the Truth까지 싱글과 앨범 아트워크는 디자이너 Simon Halfon이 제작하였다.
이 앨범이 발매되기 전 소속사였던 크리에이션 레코드를 나온 뒤, 소니 뮤직 측에서 제의가 들어왔으나 결국 앨범은 밴드가 설립한 자체 레이블인 '빅 브라더(Big Brother) 레코딩스'의 이름으로 발매되었다. 코드 네임은 RKID[4]
2. 배경[편집]
3집 Be Here Now가 기대 이하의 평가를 받은 반면, B-side 모음집이었던 The Masterplan은 호평을 받았다. 이는 대중들이 여전히 오아시스 전성기 시절의 밝고, 경쾌하고, 낙관적인 브릿팝을 원한다는 말이었다.
그러나 Be Here Now때 하락세를 경험한 오아시스는 이 앨범을 기점으로 꽤 오랜시간 내리막길을 걷게 된다. 이 때를 기점으로 오아시스의 정체성이라 할 수 있는 리암의 목소리가 허스키하게 변했고 노엘의 음악은 보다 실험적으로 변하였다. 여기에 창립 멤버였던 본헤드와 귁시가 노엘과의 마찰로 탈퇴[5] 하고 만다.
본헤드의 공식적인 탈퇴 사유는 '가족들과의 시간을 즐기기 위해서'였지만, 실제로는 본헤드가 프랑스에서 술 마시고 호텔에서 깽판친 뒤에 노엘과 싸운 다음 나갔다는게 일반적인 견해다. 초기 오아시스 팬이라면 다 아는 이야기지만 갤러거 형제와 본헤드는 당시에 정말 술과 마약에 찌들어 살았다. 다만 4집 작업 즈음 노엘이 마약 때문에 한 번 앓아누워 죽다 살아난 뒤, 작업기간에는 금주령을 내렸는데 본헤드가 그걸 어긴 것. 귁시 또한 갈수록 빡빡해지는 일정 본헤드의 탈퇴까지 겹치며 결국 밴드를 나가게 된다.[6]
새 천년을 맞은 오아시스의 시작은 그리 순탄하지 않았다. 당시 오아시스에 본헤드와 귁시가 없다는 것은 상당한 충격이었다.[7] 새로운 멤버로는 같은 크리에이션 레코드 소속 밴드였던 헤비 스테레오(Heavy Stereo)의 겜 아처와 라이드의 앤디 벨이 들어왔지만 두 사람은 앨범 제작에는 참여하지 않았다. 게다가 노엘은 98년 즈음에 마약을 끊은 뒤에는 후유증과 금단 증상에 시달리며 패닉이나 다름없는 상태에서 곡을 썼으며, 리암은 결혼을 해 가정을 꾸리면서 여러모로 전에 비해 차분해지지만 결국 노엘과 리암 두 사람 모두 비슷한 시기에 이혼을 겪게 된다. 여기에 프로듀서도 오웬 모리스에서 U2, 마돈나, 뷔욕, 매시브 어택과 작업해온 마크 '스파이크' 스텐트로 바뀌는 등 밴드 내외적으로 대대적으로 변화가 일어났다.
2.1. 음악 스타일의 변화[편집]
밴드의 로고만큼이나, 이전의 세 앨범과는 확연하게 스타일이 달라졌다. 우선 이전까지의 오아시스가 정통 로큰롤을 추구했던 밴드였다면 4집의 오아시스는 일렉트로니카와 사이키델릭 록이 혼재된 음악을 했다. 두 번째로 싱글컷된 곡인 Who Feels Love?에는 인도의 전통 악기인 시타르를 도입하여 연주하기도 했다. 기존의 오아시스 스타일의 곡은 Go Let It Out 정도 밖에 없다.
본헤드가 있던 시절에는 노엘 리드 기타 - 본헤드 세컨 기타의 역할 분담이 명확하였으나, 겜 아처의 영입 이후 리드-세컨의 구분이 모호해졌다. 앨범의 대표곡인 Go Let It Out, Who Feels Love는 겜 아처가 리드 기타를 담당한다.
3. 평가[편집]
이 당시까지만 해도 오아시스 브릿팝 밴드의 이미지기 강했기 때문에 이 앨범에 대해서는 혹평하는 면이 많았던 앨범이다. 그 이유는 지금까지의 오아시스랑은 너무나도 다른 앨범의 색채 때문인데, 밝고 희망차던 브릿팝을 쓰던 밴드가 어둡고 사이키델릭하며, 가사또한 암울해지고 어두워진, 지금까지의 방향과는 정반대로 가는 음악적 성향때문에 그 당시에는 혹평이 굉장히 많았다. 기존 오아시스 트랙은 Go Let It Out뿐일정도로 바뀐 방향성때문에 이 앨범은 UK 앨범 차트 1위를 기록했음에도 불구하고 7집과 더불어 영국 내에서 2 Times 플래티넘 앨범에 그쳤다. 또한 미국에서도 빌보드 200 24위에서 그치고, 지금까지의 차트인 기록보다 훨씬 짧은 8주의 차트인 기록을 세우는 등 꽤나 아쉬운 성과를 보였다.
그러나 지금 현재는 오아시스 골수팬들에게는 호평을 받는 앨범이다. 그때 이 앨범을 혹평으로 몰아넣었던 가스펠적이고 사이키델릭한 음악성은 지금 현재와서 좋은 평가를 받고 있으며, 그때 까였던 노래또한 다시 들어보니 선녀같다는 평가가 지배적,
정작 발매 당시 Q에서는 이 앨범에 대해 호평을 했고, 2000년 최고의 음반 50위에 포함시키기도 했다 이후 노엘은 이 이후로 2년에 20곡을 쓰는 것을 계속할 수 없었다는 이야기를 하기도 했다.
4. 트랙 리스트[편집]
Little James를 제외한 모든 곡들은 노엘 갤러거가 작곡하였다. 대부분의 설명은 매거진 인터뷰 외에도 한국의 웹진 '가슴' 2000년도 2월 SOTSOG 칼럼 중 Track By Track 리뷰의 노엘 인터뷰 인용문을 참고로 했음을 밝힘
4.1. Fuckin' In The Bushes[편집]
오아시스의 몇 안되는 연주곡. 이 곡이 나온 이후로 오아시스 라이브 공연의 오프닝은 이 곡이었다.[9] 이 곡에 대한 설명은 곡에 관련된 노엘의 인터뷰를 인용하는 것으로 대체한다. 참고로 이 곡 때문에 미국 월마트에서는 앨범 보이콧을 하기도 했으며 한국에서는 앨범에 19세 미만 청취불가 딱지가 붙어 발매되었다. 아래는 곡에 삽입된 샘플의 원본.
원래 있던 할머니 동영상은 삭제된 상태이고, 대신 이 영상(이 노래에 샘플링 된 동영상 모음)에서 확인할 수 있다.
"엉클(U.N.K.L.E.)과 리믹스 작업 중 휴일에 드럼 루프를 갖고 놀기 시작해서, 베이스 라인, 기타를 얹고 보니 상당히 괜찮았다. 그 즈음 보던 1970년의 아일 오브 와잇 페스티벌(The Isle Of Wight Festival) 다큐멘터리에서 웃기는 몇몇 등장인물을 샘플링했다. 시작 부분("We Put This Festival On You Bastards..")은 펜스를 무너뜨리는 히피들을 보고 펄펄 뛰는 프로모터, 문제의 "Kids Are Running Around Naked Fuckin' In The Bushes" 부분은 섬 주민인 나이든 군인. 마지막 부분의 할머니는 요란한 옷차림을 하고 마리화나를 피우던 약간 맛이 간 노부인이다. 가장 과격한 트랙으로서 이걸 처음 들으면 사람들은 "도대체 이 자식들 지난 3년 동안 뭘 하고 있었던 거야?"라고 할 거다."
4.2. Go Let It Out[편집]
항목 참조
4.3. Who Feels Love?[10][편집]
뮤직 비디오는 캘리포니아의 데스 밸리에서 촬영되었다.
4집 두번째 싱글곡. 싱글 차트 4위 기록. 곳곳에 콜라주된 전자음과 토속적인 퍼커션 리듬 등이 인도를 연상시키는 음악으로 여러가지로 리볼버 시대의 비틀즈의 곡들을 연상시킨다. 곡의 가사도 태양과 사랑을 노래하는 등 다소 히피스럽다. 노엘이 태국에 있을 무렵 어느 날 새벽에 쓴 곡이라고. 전체적으로 사이키델릭한 색채가 짙은 곡으로, 라이브 버전으로는 기타가 더욱 도드라져 조금 다른 느낌으로 연주된다.
싱글의 B사이드로 One Way Road와 비틀즈의 곡을 커버한 Helter Skelter의 라이브가 수록되어 있다. 또 일본반에는 Gas Panic!의 데모 버전 음원이 수록되었다. 이 중 One Way Road는 폴 웰러가 커버하기도 했다.
4.4. Put Yer Money Where Yer Mouth Is[편집]
데모 녹음 중 사고로 얻은 키보드 리프에서 시작한다. 거기에 코드 변화를 주고 펑키(Funky)한 키보드 노이즈와 베이스를 얹어서 2, 3시간 안에 완성한 곡. 그러나 도어즈의 Roadhouse Blues와의 유사성이 지적된다. 가사는 여전히 의미 없는, 그러나 오아시스치곤 꽤나 부정적인 내용과 구절만이 반복된다.
참고로 Put your money where your mouth is는 영국 숙어로 '말로만 하지말고 행동으로 보여달라'라는 의미이다.
4.5. Little James[편집]
리암 갤러거의 곡 중 처음으로 오아시스의 앨범에 실린 곡.[11] 아내 팻시 켄시트(Patsy Kensit)[12] 와 전 남편 사이의 아들 제임스를 위해 쓴 곡이라고 한다. 전주부터 Imagine 피아노 전주로 시작하고 끝무렵에 가서는 대놓고 Hey Jude스러운 나나나나나~하는 코러스를 부른다.[13] 곡과 관련된 노엘의 인터뷰를 인용하면 다음과 같다.
"스튜디오에서 리엄이 기타를 퉁기던 선율이 있었는데, 우리에겐 내보이려하지 않았다. 어느 날 그가 합주실에 들어갔을 때 마이크를 켠 채로 놔두었더니, 조용히 혼자서 그 노래를 부르는 거다. 그래서 테입을 걸고 몰래 녹음해버렸다. 며칠 후 리엄이 아내와 휴가를 떠나자 우리는 가사를 받아 적고 어레인지 약간해서, 그가 돌아왔을 때는 곡이 완성되어 부르기만 하면 되는 상태였다. 리엄은 원래 조촐한 어쿠스틱 넘버로 할 생각이었던 모양인데, 내가 앨범에 들어가려면 규모가 커져야 한다고 말했다. 첫 노래치고는 진짜 잘했지."
그러나 이런 칭찬에도 불구하고 앨범 발매 이후에는 가장
4.6. Gas Panic![편집]
"레드 제플린 약간에, 트립 합 약간. 2년쯤 전에 지독한 신경쇠약에 시달렸다. 새벽 4시에 잠이 깼는데 다시 잘 수가 없어서 아내 멕(Meg)을 깨웠지만 그 날 따라 일어나지 않았다. 할 수 없이 기타를 들고 나가 그 때 기분을 노래로 만들었다. 작업 중 거의 모두 좋아했던 곡. 나는 이것이 어두워서 맘에 든다. 귀에 붙는 소곡이지만 팝은 아닌 것."
노엘 갤러거가 마약, 특히 코카인으로 인해 외로움과 편집증, 신경쇠약 등 각종 후유증에 시달릴 무렵에 쓴 곡. 당시의 모습을 통틀어 노엘의 가장 내밀하고 어두운 구석이 반영된 곡이다. 실제로 노엘은 1, 2집 시절에 엄청나게 마약을 한 후유증으로 공황장애에 시달려 마약을 그만두었음에도 불구하고 계속해서 정신과 치료를 받아야 했다.
일부 사람들은 Sunday Morning Call 대신에 Gas Panic!이 싱글로 발매되었어야 한다고 주장하기도 하는 등 여러모로 숨겨진 매니아들이 있는 곡이기도 하다. 거칠게 변한 리암의 목소리와 어우러져 그야말로 오아시스 곡 중 제일 레드 제플린에 가까운 곡이 되었다.
4.7. Where Did It All Go Wrong?[편집]
4집 네번째 싱글곡. 정식으로 발매된 것은 아니고 미국 라디오 프로모션 용으로 제작되었다. 노엘은 이 곡을 두고 "가사는 나의 런던 시절, 사람들이 하도 많이 몰려와서 나이트클럽에 사는 것 같았는데[14] , 거기서 만난, 알고 보면 징징대는 한심한 작자들인 내 유명 인사 친구들에 대한 약간의 비꼼을 담은 것이다."라고 말했다. 뮤직 비디오의 내용도 바보같은 인터뷰를 하는 밴드와 멀찍이 떨어져서 옆 건물을 지켜보는 노엘의 모습이 대조되면서 곡의 가사와 비슷한 느낌을 담았다.
어째서 프론트맨인 리암이 곡을 부르지 않았냐는 질문에 노엘은 "(목소리 자체가) 리암이 이 곡을 소화할 수 없기 때문이다. 멜로디도 자주 바뀌는 편이고... 리암은 목소리(음역대)가 다양한 편이 아니니까"고 말했다.
4.8. Sunday Morning Call[편집]
4집 세번째 싱글곡. 싱글 차트 4위 기록. 노엘이 말하기를 "특정 인물이 모델이다. 멋진 사람이지만 마음껏 인생을 살다 맞은 몰락을 감당 못해 항상 투덜거리는. 누군지는 밝힐 수 없다. 노엘일 가능성도 있다. 물론 노엘 성격상 노엘이 맞다 하더라도 사람들이 이러쿵저러쿵 말하는 게 싫어서 비밀로 하겠지만. " Don't Look Back In Anger 이후로 노엘이 부른 곡이 싱글컷된 것은 이 앨범이 두번째. 뮤직 비디오는 잭 니콜슨의 영화 <뻐꾸기 둥지 위로 날아간 새> 속 장면을 따온 영상에 밴드가 출연해 캐릭터들을 지켜보는 컨셉.
싱글 비사이드로는 Carry Us All과 Full On이 실렸다.
여담이지만 Full On과 Gas Panic이 이어진다
4.9. I Can See A Liar[편집]
4.10. Roll It Over[편집]
이 곡에 대해 노엘이 말하기를 "예전에 사람들이 내게 와서는 이러니저러니 떠들어댔던 가십에 관한 노래인데, 내가 가장 아끼는 곡이다. 약간 감정을 고조시키는 가스펠 풍. 이것이 우리가 갈 방향이다. 좀 더 가스펠적이고, 좀 더 그루비한, 좀 더 사이키델릭한."
고요하고 어두운 분위기로 시작해 나중에 가서는 그의 말처럼 웅장한 오케스트라에 가스펠 풍 코러스가 더해지는 아웃트로가 인상적이다. 다만 이 곡뿐 아니라 이 앨범 전체에 사용된 코러스는 사실 진짜 사람을 데려와 녹음한 코러스가 아닌, 멜로트론에 저장된 코러스 소리를 겹겹히 쌓은 인공 코러스라고 한다. 그 드라이한 느낌이 오히려 앨범 분위기에 어울렸다고.
이 곡 이후로 가스펠 풍 코러스의 사용은 Heathen Chemistry 시기의 노엘 곡들에서도 이어지며 그 이후로도 계속 노엘의 작곡 스타일에서 종종 드러난다.
최근 리암의 솔로공연 셋리스트에 포함되면서, 곡이 발매된지 20년이 훌쩍 지나서야 첫 라이브가 이루어졌다. 리암이 2022년 자신의 3집 투어에서 처음으로 공연하였다. 아무래도 이 곡은 앨범 버전에서부터 합창단 코러스가 반주로 깔렸기 때문에 오아시스 시절에는 연주를 하지 못 하다가, 리암이 솔로 3집 앨범에서 합창단을 동원하는 가스펠 곡들을 수록하면서 라이브 무대에서도 합창단을 동원했다. 그래서 이 곡도 덕분에 라이브가 가능해진 것으로 보인다.
5. 그 외[편집]
5.1. 데모 유출[편집]
2000년 1월에 이 앨범의 데모 세션 부틀렉이 인터넷에 유출되었다. 대부분의 곡들은 노엘 갤러거가 몇몇 친구들의 도움을 얻어 자택인 슈퍼노바 헤이츠(Supernova Heights)[15] 의 홈 스튜디오와 오아시스 소유의 휠러 엔드 스튜디오(Wheeler End Studios complex)에서 녹음했다. 여기서 Little James를 제외한 모든 곡을 노엘이 불렀다.
5.2. 잃어버린 명곡 : Let's All Make Believe[편집]
Go Let It Out의 B사이드이자, SOTSOG 일본반 보너스 트랙이기도 한 Let's All Make Believe는 팬들과 평론가들 사이에서 숨겨진 보석같은 곡으로 평가되곤 한다. Q 매거진은 '잃어버린 명곡 500선' 리스트를 발표하면서 이 곡을 1위로 뽑았으며, 별점 4점을 주면서 "만약 이 곡이 Standing On The Shoulder Of Giants에 정식으로 포함되었으면, 별점 하나가 더 추가되었을 것"이라는 코멘트를 덧붙이기도 했다.
5.3. Familiar to Millions[편집]
항목 참조